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는 쉬었습니다.

이 코너를 찾아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적립금 드리는 이벤트는 여기. 1/31 까지입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MD의 감상평: 파키스탄 남자를 주인공 삼아 9/11과 제3세계의 삶을 그려내는 이야기가 얼마나 낭만적일 수 있을까.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바로 그런 소재의 낭만적인 소설이다. 슬픈 사랑과 좌절된 꿈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는 각각의 사건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이루어져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부드럽게 끌어들인다. 게다가 작품 전체가 주인공의 발화(상대방의 반응은 드러나지 않는다)만으로 구성되어서 날렵하고 산뜻하다. 만듦새가 좋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섣불리 따져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왜 자신이 이렇게 되었냐고 묻지 않는다. 그래서 비극은 정치적인 혐의 바깥에서 온전히 세련된 모습으로 독자들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그러면 독자들이 그 예쁜 슬픔을 끌어안고 '당신은 왜'라고 먼저 묻게 된다는 걸, 이 영리한 소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분들께 추천: 질질 짜지 않는 러브스토리 찾습니다 / 빨리 읽히는데 생각할 꺼리를 안겨주는 소설 찾습니다 / 근대소설 느낌 안 나는 제3세계 문학 찾습니다 / 소설 좋아하는 친구에게 추천할 신작 찾습니다

 

이런 분들은 주의: 그러니까 미제국주의자놈들이 역시 나쁜 거죠? / 아니 그러니까 이 중동 테러리스트 놈들은 답이 없다니까요 / 외국인 노동자가 토종 한국인을 위협하고 있다 / 거대 서사 중독자

 

 

 

 

 

유빅

 

 


 

 

MD의 감상평: 이건 이미 유명한 소설이잖아! 음. 그렇다. <유빅>은 필립 K. 딕의 작품 중에서 베스트라고 봐도 좋을 유명작이다. 여기 다시 소개한 이유는 이상하게 그걸 몰라봐주는 사람들이 많아 보여서다. 물론 <유빅>은 신나게 읽는 엔터테이너는 아니다. 초반에 삽입된 맥거핀은 반칙에 가깝고, 등장인물들이 역경을 극복하는 자발적인 액션은 보기 힘들다. <유빅>은 PKD가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실제 현실과 감각되는 현재 간의 간격'에 대한 인지부조화 실험이며, 그 부조화의 틈바구니에서 신비의 형태로 출현하는 '구원'을 동시대의 감수성을 이용해 시적으로 형상화한 걸작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시를 장편소설로 확장한다면 나는 그게 <미국의 송어낚시>가 아니라 <유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마스터피스다.

 

이런 분들께 추천: 카프카의 후계자를 찾습니다 / '합법 마약'이 무슨 소린지 알고 또 좋아함 / 본격 포스트모던이 멀미가 나서 중간 기착지를 찾는 분 / SF를 무시하는 친구에게 선물하세요

 

이런 분들은 주의: 장르소설이 흰소리 지껄이는 거 딱 싫다 / 그럼 커트 보네거트 같은 느낌인가? (아님) / 와 초능력자들이 막 나와서 싸운다니 재밌겠는걸

 

 

 

 

 

 

이력서들

 

 


 


MD의 감상평: 블랙 유머가 도처에서 출현하지만 전체적으로 삭막하다. 마치 강제로 탈색된 게오르게 그로스의 그림 같다. 희안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부조리한 전개가 펼쳐지지만 그 부조리는 불안과 긴장을 유발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극복이나 추구할 대상으로 격상되지 못한다. 역사의 무게에 눌려 찌그러진 인물들이 부조리한 상황을 부조리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서사 기법들이 동원되지만 그 재기넘치는 시도들조차 이 방향성 없는 중성적인(아이히만적인?) 부조리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함으로써 좌절의 침묵을 강화시킨다. 끊임없이 떠드는 이 소설은 아연한 침묵을 향하고 있다. 드라마-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는, 사건의 총합으로써의 역사 소설, 우리도 이런 게 많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 분들께 추천: 뉴 저먼 시네마나 그 비슷한 건조하고 쓸쓸한 영화 애호가 / 전범국의 부조리 문학은 프랑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궁금하신 분 / 불순한 감정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다크포스 컬렉터

 

이런 분들은 주의: 로맨스다운 로맨스 없습니다 / <변신> 이외의 카프카를 읽어낼 수가 없다 / <호밀밭> 이외의 샐린저를 이해할 수가 없다 / 그것봐 내가 세상은 엉망이랬지!

 

 

 

 

 

 

브랫 패러의 비밀

 

 


 


MD의 감상평: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돌아오면서 그에게 쏟아지는 의혹과 그 진실을 다룬 이야기. 아마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 중에 가장 조용한 작품일 것이다. 조세핀 테이는 거의 우아할 정도로 차분하다. 실종자의 복귀라는 현상을 둘러싸고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는 모습은 투명한 거미집이 조용히 완성되는 모습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거미이자 동시에 희생양인, 독자들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범죄자가 있다. <브랫 패러>는 빅토리아 시대 드라마의 유산을 이어받아 심리 서스펜스물로 변환시킴으로써 미스터리가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삶의 일부임을 증언한다. 이것은 중요한 성취다.

