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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속삭임 ㅣ 위픽
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예산에 있는 책방이름과 닮은 소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같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으나,'위픽' 시리즈에 급 관심이 생긴 터라(성해나 작가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다) 메모해 왔다.
"아저씨 여기 지하철이에요"
"그런데요?"
"시끄럽다고요"
"그럼 시끄러운 사람이 나가요"
"아저씨가 나가야죠. 여기 사람들 다 시끄럽다고 생각할걸요?"/8쪽
잠깐 통쾌했다.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동영상을 자기 집에서처럼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몹시 피곤한 1인이라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괜찮은걸까 혼자 궁금해하다가, 이제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변인들의 말에 혼자 의기소침해진다. 사람 무서워서 볼륨 낮추라고도 말못하는 입장에서 누군가 저렇게 말해준다면 고맙겠다는 마음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내가 참 소심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나같은 사람한테 필요한 모임인걸까.. '속삭이는 모임'은 동영상을 시끄럽게 켜둔 남자를 무시하는 사람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그녀를 통해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정말 자그맣게 이야기하면 더 속마음을 털어 놓게 될 것도 같고, 집중하게 되는 것도 같고, 해서 모임이 된 두 사람은,또 다른 모임의 일원을 찾아 나선다. 시끄러움의 대명사격이 될 만한 사람. 그런데 그녀 역시 그렇게 소란스럽게 떠들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그렇지만 도저히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소란스럽게 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유는 알겠다. 문제는, 민폐가 될 만한 소란스러움을 정말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세상이 끔찍하게 시끄러워서 속삭이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시끄럽게 구는 훈련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35쪽
결국, 내 안의 여러 시끄러움과의 전쟁이었다.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 외면하려는 사람, 어떻게든 시끄러움과 싸워 잠재우고 싶은 사람..그렇다해도 나는 동영상을 내집에서 보는 것처럼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는 버겁다. 그들에게<소란한 속삭임>을 일일이 읽어 보라고 말할수도 없고.소설을 읽는 동안은 재미었는데, 개운한 결론이 내려진 기분은 들지 않는다.
PS 라디오를 들을때마다, 사연을 보내는 이들의 마음이,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소란한 속삭임>을 읽다가 알았다. 마음의 소리를 가장 크게,그러나 조용하게 표현하는 방식일수도 있겠구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집사정을 시시콜콜 들을때마다..괜찮은 걸까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소란한 속삭임>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