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5
로버트 프로스트 글, 수잔 제퍼스 그림, 이상희 옮김 / 살림어린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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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국어시간이었다.

요즘, 시에서 감동적인 부분을 찾아 서로 나누는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교과서에 나온 시도 좋지만

아이들이 직접 감동적인 시를 찾아 암송하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숙제로 감동적인 시를 찾아 암송해 오라고 하였다.

어떤 시를 찾아올까 궁금하였다.

 

어제 국어시간, 몇 명을 제비 뽑아 발표시켜봤더니

마음을 쿵 울려주는 시를 암송해 온 아이가 있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라는 시가 영향을 준 듯하다.

폐지 줍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는 그 아이의 마음이

우리 반 아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한 모양이다.

 

나도 겨울과 어울리는 시 한 편을 읽어줬다.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서서>라는 그림책이다.

벌써 제목부터 시 느낌이 팍팍 난다.

그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예전에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다.

이번에 아이들에게 읽어주니

' 아. 시인이 이런 마음으로 시를 썼구나1' 조금 이해가 되면서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말이 끄는 썰매에 뭔가 잔뜩 짐을 실은 할아버지가 숲에 이르렀다.

하얀 눈옷으로 갈아 입은 숲을 본 할아버지는 잠시 멈춰선다.

농가도 없는 곳에 멈춰선 할아버지가 이상한 듯 말방울을 울리는 말.

눈이 소복하게 쌓인 숲은 눈송이 날리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할아버지는 왜 숲에 멈춰선 걸까? 그 마음이 전에는 안 보였는데 이번엔 보였다.

할아버지는 숲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 간다.

할아버지는 동심으로 돌아가 포근한 눈에 누워 눈천사를 만든다.

그 순간, 할아버지는 눈이 오면 마냥 좋아 뛰어놀았던 아이랑 똑같다.

그런 할아버지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숲 속 동물들과 말.

할아버지는 그렇게 잠시 숲에 멈춰서서 경이로운 풍경과 더불어 동심과 마주한다.

 

나도 어느샌가 눈을 보면," 와!  좋다" 라는 생각보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눈이 귀찮아지기만 하던 참이었다.

나이 든다는 게 그런건가 보다.

말에 썰매를 끌어 이웃에게 배달을 해야 하는 할아버지는 오죽할까!

눈밭에서 말을 달려 썰매 끌기는 녹록지 않은 일일 게다.

게다가 겨울이라 해도 일찍 넘어가고 말이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하지만

눈 내리는 저녁 잠시 멈춰서서

숲을 바라보며 감탄할 수 있는 그 마음의 여유를 가져본 할아버지.

동심으로 돌아가

폭신한 이불이 되어버린 눈밭에

벌렁 드러누워 눈천사를 만드는 할아버지.

이번 겨울에는 나도 할아버지처럼

그런 낭만을 즐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걱정일랑 잠시 묶어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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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12-02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애들 만날 눈을 기다립니다.
좁은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든다나요

수퍼남매맘 2015-12-03 14:59   좋아요 0 | URL
서울은 오늘 눈이 좀 왔는데 거긴 어떤가요?
아이들은 눈이 있는 겨울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늘바람 2015-12-04 14:51   좋아요 0 | URL
저 사는 곳도 거의 서울이지용.
광명철산이라
다리하나건너면 서울

2015-12-04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4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12월은 아무래도 크리스마스가 있어  관련 그림책을 함께 읽고 나누면 좋을 듯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눈과 눈사람이 나오는 책도 좋겠다.


지난 주, 수요일 학예회를 하던 날이었다.

서울에 첫눈이 왔더랬다. 쌓이진 않았지만 공부 시간에 눈이 내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방학 하기 전까지 발이 푹푹 파일 정도,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눈놀이 할 정도는 왔으면 좋겠다.


오늘, 갑자기 교사독서모임 번개를 가지게 되었다.

정기모임은 금요일이었으나 출석률이 저조하였다.

학예회가 끝났어도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많이들 못 오셔서 안타까웠는데 잘 됐다 싶었다.

