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요. 아자르예요. 가리 말이예요.<새벽의 약속>을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네요.나는 그 책에 홀딱 반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분 책을 다 읽어 치우고 싶지 않아요.달리 먹을 게 없다는 핑계로 아끼는 고기를 다 구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아자르, 아니 가리를 아세요?
<솔로몬 왕의 고뇌>요?
예,그거 말고도<그로칼랭><자기 앞의 생> 등등 많아요.다 해서 서른한 권이에요"/113~114쪽
로맹 가리의 책이 읽고 싶어진다는 건 가을이 오고 있다는 나만의 시그널이다. 그러나 가을이란 감정으로 풍덩 들어가는 건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방송에서 로맹가리와 진 세버그 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진 세버그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겠지만.로맹가리의 마지막 작품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진 세버그의 개운치 않은 죽음.그리고 1 년후 로맹 가리의 (자살) 작가의 유언은 진 세버그의 죽음과 관련 없다고 말했지만,속인의 시선으로는 진 세버그가 죽음을 맞이한 1979년 이후의 책을 읽고 싶었다. 작품 속 어딘가에 진 세버그의 흔적이 그림자처럼이라도 남아 있을 것 같아서.
"그 여자의 천진함과 서민적인 쉰 목소리,백치 같아 보이는 작은 얼굴을 사랑했소.그 여자는 줄곧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서 구해주고 보호해주고 싶은 본능을 자극했소.그 여자처럼 자기 삶을 망치는 걸 겁내지 않는 사람도 없소.하지만.........난 때때로 그 여자가 감탄스럽다오.연인을 위해 자기 삶을 망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말이오"/377쪽
로맹 가리는 원하지 않았겠지만..코라 인물에 진 세버그를 투영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스타영화배우인줄로만 알았던 배우 진 세버그는 흑인운동에 앞장섰고.결국 그것이 정부 눈에는 가시가 되었던 모양이다.정부가 만들어낸 수많은 음모론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그녀는,결국 나이차이를 무시하고 사랑했던 로맹 가리와도 이별을 하게 되었다.그러나 두 사람은 오랜 우정으로 계속 함께 했고..로맹가리..는 그녀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풀어내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소설의 처음은 무슨 환타지 이야기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느닷없이 택시기사인 장에게..조건없이 여러 은혜를 베푸는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어서...소설은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그러나 더 은밀히..아니 적어도 진 세버그의 죽음과 로맹가리의 자살 사이에 씌어진 마지막 소설이란 생각을 하며 읽게 된다면..그녀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로맹가리의 사랑..이야기는 아니였을까...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서로 사랑했으나 오해로 인해 40여년 가까이 소원 했던,코라와 솔로몬...이제 죽을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으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젊은 시절의 오해는 쉬이 화해가 되지 않았다.솔모몬의 생각은...장과 같은 중재자가 있기를 정말 간절히 원했던 걸까? 그래서 자신처럼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도움을 주는 봉사를 하게 된 걸까...단 한사람이라도 이야기 할 대상이 있다면 자살하지 않는다는 기사가..갑자기 또 생각났다. 세월의 경험도,엄청난 자산도...사랑하는 이와의 오해를 풀지 못해 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설정은 그래서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에 대한 포괄적인 지혜의 이야기도 순간순간 가슴 속에 와 박혔지만...읽고 싶어진 이유가 분명(?) 했던 탓에...진 세버그를 향한 로맹가리의 마음으로 읽혀졌다."얼핏 보기에 멜로드라마 같은 이 작품에는 정교한 트롱프뢰유(눈속임)가 숨어 있다.독자는 거의 매 페이지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지만 그 이면에는 진지함과 적절함 근원적인 절망이 자리한다"(카나르 앙세네) '솔로몬 왕의 고뇌'에 대한 카나르 앙세네에 실린 글이 가장 공감 간 이유는...이 소설에 대해 재미있다고..때론 이해할 수 없고..그러다 또 묵직한 무언가가 전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내 감정을 그대로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에 등장한 모모가 장으로 성장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것도 신기했고.
쿤데라와 로맹가리의 책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지금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지만... 가리의 책 (서른 한 권) 가운데 몇 권을 읽었을까.. 생각하다가 그로칼랭..은 여전히 읽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을 알았다. 가을에..로맹 가리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던 기억과의 만남..같아서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하다.
다가오는 시월에는 가을 맞이 기념 로맹가리 책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