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강수백 씨.

천리안 멋진 신세계에서 활동하던 무렵부터니까 93년도쯤부터 그 이름을 들었다. 난 하이텔 환동과 SF동에 있어서 명성만 듣고 차마 접해본 적은 없지만, 만나 봤음 좋겠다.

이제 나도 번역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처음 번역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아마도 내 이름을 달고 처음으로 출판되는 작품은 환타지가 될 것 같다. 환타지를 번역하다 보니 자꾸 이 번역 작가가 더 보고 싶은 거다.

검을 휘두르는 강철 근육의 전사의 말투를 어찌해야 하나...."~했소."라고 하기엔 너무 마초같지 않을까 하며 김상훈 씨의 딜비쉬를 꺼내 보았더니, 역시나 '~했어.'체로 번역을 했더라. 그래서..내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마초는 집어치우고 ㅎㅎ '~했소'체로 가기로 했다.

내 번역서가 나오고, 한 권 불쑥 이 번역 작가한테 보내면 놀라려나....그레도 되는 걸까...쩝.

어째 같은 386세대일 것 같고, 운동권의 광풍이 스치고 지나건 문화의 황무지에서 처음으로SF와 환타지를 좋아하던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통신 시절을 함께 공유했다는 (나혼자만 그렇게 생각할테지많ㅎㅎ) 연대감이랄까...

영문학을 한다는 것 만으로 제국주의 앞잡이 문학을 한다고 치를 떨던 정치적 인간들이 횡행하던 캠퍼스에서, 호비트를 원서로 찾아 읽고 시간 여행자의 딜레마를 고민하고 우주의 새로운 신화에 감격하는 인간은 참으로 외로웠고....그러다 통신에서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건 참으로 감격적이었다.

제국주의 타도하자던 정치적 인간들은 이제 사회나와 보니 대부분 주식에 아파트 투기에 하며 상당한 경제적 인간들로 변했더만, 환타지 좋아하던 인간들은 그제나 이제나 소용돌이 치는 정글의 변경에서 변함없이 골또롬들 살아가는 듯.

흠...일단 번역이나 끝내고 책이나 나오면 함 저질러 보자...쩝.

내 주인공은 지금 적도에서 한참 연애질 중이라, 일단 이 뜨거운 로맨스나 끝맺은 하고 볼 일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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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6-01-3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국주의 타도하자던 정치적 인간들은 이제 사회나와 보니 대부분 주식에 아파트 투기에 하며 상당한 경제적 인간들로 변했더만, 환타지 좋아하던 인간들은 그제나 이제나 소용돌이 치는 정글의 변경에서 변함없이 골또롬들 살아가는 듯......

상당히 공감 공감...
 

Bato Dugarjapov  (러시아, 196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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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5-10-2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눈부시다기보다 왜...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죠?
왠지...뜨는 해가 아니라 지는 해(석양)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서요.
저는 사춘기 무렵..해가 질 때면 아주 발광을 할 정도로 괴로와지곤 했어요. 그때 딱...독서실에서 집에 밥먹으러 오던 무렵이던가..항상 해가 어둑어둑 질 무렵에 거리에 나올 일이 있었는데...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견디다못해 엄마께 도시락을 싸다달라고 부탁을 했다눈...거의 병적이었죠..

얼마 후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에..조르바 역시 해질녁이면 괴로움에 빠진다는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답니다.

그게...예전에 미개인들은 해가 져버리면 다시 떠오를지 확신이 없어서 엄청난 두려움에 빠졌었고...그래서 밤새 해를 부르는 의식을 했다던가 어쨌다던가..암튼 그 두려움이 우리 핏속에(유전자에!) 새겨져서 일부 사람들(조르바나 저 같은)에게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는..뭐 그런 내용을 읽은거 같아요...

지금은 그때보다 덜하지만..여전히..해질녘에는 마음이 쓸쓸하고 불안해지죠...

