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re all trave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 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




 


 워킹 타이틀답게 큰 욕심 없이 조용히 다가오는 드라마. 최근 십수년간 영국의 로맨틱 코미디, 혹은 드라마의 계보를 무리수 없이 이어가는 감독이라면 단연코 리처드 커티스. 과연 제임스 본드와 비틀즈의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싱글 몰트 위스키와 스트로베리 필즈의 나라, 올림픽 개막조차도 '이런 것을 아시나요?'가 아닌 '이런 것을 다 알고 있지?'로 꾸며도 무리가 없는 나라. 로맨틱 코미디는 부담 없는 금요일 밤의 장르이건만 리처드 커티스가 만드는 영화의 이미지는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는 바랄 것이 없어서가 아닐까. 





 영화라는 장르를 잠시 들여다보면, 모든 감독은 자신의 특징을 문신처럼 새겨둔다. 박찬욱의 도덕적 혼돈과도 같은 기하학무늬 벽지, 웨스 크레이븐의 강박과도 같은 좌우대칭 프레임이 그런 것이라면 리처드 커티스의 지문은 배우들이 관객에게 최대한 부담없이 다가가도록 하는 연출에 있을 것이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의 계보를 잇는 영화로 어바웃 타임을 꼽는 것은 그리 무리가 아닐 것이다. 앞의 두 작품은 리처드 커티스가 각본에 참여했고 뒤의 두 작품은 감독과 각본에 모두 참여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모두 다 통제하기란 문학과는 달리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즉, 영화에는 '우연'의 요소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나타나는 점이다. 그럼에도 리처드 커티스의 연출은 배우에게서 연기를 끌어내는 방식, 카메라를 통제하는 방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워낙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철저한 통제가 아닌 느슨한 간섭의 결과물. 리처드 커티스 박찬욱의 영화처럼 오 분만 보아도 누군가의 영화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지도 않는다. 웨스 크레이븐처럼 숏 하나만 보고도 알아차릴 수도 없다. 그러나 다 보고 나서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이 사람 여전하군' 하는 느낌이 무척 자연스레 다가온다. 그것은 분명 리처드 커티스의 배우를 다루는 방식, 노래를 영화 속에서 활용하는 방식,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영화 전반을 통제한 점에 있을 것이다. 분명 어떤 감독은 단칼에 거절할 만한 그런 목표를 리처드 커티스는 자연스레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는데, 바로 이 점이 관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약간 머뭇거리는 시선, 실제로 얼굴 붉히는 수줍은 성격, 특별히 미남도 아니고 말주변이 뛰어나지도 않지만, 주변에 괴상한 특징을 몇 개 정도 지닌 인물을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 캐릭터가 언젠가부터 영국 로맨틱 코미디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선보이는 씬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며 모든 상황이 참으로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리처드 커티스의 페르소나는 확연히 안정적인 관계, 로맨스를 바라는 여성 관객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거리를 두거나 스타일을 과시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의 목표가 아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또렷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영화 속에 좀 더 참여시키는 것도 그가 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장르 내에서의 접점, 관객과 배우가 굳이 애쓰지 않고 억지를 부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만나는 가상의 어느 지점. 그곳으로 가기까지 리처드 커티스가 이용하는 것은 장르의 꼬임과 일상의 재활용, 배우의 연기, 음악의 활용이었을 것이다. how long will i love you가 흘러나오면 관객이 느껴야 할 바는 더욱 자명해진다. 





 그런데 왜 하필 시간이어야 했을까. 그간 나온 시간을 다룬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던가. 시간 여행자의 아내, 생존 시간 카드, 이외의 비디오 키드가 접했던 수많은 B급 영화도 있다. 그 모든 것에 하나를 굳이 보탤 필요가 있었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바웃 타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 여행이 아니라 그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 관한 것이었으니까. 모험, 모든 것을 뒤흔드는 변화, 0.5초의 차이로 숨을 거두는 사랑은 영화의 주제가 아니다. 이 간명한 영화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자명하고 또 분명하다. 현재를 살라는 것. 하지만 이것은 언제나 리처드 커티스가 꾸준히 그의 영화를 통해 말해온 것이 아닐까. 






