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육즙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syo가 더위를 못 참고 더 괴로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더위가 syo를 못 참고 더 괴롭히는 것인지 헷갈린다. 오늘날, 피서避暑라는 말은 꺼지라 그래. 오직 피난만이 있을 뿐이다.

 

옛 성현들께옵서는 아무리 무더워도 마음을 여미고 책상 앞에 정좌하여 공자 왈 맹자 왈 하시면서 사랑도 잊고, 이별도 잊고, 눈물도 잊고, 덤으로 더위도 시원하게 잊으셨다고들 한다. 진짤까? 공풍기 맹어컨, 과연 그게 얼마나 시원한지, 다음 주에는 논어 맹자 한 번 읽어 볼까 싶다.

 

180808 - 180812 20권


 

1. 사랑하는 개

- 박솔뫼에 대한 syo의 기본적 입장은 이랬다. 문장에 주어가 없거나, 주술 호응의 의지가 없거나, 주제가 없거나, 있는데 무슨 생각인지 알려줄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내게 읽는 눈이 없거나, 뇌가 없거나, 그것도 아니면 새 시대에 발맞출 감각이라도 없거나. 박솔뫼와는 정말 끝내 인연이 없거나,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거나.

- 그래도 단편은 장편보다는 여러 모로 인자하다. 이런 망할, 나란 놈은 도대체! 하면서 책을 던져버리는 슬픈 사건은 생기지 않는다심지어 이제는 이게 다 은근히 귀여운 글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하고 타박하는 성난 syo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뭘 또 그래, 박솔뫼잖아, 하며 누그러뜨리는 새로운 syo가 생겨났다. , 인간이란 결국 이런 식으로 길들여지는 동물이지.


2. 아무튼, 외국어

- 세상에는 정말,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이 많다- 아무튼 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어 나가면서 깨닫는 가장 통렬한 진실이다. 기쁜 진실이다. 어디서 저런 사람들을 자꾸 찾아내는 거지?

- 쓰고는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주 한다. 아주 가끔 진실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헛소리다. 쓰면 쓴다. 못 쓰니까 못 쓰는 거지. 소재가 아니라 실력 탓- 아무튼 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어 나가면서 깨닫는 두 번째로 통렬한 진실이다. 슬픈 전설이다.


3. 술어집

-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리 유용하지도 않다. 철학용어 사전으로서 그리 엄밀하지도, 풍부하지도 않아 보인다.

- 인용되는 최신의 문헌이 30년도 더 전의 책들이다. 지식이 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3000년이 지나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만 읽으면 충분하다고 우기는 일이 오만이듯이, 30년이 지나면 그만큼의 공백, 그만큼의 읽을 것들이 생기는 법이다.

 

4. 여하튼, 철학을 팝니다

- SNS 글장사가 철학을 가지고도 펼쳐지는구나. 깊이가 없는 게 단점이지만, 대신 피식이 있는 게 장점이다. 퉁 치면 남는 장사일까, 밑지는 장사일까.

- 깊이가 없다고 대놓고 말해도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그것은, 이 책이 철학적 지식을 정말 눈곱만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다. 예를 들면, 작가는 <여성스러운 것과 여성 혐오 사이> 라는 꼭지의 글에서 너 그렇게 하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혐오를 단호하게 지적하고 있지만,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는 꼭지에서 그림 작가는 분홍 원피스에 파란 백을 왼쪽 어깨에 맨 붉은 입술의 아가씨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뜨거운 거 주세요. 라떼에 우유 빼고 주시던지.” 라고 말하는 삽화를 그려 넣었다. ’형용 모순에 대해 설명하는 꼭지이기 때문에, 삽화 속 저 발언자가 여자, 그것도 겉치레만 요란하지 골빈 년이라는 혐오의 스테레오타입을 재생산하는 모양새의 여자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여자를 그려 넣은 것일 수도 있는데 비약이 심한 거 아니냐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그림 작가 스스로 여자 원피스 아래쪽에 써 놨다. “차도녀라고글 작가가 직접 그린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한 권의 책에서 글과 그림에 모순이 발생하면 우리는 의심하게 된다. 책을 파는 데는 진심이 별로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쯤에서 책을 탁, 덮었다.

