트리나...

정말로 트리나가 무서워하는 게 무엇이었을까? 그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녀가 맥티그에 대해 알고 있는게 뭐가 있을까?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와 그녀를 그녀의 가정과 부모로부터 떼어 놓고 이 낯설고 널찍한 아파트에 오롯이 둘만 남게 만든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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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보러 예당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내가 사는 동네에 공연장이 들어서고 나서는 이상하게 가게 되지 않았는데....방송에서 공연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불현듯 이제는 가봐(?)야 할 때인가 생각하다가 마침 베토벤소나타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있어 예매를 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찾아가는 공연장... 프로그램대로 연주를 들을수 있어 좋았다. 겨울로 가고 있는 시기에, 봄을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놀란건(클알못이라서..) 격정적인 베토벤소나타9번 마저..굉장히 소프트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상상하는 기쁨.... 베토벤 소나타9번은 내게 연주라기 보다, 언제나 톨스토이의 소설을 생각나게 한다. 도대체 어디서 남자는 그렇게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 걸까.. 아니 소설 속 남자가 아니라 톨선생에게 더 지대한 영향을 준 베토벤 소나타 9번.... 사실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긴 한다.


베토벤의 바이올린소나타9번에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라는 글을 읽고, 몇 년 전 읽은 기억이 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포함 4 편이 실린 중단편집. 리뷰로 남기지 않은 이유는 네 편 모두를 읽지 않아서 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우선 크로이체르 소나타만 읽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소나타9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라, 처음 읽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충격까지 받았으니, 처음 읽을때도 충격을 받았던 걸까.. 리뷰까지 남기지 않은 걸 보면 당황했던 게 틀림없다....다시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읽었다. 베노벤 바이올린소나타9번에 대한 감상을 즐기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데 센(?) 소설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오롯이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톨선생의 말년 작품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광기에 가까운 에너지가 느껴져서 사실 무서웠다.

소설의 시작은 사랑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여성과 남성의 시각이 다르고, 노인과 젊은 사람의 시각이 또 다른 사랑의 본질에 관한 주제는 톨선생이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해결 될 수 없는 질문이란 생각을 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정답은 아닐까..그런데 우리는 타인의 사랑에 대해서 만큼은 또 관대하지가 않아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한 남자는..정말 심각한 문제를 지닌 남자임에는 분명하다..(그의 시선에서 바라볼 여유가 아직은 없다.) 그런데 톨선생은 베토벤의 바이올린소나타9번에 어디에서 광기를 느낀걸까...그렇지 않았다면 사랑에 잘못된 환상을 가진 남자를 그려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음악 때문이란 건 자신의 광기에 대한 합리화 일 뿐이다.그러나 모두가 같은 느낌으로 예술을 바라보지는 않다는 걸 감안하면 누군가에는 에너지 넘치게만 들릴 프레스토가...누군가에게는 심장박동을 조여오게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세계로 이끌수도...아, 베토벤선생께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자신의 음악으로 인해 한 남자가 미치광이처럼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모습을 마주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내 음악에 숨어 있는 악마의 목소리를 찾아냈다고..고마워 할까..아니면 모독이라 생각했을까...사랑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남자의 결말이 해피앤딩일수 없다.문제는 함께 사는 이들에까지 아픔이 고스란히 남겨진다는 거다. "(...)규칙적인 아르페지오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자신들의 말이 들리지 않도록 일부러 피아노를 치는게 분명했습니다.어쩌면 키스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이럴 수가! 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때 제 내부에 숨어 있던 짐승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심장이 답답해지며 멈추는 듯하다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모든 증오의 귀결점은 예외 없이 자신에 대한 연민입니다"/264쪽  사실 이 소설은 센..소설이 아니라, 굉장히 솔직한 소설일지 모른다. 너무 솔직해서 자신이 숨기고 싶은 무언가를 꺼내 놓는 바람에 사람들이 난리를 친것이 분명하다. 무튼 그럼에도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무섭다. 그러니까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지, 예술이 미칠수 있는 악영향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혼란스럽기도 하다.스탕돌신드롬과는 반대지점에 있는 이야기 같아서....


