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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줄리언 반스가 가디언 지에 기고한 리뷰입니다. 번역 및 게재 가능 여부를 확인해 주신 랜덤하우스코리아 편집부에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1963년 6월 13일, 미국의 소설가 존 윌리엄스는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덴버 대학교에서 자신의 대리인인 마리 로델에게 편지를 썼다. 바로 얼마 전에 그의 세 번째 소설 《스토너》를 다 읽은 마리는 확실히 이 작품에 감탄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지나친 희망은 품지 말라고 조언했다. 윌리엄은 이렇게 답변했다. “상업적인 가능성에 대해서는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 방면에서 우리를 놀래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하고 있습니다. 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든가 하는 환상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제대로 다룬다면(이것이 항상 문제지요), 그러니까 출판사가 《도살자의 건널목》[저자의 두 번째 소설]을 ‘서부 소설’로 다뤘듯이 이 소설을 그저 또 하나의 ‘학자 소설’로 다루지 않는다면, 꽤 팔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이것이 좋은 소설이라는 점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상당히 좋은 소설이라는 평가까지 받게 될 수도 있겠지요.”


거의 모든 소설가들에게 이 얼마나 친숙한 생각과 어조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처럼 자신감을 표현할 수 없다면 그들은 애당초 소설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공이라는 못된 여신의 면전에서 느끼는 피로감, 조심스레 기대를 품으면서도 지나친 기대를 경계하며 더욱 조심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가 항상 지적하는 ‘문제’, 즉 일이 잘못되면 그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탓이라는 태도도 여기에 드러나 있다.


1965년에 출간된 《스토너》는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이 소설가의 걱정과 희망 사이 중간쯤 되는 길을 걸었다. 평가도 좋았고, 그럭저럭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한 채로 절판되었다. 1972년에 윌리엄스의 ‘로마’ 소설인 《아우구스투스》가 내셔널 북어워드 소설 부문의 공동수상작이 되었다(이 상의 절반을 가져간 것은 존 바스의 《키메라》였다). 그가 대중적으로 가장 커다란 성공을 거둔 순간이었지만, 그는 시상식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타당한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없는 시상식장의 분위기가 묘하게 비난하는 듯했으니까 말이다. 20년 뒤 그가 더 이상 소설을 발표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 타임스>의 부고기사는 그를 소설가인 동시에 시인 겸 ‘교육자’로 표현했다. 하지만 (윌리엄스가 편지에서 밝혔듯이) 소설가들이 자주 소재로 삼는 요인, 그들이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요인인 ‘세월’이라는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 실제로 세월은 그 자신이 품었던 소박한 희망을 훌쩍 뛰어넘어 그의 평가를 높여주었다. 윌리엄스가 대리인에게 위의 편지를 쓴 지 50년 만에 《스토너》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상당히 뜻밖의 베스트셀러였다.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이 책을 내놓은 출판사들조차 어찌된 영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거의 전적으로 독자들 사이의 입소문만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가장 순수한 베스트셀러였다.


지난 3월에 이 소설의 포장지를 벗기던 기억이 난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이, 내게도 도저히 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책들이 온다. 그래서 때로는 선별과정이 잔혹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빈티지 윌리엄스’라고 적힌 커다란 띠지가 둘러진 새 문고판 소설이라니(내 담당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확 눈길을 끄는 이름은 아니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인가?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로완 윌리엄스? 책등을 살펴봐야지. 존 윌리엄스로군. 클래식 기타리스트인가? 영화음악 작곡가? 둘 다 아니었다. 이 책은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이미 세상을 떠난 미국인 작가가 1960년대에 발표한 소설이었다. 게다가 제목은 《스토너》. 흠. 모로코산 금과 콜럼비아산 금의 장점에 관한 열띠고 장황한 설명이 있으려나? 하지만 존 맥개헌의 머리말(당연히 추천사)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셈이다. 알고 보니 스토너는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다행스러웠다. 문체는 깔끔하고 조용했다. 하지만 어조는 조금 심술궂었다. 첫 번째 페이지를 읽다 보니 곧 두 번째 페이지가 되었고, 그것이 기쁨으로 이어져 서둘러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이처럼 독자의 내면에서 시작된 입소문은 밖에서도 입소문이 되어 친구들에게 책을 강권하게 하고, 자신이 직접 책을 사서 선물하게 만든다.