도서실에 들러 12월에 읽어주면 좋을 책을 대충 골라봤다.

역시 겨울은 아이들의 계절답게 책이 꽤 많았다.

안 읽어 본 것은 빼고 일단 읽어본 책을 가져갔다.


번개 모임 출석률이 놀랍게도 100%였다. 게다가 정말 귀한  신입 한 명이 오셨다.

가끔 번개 모임을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ㅎㅎㅎ

오늘 갑자기 예정되어 있던 교무회의가 취소되는 바람에 독서모임이 횡재했다. 

더치 커피, 국내산 석류차와 선배님의 번개 제안이  발걸음을 이끈 것 같다.


방학 전까지 이 그림책 중에 한 권이라도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것이 과제이다.

이번에는 꼭 과제를 해 오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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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1 0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인의 정원 베틀북 그림책 112
오스카 와일드 글, 리트바 부틸라 그림, 민유리 옮김 / 베틀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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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진 그림책 한 권을 만났다.

내용도 좋고, 그림 또한 뛰어나다.

읽는 내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스카 와일드>의 글에 핀란드 출신 <리트바 부틸라>가 그림을 그렸다.

그림풍이 아주 세밀하여서 깜짝 놀랐다.

꽃잎 하나하나, 거인의 수염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마치<그 집 이야기>를 그린 로베르토 인노센티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책의 편집 또한 평범하지 않다.

펼쳤을 때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머리에 작은 그림 하나를 넣었다.

작은 그림은 큰 그림과 연관되어 있다.

작은 그림이 큰 그림의 어느 부분일까 맞춰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림 크기도 다른 그림책에 비해 크다.

가로로 2/3 정도 되는 크기로 그림을 배치하고, 왼쪽에 글을 배치하여 그림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거인의 정원에서 신 나게 뛰어 놀곤 하였다.

거인의 정원은 너무 푹신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7년 만에 돌아온 거인은 자신의 정원에 아이들이 들어와 뛰어노는 것을 보고

"누구든 정원에 들어오면 큰 벌을 받게 하겠음" 이란 경고를 붙여 놓는다.

그 후론 아무도 정원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멈추자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거인의 정원에 더 이상 꽃이 피지 않고 새도 지저귀지 않은 채 추운 겨울만 계속 되는 거다.

아이들의 발걸음과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듣고 정원에 있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이파리와 꽃을 피웠던 건가 보다.

아이들이 더 이상 정원에 들어오지 못 하자

겨울 요정들은 이 때다 싶어 거인의 정원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이제 거인의 정원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이대로 계속 겨울인 상태로 내버려 둬야 할까

아님 다시 아이들을 오게 하여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하는 걸까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주제도 명징하고, 결말 또한 약간의 반전이 있다.

무엇보다 그림이 정말 아름다워서 푹 빠지게 되는 그림책이었다.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거인의 정원에 꽃이 만발한 모습이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유독 한 곳만 아직 앙상한 겨울 나무가 보인다.

그 곳에 키가 작은 꼬마 아이가 나무에 오르지 못해 슬피 울고 있다.

거인이 이 광경을 보고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 보시라.

하나 더, 이 꼬마 아이가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조연이다.

스포일이 될 수 있으므로 여기까지만.


천국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혼자만 보려고 했던 거인은 얼마나 욕심꾸러기였던가!

"나누면 기쁨이 두 배가 되고, 함께해야 더 행복하다."는 진리를 늘 기억하고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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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0-0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어렸을때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좋았던 책들은 나중에 아이들에게 물려주려고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어요. 손주들이 생기면 읽어주어도 좋겠죠ㅎㅎ 멋진 그림책을 보고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수퍼남매맘 2015-10-05 16:20   좋아요 0 | URL
손주에게 손 때 묻은 그림책 물려주고 읽어주는 일, 상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림책은 정말 아이들 자랄 때 마르고 닳도록 읽어주던 거라, 쉬이 버려지지가 않더라고요.
저도 잘 가지고 있다 손주한테 물려줘야겠어요.

