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신문에서 비비씨 뉴스와 채널4 뉴스(영국 민영 방송) 사이에 경쟁이 붙었다는 기사를 봤다. 나는 진작에 채널4 뉴스로 갈아탔던 차였다. 단순히 채널4 뉴스가 더 재밌기 때문이다. 엊그제 방송을 예로 들어보자.

이집트 사태가 있은 다음날 채널4 뉴스의 메인 앵커는 카이로로 날아가 라이브로 뉴스를 진행한다. 시신이 가득한 병원에서 앵커가 직접 취재한 영상을 보여준다. 이어서 이집트, 미국, 유엔 당국자를 인터뷰한 내용을 각각 방송한다. 뉴스 시간의 반 정도를 이집트에 몰빵한다. 영국 지역 뉴스는 스튜디오의 또다른 메인 앵커가 진행한다. 노동당 총수가 런던 빈민 지역의 시장을 찾았는데 이 앵커가 직접 따라갔더라. 운좋게도 시민 하나가 노동당 총수에게 달걀을 던지는 장면을 포착하였고, 총수와 그 달걀 던진 사람 모두를 인터뷰해 방송으로 보여준다. 현장에서 직접 뛰는 저널리스트들이군... 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된다. 

비비씨는 어떻게 보도하나 싶어 뉴스 시간에 맞춰 채널을 돌린다. 첫 꼭지는 이집트 특파원의 현장 보도다. 두 번째 꼭지는 미국의 대응에 관한 것이다. 인터뷰는 주로 기자나 교수들과 하고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차분하게.

어느 쪽의 보도 방식이 옳은 것인지, 현장에 앵커가 직접 뛰어 들어가 흥분한 목소리로 방방 뜨는 것이 참된 저널리즘인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더 재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채널4 뉴스의 앵커는 인터뷰 상대자가 말을 빙빙 돌리거나 대답을 회피하거나 거짓말을 하도록 놔두지 않고, 정말 무례할 정도로 다그치곤 한다. 이게 옳은 건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흥미롭다.

덕분에 채널4 뉴스를 기다리면서 앞 시간에 하는 홀리옥스라는 드라마도 보게 된다. 채널4 뉴스 다음 것도 볼 만 하면 보겠는데 별로 볼 만 한게 없어서 거기서 테레비는 꺼진다. 
 
물론,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뉴스보다는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뉴스를 더 놓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왜 영국에서 채널4 뉴스가 방송 뉴스의 최강자로 떠오를까?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듣자하니) 엠비씨 뉴스의 시청률이 그토록 떨어졌을까? -사람들은 지루한 것을 싫어하고 생생한 것을 좋아한다. 

보아하니 한국은 물반 고기반인데다가 완전히 무주공산이다. 몰빵하면서 뛰어들 데가 너무 너무 많다. 원전, 사대강, 국정원... 그런데 왜 아무도 안나서지? 뉴스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단번에 두 배 이상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뻔히 보이는데도 모두들 주저하는 것 같다. 아마도 저널리스트로서의  책임감때문에 상업성(시청률)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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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유성우가 쏟아진다는 뉴스를 듣고 잔뜩 껴입고, 모포와 자리를 준비해서(요즘 여기 저녁은 쌀쌀하다), 주말마다 크리켓 경기가 벌어지는 축구장만한 마을 공원에 갔다. 오레오 쿠키도 사려고 했는데 안팔아서 다이제스트만 하나 샀다. 공원에 사람들이 가득하리라 생각했는데 (나무 그늘이 짙어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사람 기색이 별로 없었다. 