소설의 첫 번째 문단은 윌리엄 스토너가 평생 동안 학자였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는 1910년에 미주리 대학에 입학한 뒤 교수가 되어 195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자적인 태도의 가치와 목표가 이 소설의 주요 관심사인데, 학과 내의 야만적이고 오랜 내분이 중요 사건 중 하나로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 ‘학자 소설’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을 것이라고, 또는 붙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윌리엄스는 조금 순진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지나치게 희망적이었다고 할 수는 있다. 《도살자의 건널목》(1월에 빈티지에서 재출간할 예정)이 1870년대의 캔자스 변경마을을 배경으로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에 깊은 계곡에서 벌어지는 아메리카들소 사냥을 주요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서부’소설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소설은 역사적으로나 해부학적으로나 워낙 정확하기 때문에, 나도 예리한 칼과 말과 밧줄만 손에 넣는다면 아메리카들소의 껍질을 벗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하지만 그 전에 먼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녀석을 죽여주어야 한다). 《도살자의 건널목》이 아주 훌륭한 ‘서부’ 소설인 것처럼, 《스토너》는 아주 훌륭한 ‘학자 소설’이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아주 훌륭하다’는 말은 소설에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꼬리표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토너는 농촌 청년으로 처음에는 농업을 공부하다가 자기학과의 필수 과목인 영문학 강의를 듣게 된다. 학생들이 공부할 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두 편과 일흔세 번째 소네트를 포함한 소네트 몇 편이다. 성질 급하고 냉소적인 교수가 일흔세 번째 소네트를 설명해보라고 했을 때, 스토너는 말문이 막혀서 당황한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소네트의 의미는......이 소네트의 의미는......”뿐이다. 그런데도 그의 내면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난다. 의미를 이해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깨달음. 그는 자신이 붙잡을 수만 있다면 문학뿐만 아니라 삶의 자물쇠도 열어줄 뭔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장차 이해하게 될 그 뭔가에 앞서서 그는 벌써 자신이 인간으로서 깨어났음을 느낀다. 주위의 다른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친밀감이 느껴진다. 이 순간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변한다. 그는 문법에서 ‘경이’를 느끼고, 문학이 세상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바꿔놓는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어리석음이나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 많은 실망을 견뎌내고 삶의 끝에 이르렀을 때, 그는 학자의 삶만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문의 세계와 일반적인 세상 사이에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이해한다. 학문의 세계는 세상의 가치관이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게 가능한 한 오랫동안 막아서야 한다.


