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채기와 상처, 혹은 흉터. 

나도 몰랐던 나의.

살아남은 흔적에 대한 찬사로는 으레 조금 놀랐다는 예의 바른 메아리, 

문득 남겨지는 안타까움.없는 줄 알았던 피부 생채기가 눈에 보이는 날이 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이후로 나아갈 때마다 발에 걸리는 어떤 무엇. 

상처와 피는 늘 흉터로 자리 잡는데, 왜 몰랐을까.




아마도 그것은 문득.




곱게 펼쳤던 트레이싱지를 자르다가, 혹은 무언가를 잘못 밟아서, 발을 헛디뎌서, 손끝을 잘못 놀려서.

순간의 '어느 날'. 

펼친 종이 칼끝으로 스윽 긋던 오후. 

발끝 유리 빠득 소리 낼 것 같던 한밤. 

살짝 튀던 비명. 스윽 혀끝 감촉, 파닥 뛰던 심장. 




울음 끝난 후가 아닌 울음 시작하는 생채기 비밀.

두연, 문득, 홀연. 




암흑이 순백으로 보일 때가 있지. 그럴 땐 흰 바탕에 흰 글씨를 쓰는 하얀 사람이 밤의 모서리에 석고를 바를 때. 우주의 처음과 끝이 약봉지 속에서 떨어져 내린 알록달록한 알약처럼 친밀하게 느껴질 때.









 앤드루 포터의 단편 모음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책장을 펼치면, 헤더의 시선이 조용히 닿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바스러지고 홀연홀몰하고 만다. 갑자기 문득 나타났다가 갑자기 문득 사라진다. 어느 순간 삶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왈칵 거리고 파닥거린다. 아무 자국이 없고 매끈하다 생각하였건만 어느 순간 눈물이 나타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이 어떻게 파닥거렸던가. 물리학 기말고사의 방정식의 제출과정을 유일하게 제출한 헤더를 로버트가 자기 집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하며 두근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쩌다 왈칵 쏟아졌나. 두 사람이 술집에서 손잡고 술을 마시다 헤더의 애인 콜린에게 들키면서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그것은 어떻게 돌이킬 수 없었던가. 문득, 뜻하지 아니하게 갑자기. 십이월의 어느 날부터 줄곧 로버트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헤더의 고백체 문장은 종이 위 잉크자국과 눈 위의 발자국, 어느 것이었을까. 




 남자친구가 있다는 헤더의 말에 로버트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말에 로버트는 기쁘다고 말한다. 이러한 대화에서 보듯, 앤드루 포터의 문장은 쉽게 스민다. 삶이 베일 때 손끝에서 피가 솟아나듯 흥건하게 일어나는 반응을 만든다. 스미는 빛과 정지하거나 움직이는 물체를 떠올리면 우리가 간과하는 진실, 늘 스쳐 지나가는 진심으로부터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도망치는 그물이 보인다. 표제작의 침착하고 조용한 나이 많은 남자친구와 같이 꾸미지 않은 단정한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곧, 단편 소설의 상처와 비밀. 




아파도 절반만이 아프고 누워도 절반쯤 잠을 자는 그런 밤이 올 때가 있지. 그럴 땐 추위도 모르는 때. 북극의 지평선 저만치에 놓인 냉장고가 되는 때. 그땐 소리가 없지. 방 한 칸이 줄 없는 비파처럼 통째로 공명통이 되지. 그럴 땐 울음에 홀리지. 홀린 채로 헐리지.





 헤더는 콜린을 만나기를 기대하지 않는 만큼 로버트를 만나기를 기대한다. 박수소리가 무대를 밝히듯 약속이 서로의 마음을 밝힌다. 서로 만나지 말아 달라는 콜린의 부탁은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외부의 충격이 아닌 내부의 실금. 보통 우리의 삶은 이렇게 무너져 내린다. 변명할까, 하지 말까. 이 남자를 사랑할까, 저 남자를 사랑할까. 이런 문제가 이 짧은 이야기의 맨 앞으로 나왔다면 이것은 오셀로의 재탕이 되었을 것이지만 앤드루 포터는 죄의식과 소유, 진실과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어떤 것의 상실을 생채기와 함께 보여준다. 아파도 절반만 아픈 날, 누워도 절반쯤 자는 밤. 추위를 모르고 홀로 소리 없이 헐리는 밤. 장편의 진실은 팔짱을 끼고 옆에서 걷는데 단편의 진실은 늘 반걸음 뒤에서 홀연히 나타난다. 없던 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북극의 지평선 저만치 놓인 냉장고가 소리도 없이 우는 때.





