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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한 페이지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2
에밀 졸라 지음, 이미혜 옮김 / 빛소굴 / 2025년 12월
평점 :
뜨문뜨문 졸라선생의 소설을 읽을때는 루공가시리즈를 찾아 읽는 날이 올까 싶었다.지난해 부터 다시 찾아 읽고 있는 마음을 알았는지, 빛소굴에서도 졸라선생의 소설이 나왔다. 대형출판사들은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작품 위주로 나와서 아쉬웠는데, 점점 더 빛소굴을 애정하고 싶다.
"푸른 하늘이 지평선까지 퍼지는 동안 기억이 살아나면서 엘렌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년 동안 미쳤던 걸까? 지금 와서 비뇌즈 가의 방에서 3년 가까이 살던 그 여인을 돌이켜보니 낯선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 여인의 행동은 경멸감과 놀라움을 느끼게 했다. 미친 짓이었어. 맹목적이고 추악한 것이었어! 하지만 그녀가 그런 일을 불러들인 것은 아니었다.(...)바람이 한 번 불자 그녀는 땅에 넘어졌다.지금도 그녀는 스스로 해명하지 못했다.자기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어떤 타인처럼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고통으로 마비되어 그녀는 다시금 욕망도 호기심도 없이 똑바로 난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차분함을 되찾았다.그녀의 삶은 정숙한 여인의 자존심과 엄격한 평화를 회복했다"/418~419쪽

<사랑의 한 페이지> 표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윌리엄 트레버의 <밀회>표지를 보는 순간, 비로소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엘렌과 앙리가 밀회를 즐기려는 시점이라서.. 그런데 아무리봐도 <밀회>의 표지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해서 내내 머릿속에 자리한 표지 속 이미지는..자신도 모르게 했던 그 사랑이 불러온 댓가에 대한 참회의 느낌을 담은 이미지란 생각이 들었다. 더이상 사랑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엘렌에게 찾아온 사랑은,정말 사랑이었을까? 앙리는 정말 엘렌은 사랑한 것이 맞나? 사랑이 뭐길래.. 서로에게 이처럼 가혹한 고통을 주게 되는 걸까.. 사랑하고 있다는 상상이 불러온 참극은 아니였을까, 밀회를 즐기는 이들에게도 사랑이겠으나, 도덕적인 잣대를 두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사랑으로 인해 누군가 아플수 있다면 정말 사랑이 맞는 걸까..물어봐야 옳다. 그러나 엘렌도 고백했듯이. 그 순간은 '미쳤기' 때문에 볼 수 없었고,댓가는 고통으로 끝났다.(졸라 선생은 밀회를 나눈 이들에게 해피앤딩을 선물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사랑의 한 페이지>를 읽기 전 애거사의 세븐 다이어스 미스터리를 읽었다. 거기에" 사랑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레이디 캐터햄은 문득 조카딸이 놀라울 정도로 성숙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혹이 이 아이가 불행한 사랑을 겪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레이디 캐터햄은 불행한 사랑이야말로 젊은 여자들에게 가끔 상당히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을 겪어야 삶을 진지하게 여기게 되는 법이었다"/139쪽 (세븐 다이어스 미스터리) 그녀가 밀회를 나눈 것도 아닌데, 불행한 사랑이 유익할 거라는 말은 너무 오만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엘렌이 하는 사랑이, 앞으로 그녀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궁금했다. 졸라 선생은그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주었다. 그럼에도 완벽한 새드앤딩으로 끝내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인생의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슬픔만 있는 것도, 기쁨만 있는 것도 아닐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