스토너는 참을성 강하고 성실한 흙의 아들이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도시와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윌리엄스는 인간의 서투름, 육체적 수줍음과 감정적 수줍음, 제대로 표현하는 재주가 없거나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해서 속내를 말하지 못하는 모습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들의 신혼여행도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를 때까지 이 실패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스토너도 살면서 좋은 일들을 겪기는 하지만, 그런 일들도 결말은 항상 나쁘다. 그는 가르치는 일을 즐거워하지만, 악의적인 학과장 때문에 학교에서 앞길이 막힌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한 달도 안 돼서 아내와의 관계가 실패작임을 깨닫는다. 딸을 몹시 사랑하지만, 딸은 그에게 등을 돌린다. 연애를 통해 갑자기 새로운 인생을 맛보지만, 사랑이 외부의 간섭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문의 세계가 세상 앞에서 약한 것과 마찬가지다. 마흔두 살 때 그가 바라본 삶은 “앞날에는 즐겁게 여겨질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아도 굳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소설이 끝나갈 무렵 그가 몇 가지 자잘한 승리를 거두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좌절된 사랑과 상실의 고통은 스토너의 참을성을 한계까지 시험했다. 어쩌면 그의 삶은 꽤나 실패작이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윌리엄스의 생각은 다르다.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던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주인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내가 보기에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너가 자신의 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훌륭하고 명예로운 의미의 ‘일’ 말입니다. 그는 일 덕분에 특정한 정체감을 얻었습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강조하는 부분에 대해 독자들과 의견을 달리할 때가 많다. 그렇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윌리엄이 놀란 기색을 드러낸 것이 놀랍다. 그 자신도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로델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몇 주 전 어느 날 오후에 내 원고를 타자기로 쳐주고 있는 학생(역사학과 3학년이고 상당히 평범한 학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에게 다가갔더니, 15장의 타이핑을 마무리하고 있던 그 학생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영원히 사랑해줘야겠습니다.”


《스토너》의 슬픔은 독특하다. 예를 들어 《훌륭한 병사》의 오페라 같은 슬픔이나 《신 삼류문인의 거리》의 괴로운 사회학적 슬픔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더 순수하고 덜 문학적이며 인생의 진정한 슬픔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독자들은 삶에서 슬픔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때처럼 소설 속의 슬픔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슬픔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적어도 독자들은 그 슬픔을 뒤로 미룰 수는 있다. 처음 《스토너》를 읽을 때 나는 대개 하루에 30~40쪽만 읽기로 제한을 두었다. 스토너가 또 어떤 일을 견뎌내야 하는지 보는 것을 내일로 미루는 편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출판사가 제안한 제목은 지금도 전혀 짜릿하지 않다(하지만 윌리엄스가 처음에 지었던 제목인 《빛의 결점과 사랑이라는 문제》보다는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책이 제목을 만드는 것이지, 제목이 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망각 속에 묻혔던 작품이 만족스럽게 발굴된 수준을 넘어섰다. 예를 들어 헨리 그린이나 패트릭 해밀턴의 소설이 ‘재발견’ 되었다면, 판매 그래프는 대개 잠깐 동안 혹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수평선으로 돌아간다. 《스토너》는 2003년에 빈티지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맥개헌이 로빈 로버트슨 사장에게 이 책을 추천한 덕분이었다. 그 뒤 2012년까지 10년 동안 이 책의 판매고는 4,863부였으며, 그 해 말에는 주문에 따라 책을 찍는 식으로 팔리고 있었다. 그런데 2013년 들어 11월까지의 판매고는 164,000부이다. 그 중 대부분(144,000부)이 6월 이후에 팔려나갔다.


여러 출판사들이 이 소설의 가능성을 주목하게 된 것은 이 소설이 2011년에 프랑스에서 느닷없는 성공을 거둔 덕분이었다. 그 뒤로 이 소설은 네덜란드에서 20만부, 이탈리아에서 8만부가 팔렸다. 이스라엘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독일에서는 이제 막 힘을 얻는 참이다. 윌리엄스는 1994년에 세상에 떠났지만, 그의 아내는 다행히 아직 살아서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인세를 즐기고 있다. 현재 번역출판권은 21개국에 판매되었으며, 중국에서 곧 출간될 예정이다.