 

이런 분들께 추천: 제인 오스틴이 미스터리 소설을 썼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 코지 미스터리 애호가 / 연극적 소품 애호가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류 심리 서스펜스물의 기원을 찾아서

 

이런 분들은 주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시시하던데? / 피 없는 미스터리는 선지 없는 순대 / 하드보일드 간지 편식쟁이 / 메타포 및 알레고리 중독자

 

 

 

 

 

음..가능한 2월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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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새 2013-01-08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 넘흐 재밌는 서평입니다. 저의 서재에 이렇게 쉽게 몇 권을 추가하시다니, 능력자십니다. sunshine같은 책 소개.

외국소설/예술MD 2013-01-09 09:24   좋아요 0 | URL
댓글 하나하나가 제게는 썬샤인입니다. 출근하자마자 기뻐요. ㅎ

아기새 2013-01-09 12:23   좋아요 0 | URL
저 여기 consult 좀..

유빅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끌리는데, 대체 저는 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 1권을 300페이지나 읽고나서도 몰입이 안되어 더 이상 진도가 안나가는지라 주저되네요..☞☜ kite runner도, 천개의 빛나는 태양도 별 감흥없이 후딱후딱 읽고는 평이한 서사에 실망. 흙흙.
소위 '제 3세계 문학'으로 맘에 드는 분은 이사벨 아옌데 님과 위대하신 가르시아 마르케스 님 뿐 ㅜㅜ
어케... 사야할까요? 소설(을 끝까지 못 읽는 장)애자 임뮈 으흙으흙

외국소설/예술MD 2013-01-09 14:27   좋아요 0 | URL
아 네 예를 드신 두 작품.. 파묵이나 호세이니하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좀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작가 소개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작가는 미국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았고, 실제로 미국 소설의 느낌이 많이 납니다. 작품 배경의 상당 부분도 미국이고요. 거대 서사가 아니라 '베스트 아메리칸 숏 스토리즈'같은 데 수록될 법한 느낌이니 한번 골라 보셔도 되지 않을까 해요. 미리보기로 우선 한번 판단해 보시죠. ㅎㅎ

jj305 2013-01-2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넘 흥미진진하게 잘 봐서... 이번엔 브랫페러의 비밀에 도전했는데 넘 재미있네요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고있어요... ^^ 감솨

외국소설/예술MD 2013-01-29 13:10   좋아요 0 | URL
아 둘다 재미있는 소설이죠. 잘 고르셨습니다. ㅎㅎ 스토리텔링이 좋은 물건 찾으시는군요 ㅎㅎ
 

 

 

벌써 11월..

갑니다.

 

아, 이벤트는 여기. 11/30까지 입니다.

 

 

 

 

 

미야자와 겐지 전집 1권

 

 

 

 

MD의 감상평: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된 작품으로 유명한 '은하철도의 밤'이 수록된 미야자와 겐지 소설(동화) 모음집. 태연하게 부조리한 대사들을 내뱉는 우화들, 통상적인 전개를 무시하고 도약해 버리는 이야기들, 정확한 정체가 모호한 캐릭터들은 미야자와 겐지를 간단히 아동 문학가의 범주에 집어넣을 수 없게 하며, 이런 특징들은 되려 팝 또는 포스트모던 계열의 현대 일본 소설을 연상케 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나 초기의 하루키, 시마다 마사히로 등이 보여준 기괴한 멜랑콜리의 기원, 즉 '동화 없는 시대의 동화'를 구축한 선구자의 베스트 앨범.

 

이런 분들께 추천: 그림형제의 동화를 읽었는데 약간 미친 이야기들 같아서, 좋았다 /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좋다 / 80년대 지브리 류 아니메 스타일이 좋다 / 뭐? 그저그런 애니 '첼로 켜는 고슈' 원작은 짱 재미있다고?

 

이런 분들은 주의: 전집이라니까 다 나오고 사면 되나? / 동화는 아이들의 인격 함양과 정서 발달을 위한.. / 철이도 메텔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라마야나

 

 

 

 

MD의 감상평: <라마야나>는 고전 서사시를 현대 방식으로 재서술한 판타지 모험담이다. 비슷한 예로 베오울프나 아더왕, 니얄 사가 등 유럽의 고전 모험-전쟁담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러나 <라마야나>의 속도감은 다른 고전들은 물론 현대 작품들조차 거의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다. 군더더기 없이 속개되는 스토리의 집약된 에너지로 가득한 이 작품은 보통 '고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300페이지를 겨우 채운 이 짧은 서사시에 'Epic'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불타는 석탄을 압축시킨 다이아몬드 같은 신화-모험담.

