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을 끝내자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탈리아에 참 길게 머무른 느낌이 들었다.

시차 적응도 조금 됐고, 입 안도 조금 나아가려고 하니 끝나려고 한다. 아쉽다.

 

이탈리아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올라가니 다시 알프스산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산꼭대기까지 심겨진 올리브 나무가 보였다. 약간 희끗희끗한 게 올리브 나무란다. 가까이 보지는 못 했다.

이탈리아가 축복 받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올리브라고 하지 않던가!

정말 지천에 깔렸다.

산비탈에 올리브 나무를 심는 이유는 물빠짐이 좋게 하기 위해서란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도착했다.

"인 강에 있는 도시" 라는 뜻의 인스부르크는 스위스와 인상이 비슷했다. 진짜루~~

파스텔톤의 낮은 건물들이 알프스산과 조화를 이뤘고, 이 곳 또한 발코니에 예쁜 꽃을 가꾸고 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와 황금 지붕이라 불리는 건물의 외관을 구경하였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마리 앙뜨와네트의 어머니라고 한다. 아마 막내딸이었다지.

버스 안에서 조느라 자세한 설명을 못 들어서 기억 나는 게 별로 없다. 버스를 오래 타니 진짜 눈이 저절로 감겼다.

자료를 찾아보니

마리아 테레지아는 미모가 출중한데다 총명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황후에 머물렀다고 한다. 

18세기 강력한 여성 통치자의 면모를 보여준 오스트리아의 여제라고 한다. 아마 선덕여왕 정도?

테레지아 거리 건너편에 황금 지붕이 있었다. 이것도 외관만 구경하였다.

"16세기에 만들어진 2,657개의 금박의 타일 지붕으로 유명한 박물관으로

막시밀리안 황제 1세가 이 금박 밑의 발코니에서 이곳 사람들을 살펴 보았다고 한다."(백과사전 인용)

진짜 금이었으면 대박이었을텐데...

중국 자금성도 온통 금박이었지.

황금 지붕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건물이 파스텔톤이라서 거리 어디서나 사진을 찍어도 잘 나왔다.

인스부르크는 산과 가까와서 날이 쌀쌀했다. 한국의 초가을 날씨 정도?

정작 오랜 시간을 머문 곳은 오스트리아의 명품 "스와로브스키" 본사였다.

구경하느라 엄청 신났다. 계단도 크리스탈이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크리스탈 기둥이 있었다. 온통 블링블링.

우아한 백조 로고가 인상적인 스와로브스키는 지금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로 통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명품 브랜드가 된 계기는 바로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때 크리스털 마우스를 기념품으로 제작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새로운 도약을 하였다고 한다.

역시나 이 곳에서도 중국인을 많이 만났는데 몇 개씩 쇼핑백을 들고 나가는 것을 보고

중국인이 정말 돈이 많구나를 절감하였다.

제품이 한국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하나 장만해서 왔다. ㅎㅎㅎ

 

인스부르크는 알프스산이 가깝기 때문에 겨울 스포츠를 하러 온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버스로 이동할 때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스키 점프대가 보였다.

10월 정도만 되도 눈이 많이 쌓인다고 하니 어떤 모습일지 참 궁금했다.

8월인데도 선선해서 가죽 점퍼를 입은 사람도 꽤 많았다.

맥주도 유명해서 맥주 축제도 한다고 한다.

 

아들에게 줄 기념품으로 스노우 볼을 샀다. 인스부르크가 아무래도 겨울 스포츠가 유명하다고 하니...

가는 곳마다 기념품을 고르고 사는 기쁨도 크다. 냉장고 자석도 여러 개 샀는데 파리에서 못 산 게 아쉽다.

하도 소매치기가 많다고 하여 지갑을 꺼내기가 무서웠다.

오스트리아 여행은 아주 짧았다.

기회가 되면 모짜르트의 활동지 짤츠부르크를 가고 싶다. 그 곳에 가면 초코릿 포장지조차도 온통 모짜르트가 그려져 있다나!

 

이제 마지막 여행지 독일이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와 독일 하이델베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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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베네치아

영어로는 베니스.

이탈리아 마지막 여행지는 3대 국제 영화제 장소이자 인공 수상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이다.

이 날만 비가 조금 왔다. 10일 중에 하루만 비가 왔으니 정말 날씨 운이 따라준 거다.

베네치아 가는 다리를 건너고부터는 모든 바퀴 달린 것들은 섬에 들어올 수가 없단다.

베네치아 까지 배를 타고 들어갔다.

거기서 현지 가이드와 만났는데 베네치아 현지 가이드가 인기 짱이었다.

파리, 로마, 베네치아까지 세 명의 현지 가이드를 만났는데

갈수록 업그레이드 되어서 일행들도 신이 났다.

특히 우리 딸은  베네치아 가이드와 몇 시간 밖에  못 있었다고 굉장히 아쉬워했다.

가이드들이 이구동성으로 중2가 가장 무섭다고 하는데 중2는 아무리 웃긴 말을 해도 인상을 팍 쓰고 있단다.