《스토너》의 부활에는 묘한 점이 또 있다. 지금까지는 순전히 유럽(과 이스라엘)만의 현상처럼 보인다는 점. 브렛 이스턴 엘리스가 트위터에서 이 작품에 찬사를 보냈고, 톰 행크스도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이 소설에 호의적인 목소리가 드물다. 내가 미국 문단의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어떤 친구들은 이 소설도 윌리엄스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고 다른 친구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로리 무어는 조심스레 한정된 찬사를 보냈다. “《스토너》는 정말이지 흥미로운 현상이다. 훌륭한 책이고 엄청나게 슬픈 책이지만, 대부분의 미국 작가들은 이 책이 영국에서 성공을 거둔 것에 대해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미국 작가들은 이 책이 아름답고, 결함이 좀 있고, 내용이 흥미롭고, 걸작이라기보다는 소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반응의 차이에는 설명이 필요한데, 내가 설명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쩌면 유럽인들이 조용한 소설에 대해 미국인들보다 더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미국인들이 지금까지 《스토너》와 비슷한 소설들을 유럽인들보다 더 많이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런 소설이 언뜻 떠오르지는 않는다). 또는 이 소설에 ‘낙관주의’가 부족한 것이 미국 독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미국 문학에도 비관적인 작품들이 많지만, 비관주의를 그냥 받아들이기보다는 열심히 노력해서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이 이 나라의 이미지다). 또는 미국인들이 그냥 우리보다 뒤쳐져 있을 뿐이라서 곧 우리를 따라잡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소설가 실비아 브라운리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주인공의 과묵함이 내가 보기에는 전혀 미국인답지 않다. 미국이 배경인데도 그는 영국인이나 유럽인에 가깝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근본적으로 점잖으며, 수동적이라는 점이 그렇다....... 이 소설이 미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미국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미국은 큰 것을 지향하는 시끄러운 나라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을 삼가고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도 이렇게까지 과묵하고 슬프지는 않다....... 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스토너》에 술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 미국 문학에서 절제되고 금욕적인 인물들은 자신을 억제하고 실망을 받아들이기 위해 알코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싶다(카버나 리처드 예이츠가 생각난다).”


미국의 반응이 시큰둥한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이 작품이 ‘소품’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츠비》나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처럼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상당히 좋은 소설”이라는 윌리엄스의 표현이 옳다고 본다. 이 소설은 좋은 작품이다. 주제가 탄탄하고 무게가 있으며, 읽고 난 뒤에도 마음속에 계속 남는다. 또한 독서와 공부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진정한 ‘독자의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문학적인 깨달음을 얻은 순간, 문학의 마법이 지닌 의미를 처음으로 아련하게나마 이해하고 그것이 삶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독자들은 또한 독서를 하고 그 내용을 곰곰이 되새기며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내면의 신성한 공간이 《스토너》에서 말하는 ‘세상’에게 점점 위협받고 있음을 알고 있다. 오늘날의 세상은 정신없이 개인의 삶을 간섭하고 끊임없이 감시한다. 어쩌면 이런 불안이 이 소설의 부활을 일궈낸 요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이 부활한 이유는 여러분이 반드시 직접 찾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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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아무 생각 없이 올해의 작품들을 고른 뒤에 그 목록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별다른 건더기는 없으니까 패스하셔도 무방합니다.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서인지 뭔가 결산하기도 늘 어렵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나오게 마련이고, 어떤 데이터라도 모종의 결론을 보여주긴 합니다. 리스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취향이 편중돼 있습니다. 서점 MD라는 직책을 떠나서 그냥 한 명의 애호가 입장에서 뽑은 작품들이니까요. 그래서 발간/발매일보다는 제가 작품을 접한 시점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다만 재발간된 책의 경우에는 기준이 모호합니다. <의적 메메드>는 리스트에 있는데 어째서 그보다 더 좋아하는 <우주만화>는 해당되지 않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우주만화>를 비롯한 칼비노의 기 출간작들은 제 마음 속에서는 늘 가까이에 있었나 봅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추측일 뿐입니다만.