자리에 누워 하늘을 주시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간간이 별똥이 떨어졌다. 꽤 큰 섬광을 일으키며 별똥 하나가 떨어질 때 아내와 나는 저도 모르게 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로 말미암아 공원에 누워 밤하늘을 주시하고 있는 건 우리 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별똥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고, 아내가 무서워 했기 때문에 얼마 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잔디는 아직 온기를 머금고 있어 따뜻했다.)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와서 한 열흘 머물다 갔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나도 덩달아 관광객이 된다. 세븐 시스터스라는, 백악의 해안 절벽에도 갔었는데 이 친구가 계속 "와, 저기 예쁘다, 저기도 예쁘다"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내가 퍽 늙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파란 하늘, 파란 바다, 초록의 들판이 한 시야에 어우러져 있는 곳에서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조용히, 홀로 그것들 안에 있고 싶어졌다. 그러다 그러다 서정주의 싯귀 하나가 떠올랐다. "초록에 지쳐..." 그랬다. 황폐함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쇼펜하우어가 잘 설명한 것처럼. 나는 마음 속으로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발음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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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08-13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언젠가 친구가 사는 동네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바랜 벽화를 보고 감탄을 서슴치 않는 절 보며 친구는 익숙한 동네가 낯설게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이방인인 친구와 동네를 걷는 건 참 즐거운 일입니다. 유성우는, 경기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어요. 구름이 많더라구요.

weekly 2013-08-14 01:48   좋아요 0 | URL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우리를 젊게 하는 힘(감수성)이겠죠. 반면, 그 표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어떤 중량감을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어요. 그건 감수성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에 데이빗이 와서 조금 전에 끝마치고 돌아갔다. 만족스럽다. 이전에 접촉했던 사람들은 땅 위에다 그냥 데크를 놓겠다고 했는데, 데이빗은 땅을 더 파고 기초를 세운 후에 데크를 놓았다. 덕분에 데크 높이가 높아져서 훨씬 보기 좋게 되었다. 


(데이빗이 데킹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저 오른쪽 옆에서 펜스 기울어진 것을 철심을 박아 고정시켰다. 물론 임시방편이다.)


데이빗이 정원을 어떡할 거냐 묻기에 잔디를 깔 거라고 했더니 갑자기 줄자를 들고 측정을 하기 시적했다. 견적을 알려주는 데 재료비에 자기 노동력 약간을 붙인 가격이었다. 재료비를 대충 알고 있는 터였기 때문에 마음이 동해 버리고 말았다. 이번 주에라도 당장 할 수 있단다. 이 친구 빚진 거 있나, 아니면 돈독에 올랐나? 데이빗은 주중에 일이 있어서 우리집 일도 주말(토,일)에 와서 한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화)은 다른 데 일 끝나고 저녁에 우리집에 와서 일한 거고. 그런데 이번 주에 또 일할 수 있다고? 이런 영국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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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지하철에도 노약자석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데 게의치 않고 편한대로 자리에 앉는다. 딱 한번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사람을 꾸중하러 다니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한 젊은이는 그 노인이 다가와 몇 마디 꺼내자 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옆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한 40대초로 보이는 아저씨는 그 노인이 뭐라 하건 말건 신경도 안쓰고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읽던 신문만 읽더라. 당시 지하철은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그 노인은 곧 포기하고 다른 칸으로 옮겨갔다.


런던 지하철에서도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딱 한번 젊은 친구가 어떤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더라. 할머니는 활짝 웃으면서 곧 내린다면서도 자리에 앚았다. 내가 의식을 못해서 그렇지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는 건 흔한 일일 거 같다. 이곳 사람들은 양보를 무척 잘, 때로는 너무 자주 하기 때문이다.


런던 지하철은 서울처럼 그리 붐비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엔 지하철에 노인들이 그리 많지도 않다. 좌석 갖고 문제가 벌어지는 경우를 본 적도 없지만, 사실 상상하기도 힘들다. 


작년 여름 장모님 모시고 영국 여기 저기를 돌아다닐 때였다. 장모님은 무릎이 안좋아서 자리에 앉아 쉴 때마다 무릎을 문지르곤 하셨다. 여기 영국 사람들은 그걸 볼 때마다 꼭 한 마디씩 덕담을 건네주더라. 노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몸에 베어 있는 사람들이다. 


