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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
리처드 프레스턴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번역가를 보고 책을 선택한 적은 없었는데, 감명깊게 읽은 몇몇 책의 번역가가 박병철씨였던 것을 기억하고 이 책도 그렇게 선택하게 되었다. 재미있게 읽어도, 작가를 기억하는게 대부분이지만 번역가를 기억하게 된 대에도 평범한 번역이 아닌, 글 중간중간에 역주의 입장으로서 개입하는 글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글들이 상당히 센스있고 재미있었던걸로 기억한다. 번역은 제 2의 창조라고도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을 굳이 번역가로서의 자질이 돋보였다!는 책으로 꼽을 수는 없지만, 책을 선택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번역가도 될 수 있다는 점이 나로서도 참 신선했다고.
책좀 추천해주세요! 하고 자주 가는 카페에 글을 올렸더니 순식간에 댓글이 좌르륵 달린다. 댓글들을 읽어보니 죄다 소설이더라고. 전 소설은 안읽어요, 다른 종류의 책좀 추천해주세요 하고 다시 글을 올렸더니 이번엔 에세이류, 여행기 등이 대거 올라오면서 간간이 왜 소설을 안읽냐는 반문이 눈에 띈다. 글쎄다 처음에는 남의 삶에 대한 조망이랄까, 있지도 않은 허구에 집중하는 것이 일종의 시간낭비, 사치라고 생각했었는데- 물론 그러한 종류의 글을 사는 것도 포함해- 어느 대사 하나 때문에, 어느 배경 하나 때문에, 등장인물의 사소한 행동이나 사건 하나 때문에 머릿속에서 사리지지 않는, 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이라는 주제의 짧은 글을 읽고는, 그리고 내가 이전에 썼던 추천을 부탁하는 댓글들 중 수 많은 추천된 책 중 내가 읽은 소설은 단 한 권도 없단 걸 깨닫고는 역시 내가 편식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얻을것 하나 없는-그러니까 과학적 지식 말이다- 그런 남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왜 읽느냐며 자조적인 웃음을 짓던 내가 지금은 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읽는 남들보다 잘난게 뭐가 있느냔 말이다. 높은 관념적 체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적인 측면에서 우월한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나는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글쓰기 못난이가 되어 있찌 않은가.. 학창 시절을, 그리고 대학 2년을 너무나도 헛되게 보낸 느낌이 든다. 가슴 속에 담아 둘 소설 하나 가지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놓고선 선택한다는 소설이 천문학자들의 삶을 다룬 책이란게 또 웃기긴 한데, 전체적인 스토릴 따라가다가도 간간이 국소적인 과학지식적 측면에 주목하기도 했지만-그건이제 내 본능이 된 것 같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주인공의 삶에 푹 빠져들었다 나오니 시간이 참 잘 가더라. 물론 이 책은 나를 뒤흔드는 소설 목록에 올라오지는 못하겠찌만, 심심풀이로 읽는, 다른 세계로 빠져들 수 있는 열쇠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소설로치자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