그런가하면 스티븐 킹의 <조이랜드>는 결코 그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나도 조이랜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추가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뭘 읽으면서 '오 그거 나도! 거기 나도!' 라고 생각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조이랜드>는 소중한 기억을 안겨줬습니다. 음. 그리고 <이아생트>는 어떤 객관적인 추천 목록에도 오르기 어려운 소설이죠. 오직 뉘앙스만이 대기처럼 황무지를 감싼 채 꿈틀거릴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반바지 당나귀>를 <이아생트>와 함께 읽는다면,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듯한 이 '연작' 사이의 깊은 골짜기를 거닐어보는 것만큼 어둡고 또 만족스러운 일도 드물지 않을까... 이런 식입니다. 이 리스트는 모범적인 추천 목록이 아니더군요. 그래서도 안되겠지만요.

음. 예년에 비하면 취향이 좀. 굳었습니다. 딱딱해졌어요.

음... 네.

제 경우, 시간이 갈수록 어떤 한 분야에 깊이 다가가기가 점점 더 어렵습니다. 조금씩 더 얼어가는 땅을 파는 기분입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삽날 따위는 땅에 박을 수조차 없게 되죠. 도구를 곡괭이로 바꿔야 할 때인데 이게 더 무겁습니다. 요령도 삽질과는 달라서 새로 익혀야 합니다. 그러나 땅을 파려면 그 수밖에는 없습니다. 독서와 지성에 대해서라면 이제 앞으로는 영영 더 추워질 날들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지성이 중지하는 시점을 죽음이라고 가정할 때, 이제 남은 날들은 일말의 예외 없이 그 겨울의 중심으로 걸어들어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역시 쓸쓸합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삽을 들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같은 양의 성취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더 무거운 도구와 더 많은 모닥불들을 더 추워진 세계 속에서 구하고 주워야 합니다. 그런 행동과 관찰이 지혜를 안겨 준다고들 말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미지수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좋기는 하겠지만요. 그래서 저는 지혜가 일종의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모닥불이랄까. 늘 필요한 것이지만 땅을 대신 파 주지는 않습니다...


모두 복된 겨울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목록은 모두 무순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작품들은 링크를 붙여 놨습니다.

아마 분명히 빠뜨린 게 있겠지요. 기억이 안 나는 건 그 작품이 인상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던 시절도 있습니다만, 언젠가부터는 다 제 탓입니다. 매우 치소서.





-올해의 음반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1권 & 2권 / 페터 힐(피아노) / 국내 미발매(Delphin)

말러 교향곡 2번 / 제임스 레바인 지휘 / 빈 필하모닉 / Orfeo

찰스 로젠 콜롬비아 & 에픽 박스 세트 / 찰스 로젠 / SONY

리히테르의 슈베르트 실황 세트 /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 / Melodiya

바흐 푸가의 기법 / 블라디미르 펠츠만 / Nimbus

아이브스, 조지 크럼 가곡집 / 잰 디규타니(메조소프라노), 길버트 칼리쉬 (피아노) / Bridge

스카를라티 주제에 의한 변주곡 프로그램 / 마탄 포랏 선곡 및 연주(피아노) / MIRARE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 아니 피셔 / Hungaroton

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2, 3, 5, 9번 / 아나톨 우고르스키 / 국내 미발매(DG-Japan)

슈만 다비드 동맹 무곡 외 / 아나톨 우고르스키 / 국내 미발매(DG)

베토벤 '자작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소나타 '월광' '템페스트' / 아나톨리 베데르니코프 / Denon(국내 미발매??)

바흐 파르티타 및 영국 모음곡 전곡 / 아나톨리 베데르니코프 / 국내 미발매(Venezia)

루이지 노노 '힘과 빛의 물결처럼' 외 / 헤르베르트 케겔 지휘 / 아마 국내 미발매(King Records 또는 베를린 클래식스)

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1집 / 베른트 글렘저 / NAXOS



              


             







-올해의 영화들


그리즐리 맨 /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

솔라리스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올해의 책들


어린이 문학의 역사 / 세스 레러 지음, 강경이 옮김 / 이론과실천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프루스트와 기호들 / 질 들뢰즈 지음, 서동욱-이충민 옮김 / 민음사