암흑이 비단처럼 보일 때가 있지. 그럴 땐 흑장미와 흑장미 가시와 흑장미에 앉은 벌 한 마리와 흑장미 그림자조차 비단이 되는 때. 가장 시린 한 구석만이라도 잠시만이라도 그 비단으로 몸을 감싸고 싶어지는 때. 지금은 시린 발을 담그지. 바닷물처럼 그 속에 정강이를 담그고 조금씩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보는 때. 할 말은 혼자서만 하는 때.





 어떤 순간은 어떤 순간 자체로 남는다. 보면 보이는 것, 읽으면 읽히는 것. 그래야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원하는 일이라는 착각. 고집과 거부가 아닌 자기보다 더 자기를 잘 이해하는 이에게 펼치는 비단. 이해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 말은 혼자서만 하는 때가 뒤따른다. 죄책감은 고백의 뿌리라고 헤더는 말한다. 헤더가 하는 결정과 늦은 밤 울리는 흔적 없는 전화, 애써 믿고 싶은 무엇과 떠오르는 진실. 헤더는 필수 사항과 불필수 사항 사이에서 훌륭한 균형을 잡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느날 가끔, 서랍 속 어떤 구석이 헤더의 눈에만 보인다. 일말의 죄의식은 자초하여 있는 모든 상처 처럼 영원하며, 행동 자체만큼이나 생생해진다는 그녀의 생각처럼 홀연히.





파르락, 스윽, 빠득, 토독, 파닥.

종이가 펼쳐지고 칼끝은 스윽 갈 길을 간다. 

빠득 소리 없이 파고들고 둔탁한 발끝으로.

결국, 빨리 뛰는 심장이 위험 신호를 보내는 내일의 기억. 





 우리는 저마다 비슷하게 다치지만 남의 행복에 자신의 행복을 꺾으면서도 남의 불행에 자신의 슬픔을 내려놓지는 못한다. 상실, 상처, 고통, 회한. 기억이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남기지만 그것으로 어쩌면 어제의 예언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기억의 주름은 종종 죄의식과 고백,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누구나 그것을 마음속 서재의 세 번째 서가 다섯 번째 칸 같은 곳에 담아두고 혼자 걸음할 때가 있다. 굳이 애써 페이지를 뜯어내거나 재차 숨은그림찾기를 하지 않아도 그곳에 그대로 있는. 늦은 밤, 옆에 누가 있든 아니면 혼자 소파에 앉아있든 아무도 모르게 지하로 난 계단을 발소리도 없이 내려가 불을 켠다. 기억하고 있는 서가의 그 책장 칸에서 바로 그 책을 꺼내어 들면, 그 날의 내가 눈에 밟힌다. 다시 지상의 공간으로 올라오기 전 책장을 훑는 손끝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은 문장이나 단어 끝 마침표나 줄임표. 문득 어느 한순간의 강력한 한 방이 아닌 내 안에서 조용히 이어져 온 가느다란 실금의 흔적으로 찍힌.......





해갈을 욕망하고 지내다 보면 어느새 물을 잊게 되지. 사막낙타가 사막낙타가시나무를 우물우물 씹듯 제 입안에 고인 핏물로 목을 축이듯. 이게 내가 식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암흑은 인공위성으로 어제 찍어둔 빙하. 오늘은 사라지고 없을 테지. 





*파란색 글씨는 모두 김소연 시인의 시집 <눈물이라는 뼈>에 수록된 '비밀'의 조각과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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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2-23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김소연의 시집을 다 뽑아들고 그중에서 어떤 걸 사야할까 고민했던 날이 있었어요.
<눈물이라는 뼈>라는 시집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마음사전>이라는 책 내용도 그렇듯이, 김소연 시인은 보통 사람이 흔히 쓰는 단어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새로운 의미를 붙이는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시인 같아요. 암흑과 순백, 울음과 공명통, 눈물과 뼈, 알록달록한 알약의 이미지란 또 어떤가요.
너무 일찍 깨어나서 좀 더 자려고 소설가 한강의 목소리를 귀맡에 틀어놓고 한동안 누워있다가 일어난, 그래도 아직 새벽이네요 ^^
윤상의 저 노래는 제목부터 공감입니다. 흔해빠진 사랑, 정말 흔해빠진 사랑 맞아요.

