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페이지터너스
보리스 사빈코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빛소굴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두서 없이 찾아 읽은 책들마다 마음에 들어 빛소굴에서 나온 책들 모두를 읽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아직까지 출간된 책이 많지 않아 독자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츠바이크와,미시마 유키오외에는 모두 낯선 이름이다. 해서 작가보다는 흥미를 끄는 제목 우선 순위로 골라 읽는 중이다. 


'창백한'의 출처(?)는 요한계시록에서 힌트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책을 여는 서문에 성경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종교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고전을 읽으면서 내내 하게 되는 생각 중 하나는, 마지막에 읽게 될 책이 '성경'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서,아주 길지 않은 소설이다. 그런데 결코 가벼울 수 가 없는 주제다. 테러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속으로 나 역시 뜨금했던 건, 3차대전은 아니라 해도..세상이 전쟁으로 어수선함 속에 있다보니.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를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당한 테러..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바냐의 시선대로라면 나 역시 스메르자코프..와 다를바 없는 모양새다. 복수는 복수를 생산하고..복수 끝에 기다리는 것이 평화는 아닐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마냥 어둡게 읽혀지지 않은 건.. 테러를 실행하기 위해 탐색되는 과정 속에 모스크바 시대의 구석구석이 그려지는 데..잠시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러시아에 와 있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드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나면..다시 테러에 과한 질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창백한 말들이 마구마구 떠다니는 기분.. 혁명도 중요한데, 혁명 보다 사랑이 중요한 사람도 있고, 사랑 때문에 혁명을 하려고 하는 이도 있다. 혁명의 필요성을 알지만..그것이 최선인가..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오로지 테러를 지시하는 이들에게만 창백한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혁명이 최선이라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혁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한다. 아니..어쩌면 명확한 답을 찾았기 때문에 혁명 속에 숨겨진 창백한 무엇을 찾아낸 건지도 모르겠다. 성경의 해석은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지만... 오늘날, 성경이 자신들의 입에 맞게 해석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전에 읽은 <예수전>을 읽을때도 아마..저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고.. 무튼 그에게 테러는...무언가를 위해, 혹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게 된 걸까.. 나라를 위해 된다면..나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물음...스스로를 위한 궤변이였을까, 절규였을까....분명한 건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서 그가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가을밤과 권총!!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죽였다.나는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누가 재판관인가?누가 나를 재판할 것인가?누가 나를 변호할 것인가?나는 나의 재판관들도 우습고 그들의 엄중한 판결도 우습다.누가 나에게 와서 신념을 가지고 살인해선 안 된다. 살인하지 말라고 말할 것인가?누가 감히 돌을 던질 것인가? 경계선도 없고 차이점도 없다. 어째서 테러를 위해 죽이는 것은 좋고,조국을 위해서 라면 필요하고,자신을 위해서는 불가능한가? 누가 내게 대답할 것인가?"/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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