 

이런 분들께 추천: 반지의 제왕 완독에 수 차례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 스케일 큰 작품을 읽고 싶지만 여유가 없는 바쁜 현대인들 / 저는 고전에 대한 편견을 없앨 마음의 준비를 마쳤어요

 

이런 분들은 주의: 그럼 라마야나는 몇써클 매지션임? / 이거 완전 이교도 놈들 투성이네 / 고독과 상실과 그에 기반한 블랙 유머를 편식하는 '고전 문학' 애호가

 

 

 

 

 

 

체벤구르

 

 

 

MD의 감상평: 간단히 표현하자면 <체벤구르>는 소비에트 버전의 '오디세이아'다. 그만큼 경이롭다. 여정이라는 컨셉트 아래에 모인 각각의 작은 이야기들은 목가주의에서부터 포스트모던을 예감케 하는 분열적인 모습까지 그 모양과 색이 모두 다른 벽돌들이다. 이 돌들로 쌓여진 거대한 벽은 마치 대지 예술(Land Art)처럼 신기하고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그 벽, 성이 아닌 끝없는 벽을 따라가는 길은 '아직 오지 않은' 꼬뮤니즘의 완성을 향해 나 있다. 인간-역사에 대한 의지와 문학적 숙련도 모두 최고 수준에 다다른 위대한 작품이다. 플라토노프 동지 만세!

 

이런 분들께 추천: 문답무용問答無用

 

이런 분들은 주의: 소비에트라니 재미없는 거 아니야? / 오디세이아라니 재미없는 거 아니야? / 공산주의는 나쁜 거 아니야? / 러시아 애들은 이름이 여러 개라며? / 인간에 대한 의지라니 속편한 잠꼬대 하시네요.

 

 

 

 

 

 

카운트 제로

 

 

 

MD의 감상평: 윌리엄 깁슨이 스프롤 3부작 중에서 (뉴로맨서를 제치고) 가장 마음에 들어한다는 작품. <뉴로맨서>의 싸이키델릭한 네트워크 묘사와 음울한 사이버 펑크 세계관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거기에 각자 분리된 스토리가 절정에 이르러 서로 합쳐지는 전개는 소설적인 재미를 추가로 선사한다. 모험과 모략에 더해 권태와 생활이 버무려진 이 포스트-뉴로맨서는 사이버 네트워크, 즉 새로운 시대의 카우보이들이 암약하는 이 신 서부극 장르가 부흥하기 이전에 이미 예언처럼 완성된 '안티 웨스턴'이다. 출발점이자 폭심지. 여기가 바로 '그라운드 제로'다.

 

이런 분들께 추천: "네트워크는 넓으니까." 라는 대사의 출처를 안다 /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를 감명깊게 읽었다 / 테크놀러지 시대에 접어든 환상소설이 어떤 식으로 가지를 펴 나갔는지 궁금한 문학 탐구자 / 인터넷을 사랑하는 덕후 여러분, 그 기원, 성지가 여기입니다.

 

이런 분들은 주의: 총알을 슬로우모션으로 피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 아.. 이 사람이 찰스 경이 말한 그 사람이야? / 자꾸 언급되길래 PKD를 읽어 봤지만 결국 왜 좋은지 이해할 수 없었던 순수문학 애호가 / 응? PKD가 뭐야?

 

 

 

 

 

12월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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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의 그냥 마음대로 추천도서들

(이벤트 기간: 10/31까지. 바로가기)

 

 

 

만(卍) .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 다니자키 준이치로

 

 

 

MD의 감상평: 이 순진하리만치 집요한 욕망들을 탐미주의니 악마주의니 여러 이름을 붙여 분류하는 모양이지만, 육체의 매력과 애욕의 힘을 이렇게 노련하게 몰아치는 작가는 이후로 등장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부드럽게 풀어내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보이고, 뜨겁게 밀어내면 미시마 유키오가 이미 거기에 있다. 지미 헨드릭스처럼, 다니자키 준이치로도 후대의 성과를 이미 쟁취했던 단독자였다. 그러니 차라리 후대의 비슷한 작가들을 '다니자키 준이치로 유파'라고 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검술 같기도 하고.

 

이런 분들께 추천: All You Need is Love / 가와바타 야스나리 또는 미시마 유키오를 좋아함 / 와타나베 준이치나 단 오니로쿠 같은 일제 핑크 로망의 조상님을 찾아서 /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를 보았는데 미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런 분들은 주의: 이게 사랑과 전쟁하고 다를 게 뭔가요? / 연애 혐오자 / 여성가족부 임원 / 문학지상주의자는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전문가나 친구와 상담 후에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점과 선 / 마쓰모토 세이초

 

 

MD의 감상평: 어지간하면 메인 탑북에 선정된 책은 이 코너에 집어넣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 책은 예외로 하고 싶다. 탑북 치고는 많이 안 팔렸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확실한 걸작이기 때문이다. 꼼꼼하고 치밀한 이중 알리바이 시간표 트릭이 안겨주는 즐거움, 천재 대신에 인간을 마주하게 하는 풍부한 디테일,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한 냉소적인 성찰까지 사회파 미스터리의 미덕을 두루 갖추었다. 괜히 폼잡지 않는 진짜 '드라이'한 추리소설. 쌉쌀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이런 분들께 추천: 챈들러보다 해밋이 좋더라 / 사회파 미스터리는 트릭이 좀 애매한 거 같던데, 괜찮을까? / 미스터리 소설이면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죄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시는 분. 안심하세요.