무서운 중2병이 이틸리아까지 소문이 났나보다.

딸은 가이드 말에 리액션을 아주 잘하고 일행들과도 스스럼 없이 잘 어울려서 귀여움을 받았다.

가이드가 중딩 같지 않다고 칭찬을 해 줬다.

베네치아 가이드는 원래 발레 전공이었다고 하는데 일행 모두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깐조네도 잘 부르시고, 요점만 짚어 주는 명강의에다, 교주 같은 포스를 풍겨서 우릴 내내 웃게 만들었다.

몇 시간 만에 헤어져 어른인 우리도 참 아쉬웠다.

"여행까지 와서 이마에 내천 자 그리고 다니지 마시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하호호깔깔 웃으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여행 다니는 것입니다." 라는 명언을 들려줬다.

 

베네치아에서도 바티칸처럼 수신기를 끼고 다녔다.

곤돌라, 수상택시를 각각 나눠타서 가이드 설명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1500년 전 훈족의 외침으로 의해 피난 나온 이탈리아 인들이 인공으로 세운 섬이다.

백향목을 가져와서 일일이 손으로 촘촘히 기초를 다녀 그 위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백향목 기둥들이 도시를 받치고 있는 셈이다.

자세히 보면 지반이 흔들려서 건물들이 기울어져  있는 게 상당히 많고,

피사의 사탑과 같은 탑이(기울어져서) 이 곳에는 무진장 많단다.

그 오래 전에 어떻게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인공 섬을 만들었을까!

베네치아인의 의지와 끈기가 정말 대단하다.

 

베네치아인들은 조상 덕분에 일 년에 5천만 넘는 관광객을 맞아들여 엄청난 수입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들어오는 관광객 수는 1천만이라고 하니 5배나 된다. )

섬이 물에 잠기고 있어 제발 관광 좀 그만 오라고 해도 전세계 여행객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곤돌라 젓는 사공의 연봉은 자그마치 연 3억이 넘는다고 한다.

두 명이 하는 곤돌라는 연봉 7억이 넘는다고 하니 정말 부자이다.

정원이 딸린 집은 볼품 없어도 정원 없는 집의 두 세 배 가격이 나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상 도시이기 때문에 정원을 가져보는 게 이들의 소원이라고 한다.

이 섬도 지구 온난화 때문에 점점 물에 잠기고 있어

일 년에 50일 이상은 도로가 완전히 물에 잠긴다고 한다.

가이드가 물에 잠긴 베네치아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온 도로가 물에 잠겨 여행객도 장화를 신고 다니고 있었다.

베네치아 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조상이 인공 수상 도시를 세운 것처럼

물에 잠기는 베네치아를 구하기 위해서 진행 중인 모세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향후 100년은 끄떡 없다고 한다.

불가능한 일과 맞서 기적을 일으키는 베네치아인의 이야기는 뭔가 찡한 감동을 전해줬다.

베네치아 가이드도 이 부분에서 다섯 명의 학생들을 호명하며

" 불가능한 일은 없다. 베네치아는 그걸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탄식의 다리를 먼저 감상하였다.

탄식의 다리는 무기징역수나 사형수들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두 개의 창이다.

법원과 교도소를 연결한 다리인데 두 개의 창이 나 있다.

이 창을 통해 마지막으로 세상을 보게 되니 얼마나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겠는가!

그 유명한 카사노바도 베네치아 출신인데

이 곳을 지나가서 수감되었다고 한다.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 또한 베네치아 출신이라고 한다.

곤돌라를 타러 갔다.

곤돌라 조는 어제 미리 제비로 뽑았다.

악사가 타는 곤돌라도 어제 저녁 먹으면서 제비로 뽑았다.

곤돌라 탈 때 마침 비가 좀 세차게 내려 사진이 잘 안 나와 아쉬웠다.

비 맞으며 곤돌라 타는 것도 낭만적이긴 했다.

앞 곤돌라에서 악사가 부르는 깐조네가 들렸다.

할아버지였는데 성량이 풍부하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사이 수로를 지나갓다.

영화 속에서 보던 한 장면을 지금 연출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꿈만 같았다.

베네치아 지도를 보면 마치 물고기처럼 생겼는데

베네치아는 118개의 작은 섬이 모여 이뤄졌다고 한다.

이 작은 섬들을 다리가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곤돌라는 이 작은 섬과 섬 사이 수로를 지나다닌다.

곤돌라는 낭만 그 자체였다.

 

이어 수상 택시를 탔다.

수상 택시는 베네치아 가운데를 지나는 큰 운하를 도는 것이다.

수상 택시는 정말 상쾌하였다.

곤돌라보다는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한국보다는 속도가 느리다. 규정이 있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어 곤돌라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수신기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중요한 건물을 살펴봤다.

베네치아는 나무기둥이 간판 역할을 대신한다.

기둥의 색깔로 무슨 건물인지 파악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들은 파란색에다 금장식이 들어 있다.

아무 색깔이 없이 그냥 나무로만 된 기둥은 보통 주택이라고 한다.