숨겨진 풍경 /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반바지 당나귀 /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민음사

이아생트 / 앙리 보스코 지음, 최애리 옮김 / 워크룸프레스 **<반바지 당나귀>와 함께 읽으면 효력이 배가됨

제르미날 /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옛 거장들 /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연순-박희성 옮김 / 필로소픽

의적 메메드 /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음악의 기쁨 (전 4권 중 아직 3권까지만 나옴) / 롤랑 마뉘엘 & 나디아 타그린 지음, 이세진 옮김 / 북노마드

리슨 투 디스 / 알렉스 로스 지음, 장호연 옮김 / 뮤진트리

레트로 마니아 / 사이먼 레이놀즈 지음, 최성민 옮김 / 작업실유령

미시시피 미시시피 /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RHK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원중 옮김 / 아카넷

꿈 /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수아 옮김 / 워크룸프레스

킹 /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 전집) /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전국노래자랑 / 변순철 사진집 / 지콜론북

드러누운 밤 /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 창작과비평사

성소녀 / 쿠라하시 유미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작과비평사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중단편집) /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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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4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26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4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6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기새 2015-04-07 15:36   좋아요 0 | URL
으음..ㅠㅠ 남자분의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 다시 도전해봐야겠어요 홍홍..

2015-04-14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14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예약판매라는 개념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후보였을 것이다. 어떤 내용의 컨텐츠인지 확인할 수 없더라도 그 작가에 대한 신뢰만으로도 기꺼이 구입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약판매가 태어났다. 일종의 팬덤 행위다. 컨텐츠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약판매는 재화를 지불하고 컨텐츠를 구입한다는 일반적인 문화 상품 거래의 상식을 벗어나 있다. 그때 컨텐츠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 재화와 교환되는 것은 바로 구매자 자신의 애정과 기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책을 기다리며 자신이 이미 그 책의 소유권을 갖고 있음을 떠올리는 기쁨과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책과 만나고 그 소감을 피력할 수 있는 선제적인 위치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 모든 시나리오들을 포함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재확인하는 즐거움. 그것은 소비를 통한 (자기) 생의 찬미다. 기다릴 때부터 시작된 기쁨이란 구매자가 자신을 위해 쓰는 희망의 발문인 셈이다. 따라서 예약 구매자는 합당한 소비를 한 것이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존재하지 않는 발문을 갖고 있다. 단지 가치 교환이라는 측면에서 상식적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상식은 사랑 안에서는 쓸모가 없다.


성공적인 예약판매가 몇 차례 이어지면서 예약판매를 희망하는 도서도 늘어났다.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성이 있는 책들이 뛰어들었다. 그런 책들은 순전한 애정을 피력할 수 있는 독자층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이벤트를 시도했다. 예약 구매할 때만 적립금을 더 준다거나 특별한 선물을 준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 작가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일단 새 책의 평가를 기다려볼까 하고 망설이던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어차피 살 생각 갖고 있지 않으셨나요, 지금이 찬스인데 혹시 다시 생각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예약판매에는 선물이 추가되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애정은 선물을 통해 벌충되었고 그 책들의 예약 구매는 가까스로 합당한 소비의 반열에 올라섰다. 또는 그렇다고 받아들여졌다.


뒤이어 마지막으로 잘 팔리지 않을 확률이 높은 책들이 예약판매를 시도했다. 선물을 준다고 해도 기본적인 애정을 구할 수 없는 책들이므로 예약판매는 실질적으로 판매 발생 효과가 없다. 서점도 알고 있고 출판사도 알고 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실제로 책이 발매되기 전에 서점에 노출시켜 좀더 오래 보이고 싶다는 소박한 열망이다. 출판사 미팅 때 그런 작은 열망들을 들으면 나는 곧바로 조삼모사의 가능성을 이야기해 준다. 미리 등록되면 정작 책이 실제로 나왔을 때에는 신간 목록의 아래쪽으로 내려가 버릴 거라고, 그건 확실한 리스크라고 말한다.


