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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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쓰메 작품을 차례로 읽으면서, 새삼 나쓰메 소세키이름이 갖는 무게를 조금 느낄수 있었다. 해서 오래전 읽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다시 읽어 보고 싶었다. 놀라운 건 나는 고양이..가 소세키의 데뷔작이란 사실이다. 첫 작품부터 이렇게 강렬하면 이어 쓰는 작품에 대한 압박감은 없었을까..싶은 생각도 든다. <그후>도 좋고 <마음> 도 좋았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당분간 더 애정하는 마음 일순위에 놓고 싶다.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을 그려낸 소설이라고 하면 우화적일거라 짐작하면 안된다. 오히려 냥이들이 정말 저와 같은 마음으로 인간들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섬뜩함이.... 인간세상을 적나라하게 꼬집어낸 소세키 선생의 풍자가 가득한 소설이었던 거다. 나도 모르는 웃음이 피식피식 터져 나오는 에피소드가 얼마나 많은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인간 세상에 살게 된 냥이는 이름도 없고..혼자 곡은 분투하더니(떡과 사투버리는 장면은 정말 웃음이 나서 혼났다^^) 끝나는 순간에도 혼자 곡은 분투하며 최후(?)를 맞는다




어느 영화에서 인간 완전한 행복은 죽음..일지 모른다는 뉘앙스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 그런걸까 생각했다. 카뮈의 <행복한 죽음>이 내내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죽는 문제에 대해 괴로움을 이야기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카뮈 선생은 어떻게 생각할까 더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름도 없고, 배움도(?) 없던 냥이는 죽음에 대해 괴로워하는 고민 따위 하지 않는다.그냥 받아들이라고..그런데 냥이도 분명 친구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런 죽음..은 맞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열심히 관 찰한 결과..순응하는 삶을 냥이는 받아들인걸까..인간들은 여전히 괴로워 하고 있는데..이제 카뮈 선생의 생각을 읽어봐야 겠다.





"고양이로 태어나 인간 세상에 살게 된 것도 이제 2년이 넘었다.나로서는 이 정도로 식견 있는 고양이는 다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지난번에 듣도 보도 못한 무르라는 동족이 불쑥 나타나 기염을 토하는 바람에 살짝 놀랐는데 잘 들어보니 실은 백 년 전에 죽었는데 어쩌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612쪽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아온 자신과 달리 '무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를 부러워하는 고백을 듣고..웃음이 났다. (소세키 소설 말고도 고양이 표지가 전면에 들어간 소설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삼 상기하며 이제는 무르를 만나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소설이 끝나 갈 때까지 여전히  '고양이'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무심해서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것일수도 있겠고, 이름이 또 다른 구속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에서 지어주지 않은 걸까 생각했다. (물론 내맘대로 해석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세상이라고 하지만..누구나 알고 있다. 그냥 인간 세상을 풍자하고 싶었다는 걸. 그런데 그 시선이 불편하다기 보다 웃음과 공감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해서 풍자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자신에 대해 잘 알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자신에 대해 잘 알 수만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덜 시끄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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