 베토벤소나타 9번을 들을때마다 어김없이 톨선생의 소설을 떠올린다. 그것이 온전하게 감상하는 것을 방해하는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무튼,소설과 함께 이 시리즈의 베토벤 편도 함께 찾아보곤 하는데, 베토벤소나타 연주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지어 연주프로그램도 같다. 베토벤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들을수 있는 공연을 보기에 앞서, 책으로  만난 덕분에 즐거움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남들과 달라서 선구자가 되었던 베토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대등한 위치에 놓았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설명 덕분에 그렇게 느껴진 것일수도 있겠지만 공연을 감상하는 내내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크로이처>에서는 넓은 음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숨 가쁘게 펼쳐지는 피아노 파트가 특히 화려하다.너무 화려한 나머지 마치 바이올린을 위협하듯 공격적이다.그러나 이에 대항하는 바이올린 파트 역시 만만치 않아서 불을 뿜는 듯한 스타카토와 강렬한 악센트를 선보이며 피아노와 접전을 벌인다. 그래서 음악학자들은 이 곡이야말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대등한 위치에 있는 진정한 의미의 듀오 소나타라고 본다"/165쪽  현악4중주 연주가 좋았던 건, 글을 몰라도, 누군가와 대화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때 느껴지는 희열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알고 들으면 더 좋겠지만..몰라도 듣지 못하는 벽이 느껴지지 않는 기분...그런점에서 보면 클래식은 여전히 어렵다. 베토벤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모르고 들었때와 조금의 정보를 이해하고 들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 그러나 모르고 들었다고 해서 답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조금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지점이...클래식클라우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그런데 클래식은 함께 듣기가 병행될 때 더 즐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베토벤의 개인사 보다, 청각을 잃어가는 고통을 상상하며 바이올린 소나타9번을 들어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5번은(공연은 3,7,9였는데, 1,5,9번은 변경되어 있었다.^^) 그런데 비교적 밝은 연주곡으로 알려진 5번에서 조차 베토벤의 복잡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기분을 느낄수 있다. 체념과 받아들임, 9번에서는 노애락..만 있다는 설명 덕분에 좀더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1번은 어려웠다..기 보다 평범한 느낌..만약 이 음악을 가장 먼저 들었다면, 클래식은 역시 어려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5번과 9번이 너무 센 음악들이라..건상식이 입에 안맞게 느껴지는 기분이었을수도 있겠고.... 무튼 베토벤바이올린 소나타 공연 덕분에 , 클래식 클라우드편과 톨스토이의 소설까지 찾아 읽게 되었다.  그러니까 연주를 보기 위해 클래식클라우편을 찾아 읽었고, 톨스토이소설로까지 이어진 모양이다... 이번 공연을 들으면서 남자가 광기로 빠져들수도 있을 것 같은 이유가 하나 보이긴 했다. 서로 다른 악기가 어느 순간 하나의 소리가 되는 듯한 기분.. 물론 그럼에도 광기에 사로잡힌 남자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베토벤 음악에 영감을 받아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톨선생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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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물증인 3,000루블은 물증이 아닌 것으로 되어버리고 드미트리가 쓰지도 않고 훔치지도 않은 3,000루블은 엄연히 존재하는 물증으로 굳어져버린 것이다. 돈에 관한 사실과 진실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 차이로 인해 많은 사람의 운명이 뒤바뀐다.때로는 실재하는 때로는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때로는 눈에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감춰져있기도 한 이 3,000루블은 인간과 돈의 관계 전부를 함축해주는 불길한 상징이다." /324쪽 올 봄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관람했다. 호기심을 끈 건 부제처럼 따라온 제목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덕분이기도 하다. 두 번이나 읽었지만 내 기억 속에 스메르자코프는 없없다. 연극을 보면서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가 나란히 이름을 올린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를 통해 카라마에서 중요한 화두가 '돈'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돈도 중요했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그 시선으로 보았고, 드러나지 않는 듯한 존재 스메르자코프에 대해..어느 정도 각인을 하게 되었구나 하면서,다시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돈이란 주제도 함께 따라가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돈에 관한 이야기는..내게 지금 뉴스를 접하는 세상에도 대입이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었다는 거다, 준 사람은 있고, 받은 사람은 없다. 그 목적과 이유도 다르다. 왜냐하면 운명이 바뀔수 있기 때문에.. 스메르자코프가 가지고 있었던 3천루블의 진실은.. 스메르자코프와 이반 밖에 알 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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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황실 재산을 관리한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은 창경원 경내 전역에 전등을 가설하고 심지어 무대를 만들어 공연과 문화영화 등을 올렸다.밤벚꽃놀이, 야앵은 그렇게 흥행해 한국전쟁이 채 끝나지도 않은 1952년과 이듬해에도 행해졌고(...)"/169쪽