50분 정도 수상택시를 타고 투어를 하는데

신났다.

베네치아가 유리 공예가 유명하다고 해서 아들 줄 선물을 하나 샀다.

유리로 만든 곤돌라다.

베네치아를 끝으로 이탈리아 여행이 끝났다.

 

이탈리아 고속도로에서 처음으로 에스프레소를 마셔봤다.

에스프레소 맛을 알면 그것만 먹게 된다고 하던데.....

이 곳에 와서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에스프레소도 한번 맛 봐야지 하면서 도전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메리카노 커피도 있긴 한데 카푸치노를 많이 먹는다.

카푸치노도 굉장히 순하다.

에스프레소 한 잔은 1 유로 (1400원 정도)로 아주 저렴하다.

스프레무따 라는 음료가 있는데 오렌지 몇 개를 통째로 갈아서 주는 것이다.

딸은 휴게소 들를 때마다 이걸 마셨다.

휴게소도 우리랑 너무 다르다.

입구로 들어가서 화장실 먼저 들르고,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반드시 수퍼를 한 바퀴 돌아야 출구가 보인다.

 

카프리, 베네치아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여유와 낭만을 주는 그런 공간이었다.

베네치아를 끝으로 이탈리아 여행은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를 훑고 나니 여행이 막바지로 접어 들었다.

오스트리아로 가면서 가이드가

<글레디에어터>와 <로마의 휴일>을 보여줬다.

우리가 봤던 곳이 나오니 정말 반가웠다.

 

다시 알프스 산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오스트리아로 출~ 발!

 

<tip>  유럽의 선택 관광은 가능한 모두 하는 게 좋다.

 

우리 팀은 이번에 26명 모두, 선택 관광을 다하였다.

선택 관광비가 모두 합쳐 280유로, 한국돈으로 392000원 정도이다.

이렇게 마음 맞는 팀도 만나기 힘들다고 한다.

다른 팀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동남 아시아 선택 관광과는 달리 유럽은 선택 관광을 안 하게 되면 즐길 거리와 볼거리 줄어든다는 점을 기억하자.

다음에 와서 해야지 하는 생각은 버리자.

내가 언제 또 베네치아 와서 곤돌라를 타게 될 건가!

유럽 가기 전, 만난 후배가 꼭 다하라고 해서 우린 고민 없이 다했다.

아주 만족스럽다.

곤돌라와 수상 택시도 맛이 달랐다. 가는 지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행 가기 전에 가 본 사람의 경험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유럽 여행 경비가 비싸지는 것은 숙소와 먹거리 때문인데

잠만 자는데 숙소가 별이 많을 필요 없는 듯하다.

이동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정말 잠만 잔다.

대신 휴양지 갈 때는 부대시설을 이용해야 하니까 꼭 비싸고 좋은 호텔에 묵으라고 했다.

우린 3성급에서 잤는데 샤워 부스가 작아서 그렇지 괜찮았다.

먹거리야 집 떠나면 고생하는 게 당연하고....

그래도 못 먹을 정도의 음식은 아니었다. 현지식은 나름 괜찮았다. 특히 스파게티.

오히려 일본과 중국 여행 갔을 때보다 먹거리가 나았다.

대신 호텔 조식이 부실하긴 하다.

내 생각엔

비싼 호텔에 들어가는 경비 절약해서 선택 관광을 다하고 현지를 대표할 기념품을 사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 여행은 일정을 꼼꼼하게 잘 따져야 한다.

워낙 장거리이기 때문에 한번 가면 다시 오기가 힘든만큼

거기까지 가서 꼭 가야할 곳, 해봐야 할 것 등이 상품에 들어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스위스 인터라켄까지 갔는데 융프라우요흐를 안 가는 일정도 있다고 하니 자세히 살펴보고 결정해야 한다.

 

인솔자 말이 내가 다시 이 곳에 오리라는 희망은 실천 불가능이란다.

베네치아에 다시 올 확률은 거의 없고, 권하지도 않는단다.

그 돈으로 가보지 않은 곳, 다른 곳을 가라고 조언해 줬다.

100% 공감이다.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좋아도 왔던 곳을 또 가게 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니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왔을 때 마음껏 즐기라.

 

 

마침 이 책이 나와서 구매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다음에 어떤 곳을 갈까 참고할 겸

내가 가 본 곳을 다시 기억할 겸

겸사겸사.

어제 영화<폼페이>를 봤는데 우리가 가 본 그 곳이 그대로 재현되어 정말 반가웠다.

여행은 끝났으나 사진으로, 책으로, 영화로 다시 보게 되니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정겹다.

 

 

밀라노, 피사,  바티칸시국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폼페이, 카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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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3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03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4-09-0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 여행기는 이탈리아에서 끝나는 건가요. 가보지 못한 곳이라서, 페이퍼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정여울의 책 집에 있는데, 시간되는대로 읽어봐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수퍼남매맘 2014-09-03 21:17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남아 있는데 개학을 해서 페이퍼가 자꾸 늦어지네요.
얼른 올리도록 노력할게요. *^^*
 

5. 카프리 섬 투어

 

다이애너 황태자비가 왔고, 얼마 전 박지성 선수가 신혼 여행을 왔다는 그 곳, 카프리 섬에 갔다.

