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헤헤헤후후후후하하하하하

 

 

1

 

syo는 시력이 더럽게 나쁘다. 그 덕에 안경을 쓰면 가뜩이나 앙증맞은 눈 면적이 0.666배로 축소된다. 그에 따라 호구지수는 30배 증가한다.

 

그렇지만 안경을 벗으면 세상 뵈는 게 없다. 웃어른을 봐도 인사할 줄도 모르는 예끼-이놈이 된다. 사실 봐도 안 한 게 아니라 안 봬서 못한 것인데요…….

 

오늘 안경을 새로 맞췄는데, 눈알이라고 딱 두개 달고 있는 이놈들이 그간 더 열심히 탈선의 길을 걸은 듯했다. 집 나간 초점 찾아요. 흐린 윤곽 속의 그대 찾습니다.

 

무심결에 와, 내 눈알 정말 노답이다- 라고 말했는데, 이 안경사 양반이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건 파는 이의 침묵은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긍정인 법, 전문가 시점에서도 내 눈알은 난해한 문제였던 듯하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많은 세상에 내가 하나 더 보태는구나…….

 

안경테가 아무리 비싸고 아무리 트렌디하면 뭐하겠노, 눈알이 소실점이 되는 마당에…….

 

 

 

 

2

 


사르트르는 1933년에 후설에 대해 알게 된다고등사범학교 때의 친구인 레이몽 아롱이 1년 동안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사르트르에게 후설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이다그들은 몽파르나스 가에 있는 한 바에서 만났는데아롱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보게친구자네가 현상학자라면 이 칵테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네그리고 그것이 철학이라네!” 그 자리에 있었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가 이 말을 듣고 흥분하여 창백해졌다고 술회한다자리가 파하고 사르트르는 곧장 서점으로 가서 레비나스가 쓴 후설에 대한 책을 구입했고곧 베를린 프랑스 연구소에 가서 1년 동안 후설에 관한 연구에 전념했다.

강미라사르트르 vs 메를로퐁티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의 탁월함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기쁜 마음이다. 이 훌륭한 책은 저것과 같은 대목을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 부분은 또한 현상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선명하고도 훌륭한 스케치를 제공하고 있고, 동시에 현상학이 실존주의 철학의 한 근원이 되는 이유에 붙인 납득할 만한 설명이기도 하므로, 좀 길지만 긴 대로 옮기기로 한다. 현상학을 전혀 모르는 서친님들, 몇 년 전의 syo처럼 후설(Husserl)이 한자(이를테면 後說 뭐 이런 거)가 아닐까 생각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테이블에 동석한 세 번째 남자가 전하는 소식에 흥미를 느낀다이 세련된 남자는 사르트르의 오랜 친구인 레몽 아롱으로 고등사범학교의 동창이다다른 두 사람과 마찬기지로 아롱은 겨울 휴가차 파리에 와 있다하지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프랑스의 지방 도시에서-사르트르는 르아브르에서보부아르는 루앙에서-교편을 잡고 있던 반면아롱은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있었다아롱은 지금 친구들에게 거기서 접한 현상학phenomenology이라는 리듬감 있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철학에 관해 말하는 참이다이 단어는 영어로든 프랑스어로든 긴 단어지만 우아하게 균형이 잡혀 그 자체로 약강 3보격의 운율(pheno·meno·logy)을 이룬다.

  아롱이 전하는 말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전통적인 철학자들이 흔히 추상적 공리나 이론부터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독일의 현상학자들은 매 순간 스스로 자신이 경험한 삶에 직접 접근하려 한다그들은 플라톤 이후 철학을 유지해온 퍼즐들즉 어떤 것이 실재하는 건지 아니면 환상의 편린들일 뿐인지혹은 타인들도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혹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등의 물음들은 무시한다대신에현상학자는 이런 질문을 하는 모든 철학자가 이미 대상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 던져졌거나최소한 대상들의 외연 혹은 '현상phenomena'('현시되는 사물'이라는 의미의 희랍어에서 유래)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그러니 현상을 마주하는 것에 집중하고 그 밖의 것은 제쳐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예전의 퍼즐들을 영원히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이를 그대로 괄호 안에 묶어둔다면 철학자들은 더 현실적인 문제들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상학자들의 선도 사상가인 에드문트 후설이 외친 구호는 "사물 그 자체로!"였다사물을 휘감고 있는 해석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고 특히 대상이 실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의미다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에게 보이는 대로 그것을 바라보고 최대한 정확히 그것을 설명하라는 뜻이다또 다른 현상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는 여기에 자신의 해석을 더했다그는 역사를 통틀어 철학자들이 부차적인 질문에 시간을 낭비하느라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고 있었다고 말한다그것은 바로 존재에 관한 물음이다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당신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만일 먼저 이런 물음이 없다면 어떤 것도 소용없는 짓이라고 그는 주장한다다시 한 번 그는 현상학적인 방법론을 권한다지성으로 쌓은 잡동사니들은 무시하고 사물에 집중해 그것들이 스스로 당신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하라.

