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작가>를 읽게 된 덕분에 <유령의 시간>을 읽었다. 물론 두 소설은 아무런 연관이 없을 수도..그런데 또 어쩌면 있을 수도 있겠다. '유령의 삶'을 살아야 하는 순간에 대한 교집합.. 그러나 똑똑한 기능 검색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유령작가>를 읽게 된 나에게..또 다른 '유령' 제목을 단 책이 있다고... 해서 이름도 낯선 작가의 책을 읽었다. <유령의 시간>
"창문이 열린 아파트 건물들이 정면으로 늘어서 있다. 고려호텔13층27호. 에어컨의 찬바람을 견디다 못해 긴팔 가디건을 덧입은 지형은 짐도 풀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7쪽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 너무도 낯선 곳이 소설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은 처음이라 정신이 번쩍..들며 이 소설이 몹시 재미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내게는 딱 프롤로그까지 였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거의 담겨 있었음에도, 나는 잘 몰입되지 못했다. 뭔가 계속 뚝뚝 끊어지는 기분..시대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이들의 삶을 감히 상상할 수..없지만,뭔가 다가갈 수도 없었던 참 이상한 기분..불쑥불쑥 이것이 유령의 시간일까? 라는 질문에서 더 나아가질 못했다. 유령처럼 살았던 이섭과 미자의 삶 속으로 나는 왜 들어가지 못했을까..너무 담담해서..였을까..
다시 로맹가리의 소설을 읽으려고 찾아 놓은 책...'경계'라는 단어가 들어와 잠깐 반가웠다.
"이섭은 불현듯 생각했다.경계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증거였다"/92쪽
그리고 내 앞에 다시 덕수궁이 찾아왔다.
"함녕전 행각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고종이 죽은 침전이라는 함녕전.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폐망한 왕조의 적막한 궁궐 안을 걷는 기분은 공허했다.혼란한 시국의 어지러웠던 발자국이 모두 지워진 텅 빈 궁궐을 걷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함녕전을 지나 중화문에 이를 때쯤 담 너머로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이섭은 잠깐 멈춰 서서 맞은편의 중화전을 바라보았다.(...)"/76~77쪽
이섭처럼 유령의 시간 속에서 힘들었을 이들의 인생을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어 힘들었다. 글맛도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그럼에도 나는 봄날 덕수궁을 찾아가..걷는 내내 '유령의 시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섭을 떠올려 보게 되지 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