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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 생명진화의 숨은 고리
박성웅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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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좋은 책을 빨리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저자분들 중 서민 교수님은 방송이나 신문의 글로 자주 뵙던 분이고 네이버 캐스트의 기생충 이야기도 구독하고 있어서 특히 반가웠다.
겉모습때문에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기생충의 역할과 특징들을 비전문가도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해주신다.
사진도 풍부하고 글도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기생충에 관심이 생겼다면 요 네이버 캐스트도 꼭 한 번 읽어보자 :)
서민 교수님의 기생충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author_contents_list.nhn?acknowledgeId=au59
|진화의 미싱링크, 기생충
생명과학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유전자>,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눈먼 시계공> 등을 통해 느낀 점은 지구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과 환경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쌓고 살아나간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도덕적 관념에 맞게 해석한대로 무조건적인 타협과 이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지도 않는다. 선과 악의 개념을 벗어나 생명체에게 유일한 목표가 있다면 "후손을 남긴다"는 것이다. 군비경쟁을 벌이며 끊임없이 진화를 하는 것도, 다른 새의 둥지를 뺏어 자기 새의 알을 키우게 하는 것도, 모두가 후손을 퍼뜨리려는 행동의 일환이다.
특히 기생충은 숙주의 몸을 통해 양분을 얻거나 자손을 퍼뜨린다. 어떤 기생충은 숙주의 몸에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미생물집군을 이루어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생벌이나 연가시 등 중간 단계에 속하는 숙주를 조종하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기생생물도 존재한다.
인간의 경우, 몸에 들어와 40분 만에 간으로 이동, 적혈구를 통해 퍼지는 말라리아 균에게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 기형을 일으켰다. 말라리아가 적혈구로 들어갈 때 붙잡게 되는 더피 항원이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 인류가 자손을 퍼뜨려 삼일열말라이라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피 항원이 없어도 적혈구에 침투할 수 있는 더 강력한 말라리아가 창궐하게 된다. 이에 대항하여 생겨난 적혈구가 돌연변이 형태의 낫모양(겸상) 적혈구다.
이처럼 기생충과 숙주가 되는 생명체는 오랜 군비경쟁을 지속해왔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이와 같은 진화(자연선택설)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득히 먼 일의 시간이라고만 여겨지는 진화가 이런 형태로도 목격이 된다는 것은 아주 흥미롭다.
심지어 성분화가 남성/여성으로 분화된 것 또한, 다양한 병원균에 대비한 다양성을 보유하기 위한 결과라는 점이 놀랍다.
실제로 무성생식을 할 경우 자기 자신의 복제 또는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 병원균에 취약하지만, 반대의 경우 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적응하는 자손이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기생충의 숙주 조종
연가시가 사마귀나 귀뚜라미를 조종하여 물에 빠져 죽게 만든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이처럼 뇌가 없어, 전략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기생충이 고도의 화학적 작용으로 숙주를 죽게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게다가 단순히 "더 이상 먹을 양분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거나 "더 좋은 숙주를 찾기 위해서"가 아닌,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서"라는 점이 놀랍다.
다음 내용은 본문 중에서도 특히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내용이다.
기생충 리베이로리아흡충은 개구리 다리를 기형으로 만든다. 처음에 환경론자들은 다리가 없거나 6개 이상 다리가 달린 개구리를 보고 비슷한 현상이 사람들에게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수질을 조사해봤더니, 개구리가 살던 물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러다 기형 개구리와 정상 개구리가 사는 곳의 차이를 조사해본 결과, 기형 개구리가 사는 호수에만 플라노벨라 달펭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플라노벨라 달팽이는 리베이로이라는 디스토마의 제 1 중간숙주다.
달팽이에서 탈출한 유충이 개구리 몸속으로 들어가 기형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숙주가 오래 살아야 기생충도 그 안에서 편안하게 오래 살텐데, 왜 이 흡충은 개구리를 기형으로 만드는 걸까?
이유는 기형 개구리에서 발견된 기생충이 성충이 아닌, 유충이라는 데 있다. 기생충의 최대 목표는 자손을 많이 낳아 퍼뜨리는 것이며, 종숙주라고 부르는 동물에게 도달해야지만 출산이 가능하다. 리베이로이라의 종숙주는 새이지 개구리가 아니다. 즉, 이 기생충은 개구리 뒷다리에 기형을 만들어서 새에게 잡아먹히게끔 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
실제로 잘 알려진 연가시의 경우도 종숙주는 귀뚜라미나 사마귀가 아니다. 연가시는 물 속에서 알을 산란시키고 하루살이나 모기 유충이 알을 먹으면, 이 유충을 먹은 사마귀나 귀뚜라미 안에서 부화하여 자란다. 그러다 산란할 때가 오면 사마귀를 물로 뛰어들게 해서 물 속에서 산란을 하는 것이다. 즉, 연가시의 종숙주는 곤충류가 아닌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성체로서의 삶보다 자손을 남기려는 욕구가 훨씬 크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개미선충의 경우도 신기하다. 최종숙주인 새에게 먹히게끔 하기 위해 유충이 개미의 배를 새가 즐겨먹는 열매로 착각하도록 새빨갛게 부풀린다는 것이다. 또한 이 개미선충에게 감염된 개미는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올리는 버릇이 있는데, 유충이 신경을 자극해서일 걸로 추측하고 있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행동이 새에게 더 잘 보이는 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새에게 먹힌 유충은 새를 타고 날아가 새의 변을 통해 더 멀리까지 알을 퍼뜨릴 수 있게 된다.
마치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느꼈던 것과 같이, 생물학적 알고리즘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다. 어떤 기생충은 게으름을 유발하고, 우울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떤 기생충은 먹으면 청력을 잃게 하고 눈을 멀게 하지만, 치매를 치료하는 약으로서의 연구가 지속되고 있기도 하다.
다른 벌레나 애벌레를 양분으로 삼고 자라다 숙주의 몸을 찢고 나오는 기생벌은 그로테스크하지만, 기생벌을 생태학적 살충제로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어떻게 보면 징그럽고, 필요없을 거라고 여겨지는 생물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공조관계에 있거나 영향을 끼친다.
인간이 섣불리 재단하기에는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비효과들의 결과물과 원인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혐오감또한 진화의 결과물일 수 있지만,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아야겠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이는 마치 헤어진 연인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헤어진 연인의 감정에도 좋고 싫음이 뒤섞여 있고 사랑함과 사랑하지 않음의 복잡한 양가감정이 줄타기를 하고 있듯이, 기생충도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미치기도 하고 생물간의 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역할도 한다.
P.17
생물과 생물 사이의 관게를 이해하는데 생물을 의인화시키고 인간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생물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P.23
기생충에 의한 숙주조종은 근본적으로 중간숙주를 조종해 최종숙주에 좀 더 잘 도달할 수 있는 환경, 간단히 말해 중간숙주가 최종숙주에 더 쉽게 잡아먹히도록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
P.32
모든 사람들은 내면에 그의 이익과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기생충을 지니고 있다.
-윌리엄 s버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