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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꽃 ㅣ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이용악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3월
평점 :
시집하면 문지와 창비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관계로,열린책들에서 '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을 기획한 것에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시집의 가격은 어찌나 착한지.그렇다고 읽기에 불편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해서 내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시인들로 만나야 겠다는 생각을^^

마디마디 구릿빛 아무렇던
열 손가락
자랑도 부끄러움도 아닐 바에
지혜의 강에 단 한 개의 구슬을 바쳐
밤이기에 더욱 빛나야 할 물 밑
온갖 바다에로 새 힘 흐르고 흐르고
몇천 년 뒤
내
닮지 않은 어느 아니의 피에 남을지라도
그것은 헛되잖은 이김이라
꽃향기 숨 가쁘게 날아드는 밤에사
정녕 맘 놓고 늙어들 보자오
시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길 없지만. 스포일러(?)처럼 짧게 소개된 표지글에 내 마음이 흔들린 건 오독이 기꺼이 허락된 기분이 들어서였을 게다.. 늙어 가는..시간을 잘 만나고 싶은데..정신은 과 달리 몸의 아우성을 맘 놓고,받아들이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지에 대해 절절히 느끼고 있는 시간이라서, 제목이 '구슬'인 까닭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오랑캐꽃'이 오랑쾌와 관련 없듯이 그래도 '구슬'을 제목을 정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아쉬움은 있다. 시를 집중 소개하는 특성을 감안하면..조금더 두꺼운 이용악 시인을 찾아볼 일이다. 무튼..손가락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면 당시 시대를 떠올려봐야 할터. 나라 잃은 설움..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무엇 하고 있는가.. 동주 시인의 참회록처럼..그렇게 구슬이 나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따져 물어야 할까 싶은데.. 나는... 기승전 다 빼고 '맘 놓고 늙어들 보자오' 라는 그 말이 슬픈 가운데..위로가 되었다. 해서 다리위에서 곡하는 그 시를 읽으면서도... 이상하게 슬픈데 위로가 또 되는 마음이 들었나 보다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단 하루/아버지의 제삿날만 일을 쉬고/어른처럼 곡을 했다// '다리 위에서' 부분
다시 만나면 알아 못 볼
사람들끼리
비웃이 타는 데서
타래곱과 도루묵과
피 터진 닭의 볏 찌르르 타는
아스라한 연기 속에서
목이랑 껴안고
웃음으로 웃음으로 헤어져야
마음 편쿠나
슬픈 사람들끼리
시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거웠지만,정겨운 우리말과 마주한 시를 읽는 순간의 기쁨도 있었다. 나라 잃은 설움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슬픈 이들의 마음을 결코 알 수 없으리라.. 는 거창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정서를 공유한다는 건 슬픔 가운데서도 뭔가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릴적 시인의 대표시를 귀가 따갑게 들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오롯이 마주한 건 처음이지 싶다. 슬프지만 처연해서 위로가 되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조금은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