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증조 할아버지 북한서 으리으리한 지주였다. 울 아버지 말로는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하루종일 걸어도 할아버지 땅이 끝이 안났다고....(과장법인것 같다. ) 일제 시대에도 그 마마한 땅을 유지하셨고, 전용 방앗간이 있었고, 소작인들만을 모아서 같이 예배드리던 교회를 세우셨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 한참 고민했다. 일제 시대에 지주면 일제에 아부했다는 소리인가? -___-ㅋ

울 할아버지 대한민국 청년단 단장이었다. 태백 산맥읽어보라. 그 찢어죽이고 싶은 염상구가 바로 대한민국청년단 단장이다. 대학시절 태백 산맥을 읽고 또 한참을  고민했다.

과연 울 증조할아버지는 악덕 지주였고, 울 할아버지는 저주받을 대한민국 청년단 단장이었단 말인가?

어느날 아빠한테 이 이야기를 꺼냈다. 울 아빠는 북쪽 출신 답게 반공정신이 투철하시다. (ㅎㅎ 역설적으로 그렇다. 서북청년단만해도 봐라.) 울 아빠 왈, 곡창지대가 그리 발전하지 않은 북쪽에서는 지주들이 전라도 평야지대 지주들 처럼 악착같지 않았다,고 하신다. (그럴 수도 있다.)

나이드신 할머니께서 언뜻언뜻 해주신 기억들을 더듬으면, 순사들한테 증조 할아버지(할머니한테는 시아버지)께서 호령을 치시곤 했다고...그러시는데, 음...뭐 믿고 호령을 치셨을까, 싶다.

증조할아버지가 어떻게 황해도 지역의 지주가 되었는지는 사실 미스터리이다. 종가는 서울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아닐지도 모른다. 그 지방에 선산도 있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걸 보면) 하지만, 증조 할아버지는 고종 때 중추부사까지 하셨다. (다시 찾은 족보에 그렇게 나오더라) 어느 시점에 중추부사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__-ㅋ 할아버지는 어느 순간 기독교로 개종해서 벼슬 버리고, 집안서 쫓겨나고 항해도로 내려가서 지주가 된걸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 아무도 모른다. )

육이오 이전 개성이하는 남한 땅이었다. 그래서 울 할아버지가 대한민국청년단 단장이였던 거다. 그리고 육이오가 터지고, 울 할아버지는 아들 둘만 데리고 먼저 인천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줄행랑(?)을 치셨고, 울 할머니 몇달을 숨어 지내다가 남은 아이들 셋을 업고 걸려서 인천항구서 극적 상봉을 했단다. 증조 할아버지 그때까지 북한에 살아계셨단다. (울 할머니 그 이후 몰래 다시 북한 땅에 잠입을 해서 금단지 같은 재봉틀을 홀로 이고 나오신다. 그 모험담은 아찔하다 - 멋모르고 지뢰밭을 걸어서 재봉틀을 이고 탈출하셨다. 그 얘긴 나중에.)

그리고 육이오 이후 할아버지, 할머니, 울 아빠에게는 험난한 생존 투쟁이었다.

족보? 울 집은 그런 거 없었다. 증조 할아버지가 기독교 믿느라 제사 거부한다고 쫓겨날때부터 족보는 언급된 적도 없다. 아빠가 가끔씩 증조 할아버지가 손자들 불러다 놓고 신라 충신 박제상 이야기를 거듭거듭 강조하면 해주셨다는 아스라한 힌트만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울 할아버지 다섯번째이고, 울 아빠 장남이라도 딸 밖에 없어서 족보를 찾고자 하는 의욕도 별로 없었다. 울 작은 아버지가 살만해지고, 장손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족보를 어느순간엔가 찾아오셨다. 나는 영해박씨 충절공파 54대손인가? 그렇단다. 신라 제 5대 파사왕의 증손자가 시조이며, 이 시조의 손자인가가 중시조인 박제상이다. 본관인 영해 지방은 눌지왕이 아우들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박제상의 자손들에게 하사한 땅이다. 다른 박씨 본관들은 나중에 박씨가 다시 신라의 왕이 되었을때 대군들이 각각 시조가 되서 유래한것으로 알고 있다. 고려때 문하부 시중을 3대에 걸쳐 할만큼 잘나가다가, 조선 세조때 단종 편을 들다가 거의 멸문을 당했다. (박위지하고는 상관없다) 단 한사람 도망쳐서 숨어 살다가 숙종때 복권되고, 영조때부터 벼슬길에 다시 나가기 시작해서...지금에 이르렀는데, 사실 멸문의 영향이 너무커서 사람이 너무 없다. 거짓말 안하고 난 5촌까지의 우리 친척들 외엔 같은 본관을 본적이 없다. (누가 그런 사람 만났다더라만  - 딱 2번)

작은 아버지는 그 족보를 구해오셔서 당신 아들 이름을 올린다는 집념으로 우리(울 세자매)이름까지 다 올려주셨다.

