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처럼 나도 고민했더랬다. 볼것인가, 말것인가... 지인찬스로 보게 되었다. 보게될 운명이었던걸까... 시저의 저 유명(?)한 말 때문이 아니라, 시저라는 인물이 내게 각인된 건 죄수들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시저와 브루투스에 대한 논쟁이 흥미를 끌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시간이 지나 <줄리어스 시저>를 읽으면서..는 안토니에게 선동(?)당하는 민중들이 두려웠다. 우리는 선동가들이 하는 말에 얼마나 잘 현혹되는가 싶어서... 다시 시저와 브루투스를 만나게 된다면 오로지 저들의 시선으로 시저를 보고 싶었더랬다.









'킬링시저'를 보러 가기 전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개략적인 설명만 읽었다. 브루투스가 왜 시저에게 칼을 겨눴을까... 저마다 시선은 다르겠지만, 책에서 언급된 부분에 공감했다. 브루투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생각들에 갇혀 버린...그렇다면 왜 독재자가 될 거라 생각했던 걸까.. 예전 내가 쓴 리뷰에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글을 봤다. 지금은 오해라기 보다, 이해충돌은 아니었을까... 연극은, 그런점에서 내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텐데, 내가 상상한 브루투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킬링 시저 속 부루투스는..유약해 보였다...무엇보다 마이크 달린 연극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연극을 함께 본 지인과 브루투스와 시저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고, 맛있는 콩국수 맛집을 알게 되었으며..학교앞 숨어(?) 있는 카페를 발견하게 된 기쁨이 크다. 그래서 안토니는 어떻게 되었나를 생각하다가... 로마비극 연극을 보기 위해 읽었던 책들을 보고 ..웃음이 났다. 모아모아 다시 읽어 보아야 알 수 있겠다... 분명한건, 누군가를 죽이려 하는 순간, 자신도 죽을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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