어쨌든...
아름다운 그림이예요...
 

성경을 읽다가 내가 가장 매료되는 씬 중 하나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고 자신의 머리칼로 그 발을 닦아주는 부분이다.

난 이 장면이 왜 그리도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걸까. -__-; (에잇 불손한지고)

그리고, 늘 상상을 했다.

내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꼭 발을 씻어주고, 머리를 감겨주리라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 내가 가졌던 가장 큰 성적인 환타지는

좋아하는 선배의 헝클어진 머리를 감겨주는 상상을 몰래 몰래 하는 거였다.

(하필 그 선배가 머리가 곱슬기가 있어 더 잘 헝클어졌다.)

어린 시절은 혼돈의 시절.

여성이라는 피해의식이 온갖 분노로 폭발하고,

굳센 자의식을 세워보고자 기를 박박 쓰면서도,

좋아하는 남학생들 앞에서는 어쩔줄 몰라 발끝을 감추고 동동거리면서,

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내 속에 나 스스로 칼리가 있음을, 이시스가 있음을, 가이아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 강한 어머니 여신들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환심을 사고 싶은 남자 앞에서 우물쭈물 페로세포네의 모습 하나만 보이도록

내 스스로 내 모습에 재갈을 물리는 꼬락서니란.

내 첫 사랑들은 주로,

엎드려 발이라도 씻어주고 머리칼로 부비대며 닦아주고픈 지극한 굴종의 미학에서

매조키스트적 쾌락을 취하다가

내 이성의 몰매를 맞고 스스로 우왕좌왕하다

쌓여가는 갈등과 혼돈에 쩍쩍 균열하다가

스스로 사랑하는 그 남자(들) 앞에서 자폭하는 결말로 끝나버렸다.

내 속의 칼리의 얼굴을 본 남자들은 하나같이 도망가더라.

 

내속의 칼리는 내 꿈속 커다란 블랙위도우 거미의 형상으로 나타나

거미줄 아래 분열된 내 자아들을 하나씩 낚아올려 잡아먹으며 내게

'난 절대 여기서 안 나가!'하고 음흉하게 속삭여주더라.

지금도 바비 인형을 보면 너무 사고 싶은데,

걸 사들이면 또 내속에서 살육극이 벌어질 것 같아 참는다.

그 어떤 분노가, 피해의식이 내 속에 이토록 깊게 도사려

생전 나 자신을

그 어떤 남자 앞에도 제대로 서는 것을 막는지는 나도 통탄할 노릇이다.

끝도 없이

무릎 꿇고자 하는 이 간교한 노예근성은 또 뭐란 말이며,

득달같이 달려와

노예 근성을 살육하는 이 분노의 얼굴은 또 뭐란 말인가.

 

내 인생의 문이 닫혀다고 슬피 울던 유학시절 만났던 50대 캐나다 아줌마의 얼굴이 생각난다.

연하의 애인을 십대 소녀에게 뺏기고 그 총명하고 야무진 아줌마가

칙칙한 영국 겨울 날에 매일매일을 울며 보내더라.

 

엊그제

얼굴서 주름을 발견했다. 심히 뜨악하다.

내 워낙 동안으로 지극한 오해를 받아가며 삶을 만끽하던차,

드디어 이렇게 거울 속에서 주름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구나, 싶다.

 

아이가 이제 좀 손이 덜 가니까

모성에 가려 있던 다른 부분들이 숨통을 틀라고 하나.

하지만, 의식적으로

죽여버리리라, 또 다시 노예짓을 하는 내가 고개만 쳐들어도

그렌델의 에미보다 더 잔인하게 내 속의 노예년은 내 죽여버리리라.

맹세하고 또 맹세하고 하루 하루가 간다.

늙어지면 더 좋으리. 노예년도 포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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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노평자 씨.