사실 난 괘념치 않는다. 저 가부장 기록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사실 유전적으로 따지면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에게서 받는 유전정보가 더 많다. 난자에 들어있는 미토콘드리아에도 유전정보가 잇기 때문이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두분 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지만, 얼마나 숨막히도록 유교적이고ㅡ 가부장적 권위를 남용한 사람들인지 말이다. 모든 걸 종교를 위해 버리기로 한 결단, 세브란스 의전을 다니다 마셔서 동란후 그나마 그런 학력이 없어서 교편을 잡다가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하신 할아버지...그분들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가 사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증조할머니께 손지검을 하셨다는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할머니의 아스라한 기억을 전해듣거나, 며느리들 앞에서 할머니 얼굴에 국사발을 던졌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기억을 전해들으면, 그저...그런 마쵸의 피가 내 속에 흐른다는 게 참으로 화가 날 뿐이다. 그들의 유전자가, 그들의 피가 내 속에 과연 몇분지 일만큼 이나 흐른단 말인가 말이다.

난, 아버지 집안의 유구한(?) 내력에 대해 개의치 않기로 했다.

한때 길을 가다보면 '도에 관심있으십니까?'하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한테 툭하면 잡혔다. 실제 따라갔던적도 있지만, 그네들이 툭하면 하는 말이 조상님들이 집안에 기둥으로 나를 생각을 하고 기대려고 하는데..어쩌구 저쩌구...그런다. 그러면 내가 화를 내는 줄 미처 모르고 말이다. 난 그런 말 들으면, 난 기독교 인이에욧!하는 것보다, 내 아버지 조상들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에욧!하고 반응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꿈을 꿨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뒤에 대동하고 울 집에 오셨더라. 울집 옷방에 오셔서 내 옷장에 옷을 걸어놓으신 거다. 내가 꿈에서도 마구 화를 내면서, 걸어놓은 옷들을 바닥에 팽개치며 '할아버지, 저한테 오시지 마세요. 저는 출가외인이에요. 그 애지중지 하시던 장손한테 가세요!'하고 화를 냈다. (울 할아버지, 아들 못낳았다고 울 엄마 가슴에 못박은 거 난 용서 못한다. 울 세자매 단 한번도 무릎에 앉혀주시지 않은 거 아주 선명하게 기억한다. 왜 꿈이라도 내게 오냔말이다.) 그리고 다음날 부고를 받았다. -__-ㅋ

친일 과거사에 대한 극렬한 분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혹시라도 행여라도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 - 가정법 미래 - ) 공인이 된다면, 나 역시 친일 세력의 후손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될 것인가? 하는. 인터넷에 보니, 아버지가 일제시대 면장이었다는 것까지 친일 후손이라고 딱지 붙여서 매도하더만.

내가 극렬히도 부정하는 내 아버지 가계가 그런 꼬리표가 될려나 말이다. 내가 받은 교육과 내가 고민하고 애써서 쌓아올린 내 자존감과 정체성, 이 모든 것과 하등의 상관도 없이, 난 친일 후손의 딸일 수 밖에 없다는 건가?

과거사를 옳게 정립세켜야 한다고? 그런데, 선은 어디더냔 말이냐?

사실 태백 산맥 읽으며 난 그 악의 화신같은 염상구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이 있더라. 국군이 들어오면 대한민국 만세! 부르고, 인민군들 진주하면, 몇십년 같이 산 이웃을 군국부역자라고 찔러 바치는 인간들. 그래, 할아버지들이 일제 시대 면장이 아니었던 사람들은 역사 앞에 그리도 당당한 모습들이었냔 말이다.

'왜 나만 같고 그러냐?'는 걸고 넘어지기 식 면죄부를 내가 청하고 있다고?

그건 아니다. 내 증조 할아버지가 친일 세력이었을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그런데, 내가 얼마나 책임을 지냔 말이다. 내 속의 얼마만큼의 피에 대해 속죄해야 하는데?

박정희? 친일 한 거 맞다.  / 일제시대 검사보? 친일 이겠지. / 그리고, 면장, 면서기, 경성 제국대학 출신들, 어디까지가 친일이란 말인가. 역사 바로세우기, 좋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올바른 평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죄는 몇대까지 할건가? 그네들 후손이 잘먹고 잘살았으니까....라는 피해 의식은, 심정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올바르지는 않다. 막상 정죄 할수 있었고, 정죄 해야만 했던 시기에 못하고 지나간 인간들의 과오는 왜 안묻는 가 말이다.

왜 그렇게들 과거에만 집착하냔 말이다. 미래는?