영국은 군인을 우대하는 나라다. 이 나라는 두 번의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저저번주에 친구가 딸아이와 놀러 왔는데 이 딸아이가 여기 초등학교 6학년이다(대학 초년 때 애를 낳았다). 학교에서 일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 정세가 어떻게 변하여 또 한번 전쟁이 일어났고 영국이 어떻게 그걸 이겨냈는지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해마다 영국 여왕이 직접 참여하는 무슨 메모리얼 데이에는 전국에서 가슴에 훈장을 주렁 주렁 단 역전의 용사들, 할아머지들이 (... 지명을 까먹었다)에 모여 기념식을 한다. 할아버지 세대들이 자식 세대, 손자 세대에게 존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아마...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노르웨이에서 보내 준 전나무가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진다. 영국이 세계대전 때 노르웨이를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로 노르웨이에서 수십년 동안 해마다 전나무를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영국 테레비에서는 곧잘 당시의 다큐먼터리를 방송해 준다. 바다 밑으로는 독일의 잠수함 부대가 시시탐탐 노리는데,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스칸디나비아의 국민들에게 줄 식량과 구급품을 싣고 거센 겨울 바다를 뚫고 항해하는 영국 해군 함정들... 젠장, 내가 봐도 멋지고, 내가 봐도 존경스럽다. -이런 것이 영국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긍정적 이미지를 구성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지하철에서는 노인과 젊은이들 사이에 곧잘 신경전이 벌어진다. 젊은이들은, 그 분들이 전쟁을 경험했고, 개발 독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억척스러운 노인상은 시골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것 같다. 예전에 부산 친구던가는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노인이 아니면 노약자석에 앉지 않고 그냥 서있다는데 정말이냐? 응. 


노약자석이 노인들의 배타적 좌석이 된 것이 아주 오래된 일도 아니고, 전국적인 현상도 아니고, 아마 서울의 독자적인 새로운 사회 현상 중의 하나일 것 같다. 그게 현재 우리가 우리 문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시선을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 보면 비슷한 현상을 숱하게 목도하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의 기본을 지켜주어야 할 노년 세대들(이런 걸 보수라고 한다)이 사회가 더 악착스러워지고, 사나워지고, 이기적이 되어 가는 현상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에는 보수라고 말할 부류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현재 한국의 가장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이건, 단순히 노인에게 연금을 얼마 주느냐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노인 세대가 어떤 현대사를 만들어 왔느냐가 문제이고, 지금의 현상은 그 결과들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세대도 계속 우리의 현대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두려운 것은 그 결과가 결코 우리 세대를 자랑스럽게 할 것 같지는 않다라는 것이다. 우리 세대도 늙어서 후대 세대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세대가 될까? 지금 봐서는 그럴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노인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지하철 노약자석의 배타적 점유권을 더 강력하게 고수하는 세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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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다 2013-07-3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당장 어제만 해도 피곤에 지쳐 정신없이 자고 있는 남자 대학생과 젊은 여성분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우고 자리를 자치하면서 온갖 모진 소리 해대는 노인분들을 본 터라 이 글이 가슴에 박히는군요...

weekly 2013-07-31 18:4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한국 서울에 살 때는 그런 갈등이 막 시작될 때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굉장히 심해진 것 같구요...
 


토요일,일요일 데이빗이라는 친구가 혼자 와서 데킹 공사를 했는데, 아직 다 못끝냈다. 화요일날 다시 와서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땅을 더 파고 구덩이 12개를 파고 목재 포스트를 시멘트로 굳히는 기초 공사를 했고, 오른쪽 시멘트 보도를 때려 부수고 거기서 나온 페자재를 치웠고, 받침목들을 놓고 마루 일부를 깔았다. 