촌지 여왕 + 새디스트 (차라리 몽둥이 휘둘러 때리는 새디스트였음 나았을 것같다. 여린 내 어린아이 감성을 모두 짓발겨 놓은 새디스트)

난 1학기 여자 반장이었다. (그땐 투표에 의한 선출이 아니라 담임이 지명하고, 교장선생님이 눈도장 찎는 방식이었다. 반장 부반장 후보들은 교장실로 다섯씩 들어가 인사하고 나온다음, 임명장을 받았으니까). 울 엄마가 안목이 있어서 울 딸 셋 옷 하나만은 튀게 입혀 다녔다. '파카'란 것도 울 국민학교서 제일 먼저 입고 다닐 정도 였으니까... 옷테를 보고 돈 많은 줄 알고 선생이 찍은 거다.

선생님 가장 먼저 시킨 것 - 잘사는 집 아이들 일곱을 줄세워놓고 매일 돌아가며 보온병에 커피 타오기. 울 엄마가 학교에 안오는 날들이 지속되는 어느날 난 내 순서를 까먹고 커피를 안타갔다. 선생이 반 전체 앞에서 노발대발하며, 반장 자격도 없는 거라고 30분을 수업도 안하고 떠들었다.

2학기 남자 반장이 된 양원규는 엄마가 지극정성이었다. 그애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되면 선생은 수업하다 말고 어젯밤 꿈에 니 엄마 봤다, 고 했다. 그러면 그 다음날 원규 엄마가 찾다왔다.

학급문고란 걸 만들어 책을 기증 받은 후 돈을 내고 빌려보게 했다. 한권에 50원. 다른 책은 학급문고 장사(?)에 방해된다고 가져오면 무조건 압수였다. 학기말에 반 전체에 한자루에 150원짜리 볼펜 한자루씩을 학급문고 수익이라고 돌려주었다. 나머지 돈은? 너무도 보고 싶었던 책을 친구한테 빌리다가 들켜서 압수당했다. 책값을 친구한테 물어붰고, 선생은 그책을 학급 문고에 꽂아두고 돈받고 다른 애들한테 빌려주었다.

2학기. 반장과 별도로 학급회장은 투표로 뽑았다. 전체 어린이 회의에 대표로 나가는 자리였다. 1학기 반장들이 주로 출마해서 뽑혔는데, 회장 선거 2틀전인가 난 아파서 결석했다. 선생 - 울 반 전체한테 절대로 날 찍지 말라고 했단다.

2학기 말. 집에 귀가 할때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서 줄반장들 인솔하해 한줄로 가야했다 (우리 반만 그랬다. 줄 반장 직함에 엄마들이 또 꽤 찾아왔을 거다...)  선생은 4충 교실 창문서 내려다보며 마음에 드는 줄을 손가락으로 표시했다. 그 줄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11월 말 겨울. 나는 엄마가 새로 사준 빨간 구두를 처음 학교에 신고 갔고, 구두끈을 매는 거 서툴러서 한참을 친구 두명과 낑낑 거리며 매다가 운동장에 나와보니 줄서있는 애들이 없었다. 먼저들 갔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학교에 와보니 우리 셋 이름이 칠판에 쓰여 있었다. 어제 줄을 안서고 갔다고. 다른 애들은 선생님이 화가 나서 운동장을 뛰어 돌고 있었는데, 우리 셋만 못보고 갔다가 운동장 열바퀴를 돌고 가라고 했다. 눈이 왔다. 첫눈이었는데,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서 하교시간 즈음에는 발목까지 눈이 쌓였다. 그렇게 눈이 쌓인 운동장을 열바퀴 돌아야 했다.