 

이런 분들은 주의: 고유명사 암기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자 / 카리스마 계열 명탐정 숭배자 / 고전 알레르기 보유자 / 소설을 읽으면서까지 논리 두뇌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으신 분

 

 

 

 

 

고기 / 마르틴 하르니체크

 

 

MD의 감상평: 고기로 돌아가는 사회. 사람은 고기의 소비자이자 동시에 공급자다. 범법자는 판결 없이 '도축'되어 '육류'로 보급되는 것이다. 주인공조차 이 지옥에서 살아가기 위해 겨우 발버둥치는 사람일 뿐, 어디에도 각성이나 구원의 여지는 없다. 디스토피아 설정 중에서도 극단에 속하는 이 작품은 그 구조가 헐겁고 문장이 조악한 편이다. 그런데 그 빈틈들이 설정의 극악함과 어울려 참혹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연료 역할을 한다. 위대한 걸작들에게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날비린내가 맴도는 소설이다. 흥미로운 얼터너티브 초이스.

 

이런 분들께 추천: 디스토피아 소설 애호가 / 대체역사 계열 SF 애호가 / 동구권 환상소설의 현대화 계보를 추적중인 사냥꾼 / 체제비판 문학 컬렉터

 

이런 분들은 주의: 극단은 유치함의 다른 이름이라고 믿는다 / 우아한 소설 또는 문장 미학 편식쟁이 / 카프카는 카프카 소설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 조지 오웰은 조지 오웰 소설에서 찾으세요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 데이비드 웡

 

 

 

MD의 감상평: 지금까지 거의 볼 수 없었던 본격 허접 개그 호러물. 슬랩스틱 또는 화장실 개그와 호러가 서브컬처라는 동질감 속에서 만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런 케이스는 처음 본다. B급 호러-개그 소설들의 흔한 설정에 약물-싸이키델릭이라는 소스를 덮어씌운 꼴이 참으로 희안한 몰골이다. 그런데 화자는 더없이 진지하고, 독자들은 그 진지함과 황망한 사건들의 갭을 망연히 바라보다 어느새 휘말려 든다. MTV-필립K딕-스티븐 킹 하이브리드 버전의 미래파 펄프 픽션. 영화화되어 선댄스에서 개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이런 분들께 추천: 영화 <엑설런트 어드벤쳐>나 <웨인즈 월드>를 감명깊게 보았다 / 병맛은 전위의 다른 이름 / 미국식 개그 센스를 좋아한다 / 소설 <멋진 징조들>이 좋긴 했지만 좀 얌전했다 / 장르소설이 궁금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애호가(반 농담임)

 

이런 분들은 주의: 이말년이나 불암콩콩 등을 들어본 적 없거나 혐오함 / 러브크래프트 등을 숭상하는 호러 교조주의자 / 이걸로 호러 소설 입문해도 되나요? / 뭐,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애호가라고? 좋아 내가 한번 읽어봐 주지.

 

 

 

 

끝. 11월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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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2-10-1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보관함에 막 쓸어담;;;;;

감사합니다. ^^;;;

외국소설/예술MD 2012-10-18 18:45   좋아요 0 | URL
제가 더 감사하죠 ㅎㅎ 부디 마음에 드셔야 할 텐데요. 좋은 책들임에는 분명합니다. ^^

딸기꼬치 2012-10-1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기가 맛있겠네유...

외국소설/예술MD 2012-10-19 17:56   좋아요 0 | URL
에비.. 저거 사람고기여유..;
 

원래는 월간 이벤트로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몇몇 분들의 요청이 있어 이벤트가 종료된 후에도 서재에서 볼 수 있도록 옮깁니다.

 

매월 장르 소설 두 권, 비 장르소설 두 권씩을 고르는 걸로 하고 있습니다.

그 경계가 불분명한 작품들은 역시 제 마음대로 집어 넣었습니다(..)

또한 어느정도 유명해지거나 판매가 호조인 책은 일부러 제외했습니다.

 

첫회가 좀 덜 재미(..)있어서 카피는 약간 수정을 했습니다.

심심하실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9 (첫회)

 

 

세월 / 마이클 커닝햄

 

 

 

MD의 감상평: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마이클 커닝햄의 제1매력으로 꼽히는 시적인 문장이 얼마나 잘 전달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월>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번갈아 전개되는 시공간을 잇는 매끄러운 접점, 우아함과 날카로움을 번갈아 드러내는 대사들, 생에의 의지와 그것을 둘러싼 운명의 위력 간의 균형. 정적을 그려내는 솜씨와 파티장에서 캐릭터들을 와르르 부딪히게 만드는 솜씨 모두 발군이다. <세월>은 흠을 잡기 힘든 노련한 소설이며, 따라서 좋은 소설이고, 어쩌면 위대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런 분들께 추천: 문예미학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분 / 느린 호흡의 소설도 OK / 이 작가의 이름을 3회 이상 들어본 적이 있다 /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감명깊게 보았다

 

이런 분들은 주의: 시대물이라면 당연히 로맨스가 있겠지? / 느린 호흡이 무슨 뜻이에요? / 여자친구 책선물 추천해 주세요

 

 

 

 

 

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 / 김용언

 

 

MD의 감상평: 솔직히 말씀드리겠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문/사회 분야의 교양을 좀 갖추어야 한다. <범죄소설>은 미스터리 또는 하드보일드 소설을 잉태한 당대 사회를 읽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작업이 필요한가? 소설들이 더 재밌어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럼 뭐하러 이 책을 읽는가? <범죄소설>은 범죄소설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3부를 읽어 보시라. 이 책은 범죄소설 팬들, 즉 우리 자신을 위한 송가다.

