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노평자 씨.

촌지 여왕 + 새디스트 (차라리 몽둥이 휘둘러 때리는 새디스트였음 나았을 것같다. 여린 내 어린아이 감성을 모두 짓발겨 놓은 새디스트)

난 1학기 여자 반장이었다. (그땐 투표에 의한 선출이 아니라 담임이 지명하고, 교장선생님이 눈도장 찎는 방식이었다. 반장 부반장 후보들은 교장실로 다섯씩 들어가 인사하고 나온다음, 임명장을 받았으니까). 울 엄마가 안목이 있어서 울 딸 셋 옷 하나만은 튀게 입혀 다녔다. '파카'란 것도 울 국민학교서 제일 먼저 입고 다닐 정도 였으니까... 옷테를 보고 돈 많은 줄 알고 선생이 찍은 거다.

선생님 가장 먼저 시킨 것 - 잘사는 집 아이들 일곱을 줄세워놓고 매일 돌아가며 보온병에 커피 타오기. 울 엄마가 학교에 안오는 날들이 지속되는 어느날 난 내 순서를 까먹고 커피를 안타갔다. 선생이 반 전체 앞에서 노발대발하며, 반장 자격도 없는 거라고 30분을 수업도 안하고 떠들었다.

2학기 남자 반장이 된 양원규는 엄마가 지극정성이었다. 그애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되면 선생은 수업하다 말고 어젯밤 꿈에 니 엄마 봤다, 고 했다. 그러면 그 다음날 원규 엄마가 찾다왔다.

학급문고란 걸 만들어 책을 기증 받은 후 돈을 내고 빌려보게 했다. 한권에 50원. 다른 책은 학급문고 장사(?)에 방해된다고 가져오면 무조건 압수였다. 학기말에 반 전체에 한자루에 150원짜리 볼펜 한자루씩을 학급문고 수익이라고 돌려주었다. 나머지 돈은? 너무도 보고 싶었던 책을 친구한테 빌리다가 들켜서 압수당했다. 책값을 친구한테 물어붰고, 선생은 그책을 학급 문고에 꽂아두고 돈받고 다른 애들한테 빌려주었다.

2학기. 반장과 별도로 학급회장은 투표로 뽑았다. 전체 어린이 회의에 대표로 나가는 자리였다. 1학기 반장들이 주로 출마해서 뽑혔는데, 회장 선거 2틀전인가 난 아파서 결석했다. 선생 - 울 반 전체한테 절대로 날 찍지 말라고 했단다.

2학기 말. 집에 귀가 할때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서 줄반장들 인솔하해 한줄로 가야했다 (우리 반만 그랬다. 줄 반장 직함에 엄마들이 또 꽤 찾아왔을 거다...)  선생은 4충 교실 창문서 내려다보며 마음에 드는 줄을 손가락으로 표시했다. 그 줄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11월 말 겨울. 나는 엄마가 새로 사준 빨간 구두를 처음 학교에 신고 갔고, 구두끈을 매는 거 서툴러서 한참을 친구 두명과 낑낑 거리며 매다가 운동장에 나와보니 줄서있는 애들이 없었다. 먼저들 갔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학교에 와보니 우리 셋 이름이 칠판에 쓰여 있었다. 어제 줄을 안서고 갔다고. 다른 애들은 선생님이 화가 나서 운동장을 뛰어 돌고 있었는데, 우리 셋만 못보고 갔다가 운동장 열바퀴를 돌고 가라고 했다. 눈이 왔다. 첫눈이었는데,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서 하교시간 즈음에는 발목까지 눈이 쌓였다. 그렇게 눈이 쌓인 운동장을 열바퀴 돌아야 했다.

같은 반 남학생 중에 진수라는 아이가 있었다. 내 태어나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였다. 아침마다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며 그애가 있어서 선생이 아무리 지옥같이 굴어도 기쁘게 학교간다고 되뇌이며 학교에 갔었다. 내 나이 그때 11살. (1년 일찍 들어갔다....학교를)

노평자 선생은 진수를 하교 후에 불러서 내가 10바퀴 운동장을 다 도는지 세라고 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운동장을 도는데, 다른 두명의 친구들이 일곱바퀴를 돌때 난 겨우 4바퀴를 마치고 있었다. 분하고 억울하고 무엇보다도 진수가 지켜보는데 헉헉거리며 운동장을 돌아야 한다는 게 죽기보다도 싫었다. 뜨거운 덩어리가 안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는데 진수 앞에서 눈물은 안보이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철없는 진수는 (남자애들이 여자애들보다 그 나이엔 성장이 느리니까...) 지지리도 못달리는 내 달리기를  세다가 지루하고 뻘쯤해져서 저를 기다리던 지 친구들이랑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여덟 바퀴 정도 달리고 있을 때 제딴에는 장난을 친다고 내게 눈볼을 하나 던졌다.