가이드가 최대한 야하게 입고 나오라고 한바탕 웃었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보니 관광 온 한국인 특징이 있단다.

어디 가든 아웃 도어를 입고 나타나면 한국인이란다.

중국과 일본은 아직 아웃 도어 바람이 불지 않았단다.

반면 중국인은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있는데 차림새에서 세련미가 안 느껴진다.

한국인은 융프라우요흐를 가든, 카프리 같은 휴양지를 가든, 성당을 가든 무조건 아웃 도어 차림이란다.ㅋㅋㅋ

정말 그랬다. 우리 일행 중에도 50 대 이상 분들은 줄기차게 아웃 도어를 입고 나타나셨다.

미국 일간지에서 한국인의 아웃 도어 사랑을 비꼬듯이 기사를 낸 적이 있다고 가이드가 알려줬다. 덧붙여

' 정말 아웃 도어 좀 입고 다니지 말라'고 말해서 한바탕 웃었다.

너도나도 유행에 휩쓸리는 우리 나라의 풍조가 아웃 도어 유행을 일으킨 게 아닌가 싶다.

한 때는 학생들이 너도나도 노페를 입어 한국 교육이 산으로 간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더니

요즘은 어딜 가도 아웃 도어 차림의 사람을 보게 된다.

이 또한 유행에 너무 민감한 한국인의 단편적 모습이 아닌가 싶다.

 

하여튼 최대한 야하게 입고 나오라는 가이드의 주문과는 달리

일행 대부분은 평소처럼 평범하게 차리고 나왔다. 몇분은 줄기차게 아웃 도어 차림.

우리 모녀는 그나마 꽃무늬 민소매를 입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민소매를 입은 날이 이 날이다.

다른 때는 추워서 엄두도 못냈다.

일행 중에 전라도 광주분이 계셨는데

이 분은 야한 원피스를 여러 벌 가져와선 숙소에서만 입는다고 룸메이트가 폭로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우리 모녀가 이날은 용기를 갖고 샤랄라 옷을 입고 나오시라고 했건만

약간 나풀거리는 블라우스만 입으셨다.

여행에서 옷차림도 한 몫 하는 듯하다. 찍어 온 사진을 보니 그렇다.

카프리 같은 바닷가에서는 나풀거리는 롱 원피스가 제격이다.

반면 카프리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하나같이 비키니 차림이었다.

다른 곳에서 만난 유럽 사람들도 정말 자유롭고 소박한 패션이었다.

딱히 뭐가 유행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다.

우리는 거리를 나가면 똑같은 차림의 사람들 천지인데 말이다. 심지어 얼굴까지도 말이다.

 

가이드 말이 얼마 전 박지성 선수가 카프리 섬에 신혼 여행을 왔단다.

같은 배를 탔단다.

그 정도 유명인이면 호화 요트를 타고 카프리 섬에 들어갈 법도 한데 말이다. 

유명인 답지 않게 보통 관광객처럼 페리호를 탄 것을 보고 같은 배에 탄 한국인 관광객 수 백명이 그 검소함에 깜짝 놀랐단다.

' 과연 박지성 선수구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이드가 버스 안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참 재미났다.

어지간하면 다 듣고 싶은데 눈꺼풀이 감길 때도 있어 놓친 경우도 있다.

 

이 날도 날씨가 쾌청하여 제대로 휴양지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카프리는 고된 여행 일정 중에서 꿀맛 같이 달콤한 시간이었다.

지중해 특유의 바다 색깔과 피서 온 현지인들의 모습을 원없이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갈이 배기지도 않은지 아무데나 대충 수건 깔고 일광욕을 즐겼다.

한국 사람들은 피부 그을릴까 봐 팔토시, 선글래스에 양산을 챙겨 들고 다니는데

이들은 온몸으로 햇빛을 즐겼다. 그 모습이 참 대조적이었다.

솔직히 넓은 모래 사장과 에메랄드 바다를 기대하였는데 자갈밭이라 조금 실망했다.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분명 하얀 모래 사장이 어딘가에 있었을 거다. ㅋㅋㅋ

바다색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카프리 섬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1인 리프트는 별로 무섭지 않고 15분 동안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앞에 가는 딸 모습과 카프리 섬을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데 휴대폰이 저 아래로 떨어져 박살날까 엄청 조심스러웠다.

삼각형 모양의 카프리 섬이 참 아름다웠다.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리프트 타고 정상에 올라갔을 때 고기처럼 푸른 바다를 수놓고 있던 수많은 요트들의 모습이었다.

지중해 바다 색과 하얀 요트 색이 정말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수평선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지난 며칠 간 입안도 헐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강행군을 하는 바람에 몸이 참 고단했는데

카프리 섬 투어는 힐링 타임이었다.

 

6. 피렌체

영어로는 플로렌스.