 

이런 분들께 추천: 범죄소설과 인문학을 다 좋아하는 분 / 실제 범죄를 다루는 언론 및 매체의 속성에 관심이 많은 분 / 범죄소설과 연관된 자아를 재발견하거나 확장하고 싶은 신실한 팬

 

이런 분들은 주의: 이 멍청이들아 홈즈는 실존인물이다! / 근데 발터 벤야민이 누구예여? / 범죄소설은 갖고 노는 거지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파저란트 /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MD의 감상평: 소설 속에 빼곡히 등장하는 상품명들. 정처도 희망도 없는 청춘들. 이렇게만 써 놓으면 왕가위의 영화들이 하나의 스타일로 군림했던 90년대 후반을 떠올리게 한다. <파저란트>를 비롯한 일군의 작품들이 '팝 소설'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면 심증은 더욱 굳혀진다. 그러나 <파저란트>는 발랄하거나 '감각적'이지 않다. 욕망에 매몰되고픈 욕망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여정의 종착지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 세기말의 방랑기는 이렇게 쓰여졌다. 인간이 사라지고 사건과 제품으로만 가득 찬, 종말 이후의 지구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이런 분들께 추천: 영화 <천국보다 낯선>을 보다가 졸지 않았다 / 청춘 방황물의 새로운 느낌을 찾는 문학청년 / 독일 현대소설 중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데?

 

이런 분들은 주의: 독일 소설을 수면제와 혼동하시는 분 / 롤러코스터류 소설 애호가 / '기승전결' 이론 신봉자 / 백수 한량들이 방종하는 내용을 용납할 수 없는 새누리새마을정신 보유자 / 근데 이거 좀 깔쌈한가?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MD의 감상평: 지금은 미국 아마존에서조차 새 책을 구할 수 없는 고전 걸작 미스터리. '10대 걸작선' 어쩌고 하는 목록들이 지겨울 때도 되었다지만, 읽어 본 입장에서 말씀드리건대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이 존 딕슨 카의 작품들과 함께 10대 밀실 미스터리 걸작에 꼽히는 건 합당한 결과다. 마술과 심리 트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등장인물들의 밀실트릭 싸움은 지금 읽어도 화려하고 즐겁다. 이른바 '본격 미스터리' 세계의 진짜배기 클래식이다.

 

이런 분들께 추천: 퍼즐을 짜맞추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은 소설 팬 / 존 딕슨 카 등의 정통 트릭 미스터리 팬 / 시야를 확장하고자 하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 팬

 

이런 분들은 주의: 하드보일드 편식쟁이 / 고전 알레르기 보유자 / 그러니까 이 지도를 보면서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가며 읽어야 하는 게 소설이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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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 2012-10-27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쓱으쓱 다 읽었네요 으쓱으쓱

외국소설/예술MD 2012-10-29 18:11   좋아요 0 | URL
참 잘했어요 도장을 드립니다. 여기..
 

따로 쓰는 글로는 무척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2011년 하반기 결산도 그냥 슬쩍 넘어가 버렸는데 말이죠. -_-

 

늘 그렇듯 시간은 흘러가고 책들은 들꽃처럼 피고지는 중입니다. 못 보고 지는 꽃이 허다하고 책 또한 그렇습니다.

사실 놓친 책들의 대부분은 놓쳤다기엔 애매하죠. 앞으로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는 책들이 훨씬 많을 겁니다.

그렇게 된 것들은 대개 그렇게 되었을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올해 상반기에 나온 장르소설들 중 개인적으로 아깝다고 판단되는 작품들을 모아 봤습니다. 이 페이지를 읽어 보셔도 대개는 다시 스쳐 지나갈 뿐이겠으나, 그중 단 한 권이라도 '아' 싶은 책을 발견하신다면 그걸로 저는 기쁘겠습니다. 원래는 그러려고 MD가 되었던 거니까요.

 

책들의 등장 순서는 무순입니다. 당연하겠지만 다들 유독 매력적인 구석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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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입니다. '유독 매력적인 구석' 그런 거 없고 그냥 모든 면이 매력적이죠. 걸작입니다. 걸작 미스터리 스릴러예요. 2009년에 나왔다가 판매 부진으로 절판된 뒤 다시 올해 봄에 재간되었습니다. 장점을 열거하는 게 부질없는 작품이죠. 있는 좋은 말 다 끌어와 붙인 것처럼 보여서 허풍처럼 느껴질 거니까요. 이 작품은 스토리도 탄탄하고 그 배후의 메시지도 훌륭하며, 역사 및 사회에 대한 성찰이 소설 속 트릭과 캐릭터들의 관계 속에 이상적으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보세요. 얼마나 부질없는 추천인가요. 그런데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사에서 화려한 홍보문구를 괜히 표지 상단에 박아놔서만은 아닐 거예요.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판매 담당자가 이런 말을 잘도 하는군요... 다 제 불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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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즈 페니의 <치명적인 은총>입니다. 역시 미스터리 소설. 전작 <스틸 라이프>에 이은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두 번째 책이죠. 캐나다의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주로 살인)을 추적하는 이야깁니다. 21세기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앗. 도그빌 같은건가? 폐쇄적인 인맥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의 숨겨진 탐욕 같은...?