친일 한 사람들, 유신 시절에 밀못하고 쉬쉬했던 모든 인간들 하고 모두다 경계선 긋고 가르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내가 증조할아버지를 인간적으로 싫어한다해도 애 할아버지인 걸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다들 한 민족아니냔 말이다.

나는...베트남 사람들하고 얘기하면 왠지 죄스럽다.

용병의 입장으로 가서 한국군인들이 한 살육이 죄스럽다. 실제로 몇안되는 내가 만나본 베트남인들한테 한국인으로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다. 대만인들에게도 한국 정부가 그렇게 한순간에 칼로 끊듯이 단교하고 중국대사관 건물 중공에 넘기는 거 아니었다. 그 점 한국인으로 참 미안하게 생각한다, 고 말한다.

내 증조할아버지의 과거? 사실 분명하지도 않지만, 더이상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만했으면 좋겠다.

History가 historiography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늘 역사는 파워있는 자들이 새로쓰는 픽션이기 때문이다.

과거사 재정립 좋다. 하지만,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마녀사냥하는 이념적 도구로 오용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과거 제대로 말하는 거 대 찬성이다. 하지만, 3세대 이상 지난 과거 에대해 면죄부도 동시에 줘야하지 않는가  말이다.  면죄부 없는 과거사 정립이 어떻게 화합을 낳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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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8-1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죄"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좌제를 용납하지 않는 이상, '그런 놈들 자손'이라 손가락질 하는게 가능할 지언정 온당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그리고 그 손가락질이 '말'이상의 의미를 넘을 수 있을까요?

문제는 '사실의 기록'조차도 인정 안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적어도 그런 사실에 대해 "사실이고 그당시 행동에 대해 사죄한다"라는 반성의 자세라도 보이지 않은 해당 친일파들, '그때 다 그랬는데 어쩌란 말이냐?'는 할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의 기록'도 부정하면서 지금의 단물은 놓치 않으려는 데다가 그에 대한 비난까지 피하려 한다면 이건 문제가 아닐까요?

다시 한 번. 문제는 '기록'입니다. 친일파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그 후손들에 대한 마녀사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로 '친일파의 자식들'이란 말을 주워섬기는 작자들을 저는 증오합니다. 이런 말의 연장에서 '독재자의 딸 박근혜'라는 수사도 그녀를 비난하는데도 동의할 수 없고요(문제는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이를 이용한다는 거겠죠. '아버지의 이름으로'외치며 TK에서 시작한 정치생활부터 지금까지). 문제는 님이 걱정하시는'정죄'라는 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기록'자체를 불허하는 게 아닐까요.

톡톡캔디 2004-08-1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사실 님의 서재에 올라온 글과 답글을 보고 쓴 글입니다. '과거사 정립'의 명분은 좋습니다. 보수세력에 대한 반발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네 공주이니, 여오크이니 하는 사실 귀엽기 까지한 애칭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험한 말, 쌍욕쓰는 건 이해가 안갑니다. 그렇게 감정적인 대응을 보면,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을 '타자'로 규정하고 배척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안읽힙니다. 아무리 생각하는 게 달라도, 아무리 정죄받아 마땅한 부정을 저질렀어도 이 한국땅서 추방하는 법률이 없는 한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음...그러고 보면 바다에 던져 버린 장개석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요? ㅎㅎ) 비판은 하되 좀 더 성숙한 태도들을 견지했으면 합니다.
친일파 문제는, 사실 복잡합니다. 미당 서정주 친일 했지요. 하지만, 서정주 문하에서 그의 후원으로 큰 문학계 인물이 서정주시인이 죽자마자 서정주 친일 문학인이라고 매도하고 나서는 거 보면, 씁쓸합니다. (서정주시인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에 수긍은 하지만, 그 문학계 인물의 손은 왠지 들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중립적인 역사는 없습니다. 중립적인 '기록'도 없구요. 설사 '정죄'를 한다한들 정죄 당하지 않고 끄덕도 안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 밉죠. 욕하고 싶은 심정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욕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땅에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인터넷에 올라온 친일 세력 명단 중 가장 기가 막히는 건, 을사오적 송태준의 손자였습니다. 이 인간이 이승연 위안부 누드 동영상을 제작한 회사의 사장인 게 가장 기가 막히더이다. 단순히 그 사람이 송태준의 손자인 것 만으로 매도할 수는 없겠죠. 설사 송태준이 남긴 부로 여태껏 잘먹고 잘살았다 할지라도. 하지만, 그 사람의 행적은 참으로 그 아비에 그 아들 이라는 소리밖에 안나오게 하는 군요.