가죽이 유명하고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르네상스의 발원지라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주역 200여명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피렌체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유명한 르네상스의 문화재를 어디서나 보고 자란다고 하니

그들의 예술적 소양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이 곳에 바로 미켈란 젤로의 무덤이 있고

미켈란 젤로를 비롯해 르네상스를 이끈 예술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메디치 가문도 바로 여기서 탄생햇다고 한다.

피렌체 하면 르네상스, 메디치를 꼭 알아야 한단다.

 

메디치 가문은 원래 상인 집안이었는데 나중에 교황도 배출하게 된단다.

메디치 가문이 페렌체에서 환전을 시작하여 이 곳에서 은행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알약을 최초로 만들어 medicine이 메디치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게다가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막대한 재원을 지원하여 훌륭한 예술작품이 나오도록 하였고

정치도 잘해 대대로 피렌체 시민들에게 존경 받는 가문이었다고 한다.

후손이 없어 대가 끊어지면서 유언을 남기는데

" 이 곳에 있는 모든 예술 작품들을 절대 피렌체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하고 모든 재산을 헌납한 바람에

피렌체에 르네상스 예술 작품이 그대로 있다고 한다.

아직도 메디치 가문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거리 곳곳에 메디치를 상징하는 백합 문양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맨홀 구멍까지)

이렇게 세세토록 존경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시민과 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과연 어떤 곳일까 무지 궁금하였다.

직접 거리를 다녀 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딸은 이탈리아 도시 중에서 피렌체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어딜 가도 르네상스의 미술품이 눈앞에 펼쳐지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 축복 받았다.

피렌체 광장에서 피렌체 성당을 그리는 한국 유학생을 만났다.

일본 사람 같아 보이는 외모였으나 일행이 말을 걸어보니 한국 유학생이었다.

돔을 그리고 있어서 물어보니 건축학과 학생이란다.

빨강, 검정 볼펜으로만 그림을 그리는데 아주 잘 그렸다.

이탈리아에는 한국인이 5천명 정도 있다고 한다.

주로 유학생이 대부분이라고....

로마에는 한국어 학교도 개설되어 유학생들이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피렌체는 예로부터 가죽이 유명해서 잡화 용품 가게를 들렀다.

딸이 " 엄마 질러" 라고 꼬드겼지만 꾸욱 참았다.

가죽은 만져보니 참 좋았다.

로마 군사들의 갑옷 등을 만들고, 비에 젖어도 견디는 기술을  피렌체인들이 개발하였다고 하니 질은 좋을 듯하다.

가죽 제품은 안 샀지만 엑스트라 올리브와 발사믹 식초 등은 샀다.

가이드 말이 이탈리아에서 꼭 사야 할 게 있다면 발사믹 식초라고 해서, 좀 가격이 세지만

유학생도 도울 겸,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두 병 사왔다.

조리해도 좋지만 25년 된 거라서 식후에 한 스푼씩 먹으면 좋다고 한다.

엑스트라 올리브는 시음을 해 보니 풀맛이 강하고, 목구멍에 넘길 때 칼칼한 매운 맛이 나는 게 참 달랐다.

이건 절대 튀김용이나 전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샐러드에 쓰거나 직접 복용하는 거라고 한다.

맛있게 시음도 하고, 올리브로 만든 비누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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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간 듯한 착각을 불러오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였다.

특히 로마와 폼페이가....

2014년이 아니라 200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그 느낌.

모든 것이 경이로왔다.

 

3일 내내 강행군을 하는 바람에 난 입 안에 커다란 혓바늘이 돋았고,

딸은 밀라노에서 급체를 하여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설상가상 이탈리아 모기에게 현혈까지 했는데 상처가 덧나 진물이 질질 흐르고 퉁퉁 붓기까지 하였다.

주말이라 문 연 약국이 없어 약을 살 수 없어 그대로 견딜 수밖에 없었다.

(가져 간 약은 소화제, 연고, 밴드, 진통제 정도밖에 없어서....)

서울에서 늘어져 있다가 갑자기 강행군을 하다보니 몸이 탈이 난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만 뒤쳐지면 안 되니 끝까지 따라다녔다.

먹을 것도 악착같이 먹었다. 타지에서 병 나면 안 되니깐.

 

밀라노, 로마, 바티칸,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카프리, 피렌체, 베네치아로 이어진 이탈리아 여행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시간 할애를 많이 한 부분이었다.

그만큼 이탈리아가 볼거리가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1. 밀라노

밀라노는 저녁 늦게 도착하여 별로 많이 구경하진 못했다.

주말인데다 휴가철이라서 문이 다 닫혀 있었다. 하여 패션 일번지 밀라노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나도 아프고 딸도 아프고 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밀라노 도시 설계를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했다는 것은 확실히 저장했다.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름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 젤로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두 천재에 대해서는 시간이 되는대로 꼭 세세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밀라노 성당은 참 멋졌다.

이탈리아 여행 내내 가장 많이 구경한 게 바로 성당이다.

딸이 이탈리아 여행 중에

" 아! 성당 지겹다"는 말을 했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는 절 구경이 관광의 전부이듯

 이 곳은 성당 구경이 전부야. 성당이 그들의 역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라고 대답해줬다.