Jeanne_Hebuterne 2014-02-23 20:05   좋아요 0 | URL
hinine님, 김소연 시인은 저도 참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시인이 쓰는 산문은 단어 활용이 소설가가 쓰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가 보여서 <마음사전>을 유심히 읽었지요. 종종 낱말을 가리고 뜻만 보고 그 대상이 어떤 단어인지 알아맞추는 놀이를 혼자 한 적도 있었어요. 설레임, 첫사랑, 이런 것들이 김소연 시인의 필터를 거치면 묘하게 하늘거리는 것 같았어요. 애매할수록 정확해지는 것 같았어요. 세상이 애매하니까요.

hnine님은 그러고 보면 검푸른 새벽과 참 어울리는 분인듯 해요. 단상과 감상을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흘려보내시지 않으시니까요. 새벽에 듣는 윤상은 늘, 소리 전체를 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렉트로닉스와 제 3세계 음악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섞는 재주와 초반 박창학의 가사가 그랬더랬지요. 흔해빠진 사랑인데, 가사 말미에 나오는 남몰래 따라 부르는 서글픈 멜로디, 그 부분에 마음이 홀렸더랬어요. 결국, 남몰래 나도 부를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으로 들렸는데 저역시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을거란 생각에서요. 흔해빠진 것의 위력은 이런 부분에서 나오나 봅니다.

다크아이즈 2014-02-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라는 뼈, 저도 관심 있었는데, 여기서 발견하네요.
<암흑이 비단처럼 보일 때가 있지.... 가장 시린 한 구석만이라도 잠시만이라도 그 비단으로 몸을 감싸고 싶어지는 때. 지금은 시린 발을 담그지. 바닷물처럼 그 속에 정강이를 담그고 조금씩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보는 때. 할 말은 혼자서만 하는 때.> 이런 구절들의 향연이라면, 제 폐부를 찔러도 사서 보는 수고로움은 마땅하다고 봐요.

생채기, 상처, 흉터 이런 말은 저도 너무 자주 써서 이제 그 말들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어느새 들여다 보면 그런 낱말이 난무하는 단상들을 보고 확, 정신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것들을 내가 곱씹어서 얻은 게 뭔데? 이런 오기 같은 게 생기지 뭐예요? 해서 요즘은 그 말들을 안 쓰려고 안간 힘으로 버티는데 그게 잘 안 되지 뭡니까?


에뷔테른님도 휴일 잘 견디시어요^^*

Jeanne_Hebuterne 2014-02-23 20:10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휴일이 다 간 지금 팜므느와르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약간은 헐렁하고 약간은 묵직한, 늘 '약간의' 시각입니다.

김소연 시인의 시를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시를 읽은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단어의 선별, 조사의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김소연 시인의 시에서 느끼곤 했습니다. 지금 시린 발을 담근다고 하지 않고 '지금은' 시린 발을 담근다고 할 때, 어제와 오늘은 다른 순간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 말은 조사로 인해 부정확해지고 도리어 조사로 인해 더 정확해지는 순간이 많은데 시인과 소설가의 글은 조사 사용으로 인하여 그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생채기, 상처, 흉터. 참 슬프고 아련하고 반면 단단하고 굳건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들의 감옥이라는 표현에 잠시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말들의 감옥에 저마다 갇혀있다면, 저는 종종 그 벽이 점 좁아지는 감옥에 들어 앉아 있는 것 아닌가, 하고요. 그래서 요즈음은 낱말을, 좀 더 곱씹어 보고 소리내어 읽어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종이 위의 글씨와 공기 중의 글씨는 참으로 다른 것 같아서요.

휴일이 다 갔습니다. 이제 새 날이 또 오겠지요. 주말 마무리 잘 하시고, 재미있는 새로운 한 주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