  "그러니까 작은 친구야", 아롱은 사르트르를 학창 시절부터의 애칭으로 부르며 말했다. "만일 자네가 현상학자라면 이 칵테일에 대해 말하는 순간 거기서 철학이 만들어진다는 뜻이지!“

사라 베이크웰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12-14

 

핵심이 되는 두 문장만 비교해 보자.

 

-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 이보게, 친구. 자네가 현상학자라면 이 칵테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네. 그리고 그것이 철학이라네!

- 레몽 아롱(Raymond Aron) : "그러니까 작은 친구야, 만일 자네가 현상학자라면 이 칵테일에 대해 말하는 순간 거기서 철학이 만들어진다는 뜻이지!“

 

음, 내가 사르트르라면 레이몽보다는 레몽하고 더 친하게 지냈을 것 같다. 작은데 작다고 해서 빡치긴 해도. syo르트르를 베를린으로 보내려면 말발이 레몽 정도는 되야지, 레이몽 가지고는 좀 힘들겠다.

 

 

 

3

 

실존주의 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이번만큼은 3H를 피할 수 없겠다고 느꼈다. 널리(?) 언급되는 3H란 다음과 같은 세 선생님을 말한다.

 

1H : 헤헤헤헤헤헤헤헤겔

2H : 후후후후후후후후설

3H : 하하하하하하이데거

 

정말 이름부터가 얄미운 선생님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1H 선생님이 제일 얄밉게 웃는다. 쪼매 읽어본 바, 이 선생님들에 대해서라면, 준비운동으로 각기 다음과 같은 책들을 권할 수 있겠다.

 

 

헤쌤


헤겔 / 피터 싱어 지음 / 노승영 옮김 /교유서가 / 2019


저자 스스로 이 책으로 부족하다고 시인하고 있다


다시, 헤겔을 읽다 / 이광모 지음 / 곰출판 / 2019


그나마 쉽기로 따지면 요 책도 썩 괜찮지만


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 / 한자경 지음 / 서광사 / 2009


헤쌤의 주저라 할 수 있는 <정신현상학>을 읽기 위해선 요 책이 좋을 수 있다. 한자경 선생님은 뭐랄까, 쪽집게 입시 강사 스타일의 도식을 이용한 핵심정리에 매우 강하다. 칸트 읽을 때 한자경 쌤 덕을 많이 보았다.

 


정신현상학 강독 1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전대호 지음 / 전대호 옮김 / 글항아리 / 2019 


실은 얘한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전 5권 예정이라고 한다.




후쌤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 박인철 지음 / 살림 / 2013


이게 얇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나마 알아먹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현상학에 대해 좀 아는 듯 보이는 어느 독자의 혹평도 달려 있다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지음 / 박지영 옮김 / 한길사 / 2017


그래서 안정적으로 이 책을 추가로 권한다. 그렇지만 갑자기 난이도가 훅 뛰는 느낌은 있다. 고 한전숙 선생님의 현상학 책이 입문서로 최고라는 전설 같은 썰이 돌지만, 구할 길이 없다.

 

 

하쌤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7


일단 읽힌다는 이유에서 이 책을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 박찬국 지음 / 그린비 / 2013


그러나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저 책의 상위호환 같은 요 책을.

 

 

 

 

 

--- 읽은 ---

+ 히쇼의 새 / 오노 후유미 : 187 ~ 379

+ 드로잉 피직스 / 돈 레몬스 : 201 ~ 351

+ 시몬 드 보부아르, 익숙한 타자 / 우르술라 티드 : 102 ~ 265

 

 

 

