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 60 [1960년대 DG 관현악 녹음집- 82CD/320p 해설지 포함] - 1960년대 전성기 녹음, 오리지널 LP 재현! 카라얀 2
모차르트 (Leopold Mozart) 외 작곡, 카라얀 (Herbert Von Karaj / DG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과분한 선물을 받았으니, 바로 카라얀 60 박스셋.
국내 수입사와 도이치 그라모폰 본사 협력으로 만든 박스반인데, 베를린 필 종신 지휘자 카라얀의 1960년대 도이치 그라모폰 관현악 전집이다.











박스의 뚜껑을 열었을 때 나오는 319 페이지에 달하는 부클릿. 수록곡 목차, 60년대 카라얀 레코딩에 관한 설명, 카라얀 연표, 오리지널 LP 라이너 노트 등이 있다.














몰랐던 음악. 알아도 몰랐고 몰라도 들었던 음악들. 클래식은 유일하게 오리지널을 복제 생산하면서도 수많은 여러 갈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악단에 따라, 지휘자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리 들린다. 그리고 같은 곡, 같은 지휘자라 하여도 60년대가 다르고 70년대가 다르다. 바로 이 점에서 많은 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고 같은 음악도 지휘자나 악단별로 몇 장씩 구입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어떤 대화를 나눈다고 가정한다면, 60년대 베를린필과 카라얀의 대화는 이제 막 친밀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의 긴장감이 엿보인다. 십여 년이 흐른 1970년대에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80년대에는 관계가 악화되는 시기였다고 전한다. 이 박스반의 친절한 안내서에는 이 박스반의 기획자 이일호 씨의 이러한 글이 있다.


"내가 카라얀 연주 중 1960년대를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카라얀이라는 방대한 레퍼토리와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지휘자와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세계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만나서 보냈던 30여 년의 세월 중 가장 서로를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일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에 다른 기간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긴장감과 성실함이다. ... 하나의 예로 10년 마다 한 번씩 녹음했던 베토벤의 교향곡을 예로 들어보자. 지금도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1962년 버전의 9번 교향곡 연주의 긴장감과 열기는 그 후 1975-1977 버전이나 1983 버전에서는 아쉽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연주자들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을 조금씩 잃어버린 것 같다. 특히 스케르초 악장을 비교해 보면 더 그러할 것이다."
-속지 부분발췌









물론 저런 차이를 단번에 알아차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무언가 어렵고 어지럽게 느껴진다면 내가 걸친 얇은 지식과 나의 감각을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시를 모르면 시를 많이 읽어야 할 것이고 인간을 모를 것 같으면 인문서를 읽어야 할 것이다. 음악을 모른다면 마찬가지로 많이 들어야 하겠으나, 나에게 이 음반을 선물해준 이는 몇 가지 원칙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많이 듣고, 많이 사고, 많이 기록할 것. 듣되 그냥 들어서는 안 되고 사되 그냥 사서도 안 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어떤 한 곡이 좋다 하여 그 곡만 십여 장의 음반으로 사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돈 낭비 시간 낭비를 피하려면 먼저 다양한 음악을 듣고, 레파토리를 넓혀나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최소한 내가 무엇을 듣는지는 파악해야 하니 음반 부클릿과 자켓을 참조할 것. 특히 이런 박스반의 경우, 다양한 레파토리가 있어 나와 같은 초심자에게 적합할 듯하다. 이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 조금씩 순간과 순간을 모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감상법으로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볼 때의 친근한 벗은 역시 부클릿일 것이다. 음반을 사면 으레 자켓 속에 들어있는 이 간단한 설명서는 현직 음악 평론가, 음악을 일평생 공부하거나 일로 삼아 단련된 귀를 가진 이들의 친절한 설명이 들어있다. 카라얀 60 역시 마찬가지다.








카라얀의 연주는 무엇이 다른 것들과 그렇게 다른가 생각해보면, 먼저 뇌리에 스치는 것은 카라얀이 타협을 모르는 완벽주의자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카라얀이 처음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객원 연주한 것은 1938년, 물론 푸르트뱅글러의 시대였다. 당시의 카라얀은 30세로, 네덜란드와의 국경에 가까운 아헨시의 음악총감독이라는 포스트에는 있었지만 아직 독일에서의 평가도 확실하지 않은 신인이었다. 그러나 이때 카라얀은 이례적으로 리허설 시간을 요구하여 오케스트라 측을 놀라게 하였고, 파트연습까지 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처음부터 타협을 모르고 무서움을 모르는 완고한 무사였던 것이다.
또한 1954년 푸르트뱅글러가 사망하자,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후임을 맡았으나, 리허설 때 오케스트라의 의욕없는 모습에 놀라고는 "너희들의 연주는 패배한 복서 같다"고 오케스트라에 대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표명하고는 기초부터 다시 연습하도록 만들었기에 대단하다.
-속지에 있는 모로시 사치오의 글, 서상희 번역, 부분발췌







푸르트벵글러는 결말 부분의 화음에 리타르단도를 강조해준다. 곡에 묵직한 무게가 실리는 효과를 빚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지휘자의 간섭이 지나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쉽다. 반대로 카라얀은 같은 부분을 부드럽게 끌어올렸다가 놓아버린다. 음의 파동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게 하는 효과를 빚기에 사람들은 이것을 지휘자의 해석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해서 카라얀의 연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곡이 가볍고 경쾌하게 들리는 것이다.
-불꽃의 지휘자 카라얀, 부분발췌