주문하고 받아볼 때까지 2주 가까이 걸리는 상태로 처음 등장하는 게 옳은 전략일까. 독자가 정말로 이 책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까. 존재하지 않는 컨텐츠 대신 어떤 장점이 독자들로 하여금 돈을 내도록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정말로 그걸 몰랐던 마케터는 앉은 자리에서 고심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마케터들이 더 많다. 그러나 예외는 거의 없다. 예약판매는 진행되고 그 책들은 거의 잘 팔리지 않는다. 분야별 새 책을 열람할 때마다 새로이 실패한 예약판매 도서들이 목록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안다. 할 수 있는 게 예약판매뿐이기 때문이다. 새 책이 나왔으니 뭐라도 해야 했고, 여러 사정을 감안한 뒤에 '그래도' 예약판매라도 하기로 결정했음을 나도 알고 있다. 마케터와 내가 미팅을 할 때에도, 그 전에 메일을 주고받을 때에도 우리는 실패를 예감하고 있다. 혹시라도 터질까 로또를 긁는 심정과는 다르다. 실패가 뻔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마음은 이미 합당하지 않다. 그곳은 최소한의 합리성도 없는 부조리의 영역이다. 마케터와 나는, 또는 나는 그저 애도하는 것이다. 받아들여지지 못할 운명을 안고 갓 태어난 책과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서로를.


대학 다니던 시절, 어느 날 후배 한 명이 자취방에 찾아왔다. 후배는 술을 약간 마시고 왔다고, 이런 얘기를 맨정신으로 하기가 어려웠다고 말문을 열었다. 나는 커피를 타주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후배는 그때부터 울었다. 자기는 사진을 잘 찍고 싶은데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숫기가 없어 교수들을 찾아가지도 못하고 기껏 동아리 학습부장을 찾아오는 정도의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작업을 계속 하려면 천재적이거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거나 연줄을 잘 타는 능력 중에 두 가지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 앉아서 가만 듣고만 있었다. 안되는데 하고 싶어 하는 바보 같은 마음, 완전히 부족한 재능을 가진 자신에 대한 회의가 흘러내렸다. 태어나서 잘 하고 싶은 게 이거 딱 하나인데 이거 그냥 잘 할 수 없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후배는 얼마 전에 완성했다는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다. 조악한 문장과 진부한 사진으로 가득한 의미 없는 작업이었다. 후배 자신도 알고 있었다. 쓰잘데기 없는 의지의 결과물. 아무데도 소용되지 못하고 그저 살아있고 하고 싶다는 의지로만 남아있는 앙상한 출력물들은 그해 내가 본 가장 감동적인 작업이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어떤 책의 예약 판매 요청도 재검토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 하자. 어쨌든 태어나버렸으니까, 태어나버렸고 시작'되어' 버렸으니까 우선 할 수 있는 단 하나를 일단 하자. 우리 자신을 위해 하자. 우리는 그저 열심히 하고 마음에 새긴 뒤에 떠나보낼 수 있을 뿐이다. 탁 털고 잊어버리느니 안타까워하면서 떠나보내는 것이다. 직업과 업보의 업이 괜히 같은 한자일까. 책 파는 업장을 짊어진 사람에게 새 책은 다 아이이고 별인 걸. 그러니 태어난 것들에게는 예의를 갖추어 헤어질 수 있게끔 하자.


오늘 결국 예전에 잃어버린 최승자의 첫 시집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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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l 2014-06-2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슬퍼.... 씨.. 슬퍼.... 슬프고말았다..