2015-10-06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6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은 엄마의 파업 이야기 희망을 만드는 법 9
다이애나 콘 글, 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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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청소노동자였다면

나는 여러 사람 앞에서 당당히

"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 그림책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이 그림책은 로스엔젤레스에서 실제 있었던 청소노동자 파업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멕시코에서 건너온 카를리토스는 엄마, 할머니와 함께 지저분한 곳에서 살고 있다.

엄마는 청소노동자이다.

깜깜해지면 출근하고 해가 떠오르면 퇴근을 한다.

엄마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밀린 집안 일을 해야 한다.

어느 날,

엄마가 카를리토스와 할머니를 향하여 이런 말을 한다.

"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주 힘들게 살아갈 만큼밖에는 돈을 벌지 못하는 세상은 불공평해!

그래서 청소노동자들이 모여 투표를 해서 일을 멈추기로 했단다.

그런 걸 파업이라고 하지! 우리는 건물이 더러워져도 그냥 내버려 둘 거야.

월급을 제대로 올려 받을 때까지 청소를 하지 않을 거란다."

그렇다.

청소노동자의 파업이 시작된 거다.

엄마는 선두에 서서 파업을 주도한다.

 

학교에 가니 로페즈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신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아 참 정겹다.

선생님 할아버지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업신여김을 받았단다.

" 선생님 할아버지와 농장 노동자들도 지금 청소노동자들이 하는 것처럼

더 나은 삶을 위해 함께 힘을 합쳐 싸웠단다" 라며 응원해 주신다.

카를리토스는 그런 엄마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팻말을 만들어 시위를 하고 있는 거리로 나간다.

"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이 말은 그 무엇보다 엄마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파업은 3주일이나 이어졌지만 모두가 합심하고 연대하고 응원한 결과

노동자들이 승리했다.


그림책 뒤에는 실제 모델이 되었던 청소노동자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당시 세 자녀의 어머니였던 이 여인은

파업을 주도하고 성공으로 이끌었으며 

그 후에도 여전히 어머니로서 청소노동자로서 노조 조합원으로서 세 가지 역할을 성실히 하고 있다고 한다.

진짜 멋진 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게 우리나라였다면 

노동자들의 승리가 가능할까 하는 깊은 회의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에서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하게 되면

프랑스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감내한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해 파업을 하는 것이므로

조금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인내하며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한다면? 

지지하는 사람보다 비난하는 사람이 더 많으리란 생각이 든다. 

몇 번 지하철 파업을 했을 때 여론이 그랬던 걸로 알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그건 바로 시민이 이끈 혁명이 성공하고 못 하고의 경험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는 시민 대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그에 반해 우린 시민이 이끈 혁명이 성공한 예가 없다. 

1000만 영화 "암살자"가 말해주지 않던가!

민족 반역자도 버젓이 애국자로 둔갑하는 나라가 아니던가.

이런 실패가 패배주의를 생산하였고 

결국 타인에 대한 무관심, 냉소 및 깊은 절망감을 낳지 않았나 생각된다.

'파업 한다고 되겠어? 사측이 노조측 요구를 들어주겠어? '

이런 생각이 지배적인 데다 

언뜻하면 노조를 종북세력으로 몰아부치는 우리네 정서까지 합해져 

노측이 승리하기가 참 어려운 환경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정말 부러웠다.

미국은 그래도 아직 정의가 살아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이 책에 나온 선생님은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면서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부모를 둔 아이한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심지어 시위 현장에도 격려 차 방문한다.

이게 우리나라 그림책이라면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3주일이나 파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3주 동안 청소노동자들이 건물을 청소하지 않았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는 난리가 났을 테다.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노동자를 욕하고 비난하고 야유하고

언론은 거기에 한 몫 거들고 말이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파업은 정당한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노동자이다. 

아니 우리 대부분은 사주이기 보다 노동자이다.

일한 만큼 대우 받지 못할 때 우린 이 어머니처럼 분연히 일어설 자유가 있다.