눈볼을 정면으로 맞은 그 순간, 정말 온몸속의 분노가 폭발했다. 난 평생 그렇게 화가 난 적이 없었다. 가뜩이나 눈이 와서 하얀 세상에, 시야가 온통 하얗게 펑,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난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애를 팼다.

난 타고난 약골이었다. 늘상 맞고 다니고 질질 울던. 동생한테조차 늘상 맞고 울던 병신같은 약골이었는데, 그날 내 몇달을 목숨걸고 좋아했던 김진수를 신나게 패주었다. 진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던 여름의 그 환희도, 꼭 우리집 앞 도로까지 와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며 날 불러내주던 그 기쁨도....다 한순간에 다 날라갔다.

진수는 타고난 운동체질에 악발이라 누구한테도 싸워서 지는 애가 아니었는데, 그날 내 엄청난 기백에 질렸는지 울면서 패는 내 앞에 웅크리고 서서는 암말도 못하고 내 주먹을 다 받았다.

그리고ㅡ 악이 받쳐서 남은 두 바퀴를 다 돌고, 추운 겨울 신발도 다 젖고, 무릎까지 옷이 젖은 상태로 질퍽질퍽 흙탕이 된 골목길을 울며울며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난 말썽 한번 안부리는 모범생이었는데 말이다. 더 어린 여섯살적에도 길가다 제때 길 안비킨다고 경운기 몰던 아저씨한테 암팡지게 뺨을 얻어맞고도 엄마한테 절대 말 한적이 없는 나 였는데. 말이다. 학교서 선생한테 맞아도 죽어도 말안하던 내가 울며 집으로 돌아온 건 울 엄마도 아마 처음 봤을 거다.

벌로 눈 쌓인 운동장 열바퀴 돌았다는 것 외엔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냔 말이다.

내...처음으로 좋아했던 남자애 앞에서 벌 받았다고, 그 남자애를 먼지나게 패줘서 이젠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다고...내 어린 풋사랑이 그렇게 끝났다고, 아니, 선생이 .... 다 큰 어른이....내가 진수 좋아하는 것 알고 그토록 내 마음을 갈기갈리 찢어놨다고 ....그 긴 얘기를 다 어떻게 엄마한테 할 수 있었냔 말이다.

ㅎㅎ

진수는 그 이후에도 이따금 뻘쭉 얼굴을 내밀고 일부러 툭툭 치고 가거나, 6학년에 되어서 주번 설때 와서 빙빙 돌며 장난치거나...하며...어린 노마 한테 어울리는 어린 짓을 해댔다. 주번인 나는 매몰차게 노마의 이름을 적어내서 (사실은 내가 직접 안적고 옆의 친구한테 적으라고 사주해서) 노마가 지네 담임한테 기합을 엄청 받게 해주었다. 눈물 쏙 뺐을 거다. 그래, 너도 울고 커라, 는 심보였나? -__-;

내 노평자 선생을 필두로 사립 고등학교서 몇몇 저질 선생을 더 만났다. 아,,물론 노평자가 가장 악질이다. 내 이를 갈며 난 절대 선생질은 안한다고 결심했다. 대학에 들어가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숱하게들 하는 교직이수 안했다. 선생 절대 안한다고.

그런데....^^; 지금 가르치고 있다. 학원, 기업체, 대학...그래도 절대 정규 중고등학교에서는 교펀을 안잡는다. 스폰지와 같은 애들한테 내가 끼칠 영향에 책임 질 자신이 지금도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annerist 2004-09-0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과 함께 '예의(사전적 정의 말고 금전적 정의 말입니다)없는 집 자식'으로 찍혀서 개 매도당하고 얼굴을 구둣발로 짓밟으며 '넌 커서 사회의 독버섯이 될 새끼야'외치던 작자도 매너 5학년때 담임이었는데요. 둘 결혼시키면 뭔 꼴 날라나. 그러고보니 그 개새끼 마누라도 선생이었는데... 혹시? *_*

김삿갓 2009-09-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평자 이름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