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지하철에도 노약자석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데 게의치 않고 편한대로 자리에 앉는다. 딱 한번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사람을 꾸중하러 다니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한 젊은이는 그 노인이 다가와 몇 마디 꺼내자 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옆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한 40대초로 보이는 아저씨는 그 노인이 뭐라 하건 말건 신경도 안쓰고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읽던 신문만 읽더라. 당시 지하철은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그 노인은 곧 포기하고 다른 칸으로 옮겨갔다.


런던 지하철에서도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딱 한번 젊은 친구가 어떤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더라. 할머니는 활짝 웃으면서 곧 내린다면서도 자리에 앚았다. 내가 의식을 못해서 그렇지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는 건 흔한 일일 거 같다. 이곳 사람들은 양보를 무척 잘, 때로는 너무 자주 하기 때문이다.


런던 지하철은 서울처럼 그리 붐비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엔 지하철에 노인들이 그리 많지도 않다. 좌석 갖고 문제가 벌어지는 경우를 본 적도 없지만, 사실 상상하기도 힘들다. 


작년 여름 장모님 모시고 영국 여기 저기를 돌아다닐 때였다. 장모님은 무릎이 안좋아서 자리에 앉아 쉴 때마다 무릎을 문지르곤 하셨다. 여기 영국 사람들은 그걸 볼 때마다 꼭 한 마디씩 덕담을 건네주더라. 노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몸에 베어 있는 사람들이다. 


영국은 군인을 우대하는 나라다. 이 나라는 두 번의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저저번주에 친구가 딸아이와 놀러 왔는데 이 딸아이가 여기 초등학교 6학년이다(대학 초년 때 애를 낳았다). 학교에서 일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 정세가 어떻게 변하여 또 한번 전쟁이 일어났고 영국이 어떻게 그걸 이겨냈는지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해마다 영국 여왕이 직접 참여하는 무슨 메모리얼 데이에는 전국에서 가슴에 훈장을 주렁 주렁 단 역전의 용사들, 할아머지들이 (... 지명을 까먹었다)에 모여 기념식을 한다. 할아버지 세대들이 자식 세대, 손자 세대에게 존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아마...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노르웨이에서 보내 준 전나무가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진다. 영국이 세계대전 때 노르웨이를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로 노르웨이에서 수십년 동안 해마다 전나무를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영국 테레비에서는 곧잘 당시의 다큐먼터리를 방송해 준다. 바다 밑으로는 독일의 잠수함 부대가 시시탐탐 노리는데,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스칸디나비아의 국민들에게 줄 식량과 구급품을 싣고 거센 겨울 바다를 뚫고 항해하는 영국 해군 함정들... 젠장, 내가 봐도 멋지고, 내가 봐도 존경스럽다. -이런 것이 영국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긍정적 이미지를 구성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지하철에서는 노인과 젊은이들 사이에 곧잘 신경전이 벌어진다. 젊은이들은, 그 분들이 전쟁을 경험했고, 개발 독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억척스러운 노인상은 시골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것 같다. 예전에 부산 친구던가는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노인이 아니면 노약자석에 앉지 않고 그냥 서있다는데 정말이냐? 응. 


노약자석이 노인들의 배타적 좌석이 된 것이 아주 오래된 일도 아니고, 전국적인 현상도 아니고, 아마 서울의 독자적인 새로운 사회 현상 중의 하나일 것 같다. 그게 현재 우리가 우리 문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시선을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 보면 비슷한 현상을 숱하게 목도하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의 기본을 지켜주어야 할 노년 세대들(이런 걸 보수라고 한다)이 사회가 더 악착스러워지고, 사나워지고, 이기적이 되어 가는 현상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에는 보수라고 말할 부류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현재 한국의 가장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이건, 단순히 노인에게 연금을 얼마 주느냐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노인 세대가 어떤 현대사를 만들어 왔느냐가 문제이고, 지금의 현상은 그 결과들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세대도 계속 우리의 현대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두려운 것은 그 결과가 결코 우리 세대를 자랑스럽게 할 것 같지는 않다라는 것이다. 우리 세대도 늙어서 후대 세대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세대가 될까? 지금 봐서는 그럴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노인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지하철 노약자석의 배타적 점유권을 더 강력하게 고수하는 세대가 될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나다 2013-07-3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당장 어제만 해도 피곤에 지쳐 정신없이 자고 있는 남자 대학생과 젊은 여성분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우고 자리를 자치하면서 온갖 모진 소리 해대는 노인분들을 본 터라 이 글이 가슴에 박히는군요...

weekly 2013-07-31 18:4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한국 서울에 살 때는 그런 갈등이 막 시작될 때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굉장히 심해진 것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