 

음, 그런 게 물론 없기야 하겠습니까만, 사람이 죽었는데 당연히 뭔가는 있습니다만, 이 시리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케이스입니다. 최근의 미스터리가 비극의 장렬한 전개로 감동을 안겨준다면, 가마슈 경감을 비롯한 이 시리즈의 등장 인물들은 그 비극으로부터 서로를 지켜내려는 의지를 통해 감동을 제공합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그런 의지가 촌스럽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아요. 이 바보들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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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실 해밋 전집 세트입니다. 저는 이 시리즈가 최소한 레이먼드 챈들러 정도는 나갈 줄 알았습니다. 완벽한 클래식이니까요. 모든 미스터리 소설 안내서에서 찬양받으며, 일반 소설사를 아우르는 책에까지 심심찮게 등장하는 매우 드문 작가입니다. 그런 작가는 거의 없어요. 위대한 영도자이신 에드거 앨런 포를 빼면 레이먼드 챈들러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해밋이 챈들러보다 인기가 덜한 이유는 단지 해밋의 주인공들이 필립 말로보다 뻘소리를 자제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해밋을 더 좋아하지만요. 네? 아뇨, 무슨 말씀을. 저는 챈들러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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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와사카 쓰마오의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입니다. 역시 시리즈물이지만 단편 모음이라 읽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멍청해 보이는 미남인데 사실은 헐렁한 것뿐인 천재 미남이라는 박탈감 넘치는 충격적인 설정의 미스터리 단편집이죠. 트릭도 다양하고 터치도 가벼워서 읽는 재미가 좋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가벼울 리 없고요. 특히 몇몇 단편의 짜임새는 문장 장난질로 작가입네 하시는 분들이 무릎 꿇고 배우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설정이 독특해서인지 보는 사람만 보는 책이 되었습니다. 독특하다는 건 이상한 게 아닌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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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스트가 상시 업데이트 된다면 주기적으로 올라올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입니다. 그 이유를 여기다 두어 줄 써 봐야 슬프기만 하니까 넘어가겠습니다.

 

<그레이스>는 19세기 캐나다애서 일어난 실화를 배경으로 한 살인 미스터리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미스터리 소설과는 다릅니다. 전개가 싸이키델릭하죠. 19세기 캐나다의 풍경이나 관습 묘사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역시 맘편히 읽을 책은 아닙니다. 주인공 그레이스의 불안정한 심리를 둘러싼 정신과 의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수많은 징후만을 남기고, 결말은 그 징후의 발아를 독자에게 요구합니다. 무책임하다고요. 아닙니다. 프로파간다류 페미니즘 소설과 달리 아무 말 않고 독자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죠.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 겁니다. 독자들에게요.

 

순문학(이 말 안 좋아합니다만)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섬세한 묘사와 어두운 성정의 조합이 좋습니다. 국내 출간된 애트우드의 소설 중에서 손꼽을 만한 작품이에요. 역시 올해 출간된 <홍수>도 주목할 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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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키 시즈코의 <제3의 여인>입니다. '제3의 사나이'와 관계가 있을 것도 같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실제로 작품이 좀 오래되기도 했지만, 고풍스런 느낌이 좋습니다. 처음에 이 책 소개할 때 불란서 느와르 영화들을 연상케 한다고 했었는데요, 트릭이나 반전이 굉장하다기보다는 서서히 침잠해 가는 주인공의 정신상태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인물 심리가 직접적으로 서술되기보다는 주위 경치나 사물 묘사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되는데, 이게 복고풍 영화를 떠올리게 해요. 장 르누아르나 끌로드 샤브롤 같은. 그러니까 본격미스터리만 편식하시는 분들은 그냥 지나치셔도 됩니다. 이건 공기를 느끼는 소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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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러브시의 <다이아몬드 원맨쇼>. 미스터리가 껴 있긴 하지만 서스펜스 + 휴먼 드라마라고 봐야겠죠. 역시 재밌습니다. 꼼수 부리지 않고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느낌이 좋죠. 육체의 무게가 느껴진달까. 드라마 '추적자' 같은 느낌이죠. 사회 부조리랑은 별로 관련 없지만요. 음모가 있고 달리고 싸우고 협박하고 협박당하고 서로 머리를 굴립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사람답게 살자'는 슬로건이 있고요. 네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죠.

 

드라마로 만들기에 좋은 소재입니다. 작년 <인간의 증명>도 드라마 성공했는데 하나 또 만들어 주시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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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슨 드밀의 <와일드 파이어>입니다. 군사-스파이 스릴러는 이제 한국에서는 별로 각광받지 못하는 분야입니다만, 그래도 게리 올드만님께서 스마일리 요원이 되어 나름 분위기를 살려 주셨죠. 어쨌든.