같은 반 남학생 중에 진수라는 아이가 있었다. 내 태어나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였다. 아침마다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며 그애가 있어서 선생이 아무리 지옥같이 굴어도 기쁘게 학교간다고 되뇌이며 학교에 갔었다. 내 나이 그때 11살. (1년 일찍 들어갔다....학교를)

노평자 선생은 진수를 하교 후에 불러서 내가 10바퀴 운동장을 다 도는지 세라고 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운동장을 도는데, 다른 두명의 친구들이 일곱바퀴를 돌때 난 겨우 4바퀴를 마치고 있었다. 분하고 억울하고 무엇보다도 진수가 지켜보는데 헉헉거리며 운동장을 돌아야 한다는 게 죽기보다도 싫었다. 뜨거운 덩어리가 안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는데 진수 앞에서 눈물은 안보이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철없는 진수는 (남자애들이 여자애들보다 그 나이엔 성장이 느리니까...) 지지리도 못달리는 내 달리기를  세다가 지루하고 뻘쯤해져서 저를 기다리던 지 친구들이랑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여덟 바퀴 정도 달리고 있을 때 제딴에는 장난을 친다고 내게 눈볼을 하나 던졌다.

눈볼을 정면으로 맞은 그 순간, 정말 온몸속의 분노가 폭발했다. 난 평생 그렇게 화가 난 적이 없었다. 가뜩이나 눈이 와서 하얀 세상에, 시야가 온통 하얗게 펑,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난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애를 팼다.

난 타고난 약골이었다. 늘상 맞고 다니고 질질 울던. 동생한테조차 늘상 맞고 울던 병신같은 약골이었는데, 그날 내 몇달을 목숨걸고 좋아했던 김진수를 신나게 패주었다. 진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던 여름의 그 환희도, 꼭 우리집 앞 도로까지 와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며 날 불러내주던 그 기쁨도....다 한순간에 다 날라갔다.

진수는 타고난 운동체질에 악발이라 누구한테도 싸워서 지는 애가 아니었는데, 그날 내 엄청난 기백에 질렸는지 울면서 패는 내 앞에 웅크리고 서서는 암말도 못하고 내 주먹을 다 받았다.

그리고ㅡ 악이 받쳐서 남은 두 바퀴를 다 돌고, 추운 겨울 신발도 다 젖고, 무릎까지 옷이 젖은 상태로 질퍽질퍽 흙탕이 된 골목길을 울며울며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난 말썽 한번 안부리는 모범생이었는데 말이다. 더 어린 여섯살적에도 길가다 제때 길 안비킨다고 경운기 몰던 아저씨한테 암팡지게 뺨을 얻어맞고도 엄마한테 절대 말 한적이 없는 나 였는데. 말이다. 학교서 선생한테 맞아도 죽어도 말안하던 내가 울며 집으로 돌아온 건 울 엄마도 아마 처음 봤을 거다.

벌로 눈 쌓인 운동장 열바퀴 돌았다는 것 외엔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냔 말이다.

내...처음으로 좋아했던 남자애 앞에서 벌 받았다고, 그 남자애를 먼지나게 패줘서 이젠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다고...내 어린 풋사랑이 그렇게 끝났다고, 아니, 선생이 .... 다 큰 어른이....내가 진수 좋아하는 것 알고 그토록 내 마음을 갈기갈리 찢어놨다고 ....그 긴 얘기를 다 어떻게 엄마한테 할 수 있었냔 말이다.

ㅎㅎ

진수는 그 이후에도 이따금 뻘쭉 얼굴을 내밀고 일부러 툭툭 치고 가거나, 6학년에 되어서 주번 설때 와서 빙빙 돌며 장난치거나...하며...어린 노마 한테 어울리는 어린 짓을 해댔다. 주번인 나는 매몰차게 노마의 이름을 적어내서 (사실은 내가 직접 안적고 옆의 친구한테 적으라고 사주해서) 노마가 지네 담임한테 기합을 엄청 받게 해주었다. 눈물 쏙 뺐을 거다. 그래, 너도 울고 커라, 는 심보였나? -__-;

내 노평자 선생을 필두로 사립 고등학교서 몇몇 저질 선생을 더 만났다. 아,,물론 노평자가 가장 악질이다. 내 이를 갈며 난 절대 선생질은 안한다고 결심했다. 대학에 들어가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숱하게들 하는 교직이수 안했다. 선생 절대 안한다고.