푸르트벵글러의 뒤를 이으면서도 그와는 확연히 다른 연주를 선보인 카라얀은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프루트벵글러의 정당한 계승자이다"라고도 말했다는데, 이것은 자신만의 지휘에 관한 철학을 확고히 하여 푸르트벵글러가 다졌던 미학에의 관점을 자기 것으로 끌어들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점을 살펴보면, 카라얀에게 지휘란 작곡자가 뜻한바, 작품에 명시된 바를 명확히 표현하여 가장 충직한 전달자, 재현자가 하는 미학의 작업이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카라얀의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다른 지휘자, 다른 오케스트라와의 비교가 당연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완전히 틀린 해석도, 완전한 하나의 해석도 없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내 느낌이 완전한 것이라고 말하며 어떤 한 연주만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 또 한 차례 선물을 준 이를 귀찮게 하여 알아낸 방법은(물론 그 전에 여러 차례 친절히 강조해 주었던 사실이었다), 가이드를 참조해야 한다는 것. 펭귄 가이드, 러프 가이드, 그라모폰 가이드 등 고전음악의 신보와 구보를 아우르는 많은 가이드에는 각자의 균형 잡힌 평가가 있다. 물론 어느 한 가이드에서는 명반이라 칭송하는 음반을 다른 한 가이드에서는 그에 못 미치게 다루는 일도 있으니, 가이드를 비교해 보면 차이점과 각자의 관점이 보이게 되는데, 이를테면 베토벤 교향곡 3번을 펭귄 가이드에서는 이렇게 평가한다.



Of Karajan's four recorded cycles, the 1961-2 set(DG 463088-2) is the most compelling, combining high polish with a biting sense of urgency and spontaneity. There is one major disappointment, the over-taut reading of the Pastoral, which in addition omits a vital repeat in the Scherzo. Otherwise there are incandescent performances, superbly played. On CD the sound is still excellent.


잠시 고개를 돌려 부클릿을 보면, LP Liner note가 친절한 한글 번역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의 이력에서 또 하나의 기억할 만한 사건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남긴 이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이다. 그 가운데서도 <에로이카>는 그 자체로 대단히 존경받을 만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의심할 나위 없이 카라얀의 오케스트라다. 1956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서거한 뒤, 카라얀은 탁월한 감각으로 미국 순회 연주를 이끌었고, 오케스트라는 만장일치로 그를 종신 음악감독에 선임했다. 그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고, 베를린과 세계 도처의 청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 <에로이카>오 다른 베토벤의 교향곡이 특히 큰 역할을 했음은 자명하다.



이제 또 눈을 돌려 또 다른 가이드, 러프 가이드를 참조하면 그 구성이 약간 다르지만, 초심자에게 더 적합한 설명이 더 친절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eethoven's Symphony No.3 is better known as the Eroica, a title thoroughly befitting what many people consider the greatest symphony ever written. Completed in the spring of 1804, this amazing score contains the very foundations of Romanticism in its gestures and burgeoning themes, and in its unprecedented scale-the outer movements are enormous structures that virtually ignore the accepted conventions of sonata form.


최대한 많은 음반을 소개하여 그 핵심을 파악하려 한 펭귄 가이드, 음반 발매 당시의 느낌까지 생생히 전달해 주는 박스반 속의 부클릿, 그리고 초심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곡 설명에 무게를 두는 러프 가이드, 이들 각각의 역할은 분명 조금씩 다르며, 모두 다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모든 것이 간편해지고 형태가 사라지는 즈음, 클래식 음반을 CD로 사서 듣는다는 것은 좀 거추장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레이저 디스크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mp, wav 형태의 음원으로 존재하는 음악을 대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방송이나 매체에서 자주 틀어주는 음악을 듣고 음반을 구입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음반은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질 수 없는 파일보다 음반이 더 좋은 까닭은, 고전음악은 생각보다 그 안에 담긴 정보, 즉 음악을 들을 때 보아야 할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녹음 시기, 지휘자, 악단 등, 곡 제목만 보아도 얼마나 긴가. 아니,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그저 지나간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라고 하기에는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음반을 구입하여 듣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제 막 발을 디딘 나의 경우 궁금해져서 음반을 구입하게까지 되는 음반은 방송에 틀어주는 음악도, 몇몇 유명한 사람들이 잡지나 신문에 나와 추천하는 음반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종종 서재나 동호회의 나와 비슷한, 혹은 나보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 더 뜨거운 분들의 추천, 알라딘과 같은 곳의 서재, 혹은 음악 관련 칼럼에서 이야기하는 음반이었다. 새롭게 나온 음반도 좋지만 많은 이들이 듣고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곤 하는 오래된 음반이 더 궁금하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카라얀 60을 듣는다. 만듦새가 훌륭하고 퀄리티도 높으며 가격도 적당한, 소중한 음반을, 내게 과분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물론 자주 열심히, 위에서 들은 원칙을 지켜가며 들어야 겠다.







하기야, 카라얀이 죽던 해 세상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새로움의 추구와 희망도 이제 역사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때가 온 것이 아닐까? 정밀함과 엄격함이라는 미학을 끝까지 밀고 나간 사람이 남긴 필생의 업적을 재발견해서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토론할 때가 말이다.
-불꽃의 지휘자 카라얀 에서 부분발췌






THANKS TO.

저돌적이고 패기가 넘친다고 말했던 이 82장의 음반. 잘 들을게요.


직접 그림을 그려 안에 글을 써서 보내주신 고마운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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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5-28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엄청나네요!

Jeanne_Hebuterne 2013-05-28 09:00   좋아요 0 | URL
:)

레와 2013-05-28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부럽.

Jeanne_Hebuterne 2013-05-28 14:25   좋아요 0 | URL

레와님 :)
제가 지금은 아는 것이 없지만, 열심히 들어서 선물해준 이의 정성에 보답하렵니다!

2013-06-14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4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