외국소설/예술MD 2014-06-26 15:43   좋아요 0 | URL
감사..죄송..합니다.;;

♥조현준&조하은♥ 2014-07-10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일즈시리즈도 박스세트가 나왔네요.저번 PKD 사태의 재판이군요. 이번에도 MD님께서 나서주세요.한국에서 SF팬은 힘드네요. 늦게사자하면 절판걱정, 그래서 나오는 족족사면 땡처리 반값할인에 이벤트 불이익까지....

외국소설/예술MD 2014-07-11 11:22   좋아요 0 | URL
지난번 박스 증정 이벤트가 배송 관련 등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서 이번에는 좀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게 되면 공지하겠습니다.

달문 2014-12-01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약판매라는 말이 이렇게 슬픈 거였나요.. `태어난 것들에게는 예의를 갖추어 헤어질 수 있게끔 하자`.. 태어나자마자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요즘이라 더 와닿네요ㅠ.ㅠ

외국소설/예술MD 2014-12-17 17:1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책을 만드는 건 때에 따라서는 뭔가.. 네. 이미 마음이 쓸쓸해진 채로 시작해야 하는 책들도 있죠. 책 만들고 계시는군요. 아마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습니다만. ㅎㅎ 잘 지내시기 바래요. 좋은 겨울이기를.
 

 

클릭하면 좀 커짐

 

 

 

그날은 간만에 회사를 쉬는 날이었다. 대낮이라 낯설어진 동네를 미적지근한 걸음으로 돌아다녔다. 거리는 더웠다.

 

카페에서 저 사진을 찍었을 때쯤 트위터를 보니 모리스 샌닥이 죽었다고들 했다. 그렇구나. 카메라 LCD로 방금 찍은 장면을 다시 보고, 또 보고, 샌닥이 죽었다는 말을 자꾸만 생각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무 상관 없는 장면이었다. 차라리 숀 탠 같잖아? 그렇지만 샌닥이었다. 마침 우연이 사진 위로 날아와 앉았으니까. 어차피 사진 위에 얹혀진 빛들이 모두 그 순간 우연히 모여든 것들이라면, 그때 마침 모리스 샌닥이 죽었다는 우연도 사진 속에 마땅히 포함시켜야지 않을까. 사진 속 건물 옥상은 작은 보트처럼 항해 중이었다. 그 여정의 끝에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그간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종종 발견했다. 주로 바다가 있었고, 쓸쓸했고, 그렇지만 실낱같은 연대 같은 게 남아 있어야 했다. 발견하는 일이 드물어서 한번 마주하면 오래도록 머물러 돌아다니곤 했다. 정신 똑바로 차릴 필요 없이 한쪽 발은 꿈 속에 담근 채 노곤히 움직이기 좋은 순간들. 샌닥의 그림책을 읽으면 그런 기분이 든다. 반쯤은 꿈인 나라. 반쯤만 꿈인 나라. 하나 뿐인 출구 앞에서 막막한 현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닳아가는 꿈들이다.

 

나는 샌닥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 어떤 다른 이론가나 소설가들에게 진 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지금이 좋다'라는 느낌이 들 때, 그것과 가장 닮은 게 샌닥의 책들이었니까. 그 기억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다.

 

두 장의 사진을 추가한다. '샌닥의 순간들' 중의 일부다. 부디 안녕히 가셨기를.

 

 

 

 

 

 

 

이건 작년에 발견한 나라

 

 

이건 유조선이 엎어졌던 그 해, 태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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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12-1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릭하면 좀 커짐. ㅋㅋㅋㅋ 아 재밌다.

외국소설/예술MD 2012-12-14 11:31   좋아요 0 | URL
저는 잘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흐뭇.
 

 

 

곧 나옵니다. 이 하수상한 시절에...

 

 

 

 

p.s: 덤으로 이 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 책입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을 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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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꼬치 2012-03-31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 책은 <마이볼>입니다. 메롱~

외국소설/예술MD 2012-03-31 12:26   좋아요 0 | URL
어른들을 위한 야구책도 얼른 보시도록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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