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
갑니다.
아, 이벤트는 여기. 11/30까지 입니다.
미야자와 겐지 전집 1권
MD의 감상평: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된 작품으로 유명한 '은하철도의 밤'이 수록된 미야자와 겐지 소설(동화) 모음집. 태연하게 부조리한 대사들을 내뱉는 우화들, 통상적인 전개를 무시하고 도약해 버리는 이야기들, 정확한 정체가 모호한 캐릭터들은 미야자와 겐지를 간단히 아동 문학가의 범주에 집어넣을 수 없게 하며, 이런 특징들은 되려 팝 또는 포스트모던 계열의 현대 일본 소설을 연상케 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나 초기의 하루키, 시마다 마사히로 등이 보여준 기괴한 멜랑콜리의 기원, 즉 '동화 없는 시대의 동화'를 구축한 선구자의 베스트 앨범.
이런 분들께 추천: 그림형제의 동화를 읽었는데 약간 미친 이야기들 같아서, 좋았다 /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좋다 / 80년대 지브리 류 아니메 스타일이 좋다 / 뭐? 그저그런 애니 '첼로 켜는 고슈' 원작은 짱 재미있다고?
이런 분들은 주의: 전집이라니까 다 나오고 사면 되나? / 동화는 아이들의 인격 함양과 정서 발달을 위한.. / 철이도 메텔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라마야나
MD의 감상평: <라마야나>는 고전 서사시를 현대 방식으로 재서술한 판타지 모험담이다. 비슷한 예로 베오울프나 아더왕, 니얄 사가 등 유럽의 고전 모험-전쟁담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러나 <라마야나>의 속도감은 다른 고전들은 물론 현대 작품들조차 거의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다. 군더더기 없이 속개되는 스토리의 집약된 에너지로 가득한 이 작품은 보통 '고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300페이지를 겨우 채운 이 짧은 서사시에 'Epic'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불타는 석탄을 압축시킨 다이아몬드 같은 신화-모험담.
이런 분들께 추천: 반지의 제왕 완독에 수 차례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 스케일 큰 작품을 읽고 싶지만 여유가 없는 바쁜 현대인들 / 저는 고전에 대한 편견을 없앨 마음의 준비를 마쳤어요
이런 분들은 주의: 그럼 라마야나는 몇써클 매지션임? / 이거 완전 이교도 놈들 투성이네 / 고독과 상실과 그에 기반한 블랙 유머를 편식하는 '고전 문학' 애호가
체벤구르
MD의 감상평: 간단히 표현하자면 <체벤구르>는 소비에트 버전의 '오디세이아'다. 그만큼 경이롭다. 여정이라는 컨셉트 아래에 모인 각각의 작은 이야기들은 목가주의에서부터 포스트모던을 예감케 하는 분열적인 모습까지 그 모양과 색이 모두 다른 벽돌들이다. 이 돌들로 쌓여진 거대한 벽은 마치 대지 예술(Land Art)처럼 신기하고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그 벽, 성이 아닌 끝없는 벽을 따라가는 길은 '아직 오지 않은' 꼬뮤니즘의 완성을 향해 나 있다. 인간-역사에 대한 의지와 문학적 숙련도 모두 최고 수준에 다다른 위대한 작품이다. 플라토노프 동지 만세!
이런 분들께 추천: 문답무용問答無用
이런 분들은 주의: 소비에트라니 재미없는 거 아니야? / 오디세이아라니 재미없는 거 아니야? / 공산주의는 나쁜 거 아니야? / 러시아 애들은 이름이 여러 개라며? / 인간에 대한 의지라니 속편한 잠꼬대 하시네요.
카운트 제로
MD의 감상평: 윌리엄 깁슨이 스프롤 3부작 중에서 (뉴로맨서를 제치고) 가장 마음에 들어한다는 작품. <뉴로맨서>의 싸이키델릭한 네트워크 묘사와 음울한 사이버 펑크 세계관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거기에 각자 분리된 스토리가 절정에 이르러 서로 합쳐지는 전개는 소설적인 재미를 추가로 선사한다. 모험과 모략에 더해 권태와 생활이 버무려진 이 포스트-뉴로맨서는 사이버 네트워크, 즉 새로운 시대의 카우보이들이 암약하는 이 신 서부극 장르가 부흥하기 이전에 이미 예언처럼 완성된 '안티 웨스턴'이다. 출발점이자 폭심지. 여기가 바로 '그라운드 제로'다.
이런 분들께 추천: "네트워크는 넓으니까." 라는 대사의 출처를 안다 /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를 감명깊게 읽었다 / 테크놀러지 시대에 접어든 환상소설이 어떤 식으로 가지를 펴 나갔는지 궁금한 문학 탐구자 / 인터넷을 사랑하는 덕후 여러분, 그 기원, 성지가 여기입니다.
이런 분들은 주의: 총알을 슬로우모션으로 피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 아.. 이 사람이 찰스 경이 말한 그 사람이야? / 자꾸 언급되길래 PKD를 읽어 봤지만 결국 왜 좋은지 이해할 수 없었던 순수문학 애호가 / 응? PKD가 뭐야?
12월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