 촌스러울 수도 있는 나레이션, 플래시백, 크로스 컷팅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활용한다든지, 약간은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노래 가사가 전면에 등장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오히려 관객에게는 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너무나도 안온하고 갈등이 완화되어 있는 통제된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뤼미에르 형제는 분명 스크린에 열차를 띄울 때 '어바웃 타임'과 같은 숏케잌 같은 영화를 상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와 시간여행의 장르와 모티브를 빌린 어바웃 타임을 보노라면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도, 그렇다고 그저 드라마의 장르에 머문 영화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장르의 경계를 허물 생각도 없이 약간 어정쩡하게 기대어선 이 영화를 보자면, 따지고 보면 '러브 액츄얼리'도 완전한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콩트와 노벨레의 경계를 잡기가 어렵듯 최근 들어 로맨틱 코미디와 드라마의 경계가 은근해지는 것은 비단 장르 차용을 넘어 관객층을 넓히려는 시도를 감독들이 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리처드 커티스의 경우에는 조금 더 쉽고 편안히 다가서는 그의 드라마를 만들고자 한 것이 역력하다. 결국, 리처드 커티스의 페르소나는모두 같은 얼굴로 다른 영화 속에서 삶의 어느 따스한 순간을 이야기한다. 









 마크 로렌스의 music & lyrics에서는 떨려서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여자에게 남자가 말한다. 

"괜찮아요, 3분이면 끝나요."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은 길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너무나도 짧아 순식간에 지나치는 순간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리처드 커티스의 안온한 세계에서는 그 3분이 생각보다 꽤 길게 되풀이된다. 춥고 지쳤을 때, 이런 판타지 같은 따스한 장르를 기웃거린다 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첫 인용구는 영화 속 팀의 대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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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3-2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를 코메디로 봐야할지, 아니면 진지 모드로 봐야할지, 보면서 왔다 갔다 했더랍니다.
평범한 제목에서 받은 선입견때문인지, 그닥 기대 안하고 보러갔다가, 다 보고 나올때 참 괜찮은 영화를 봤구나 뿌듯해하며 나왔었지요. 이런 여자를 아내로 선택한 남자는 참 행운이다,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저랑 너무 다른 캐릭터를 가졌더라고요 ^^

Jeanne_Hebuterne 2014-03-23 11:33   좋아요 0 | URL
hnine님,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군요! 따지고 보면 어떤 영화든 한 장르 안에만 머무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방향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으나,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리처드 커티스는 로맨스가 곧 생활인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 듯합니다. 꼭 한가지 이야기만 할 필요 있나요? 하고 너스레를 떠는 기분이었어요. 주변 공기가 약간 차가울 때, 조금 수다스럽지만 마음은 따뜻한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메리 캐릭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셨군요. 전 거꾸로 이 감독은 여자들이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를 감독이 잘 알고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더랬어요. 많은 걸 기대안한다고 말하는 까다로움을 잘 파악하는 그런 짓궂음이오 :)

이진 2014-03-23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떻게 부르는지 까먹었어요.
지네... 쟌... 쟝?
어쨌든 저 이 영화 정말 좋더라구요.
저는 감독은 잘 모르고 레이첼 맥아담스가 미치게 좋아요.
저 이 배우 나온 영화는 모조리 섭렵했답니다...
노트북보다 이 영화에서 더 사랑스럽고 예쁘게 나온 거 같아요!

보다가 울었네요.
묵직한 메세지가 있는 거 같아서 좋았어요.

Jeanne_Hebuterne 2014-03-26 19:21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이 영화를, 그리고 저 여배우를 좋아하시는군요!
노트북은 전 보지 못하였는데 그 영화에서도 사랑스럽게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답니다. 아마 셜록 홈즈나 미드나잇 인 파리 등 필모그라피를 넓혀가려는 노력이 조금씩 보여요. 연기의 폭이 틸다 스윈턴이나 제니퍼 로렌스처럼 아주 넓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것만은 사실인듯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되기도 해요. 종종 한 배우의 연기를 따라가노라면 시간이 조금씩 손가락 끝에 와닿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재미있지요.

소이진님을 기분좋은 의미로 울린 이러한 영화가 앞으로도 많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