 

군사 스릴러는 장르 특성상 대개 보수적인 내용이기 마련이고, 자국에 우호적이게 마련입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다 그렇죠. 그래도 이 작품은 그런 냄새가 좀 덜합니다. 그래서 추천하는 건 아니고요. 설정이 재밌습니다. 일종의 본격 입배틀 스릴러랄까. 영화 '8마일'에 나오는 에미넴 랩배틀을 방불케 하는 왁자지껄한 논쟁이 이 '스릴러'의 중심이거든요. 물론 그 입배틀의 최종 결과가 핵무기 사용이기 때문에 흥미가 배가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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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카첸바크의 <마지막 증언>. 이 작가 얘기 하자니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안되겠습니다. 이런 작가를 못 알아보니까 나라가 무너지고 문학계가 무너지고 그런 거 아닐까요.

 

대표작 <하트의 전쟁>을 그따구 영화로 만들어 버린 영화 제작진과 주연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너무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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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입니다. 그 프랑켄슈타인인가? 네 그겁니다. 아니 무슨 구닥다리.. 라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물론 막 소름 돋고 그런 내용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는 구닥다리 맞습니다만. 그러니까 일종의 환상소설로 읽으시면 됩니다.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골렘>처럼요.

 

왜 태어났는지 자문해 본 적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모든 분들께 추천한다는 얘깁니다). 박사님이 대답해 주실 거예요. 차갑지만 슬프고, 연민에 차 있지만 어쩌지는 못하는 그 대답, 그 순간의 눈빛이 신의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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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르 벨랴예프의 <물고기 인간>입니다. 20세기초에 전성기를 누렸던 어드벤쳐 SF의 대표작 중 하나죠. 한국에 완역판이 등장한 건 처음이고요, 그나마 어린이판 일어 중역 축약판이 나온 것도 수십 년 전.. 이런 책 안 나오고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아가미를 달고 물 속에서 살게 된 소년이 청년이 되고.. 나만 왜 바다에서 살아야 하나 이런 질문도 하게 되고, 뭍에 있는 처녀를 좋아하게도 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다의 왕자죠. 고독한 곳에서라야 그는 가장 아름답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스토리는 클리셰에 가까울 정도입니다만 백 년 남짓한 세월동안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슬픔에서조차 맑고 곧은 힘이 느껴지죠. 명작을 내 주신 출판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책 좋아하는 소년소녀들아 너희도 감사 드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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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 G. 발라드의 종말 3부작이 올 상반기에 모두 나왔습니다. 아방가르드한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이죠. 내용도 그렇습니다. 소위 종말 소설에 기대되는 스펙터클은 정말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근데 그래서 좋은 거예요! 세계종말과 스펙터클을 세트메뉴로 만들어 버린 헐리우드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시리즈는 세계가 어떤 요소에 의해 갑작스런 환경 변화를 맞게 되었음을 선언한 뒤, 그 상황에 대응하는 이 세계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기만 하죠. 일종의 사고 실험 같습니다. 그 전개도 결론도 각자 다른 이 세 권을 한데 엮어 생각하면 무척 풍부한 종말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인류와 지구 앞에 펼쳐져 있음에 감동하실 겁니다. 이 시리즈는 스펙터클의 자리에 꿈의 노래를 집어 넣었습니다. 진짜로 종말이 올 때 아마 우리의 기분이 그럴 거예요. 꿈과 노래 말입니다. 저는 정말 헐리우드가 원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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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실 해밋이 이렇게 허우적대는 마당에 필립 K. 딕이 주목받을 가능성은... (이 시리즈의 가장 신간인 <티모시 아처의 환생>은 SF라고 하기엔 좀 그래서 뺐습니다)

 

PKD는 수많은 SF 팬들과 대부분의 순문학 팬들이 놓치고 있는 암흑물질입니다. 언젠가 이 물질의 질량 측정이 이루어질 때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정말 놀라실 거예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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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 MD님이 추천하는 2012년 안타까운 쟝르 소설들
    from 네퓨타의도서관 2012-08-19 02:41 
    읽은 것도 있고 놓친것도 있고 주목했던 것도 있고... 올해 안에 읽어야지.
 
 
두번째달 2012-07-12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싶은 책 하나만 꼽아보자는 생각으로 이 글을 읽기 시작했으나... 역시 하나만 꼽는 건 포기. (다 재밌을 거 같잖아요 어떡해요) 하나씩 하나씩 야금야금 읽어보도록 하지요.

외국소설/예술MD 2012-07-12 23:44   좋아요 0 | URL
에. 제 추천이 되려 누를 끼치진 않을 거라 믿고 썼습니다. 잊혀지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ㅎㅎ

2012-07-13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6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래 2012-07-14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나는 이렇게 괴롭지도 않았을텐데... 먼지바람 일으키며 지름신이 내게 오고 있어요;;;


외국소설/예술MD 2012-07-16 12:00   좋아요 0 | URL
이게 아.. 직접적인 지름신 호출은 목적이 아니긴 했습니다만.. 그렇지만 읽어 손해볼 거 정말 없는 책들이에요. 사람에 따라 취향에 맞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내용 자체는 다들 좋습니다. 제가 인증합니다?!