같은 듯 다른 성당의 모습들만 봐도 입이 쩌억 벌어지던데

유럽에서 성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2. 바티칸시국

교황이 한국을 방문할 때 우린 교황이 사는 바티칸을 방문했다.

일행 중 어떤 분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단다.

" 야, 나 교황 보러 왔다"하더란다.

" 그래? 난 교황 사는 곳에 왔다." 하셨단다.

교황이 사는 곳, 그 곳을 보기 위해, 아니 미켈란 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만찬"을 관람하기 위해

새벽별을 보고 일어나서 길거리에서 노숙자처럼 대기하였다. 실제로 바닥에 종이를 깔고 앉았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준비해서 바티카 입구에 7시 경에 도착하였다.

어떤 분이 줄 선 것을 구경하고 오셨는데 줄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단다.

예약팀만해도 3만면이 넘는다고 하니 바티칸의 인기를 실감하고도 남았다.

보통 3-4시간은 기다리는 게 기본인데 일찍 서둔 바람에

2시간 10분만에 바티칸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바티칸은 9시부터 입장 가능하다)

바티칸에 들어가서야 왜 사람들이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들어오려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들어서자마자 숙연함이 저절로 느껴졌다.

가장 위대한 예술품 중의 하나인 미켈란 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만찬"이 만들어진 배경 설명을 가이드로부터 들었다.

작품을 실제 보자 더 경이롭고 전율이 느껴졌다.

최후의 만찬 속에 흑인 두 명이 들어 있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미켈란 젤로의 평등 사상을 볼 수 있는 대목이란다.

유일하게 이 작품들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눈과 마음에 새길 수밖에....

베드로 성당이나 다른 곳들도 역시 위엄이 느껴졌다.

용감하고 충성스럽다는 스위스 근위대를 만나서 살짝 사진을 찍었다.

 

3. 로마

고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로마 투어는 편하게 우아하게 벤츠를 타고 했다.

관광 버스가 진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보를 하거나 우리처럼 벤츠 투어를 해야 한단다.

기사가 열고 닫아주는 벤츠도 타보고 호사를 누렸다.

영화 "로마의 휴일" 에 나왔던 진실의 입에도 가고,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 먹었던 그 장소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마침 공사 중)도 갔다.

그 옆에는 오드리 헵번이 커트했던 이발소도 있다.(지금은 가방 가게)

이 곳에서 젤라또(아이스크림)도 먹고 마침내 약국을 발견하여 가이드에게 통역을 부탁하여 약을 샀다.

딸은 그새 모기 물린 데가 퉁퉁 부어 올라 있었고, 난 혓바늘이 점점 커져 쓰라렸다.

(다행스럽게도 일행 중 소염제를 가진 분이 있어서 2일간 먹였더니 한결 나아졌다.)

바티칸 보려고 새벽에 일어난지라 너무 고단하여 계속 벤츠를 오래 타고 싶은 소망이 있었으나

조금 탔다가 내려서 설명 듣고 하는 통에 소망이 사라졌다. ㅋㅋㅋ

로마에 깔려진 돌은 고대부터 사용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달릴 때마다 차가 덜그덕거리는데 로마 사람들은 그러겠거니 하고 산단다.

건물 하나하나 역사 자체였다.

왜 우린 옛것을 모두 부수고 새것으로 도배를 하고 말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생겼다.

 

이탈리아 관광이 모두 끝나고 인솔자가 버스에서 "로마의 휴일"을 보여줬는데

벤츠 투어 하면서 봤거나 직접 가봤던 장소들이 나오니 정말 반가웠다.

오드리 헵번은 정말 귀품 있고 아름답다.

 

4. 나폼쏘(나폴리, 폼페이 , 쏘렌토)

이번 여행에서 다른 팀의 일정보다 좋았던 게 바로 나폼쏘가 뜰어 있던 것이다.

먼저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배는 나폼쏘가 들어 있는 우리 일정을 부러워했다.

나폴리와 소렌토는 폼페이를 위한 경유지에 불과했지만서도.

폼페이를 가던 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여행은 날씨가 정말 중요한데(사진에도 영향을 준다) 운이 좋았다.

유럽 간다고 민소매를 옷을 몇 벌 샀는데 계속 쌀쌀해서 못 입고 있다가 이 날 입었으니 제대로 여름 날씨였던 셈이다.

평소에는 40도 이상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 날도 평균 기온은 아니었다. 걸어다녀도 땀이 안 났으니 말이다.

엄청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던 폼페이란 도시가

하루아침에 화산재에 덮여 사라진 어마어마한 사건,

그 사건을 이야기로 쓴 책을 읽었던 게 고등학교 때인 듯하다. 영화도 나왔다지. 꼭 봐야지.

그런 폼페이를 내 발로 밟아보다니.....

화산재에 뒤덮이 시신을 보니 이게 실화인 것이 절감되었다.