<대온실 수리 보고서> 덕분(?)에 김유정의 단편 '야앵'을 찾아 읽게 되었다. 당연히,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서 김유정의 소설을 언급한 것도 아니다. '야앵'을 검색하다가, 김유정 작품에 '야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읽고 싶어진거다. 아주 짧은 단편이다. 소설의 시작은 봄꽃을 맡는 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법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향기를 품은 보드라운 바람이 이따금씩 볼을 스쳐간다"/307쪽 그러나 소설이 씌여졌을 당시를 떠올려 본다면, 퍽퍽했을 우리의 삶에, 바람 한 점 위로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시끌벅적한 밤벚꽃놀이 풍경과 달리,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고달프다. 특히, 어느날 아이를 잃어버리게 된 정숙의 사연... 그녀가 보고 있는 건 밤꽃풍경이 아니라, 잃어버린 아이를 혹 찾을수도 있지 않을까 인데... 생각지 못한 반전이라 살짝 당혹스러웠다. 이혼한 남자가 아이를 데려간 모양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녀의 자책이..정말 자책해야 할 일이었나 묻게 되는데, 역자의 해설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지극히 남자의 시선으로 씌여진 이야기인가 싶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김유정이 얼마나 삶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던가를 보게 된다.시한부 인생의 폐결핵 환자 김유정이엇다.(...) 살고 싶었던,살아서 사랑받고 싶었던 김유정의 열망은 <따라지>에서 아키코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톨스토이로, <야앵>에서 딸을 데리고 사직골 몇 번지에 살고 있다는 결핵 환자임이 분명한 정숙이의 전 남편으로(...)"/441쪽  꽃은 눈으로 보는 걸까, 향기로 맡는 걸까..에 대한 화두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향한 마음이 같다고 부부의 마음 조차 하나일 수는 없는 법.. 정숙이 남편에게 몹시 패악을 부린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정숙의 시선에서 보고 있노라면 억울하지 않을까...보드라운 바람도 정숙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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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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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리나라 소설을 읽었다. 어쩌다 보니 거리를 두고 말았다. 애정하는 작가도 특별히 없다.오랫동안 알라딘 창에 깜박인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보면서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단순하게, 제목에서 sf 적인 느낌이 풍겨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창경궁' 에 관한 이야기라는 글이 어느 순간 내 시선으로 들어왔다.창경궁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라면....그런데 소설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내가 애정하는 강화도와 석모도에 대한 스케치가 있어 더 즐겁게 읽을수 있었다.


"후쿠다가 관직에서 내려온 뒤 아주 오랫동안 그는 잊힌 사람이었다.그의 행적이 새롭게 조명된 건 2000년대가 되어서였다. 창경궁 대온실을 이야기할 때마다 한국에서 결코 지워낼 수 없었던 그 이름은 정작 식민지배 당사자의 나라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다.(...)"/400쪽



조선왕릉을 찾아 다니게 된 것은 고즈넉한 산책을 하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왕릉을 찾아 다니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역사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이 따라왔다. 여전히 까막눈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다양한 시선으로 왕릉을 바라보게 되었다.단순히 '역사'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신기하고,궁 역시 내게는 그런 존재다. 그러나 그곳은 여전히 높은 벽이 쳐져 있는 기분이 든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가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건데..핑계일게다.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핑계. 그런데 <대온실 수시 보고서>를 읽으면서 창경궁대온실이 너무 궁금해졌다. 사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허구라고 했다. 후쿠다가 후쿠바 하야토가 아닌것과 같은... 그런데 왠시 다 있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가 식민지 시절을 겪었고, 전쟁을 지나오면서, 창경궁이 온전하게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게다. 소설처럼 읽혀지지 않은 이유다.정말 그곳에서 그런 일이 모두 있었을 것만 같은 기분.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소설 마지막 즈음, 영두가 어린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게 된 장면 덕분은 아닌가 싶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는 얘기지(...)"/403쪽 영두의 개인적 이야기보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가 소설의 더 중심에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오랜만에 몰입하며 읽을수 있었던 건, 인간의 시간과 다른 시간을 만날(?)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깡통만두는 알고 있으면서,모두가 알고 있는 만큼도 모르고 있었던 창경궁...과 이제는 만나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대온실 수리 보고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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