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는 쉬었습니다.

이 코너를 찾아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적립금 드리는 이벤트는 여기. 1/31 까지입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MD의 감상평: 파키스탄 남자를 주인공 삼아 9/11과 제3세계의 삶을 그려내는 이야기가 얼마나 낭만적일 수 있을까.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바로 그런 소재의 낭만적인 소설이다. 슬픈 사랑과 좌절된 꿈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는 각각의 사건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이루어져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부드럽게 끌어들인다. 게다가 작품 전체가 주인공의 발화(상대방의 반응은 드러나지 않는다)만으로 구성되어서 날렵하고 산뜻하다. 만듦새가 좋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섣불리 따져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왜 자신이 이렇게 되었냐고 묻지 않는다. 그래서 비극은 정치적인 혐의 바깥에서 온전히 세련된 모습으로 독자들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그러면 독자들이 그 예쁜 슬픔을 끌어안고 '당신은 왜'라고 먼저 묻게 된다는 걸, 이 영리한 소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분들께 추천: 질질 짜지 않는 러브스토리 찾습니다 / 빨리 읽히는데 생각할 꺼리를 안겨주는 소설 찾습니다 / 근대소설 느낌 안 나는 제3세계 문학 찾습니다 / 소설 좋아하는 친구에게 추천할 신작 찾습니다

 

이런 분들은 주의: 그러니까 미제국주의자놈들이 역시 나쁜 거죠? / 아니 그러니까 이 중동 테러리스트 놈들은 답이 없다니까요 / 외국인 노동자가 토종 한국인을 위협하고 있다 / 거대 서사 중독자

 

 

 

 

 

유빅

 

 


 

 

MD의 감상평: 이건 이미 유명한 소설이잖아! 음. 그렇다. <유빅>은 필립 K. 딕의 작품 중에서 베스트라고 봐도 좋을 유명작이다. 여기 다시 소개한 이유는 이상하게 그걸 몰라봐주는 사람들이 많아 보여서다. 물론 <유빅>은 신나게 읽는 엔터테이너는 아니다. 초반에 삽입된 맥거핀은 반칙에 가깝고, 등장인물들이 역경을 극복하는 자발적인 액션은 보기 힘들다. <유빅>은 PKD가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실제 현실과 감각되는 현재 간의 간격'에 대한 인지부조화 실험이며, 그 부조화의 틈바구니에서 신비의 형태로 출현하는 '구원'을 동시대의 감수성을 이용해 시적으로 형상화한 걸작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시를 장편소설로 확장한다면 나는 그게 <미국의 송어낚시>가 아니라 <유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마스터피스다.

 

이런 분들께 추천: 카프카의 후계자를 찾습니다 / '합법 마약'이 무슨 소린지 알고 또 좋아함 / 본격 포스트모던이 멀미가 나서 중간 기착지를 찾는 분 / SF를 무시하는 친구에게 선물하세요

 

이런 분들은 주의: 장르소설이 흰소리 지껄이는 거 딱 싫다 / 그럼 커트 보네거트 같은 느낌인가? (아님) / 와 초능력자들이 막 나와서 싸운다니 재밌겠는걸

 

 

 

 

 

 

이력서들

 

 


 


MD의 감상평: 블랙 유머가 도처에서 출현하지만 전체적으로 삭막하다. 마치 강제로 탈색된 게오르게 그로스의 그림 같다. 희안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부조리한 전개가 펼쳐지지만 그 부조리는 불안과 긴장을 유발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극복이나 추구할 대상으로 격상되지 못한다. 역사의 무게에 눌려 찌그러진 인물들이 부조리한 상황을 부조리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서사 기법들이 동원되지만 그 재기넘치는 시도들조차 이 방향성 없는 중성적인(아이히만적인?) 부조리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함으로써 좌절의 침묵을 강화시킨다. 끊임없이 떠드는 이 소설은 아연한 침묵을 향하고 있다. 드라마-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는, 사건의 총합으로써의 역사 소설, 우리도 이런 게 많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 분들께 추천: 뉴 저먼 시네마나 그 비슷한 건조하고 쓸쓸한 영화 애호가 / 전범국의 부조리 문학은 프랑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궁금하신 분 / 불순한 감정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다크포스 컬렉터