이런 도시가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그걸 오랜 시간이 흘러 발견하고 복원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폼페이를 돌아보니 상상 이상으로 발달된 도시였다는 걸 여기저기서 알  수 있었다.

하다 못해 사창가도 있고, 사창가에는 다양한 체위 그림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가이드가

" 남자분들은 자세히 보고 가시고, 아이들은 바닥만 쳐다 보고 후딱 지나가세요" 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사창가 옆에는 비뇨기과도 있다.

바닥에는 형광 대리석을 깔아 밤에도 불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대리석 모자이크도 벌써 보인다.

화덕도 보이고, 맷돌도 보인다.

폼페이 사람의 놀라운 문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발달된 도시가 하루아침에 멸망하다니 허망하다.

 

5. 이탈리아 VS 대한민국

로마에서 23년 째 살고 있는 가이드가 들려준 현지인의 삶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아둥바둥 사는 우리와는 너무 달랐다.

상점들은 보통 8시에 문을 열고 12시에 닫는단다.

그리고 점심 먹고 낮잠을 잔 후, 4시에 문을 열어 7-8시에 폐점을 한단다. 공무원들도 일이 참 널럴하단다.

아침은 주로 가까운 카페에 가서 빵과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간단히 먹고,

우리와는 정반대로 저녁을 2-3시간 거하게 먹는단다.

 

대박은 학생들의 삶이었다.

가이드 딸이 고3인데 이탈리아 학생들은 초중고 학생 동일하게 수업이 1시에 끝났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일행에 있던 학생들(우리 딸 포함)이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우리나라 고3의 생활과 천지차이다.

얼마 전 가이드가 큰 수술을 받아 중환자실 3일, 입원실 3일 있었는데 퇴원할 때 돈 한 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교육 복지와 의료 복지가 우리보다 앞선 것이다.

노인 수당도 자그마치 월120만원이 꼬박꼬박 나온단다.

한국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탈리아가 이렇게 복지가 안정되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놀랍고 부러울 뿐이었다.

 

한국이 유럽식 교육과 복지 정책을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미국식을 받아들여서 오늘날 국민도 학생도 불행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복지 정책은 말 그대로 국민이 병 들고 무일푼일 때도

나라가 최소한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복지 사회가 아닐까!

우린 지금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국민의료보험도 뜯어고치려고 하고 있다.

미국에 4년간 살다온 후배말이 미국에서 앰블런스 부르면 까딱하면 1000만원도 나온다고 한다.

팔이 부러져도, 감기가 걸려도, 이가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다고 한다.

차라리 한국 나와서 받는 게 더 이득이란다.  바로 의료 민영화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불법체류자도 일단 병원에서 치료부터 해 준단다.

이게 진정한 선진 국가이고 생명 존중 아닐까!

솔직히 이탈리아 가면 소매치기와 좀도둑이 너무 많다고 하여 이탈리아가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인 줄로만 알았다.

가이드의 현지인 삶을 들어보니

이탈리아가 한국보다 훨씬 더 선진국이나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탈리아 또한 갈등을 가지고 있단다.

남북으로 빈부 격차가 심해

밀라노, 로마 등 북부는 GNP가 4만 달러를 넘지만

남쪽 특히 나폴리 등은 1만 달러도 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북쪽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남쪽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븍쪽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급기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남북 분리를 주창하는 정치인이 나오고 있고,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한국과는 철학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탈리아 학생들의 삶이 참 부러울 뿐이었다.

한국의 학생들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말이다.

노동 시간 2위를 달리는 한국인들과

이탈리아 인들의 즐기는 삶이 너무 달라 그들의 그 여유가 참말로 부럽다.

우리처럼 살아도 한 세상,

저들처럼 살아도 한 세상인데,

이렇게 아둥바둥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각에서는 이탈리아 인들이 너무 게을러서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난 그들의 " 카르페 디엠" 적 사고가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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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0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01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위스는 역시 스위스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동경하던 곳이 스위스였는데

스위스는 나를 실망시지키 않았다.

 

전 날,파리의 넓은 평야 지대를 지나자

서서히 산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산이 있어야 경치라는 게 성립하나보다.

들만 계속 되면 지루해서 금방 졸리는데

산도 나오고, 폭포도 나오고, 만년설도 나오니 잠이 확 달아났다.

역시 스위스는 산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인터라켄 가까운 곳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봉고차에 나눠타서 인터라켄으로 가는데

우리를 태워주는 한국 기사님이 스위스에 사시면서 구수한 대구 사투리를 진하게 쓰셔서 무척 반가웠다.

 

스위스 관광의 핵심은 바로 유럽의 정상, 만녈설로 뒤덮인, 알프스 봉우리 3454m에 달하는 "융프라우요흐"를 가는 거다.

"처녀의 어깨"라는 뜻을 지닌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이고, 이 곳에서 신라면도 팔고 있단다.

신라면을 준비해 왔는데 인솔자말이 라면 먹을 시간이 없을 거라고 해서 그냥 트렁크에 놔뒀다.

후배 딸은 여기서 고산증이 와서 입술이 파래졌다고 해서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얼른 초콜릿을 먹으라고 조언을 해 줘서 초콜릿을 가방에 잔뜩 챙겨 넣었다.