--- 읽는 ---

=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 제이컵 솔 : ~ 69

= 지금 당장 경영학 공부하라 / 김태경 : 138 ~ 272

= 읽거나 말거나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125 ~ 279

= 자본론 공부 / 김수행 : ~ 137

= 프란츠 파농, 새로운 인간 / 프라모드 K. 네이어 : 101 ~ 193

= 사르트르 vs 메를로퐁티 / 강미라 : ~ 75

= 올리브 키터리지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1/617 ~ 1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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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9-10-04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시력이 더럽게 나쁜 이가 시력이 더럽게 나쁘다는 사람의 글을 눈을 찡그려 가며 읽었습니다.
- 한때 열심히 생각하고 했던 실존주의라는 단어가 반가웠지만, 그 오랜 세월의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꼈습니다.
- 3H 선생님들에 대한 책 추천은 무척 고맙습니다. 하나 하나 일단은 보관함에 담아봅니다.
- 언젠가 다시 실존주의에 빠질 날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이 글을 읽은 이후로 다시 실존주의 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음을 깨닫습니다.
- 레이몽과 레몽에 대한 평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 늘 고맙습니다!

syo 2019-10-04 22:52   좋아요 0 | URL
3H가 실은 Hard, very Hard, ultimately Hard의 약자가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범인의 머리로 따라가기 너무 어렵네요 ㅎㅎㅎㅎ
제가 늘 고맙스니다, 감은빛님^-^

페넬로페 2019-10-04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설이 철학자의 이름이었어요?
저는 무슨 무슨 주의자들이 이름붙인 개념인줄 알았어요**
북플에서 계속 후설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한번 검색해봐야지 했는데
아직 못했거든요 ㅎㅎ
아무튼 철학자, 후설!
배우고 갑니다**

syo 2019-10-04 22:53   좋아요 1 | URL
저도 실은 국어 시간에 배운 전설모음이니 후설모음이니 하는 것들이 생각났었답니다.
책 검색해보면, 뜻밖에 중요한 책들이 거진 다 번역되어 들어와 있습니다.
저도 놀랐네요 ㅎㅎㅎ

다락방 2019-10-04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읽고 있어요?? 😱

syo 2019-10-04 22:53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ㅎㅎ
심심할 때 한 편씩 한 편씩 읽고 있어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전작할까 싶어서요.

그냥 2019-10-04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발 눈을 아끼세요,ㅠㅠ
이럼써 나도 뭔가를 읽고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 (누군가는 눈을 학대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눈에 문제가 발생해서 수술을 하고 나니 이게 아닌데 하면서 님의 글을 또 읽고있네요.
보르헤스를 닮으면 안됩니다.ㅠㅠ

반유행열반인 2019-10-0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경...작은 눈을 더 작게 만드는 안경...벗고 렌즈 끼면 얼굴이 더 못 되게 보이는 거 보니 안경은 나름 고마운 액세서리였어요.
대학원 입시 면접 때 교수들이 학문/이론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물어서 저는 안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면서 비유와 썰을 풀기 시작하자마자 뭐래 바보가 하는 표정으로 안 듣고 딴청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이미 입학은 하되 졸업은 못할 바보의 운명이 정해졌겠지요...온갖 철학자들이 날아다니는 syo님 글 보면 왜 그때 그 교수님들 표정이 생각나죠...뭐야 이 바보...하는... 저는 잘 못 알아듣겠는 분야를 끈질기게 파는 syo님의 독서 여정 존경합니다. (그와중에 고등학교 때 일기를 보면 철학과나 사학과를 지망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어 STAY!!!를 외치는 미래의 저입니다...정말 다행이죠...)

syo 2019-10-05 13:41   좋아요 1 | URL
어릴 적부터 안경이 되게 싫었어요. 못생겨지는 거야 뭐 애초부터 지킬 만한 미모가 없었기 때문에 아쉬운 게 없는데, 하필 그 못생김이 호구로운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굉장히 유감이었던 것이죠.....

저도 그 학교 대학원 면접 봤었는데요. process bottleneck 현상과 그 해결책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그러더라구요. ENGLISH로요. 광탈했습죠. 졸업과 무관, 합격하신 반님이 난님인 겁니다.

저는 철학자나 철학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 쉬운 책과 어려운 책, 더 어려운 책을 식별할 만한 ‘여유시간‘이 있는 것이 경쟁력이었던 것인데, 이제 곧 그조차 난망해지겠군요......

반유행열반인 2019-10-05 16:13   좋아요 0 | URL
병목현상 영어로 묻는 전공은 대체 뭔지 궁금하네요. syo님 대체 손 안 대 본 게 뭐에요ㅋㅋㅋ

syo 2019-10-06 21:02   좋아요 1 | URL
네... 저 과목은 다름아닌 <운영체제론>으로서..... 슬픔이 덮쳐와 길게 말하고 싶지가 않아지네요, 하아....

반유행열반인 2019-10-06 21:43   좋아요 0 | URL
미, 미안해요 또르르르르르......

2019-10-17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5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