인터넷의 그 명단, 사실....아버지가 단순히 일제 시대 면장이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건 아닌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달리 그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mannerist 2004-08-1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립적인 '기록'은 없겠지만 자기 잘먹고 잘 살자고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흐르게 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면 여기에 한해서 욕먹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군말 하나. 서정주 문제에 대해 제가 생각한 해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학 교과서에서 칭찬하고 역사 교과서에서 박살내면 된다.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양반 없었다면 한국어가 얼마 정도 빈곤해졌을 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가미가제 특공대로 젊은이들 몰아 개죽음시키는데 일조했던것 역시 사실이니까요. 문학교과서에 시를 실어줄지언정, 역사교과서에서는 더 가혹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 교과서에 '그런 주제에 반성은 커녕 종천친일 이라는 언어도단까지 저질렀다'정도 실어주면 벨런스가 맞겠죠. 그의 업적을 인정하면서 행적을 비판하는 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후자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고, 이 점에 있어서 사람들은 분노하는게 아닐까요.
 
 전출처 : 플레져 > [퍼온글] Georges Barbier. 1882 -1932


 

 

 

 

 

 

 

 

 

 

 

 

 

 

 


 

 

 

 

 

 

 

 

 

 

 

 

 

 

 


 

 

 

 

 

 

 

 

 

 

 

 

 

 


 

 

 

 

 

 

 

 

 

 

 

 


 

 

 

 

 

 

 

 

 

 

 

 

 

 

 


 

 

 

 

 

 

 

 

 

 

 

 

 

 

 


 

 

 

 

 

 

 

 

 

 

 

 

 

 

 

 

 


 

 

 

 

 

 

 

 

 

 

 

 


 

 

 

 

 

 

 

 

 

 

 

 

 

 

 

아르데코 시대의 대표적인 퍠션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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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믿는다고 얘기해야 하나?

서너번 언뜻언뜻 다른 시대 다른 복장의 주인공이 된듯 스쳐가는 그런 꿈들이 있었는데, 임신 중 꿨던 꾼 하나는 너무나도 기억이 생생한데다 이름들까지 모두 생각이 났다.

음...빅토리아 시대 젠틀맨 계층의 여자였다.

(당시 젠틀맨은 신사라는 뜻이 아니라 비귀족 출신의 상공업으로 성공한 신흥부유층을 일컫는 단어였다.)

내가 젠틀맨 계층으로 태어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계층 남자의 부인으로 영국의 유명한 공업지역 같은 곳(?)서 살고 있었다.

(내 영문학 석사 세부 전공이 빅토리아 시대 여성 소설가들이다. 쩝. 그 영향이 아닐까 싶다)

남편 이름은 레오폴드. 내 이름은 해리엇. 아들 이름은 벤자민.

남편은 자수성가한 젠틀맨으로 좋게 말하면 냉철(?)하고 나쁘게 말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다고나 할까. 사회에서는 상당한 존경을 받지만, 가정에서는 아내를 대잇는 자손을 낳는 기계나 가사를 주관하는 완벽한 안주인의 역할을 기대하는 차가운 완벽주의자? (바깥 일과 가정일의 완벽한 분리의 개념이 정립된 건 사실 빅토리아 시대였다. 안주인들은 꼭두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흐트러짐없이 앉아서 home management에 골똘해야했다....쩝. )

기억나는 영상은 남편이 어느 집회에선가 연설을 하고 엄청난 박수를 받는 걸 뒤에서 씁쓸하게 쳐다보던 것.

그리고, 치맛자락을 끌어잡아당기던 금발머리 어린 아들 베니 (나는 벤자민을 베니라고 불렀던 것같다.)

숨막히는 일상, 차가운 남편과, 텅빈 공허함...뭐 그런 생활이었다고 나 할까.

그러다 내가 불륜을 저질렀다. 상대는 노동자 계층의 사람좋아하고, 술좋아하고, 춤추기 좋아하는 ..

온통 생명력이 넘치는 것 같았던 남자였고, 이름은 리키.

남편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 옆에 있고..침대에  누웠는데,

베니가 침실로  들어오는 장면...이 마지막 영상이다.

이 아이를 두고 죽어야만 하다니.,하는 회한에 사무쳐서 꿈을 꾸면서도 울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자살을 했던가, 자살을 하도록 강요를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꿈에서 깨면서 뱃속에 아이가 느껴졌는데,

내 다시는, 다시는 아이를 혼자 두고 먼저 죽지 않을거라...생각하고 있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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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0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한 편 보는 듯 그림이 생생해요.
아무리 꿈이라지만 무지 슬펐겠어요.^^;;;
 


 

 

 

 

 

 

 

 

 

 

 

 

 

 

 

 

 

 

 

 

 

 

 

 Beheaded!

호홋 통쾌하지 않은 가 말이다. 너, 맘에 안들면 뎅겅, 목 짤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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