" 난 할 수 있다. 정상까지 갈 수 있다"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융프라우요흐 관광은 기차를 6번 갈아타야 한다.

정상까지 기차를 세 번 타고, 내려 올 때 다른 코스의 r기차를 또 세 번 타야한다.

역마다 차표 검사를 꼭 한다. 차표를 잃어버리면 절대 안 된다. 이것도 은근히 신경 쓰였다.

기차 색깔도 다 다르다.

기차를 한 번 갈아탈 때마다 조금씩 풍광이 달라지면서 점점 녹색보다는 하얀 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기차 유리에 성에가 끼기도 하였다. 온도가 급속도로 떨어지는 게 확실이 느껴졌다.

머리도 띵했다. 고산증이 오는 건가!

중간 중간 기차에서 내려 주위 경관을 구경하도록 되어 있다.

 

딸을 위해서 아버지가 이 높은 곳까지 터널을 뚫었다고 하니 부성애가 정말 대단하다.

덕분에 나같은 관광객들이 편하게 이 높은 곳까지 오게 되고 말이다.

염려와는 달리 고산증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계속 띵하긴 했다.

일행 중 네 명은 고산증이 와서 휴게실에서 대기하였다.

얼음 궁전은 일 년 내내 영하 6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아 온도가 높아지면 이 열을 모아 난방을 한다고 하니 정말 발달한 기술을 느낄 수 있었다.

스핑크스 전망대를 가니 융프라우요흐 꼭대기가 보였다.

옷매무새를 단단히 하고 융프라우요흐에 올랐다.

정상에 가더라도 날씨가 자주 흐리기 때문에 융프라우요흐를 보기는 힘들다고 하는데

운이 좋아 볼 수 있었다.

스위스 국기가 꽃혀 있었다.

산 아래는 여름인데 이곳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채 바람이 쌩쌩 불고, 한겨울 날씨였다.

눈을 만져 보고 싶었지만 손이 너무 시려워 관두었다. 왜 인솔자가 장갑, 목도리를 가져오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여기가 바로 유럽의 정상이구나!'

저 멀리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였다.

 

스위스가 아름다웠던 이유 중의 하나가

눈앞에 펼쳐지는 초록이 진초록이 아니라 연초록이여서 더 상큼했다.

우리나라 4월의 푸릇푸릇한 그 풀색이 어디서나 보여서 정말 싱그러웠다.

게다가 집집마다 발코니에 예쁜 꽃들을 가꾸고 있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해줬다.

꽃을 보면서 화낼 사람은 없을 테니 지나가는 이들이 꽃을 보면 화났던 마음도 수그러질 듯했다.

다른 나라보다 온도가 낮은 데도 불구하고 집집마다 꽃을 가꾸는 게 스위스의 전통이 아닌가 싶었다.

고산 지대인데도 이름 모를 들꽃들이 옹기종기 피어 있는 것도 보는 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예쁜 꽃들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프스 전통 가옥인 "샬레"는 아기자기하면서 말 그대로 풍경화에 나온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무로 만든 전통 가옥, 발코니의 꽃, 연초록, 우뚝 솟은 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래 전 스위스는 높은 산악지대 때문에 쓸모 없는 땅으로 여겨졌었단다.

따지고 보면 알프스산도 7개 나라를 포함하고 있는데

유독 알프스 하면 스위스가 연상되는 것은 부단한 그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한다. (엄청난 홍보를 했다고 한다.)

각박한 땅 때문에 유럽에서는 거의 존재 가치가 없었던 그들이

지금 이렇게 어마어마한 관광 자원을 끌어 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스위스인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 높은 곳까지 기차를 연결할 생각을 어떻게 하였을까?

중립국 선언도 지금의 스위스를 있게 한 발판이 된 것이라고 한다.(유럽 연합이 아니기에 유일하게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다.)

온갖 세계 회의를 이 곳에서 하게 되니 당연히 어마어마한 수입원이 되는 것이다.

(노르웨이도 중립국이다는 것을 가이드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중립국 하면 스위스만 떠오르는데 말이다.)

정밀 산업(시계 등)의 발달은 스위스 국민을 부강하게 만들었고,

금융업은 세계의 검은 돈(?)을 끌어 들여 더욱 더 부강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스위스 용병들의 용맹과 충성심은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실례로 바티칸 교황 근위대는 오로지 스위스 군인만 할 수 있다고 한다.

(나중에 바티칸 가서 스위스 근위대를 볼 수 있었다.)

예전에 무시 받던 스위스는 조상의 노력 덕분에 지금은 유럽에서도 손 꼽히는 부자 나라가 된 것이다.

 

다음은

고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겨지는 이탈리아로!!!

 

<TIP>

스위스 날씨는 여름이라도 가을 날씨와 가깝기 때문에 긴 팔과 두꺼운 옷을 꼭 챙기기.

고산증 증세가 생기면 얼른 초콜릿을 먹기.

 

고대의 숨결을 느끼러 이탈리아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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