파업할 권리 또한 있다.


앞으로 대부분의 아이는 노동자로 살아갈 거다.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말이다.

그렇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조도 필요하고,  노사가 다툴 수도 있으며, 어떤 때는 부득이 파업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는 반드시 아이한테 가르쳐야 할 인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를리토스가 당당하게

"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청소하는 엄마가 부끄럽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엄마가 하는 일이 옳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로 살다 보니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 어머니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그 마음이 통해 

카를로스 또한 엄마를 전혀 부끄럽게 생각 안 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삼시 세끼 밥해주고, 빨래해 주고, 스쿨 버스 태워주는 일도 엄마의 역할이지만

사회인으로서 정의로운 일에 무관심하지 않고, 

함께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엄마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귀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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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 2014년 볼로냐 라가치 상 우수상 수상작 Dear 그림책
니콜라 데이비스 글, 로라 칼린 그림,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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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라가치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있는 이 그림책이 전부터 많이 궁금했었다.

오늘 학교 도서실 갔다 이 책을 발견하고 냉큼 가져와 교실에서 읽었다.


책을 보기 전에는 이 소녀가 바닥에 손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는 줄 알았다.

그림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소녀는 누구에게 무슨 약속을 한 걸까!


소녀는 회색 도시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자신처럼 웃음을 잃은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훔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어느 날,

어둑어둑한 저녁에 소녀는 할머니의 가방을 낚아챈다.

할머니는 완강하게 버티면서 

" 약속을 하면 가방을 줄게" 하는 말을 한다.

얼떨결에 소녀는 할머니에게 약속을 하고 가방을 받아든 채 집으로 온다.

가방을 열어보니 돈 대신 도토리가 잔뜩 있었다.

소녀의 심장은 그 순간 움직였다.

돈이 아니어서 실망하기 보다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녀는 차가 뱅글뱅글 도는 로터리에 쭈그리고 앉아 도토리를 심기 시작한다.

회색 빛 일색인 도시 여기저기에 도토리를 심기 시작한다.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소녀가 도토리를 심은 자리에서 새싹이 나고

웃음을 잃었던 사람들이 나무 근처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웃기 시작한다.

소녀가 심은 도토리는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고,

소녀는 웃음이 없는 다른 곳으로 가 도토리를 심는다.


웃음을 잃은 소녀와 도시, 도시 사람들에게

도토리가 웃음을 선사하였다.

할머니에게 한 약속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끝까지 지킨 소녀의 마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다시 만날 리 없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소녀의 마음이 참 갸륵하다.


나이 들어보니 나무가 참 고맙다. 날 미소짓게 하니까 말이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 모과 나무와 감 나무가 있는데 정말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생각 같아선 잘 익었을 때 하나 뚝 따서 먹어보고 싶기도 하다. 

모과 향기는 얼마나 향긋한가! 

지나칠 때마다 

"와우~ 저거 따고 싶다" 라고 말하지만 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걸 누가 따서 가질까 궁금하긴 하다.

관리소에서 일체 가져갈까 아님 지나가던 행인이 호시탐탐 노리다 하나둘 따갈까?

그러고 보니 학교 화단에도 감 나무와 모과 나무가 있는데

어떻게 처리하실지 주무관님한테 물어봐야지.

전학교에서는 감을 일체 다 따서 학년별로 몇 개 씩 돌리기도 했었다.

아파트 화단이나 학교 화단에서 얻은 모과는 마트에서 사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를 듯하다.

지난 여름에는 학교 화단에  살구가 정말 맛있게 주렁주렁 열려 맛 좀 보나 싶었는데

하루아침에 다 사라져 너무 안타까웠다.

먹어보진 못하더라도

나무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모습만 봐도 참 행복하다.


소녀가 한 일이 이런 행복감을 맛보게 해 준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알록달록한 꽃과 잘 자란 나무, 대롱대롱 열린 열매를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을 보니

<나무를 심은 사람><리디아의 정원><왕가리 마타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나무를 심고 가꿈으로 인해 나, 우리,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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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2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