약간 놀랐던 것(어이없었던 것). 혼자 와서 일하더라는 것. 그리고 거의 기계를 쓰지 않고 몸으로 일하더라는 것. 구덩이 12개를 뚫는데 긴 창 같은 것으로 땅을 쑤시면서 하더라. 시멘트 덩이도 그것으로 부수길래 햄머 빌려줬다...-.- 한국 사람들 같으면 그렇게 힘만으로 일하지 않을 텐데... 톱도 세 개나 부러 먹더라...-.- 내 꺼 빌려 준다니까 여자 친구에게 전화해서 톱 새로 사오게 하더라. (일전 나무 베러 왔던 벤이라는 사람의 여동생이 데이빗의 여자 친구더라. 예쁘더라. 데이빗도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고 헬스로 만든 몸은 헬라클레스같다.)


아직 초보 일꾼인지 경험도 없고 요령도 없어 보인다. 그렇긴 해도 끝마무리만 잘 되면 만사가 잘 된 것. 마무리는 잘 할 것 같다. 시간이 너무 걸려서 그렇지...


(작년 여름 친척들이 놀러 왔었는데, 성격은 좋지만 반에서 거의 꼴지를 다투는 초등학교 꼬마애 하나가 있었다. 난 이 애가 고등학교 가서 미적분, 통계 공부할 걸 상상하면 그저 그 애가 안되었구나 싶다. 왜 그래야 하나? 영국에서라면 마루 놓고, 펜스 세우고, 잔디 깔고, 벽 쌓고, 문짝 고치고, 나무 자르고, ... 이런 기술 하나만 익히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여유롭게 자기 생활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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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13-07-31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말의 요지는 사람마다 적성과 특성이 다 다른데, 한줄로 세워서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사회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야. 수학이나 공부 머리가 정말 안되는 아이도 있고, 그 아이들도 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 존중받고 살아갈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물론, 여기엔 많은 사회 경제 문화적 조건들이 구비가 되어야 하겠지만...

(물론 너는 내 말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거야. 이상적이니까. 그러나 이상이 이념이야. 즉, 정책 목표야. 한국 정부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많은 브레인들은 이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적어도 고민하는 척은 하지.그러라고 돈 받는 거니까.)

그리고 얘네들이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주로 제국주의 시대때 축적해 놓은 부가 있기 때문이라는 거 동의해. 그러나 한국, 중국, 인도, 브리질 등의 나라가 서구 나라들을 추월하는 건 이제 시간 문제라고 다들 말하고 있어. 10여년 후면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넘어설 거고. 그 기간 동안 유럽은 억지로 통합해 놓은 유로 문제에 발목이 잡혀 정체되어 있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지.

은근슬쩍 끼어놓긴 했지만 한국이 저기 낄 나라는 아닐거야. 지금 한국은 국민들을 서로 서로 피터지게 경쟁시키면서 그 스트레스를 에너지 삼아 성장을 이어가고 있어. 언제까지 이렇게 지속될 수 있을까? 가장 큰 문제로 한국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보다 애를 덜 낳아.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 빡센 경쟁과 노년 세대에 대한 부양 부담 속에서 얼마마한 생산성을 창출해 낼 수 있을까? 내 보기에 한국의 현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아. 아마 누구나 동의하는 부분일거야.

그러니 당연히 대안을 생각하는 거지. 작지만 강하고 잘 사는 나라는 도대체 어떻길래 잘 사나? 어떻게 그 나라들은 빡세게 야근하지 않고도, 양반질하며 살아갈 수 있나?

이런 거에 대해 토론해 보고 국민들이 방향을 모색해 볼 기회가 지난 대선이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해. 물론 엉망이 되어 버렸고. 현재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본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후진국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한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 이럴 때가 아닌 데 말이야...

난 좌든 우든, 새나라든 민주든 사람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도록 정책을 잘 짜는 정당이 좋은 정당이고 그런 정책을 잘 펴는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해. 내 기준에서는 그게 절대선이야. 그런 관점에서, 혹 공부 머리가 모자란 아이도 부모들이 안심하고 사회에 내놓을 수 있겠다는 안심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나는 좋은 나라라고 보는 거고...

(글구... 블로그는 딴 거 쓸 생각 없어. 이거에서 맘 떠나면 다시는 블로그 안할거니까. 몇 번이나 폭파시켜 버려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내 삶의 중요한 장면을 담고 있는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