 

이런 분들은 주의: 로맨스다운 로맨스 없습니다 / <변신> 이외의 카프카를 읽어낼 수가 없다 / <호밀밭> 이외의 샐린저를 이해할 수가 없다 / 그것봐 내가 세상은 엉망이랬지!

 

 

 

 

 

 

브랫 패러의 비밀

 

 


 


MD의 감상평: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돌아오면서 그에게 쏟아지는 의혹과 그 진실을 다룬 이야기. 아마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 중에 가장 조용한 작품일 것이다. 조세핀 테이는 거의 우아할 정도로 차분하다. 실종자의 복귀라는 현상을 둘러싸고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는 모습은 투명한 거미집이 조용히 완성되는 모습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거미이자 동시에 희생양인, 독자들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범죄자가 있다. <브랫 패러>는 빅토리아 시대 드라마의 유산을 이어받아 심리 서스펜스물로 변환시킴으로써 미스터리가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삶의 일부임을 증언한다. 이것은 중요한 성취다.

 

이런 분들께 추천: 제인 오스틴이 미스터리 소설을 썼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 코지 미스터리 애호가 / 연극적 소품 애호가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류 심리 서스펜스물의 기원을 찾아서

 

이런 분들은 주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시시하던데? / 피 없는 미스터리는 선지 없는 순대 / 하드보일드 간지 편식쟁이 / 메타포 및 알레고리 중독자

 

 

 

 

 

음..가능한 2월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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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새 2013-01-08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 넘흐 재밌는 서평입니다. 저의 서재에 이렇게 쉽게 몇 권을 추가하시다니, 능력자십니다. sunshine같은 책 소개.

외국소설/예술MD 2013-01-09 09:24   좋아요 0 | URL
댓글 하나하나가 제게는 썬샤인입니다. 출근하자마자 기뻐요. ㅎ

아기새 2013-01-09 12:23   좋아요 0 | URL
저 여기 consult 좀..

유빅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끌리는데, 대체 저는 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 1권을 300페이지나 읽고나서도 몰입이 안되어 더 이상 진도가 안나가는지라 주저되네요..☞☜ kite runner도, 천개의 빛나는 태양도 별 감흥없이 후딱후딱 읽고는 평이한 서사에 실망. 흙흙.
소위 '제 3세계 문학'으로 맘에 드는 분은 이사벨 아옌데 님과 위대하신 가르시아 마르케스 님 뿐 ㅜㅜ
어케... 사야할까요? 소설(을 끝까지 못 읽는 장)애자 임뮈 으흙으흙

외국소설/예술MD 2013-01-09 14:27   좋아요 0 | URL
아 네 예를 드신 두 작품.. 파묵이나 호세이니하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좀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작가 소개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작가는 미국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았고, 실제로 미국 소설의 느낌이 많이 납니다. 작품 배경의 상당 부분도 미국이고요. 거대 서사가 아니라 '베스트 아메리칸 숏 스토리즈'같은 데 수록될 법한 느낌이니 한번 골라 보셔도 되지 않을까 해요. 미리보기로 우선 한번 판단해 보시죠. ㅎㅎ

jj305 2013-01-2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넘 흥미진진하게 잘 봐서... 이번엔 브랫페러의 비밀에 도전했는데 넘 재미있네요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고있어요... ^^ 감솨

외국소설/예술MD 2013-01-29 13:10   좋아요 0 | URL
아 둘다 재미있는 소설이죠. 잘 고르셨습니다. ㅎㅎ 스토리텔링이 좋은 물건 찾으시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