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 ㅣ 환상문학전집 23
크리스타 볼프 지음, 김재영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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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라는 이름은 내게 한 가지 모습으로만 남아 있었다. 사랑에 상처받고, 끝내 자신의 아이들마저 잃게 만든 무서운 여인.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를 처음 손에 들었을 때 그녀를 위한 '변명'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 한편에 작은 물음들이 생겨났다. 그녀가 고향을 떠나게 된 이유가 단지 이아손 때문만은 아니였을수도 있겠다는 생각. 아버지와 그녀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녀를 따라다니던 소문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 물음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어쩌면 그녀는 누군가의 잘못을 대신 짊어져야 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랫동안 굳어진 신화의 그늘 뒤에 숨겨진 진실과 마주한 기분이들었다고 해야 할까.. 분명 메데이아를 위한(?) '변명'이었을수도 있는데 말이다.


메데이아가 고향을 떠날 때 남동생을 죽였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소설이 들려주는 진실은 달랐다. 압시르토스는 아버지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 희생시킨 아이였고, 메데이아는 오히려 흩어진 동생의 뼈를 모으며 그 죽음을 슬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소문은 사실보다 빠르게, 그리고 더 깊이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녀가 아버지를 떠나게 된 이유는 소문에 대한 희생양이 되길 거부해서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아버지의 권력 아래에서 희생되는 것을 지켜본 그녀는, 자신 역시 언젠가 제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닐까.(메데이아를 악녀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는 이아손을 사랑해서 아버지를 배신한거라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새로운 땅 코린토스에서도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크레온 역시 딸 이피노에를 희생시켰고, 그 비밀을 감추기 위해 이번에는 메데이아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코르키스와 코린토스, 두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권력이 약한 사람을 제물로 삼아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메데이아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그 굴레가 그녀를 따라온 셈이다.


신화로 읽은 메데이아는 악녀였다.소설을 읽으면서 그녀를 다른 방식으로 읽을 생각 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이유에 화가 났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묻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악녀라는 이름이 붙은 순간,나도 모르게 그 틀 안에서만 그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나를 위한 변명인 셈인가^^) 소설은 그 틀 밖에서 메데이아를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는 고맙다고 해야겠지만,거친 세상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 메데이아의 절규가 내내 떠나지 않는 기분이다. 


"저들은 두고두고 나를 자식을 살해한 여인으로 낙인찍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저들이 돌아보게 될 잔악한 행위에 비하면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우리 인간은 깨우칠 줄 모르는 존재이다"/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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