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등산가의 호텔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 현대문학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뒤렌마트의 단편집 <약속>에 실린 '사고'를 최근에 다시 읽었다. '약속'도 다시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츠키형제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 소설이란 점보다 sf소설이란 설명에 선뜻 읽지는 못하고 리스트에 담아 놓았었는데.. 그때는 보지 못했던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뒤렌마트의 '약속'을 모범으로 삼았다는 기사... 어쩌면 2023년에 읽을 때도 저 기사를 보지 않았을까 싶은데..무튼 약속부터 읽고 나서 읽으면 스모킹 건을 보게 될지 몰라... <죽은 등산가의 호텔>을 먼저 읽었다. 그리고..내심 어느 지점에서 모범을 삼았을까..를 찾아낼..수 있기를 바랐다.


"믿느냐 마느냐...바로 그것이 문제였다"/354쪽


햄릿의 대사가 연상되어진 순간.. '약속'에 저와 닮은 내용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그리고 이어지는 인간의 양심과,옳고 그름에 관한 이야기.... 추리소설인줄로만 알고 범인을 따라가다..도대체 예상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이렇게 재미나도 되는 건가 싶은 순간..느닷없이 믿음과, 양심과 옳고 그름에 대한 화두가... 읽는 내내 뒤렌마트의 '약속'을 생각하며 읽은 탓일수도 있겠다.. 이제 지난해 기록한 일기를 꺼내볼 타이밍이다... '약속'은 시작부터 시선을 끈다. 추리소설 작가들에 대한  일선 경찰의 냉소적 시선... 추리작가의 강연에 일갈을 가하는 것으로 전직 경찰관의 시선은 어찌나 짜릿한지...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짥고 강렬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로 자신의 동료였던 마테 형사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보다 형사로서 사명감이 뛰어났던 남자의 이야기. 그러니까 추리소설작가라면 마테 형사의 모습은 정의감에 불타는 모습으로 그려질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범인도 찾아낼수 밖에 없는 구조.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을수 있다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 부모에게 그는 반드시 범인을 잡을 거란 '약속'을 한다.  그런데 소설은 약속의 무게를 정의로운 방향으로라기 보다,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풍자로 이끈다. 모두가 범인이라 의심되는 남자...그는 항변하지만 마테가 잠시 무관심했던 순간..남자는 지리멸렬한 심문 끝에 자백을 강요당하고 만다. 이후 남자는 스스로 자신의 억울함을 자살로 마무리짓게 되고...마테는 비로소 그가 범인이 아니었음을 확신하지만..세상 사람들은 일단락 된 사건을 다시 드러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살해당한 아이가 그림으로 남긴 분명한 스모킹 건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그리고 마테형사 역시 광기로...자신을 몰고 가게 된다. 누가봐도 합리적 수사라고 볼 수 없는 방식... 범인을 잡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누명을 쓴 남자가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범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같은 부조리 요소는 어차피 갈수록 노골적으로 막강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판국이니까요.우리는 겸허하게 우리 사고에 이를 합산해야만 합니다.그래야만 부조리에 부딪혀도 깨지지 않고 이 지구를 웬만큼 살아봄직한 장소로 만들채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191쪽 피해자가족 입장에서 형사의 약속은 얼마나 고마운 위로였을까... 그런데 어느 순간 일어나는 일들이 여러면에서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부조리'가 언급되어 놀랐지만..한편 하고자 하는 이야기 주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결국 마테형사는 약속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인간일뿐인지도 모른다..작가의 말처럼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 들였다면...더 많은 사건을 처리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약속으로 빠져 든 남자는 끝내 약속 밖으로 나오지 못한셈은 아닐까 "완고한 도덕의 틀 안에서 세계를 처형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는 얘깁니다.왜냐하면 그 하자 없는 완벽함이야말로 그 같은 시도가 지닌 치명적 허구이며 어이없는 맹목의 표식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191쪽  강요에 못이겨 자백한 후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남자에게 애도를..... !!  마테 형사가 약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처럼, 나는 '죽은 등산가' 호텔 이름이란 덫에 걸려..시종일관 누가 범인일까에..만 집요하게 따라 붙었다. 페테르형사가 사건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을 거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마음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던 지점이다.물론 양심의 문제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우겨보고 싶기도 하다. 내 속에 함몰되어 있다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200페이지가 넘어가도록 누가 범인일까에 대해서만 몰입하는 긴장감에 빠져..다른 상상은 들어올 틈조차 없었다.(변명이란것도 알고 있다^^) 그러다 느닷없이..마주한 반전 앞에 할 말이 없다가..긴 호흡 한 번 하고 나서는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질문을 던져 보고 싶어졌다.소설 속 일이 미래에 일어나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아무래도 답을 내놓을 자신은 없어,다시 뒤렌마트의 소설로 돌아와 생각하게 되었다. 판타지 소설처럼 보일수도 있었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의 양심에..대해 묻고 싶었던 건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고. 판타지로 읽혀지지 않아서 더 흥미롭게 읽혀진 건 아니였을까... 벌어진 상황은 황당하지만...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나의 양심을 건드리게 되면...이야기의 결은 너무..많이 달라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