그런데....^^; 지금 가르치고 있다. 학원, 기업체, 대학...그래도 절대 정규 중고등학교에서는 교펀을 안잡는다. 스폰지와 같은 애들한테 내가 끼칠 영향에 책임 질 자신이 지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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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9-0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과 함께 '예의(사전적 정의 말고 금전적 정의 말입니다)없는 집 자식'으로 찍혀서 개 매도당하고 얼굴을 구둣발로 짓밟으며 '넌 커서 사회의 독버섯이 될 새끼야'외치던 작자도 매너 5학년때 담임이었는데요. 둘 결혼시키면 뭔 꼴 날라나. 그러고보니 그 개새끼 마누라도 선생이었는데... 혹시? *_*

김삿갓 2009-09-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평자 이름 참 좋다. ^^
 

내일모레 이민대행사와 계약하러 갑니다.

점수가 되기 때문에 신청하면 될 확률이 90% 넘습니다.

구구히 왜 이 나라를 뜰려고 하는지 설명하기는 힘들고

설사간다해도 1년이나 4년후 쯤 가게 될겁니다.

말만 낳은 자들이 싫습니다.

내...80년대 운동권들 옆에서 지켜봤지만

이상을 살아내 보이는 인간은 제대로 본적 없습니다.

인간 본성은 원래 그마마하게 치졸한 겁니다.

그걸 인정하면 되는데,

자기가 실현 못할 이상을 남에게 강요합니까.

자기의 기득권 포기는 못하면서

(대부분 기득권이란 것을 막연한 가정법으로 밖에 말해보지 못할 사람들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본성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인간들보다 과대평가하나 봅니다.

중립, 객관? 그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하는 언명도 없을 겁니다.

갈 겁니다.

내 아이를 위해서.

일하는 엄마들의 아이들이랑 놀지 말라고 시키는 전업 주부들이 있고 (엄마가 보살피기 힘들어서 아이들이 엉망이라고 내지는 낮시간에 부모없는 애들 집에 놀러가 나쁜 짓들 한다고 )

더구나

홀부모의 자식이란 낙인으로 왕따 당할까 갈 겁니다.

거기서도 물론 인종주의자들 있고, 운동 신경 둔한 울 아이는 적응하기 힘들지도 모르겟지요.

하지만, 최소한 인종차별을 공공연히 지탄하는 사회 양심이 살아있고,

선생들이 촌지도 안받고, 왕따 당하는 아이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라 주어섬기지 않고,

인종 차별에 bully 들에게 No! 라고 말해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있다면

나머지를 극복하는 것은 제 아들의 개인적인 몫이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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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3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답하고 (가신다니)섭섭해요.
이 나라 문제가 많은 나라인 건 확실하지만...
톡톡캔디님, 그래도 너무 신랄하게 말씀하시니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mannerist 2004-08-3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하세요. 몸도, 마음도...

땅과 사람에 적당히 묶여있는지라 아직은 생각 없지만 자식 낳으면 180도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답답한일이 무얼까. 궁금해지신다면, 그때까지 매너를 기억하신다면 가끔 들려주시길. 진부한 말이지만 진정을 담아. 행복. 을 빕니다. ^_^o-

톡톡캔디 2004-09-01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홋 간다해도 빨라야 1년 후, 늦으면 4,5년 후입니다. 영주권받고 5년동안 안들어가도 됩니다. ^^; 일단 나이점수 깎이기 전에 영주권이나 받아놓고 다음 일을 생각해려구요. 호구지책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사실. 로드님. 매너님. 그리고, 저 이민가도 인터넷 합니다. 걱정마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