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여름 캐드펠 수사 시리즈 1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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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정과 긍정의 시선으로 마주한 '반란' 이었다. 전쟁을 한다는 건 결국, 저마다 가진 욕망이 자리한 탓일게다. 더 많은 걸 가진자에게 덜 가진 자가 반란을 일으킬수도. 그러나 이야기가 계속 이렇게만 흘러갔다면, 애정하는 캐드펠시리즈라 해도 (나는),책장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누구도 헤치지 않는, 오로지 자신 스스로의 삶을 위해 반란을 도모한 헬레드가 보여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헬레드 덕분에 극과 극의 반란을 비교하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물론 이번에도 어김없이 살해당하는 인물은 등장했지만, 치열한 전쟁이 오고간 탓에, 그의 죽음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야만 했는데, 이유는 소설 끝에가서 밝혀진다. 그럴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반란의 여름>에서 중요한건 그 남자를 누가 죽였는가에 있지 않았으니까.


"카드왈라드르 밑에 있던 분이라면 그의 도량이 도토리 속 만큼도 못 된다는 걸 알겠군. 그 사람은 저 야만인들을 귀네드 땅에 끌어들인 뒤 그들과의 약속을 저버렸어요. 그러곤 죄 없는 인질들이야 어떤 곤욕을 치르든 아랑곳없이 저만 살겠다고 내뻐렸죠.(...)"/301쪽


"저를 치워버리는 게 그분의 바람이잖아요. 아버지에게 피해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기왕 떠나온 마당에 다시 돌아가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수녀원에서 썩고 싶지는 않아요(...)"/185쪽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전쟁을 도모하는 반란과, 자신의 삶 스스로를 개척하기 위해 꿈꾸는 반란은 얼마나 다른가.전자는 수많은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만, 헬레드의 반란은 스스로 찬란한 여름을 만들어 내는 여정으로 읽혀졌다. 종교인으로 살아가야 할 아버지 조차, 그녀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려고 몸부림치는 걸 시대가 그랬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찜찜함은 남는다. 지난시간 얼마나 많은 헬레드와 같은 여인들이 있었을까..를 상상했다. 가볍게 읽고 넘길 부분일지 몰라도, 나는 <반란의 여름>에서 그녀의 모습이 가장 크게 보였다. 자유의 몸일 때보다 포로가 된(물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시점에서 더 자유로움을 경험하는 기분이란 말은 ...아버지가, 종교가 그녀를 얼마나 속박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고 본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닐테지만, 아이러니하다. 아버지를 위해 선택한 길이 오히려 그녀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포로 신세임에도 그녀는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자신이 무력한 처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으며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현실과 싸우기를 단념한 채 어떤 기대도 없이 그날그날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캐드펠이 보기에 헬레드는 자유로운 몸일 때보다 지금 더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서서히 죽어가고 길버트 주교는 라넬루이에 오자마자 부적격인 성직자들을 가려내겠다며 혈안이 되어 돌아다니던 그 혼란의 시기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러하리라. 당시 그녀는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겪었다.아버지가 자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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