나래 2012-07-1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구매버튼을 누르게 될거 같네요~ㅎ

외국소설/예술MD 2012-07-16 12:02   좋아요 0 | URL
천천히 조금씩 장만하시면 됩니다. ^^;; 하나씩 하나씩

mljaa 2012-07-1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싶은 책이 2권이나 있네요..MD하시기 잘하셧어요 ㅎㅎ

외국소설/예술MD 2012-07-16 12:02   좋아요 0 | URL
정말 이거 하기 잘 한 걸꺼요 (웃음) 그렇지만 두 권을 안겨 드렸다니 역시 기쁩니다. ㅎㅎ

빠삐용 2012-07-18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권 읽었군요. 나머지는 천천히... ^^;

외국소설/예술MD 2012-07-18 12:51   좋아요 0 | URL
읽으신 네 권은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좋은 책들이었나요? 부디 마음에 드셨기를, 그리고 나머지 책들도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ㅎ

리리 2012-07-2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장바구니에 6개 담아놓고, 천천히 구경해봅니다.ㅋㅋ. 가방 구두사는 것보다야 덜비싼 지름신이니..

외국소설/예술MD 2012-07-25 14:53   좋아요 0 | URL
물론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정도 가격이면 충분히 지를 법하다고 자부하는 바입니다. (웃음)

흰둥이 2012-08-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일드 44는 다른 거 필요없고 그냥 일단 첫부분만이라도 읽어보라고 말하게 되는 작품.. 추천하신 것 모두 읽고 싶은데 특히 표지로 계속 제 맘을 들었다놨다하는 필립K딕을 꼭..ㅋㅋ

외국소설/예술MD 2012-08-06 15:58   좋아요 0 | URL
역시 좋은 작품은 알아보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죠. 그 숫자를 늘리는 게 제 일이고요. 이번에는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필립 딕은 스타일에 따라 취향을 타겠지만, 놀라운 세계관임에는 틀림없으니 언젠가 꼭 접해 보시기 바래요.

미숫가루 2012-08-0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일드44 표지 때문인가.. 궁금했는데 어쩐지 안 끌리는 책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네요!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 재밌게 봤는데.. 말씀처럼 보는 사람만 보는 책이 된 같이 다음편을 출간해줄지.......
다음권은 나오긴 할까요....ㅠㅠ

외국소설/예술MD 2012-08-06 16:00   좋아요 0 | URL
네 표지가 좀.. 그렇긴 하죠. 그래서 되려 더 신경을 쓰고 여기저기 노출을 했었지만 역시 기본적인 문제를 넘어설 수는 없더군요. 노출을 열심히 해도 그걸 본 독자들이 호감을 못 느끼면 안되니까요. 좋은 소설입니다. 한번 보시면 반하실 거예요.

아 아이이치로는.. 언젠가 또 다음편이 나오길 저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알라디너 2012-08-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밋 전집이 나왔군요. 이 글 보고 처음 알았는데 발로 대충 만든듯한 표지보고 구매할 마음이 전혀 안 생기네요. 개인적으로 황금가지에서 나온 책들은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안 듭니다. 그중에서도 해밋 전집 표지는 최악의 수준인듯. 황금가지 책들은 종이재질도 별로고 책 크기도 A5보다 좀 작게 나와서 다른 책들과 같이 꽂아넣으면 황금가지 책만 쑥 들어가서 그것도 마음에 안 들고요. 차일드 44의 경우에도 재밌다는 얘기 듣고 개정판 구입하려다 표지의 유치한 문구가 거슬려서 구판을 중고로 구해서 읽었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2-08-16 10:27   좋아요 0 | URL
저는 헌책으로 책 구입을 시작해서 그런지 디자인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 편입니다. 예쁜 표지에는 점수를 더 주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달까요. 내용과 번역만 괜찮으면 오케이인데, 아마도 헌책 뒤지던 시절에 중역 졸역들을 보면서 '이것만 아니더라도 감지덕지다'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죠. 한때 책 상태에 민감한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의 둔감한 제가 더 좋습니다. 편하거든요. ㅎ

샐닢 2012-09-30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가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나요? 참 재밌게 읽고 있는데...
다른 시리즈는 읽은 게 없네요. PKD는 좋아하는 작가인데 장편은 쉽게 읽히지 않는 듯해요.
심심해서 들어왔다가 추천작 거의 다 장바구니에 넣어버렸습니다. 으윽.

외국소설/예술MD 2012-10-10 18:07   좋아요 0 | URL
하하 네. 개인적으로는 다 추천하는 작품이지만, 스타일이 다르니까 각자 좋아하는 종류의 책을 먼저 살펴보는 게 우선이겠죠. 잘 골라 읽으시기 바랍니다. ^^

아이이치로는.. 네 참.. 잘 알려지지 않네요; 재밌는 작품집인데요. 그렇죠?
PKD는 장편과 단편의 템포가 크게 다르다보니 같은 작가임에도 취향이 분명히 나눠지는 듯해요. 그 점이 참 재미있어요. ㅎㅎ

새앙쥐 2012-10-1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다 처음 보는 책들이네요. 추천해주신 책들 다 읽어봐야겠어요 :)
장르소설 추천 자주 해주세요 히히

외국소설/예술MD 2012-10-11 19:10   좋아요 0 | URL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니까 이중에 마음에 드는 책이 있을 거예요.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