 


5. 죽은 자로 하여금

- 처음 만난 이후로 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편혜영은 계속 편혜영이다. 편혜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꾸준히 더 나은 편혜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편혜영이다. 난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 어떤 고통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온다. 또 어떤 고통은 그저 작은 선택으로부터 오지만 결국 되돌아가 그 선택을 잘못으로 바꾸어놓기도 한다. 과오에 의해서건 조심성 없이 내린 결정에 의해서건, 일단 굴러가기 시작한 고통은 시간을 몸에 붙이며 그 몸피를 불린다. 이 국면과 전혀 무관한 과거의 다른 잘못이나 선택들까지 소환하여 어떻게든 우리가 괴로워해야만 하는 명분을 세운다. 따끔함을 느꼈을 때, 이미 늦었다. 아픈 데가 어딘지 여기 저기 만져보고 짚어보는 이의 손에 잡히는 것은 좌절뿐이다. 설령 운이 좋아, 우리에게 가해진 이 모든 타격이 타인이나 구조의 간악한 음모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그냥 그뿐이다. 보상 같은 건 없다. 일단 우리를 덮치기로 마음먹은 고통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알몸이다. 이유 없이 죽은 자다.

 

6. 과학자의 철학노트

- 진짜 제목대로다. '과학자(스테레오타입 이과생)'가 만든 철학 '노트'. 철학 지식에 대한 필기 노트 이상의 무엇이 되기는 어려운 책인 듯. 물론 압축적 지식을 획득하여 어디 가서 뽐낼 목적으로 읽기에는 충분하다. 고수들에게 걸리지만 않는다면. 다행히도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전공자가 아닌 이상 철학 고수를 만나는 일이 되레 어렵다. 그 사람들은 나돌아 다닐 시간을 아껴 들뢰즈와 데리다를 읽는다. 그러니까, 지식을 뽐내기 위해 이 책을 고른 당신은 전공자들만 피하면 됩니다.

 

7. 뷰티 인 리딩

- 자기계발서가 즐겨 구사하는 전략을 도입한 것이 독특하긴 하나, 결국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별다른 독창성이 없고, 문체 역시 거기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평범한 책인 것인데, 그래도 굳이 장점 하나 꼽아 보자면, 좀 별론데, 싶을 때면 어떻게 알고 독서하는 사람이 찍힌 사진이 빵, 하고 등장한다. 그러면 그 사진을 좀 오래 보면서 어쩐지 마음이 낙낙해지는 것이다. 책 읽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 그것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고질병이다.

- 당신이 알고 싶을 때, 당신을 좀 더 서둘러 사랑하고 싶을 때, 나는 당신을 어떤 책 읽는 모습 앞에 데려다 놓겠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당신의 입가를 바라보겠다. 그곳에서 미소를 찾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여, 집중하여 책 읽는 모습을 만나면 당신은 밀물처럼 당신을 덮치는 미소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8. 사흘 그리고 한 인생

- 피에르 르메트르의 책을 처음 읽었다. 이제는 찾아서 읽게 생겼구나.

- 심리묘사가 좋다고 한다. 그렇다. 특히 죄를 지은 아이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고. 그도 그렇다. 그러나 syo가 보기에, 그가 제일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은 섹스를 둘러싼 여러 상황에서의, 그러니까 섹스 한참 전, 직전, , 직후, 한참 후 남자의 심리인 것 같다. 생동감 넘치는 찌질함이랄지, 찌질함 넘치는 생동감이랄지 뭐 그런 것이 느껴진다. 도스토예프스키가 21세기에 돌아와 글을 써도 이 영역만큼은 르메트르를 쉽게 꺾지 못할 것 같다ㅋㅋㅋㅋㅋ아닌가? 뭐야, 또 나만 쓰레긴가?

- 하여간, 마음의 요동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그 요동이 인간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촘촘하게 설명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 힘은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몰입하도록 독자에게 채찍을 친다.



9. 세상에서 가장 쉬운 양자역학 수업

- 첫 페이지를 딱 열면, 21세기 지식자본주의 성공의 화신인 저커버그가 딸에게 양자역학 책을 읽어주는 장면을 상기시키고, 그가 칭화대학교에서 강연하며 양자역학 공부가 자신의 사고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그렇다면 우선 고전 물리학의 세계로 한 번 빠져 보자면서 대뜸 뉴턴의 인생역경을 묘사한다. 이쯤 되면, 이미 syo의 눈은 가늘고 미간에는 주름이 잡힌다. 마음은 싸늘하게 식는다. 표지에는 마윈의 스승이라는 저자의 신분증명과 , “마윈과 마크 저커버그는 왜 양자역학을 공부했을까?” 하는 글귀가 대놓고 박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양자역학 수업이라는 제목 자체도 참 애쓴다는 느낌을 자아내지만, 그 가운데 세상쉬운위에 방점까지 탁탁 찍어 놓은 것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 날 것만 같다. 심지어 과학책에다가도 이런 짓을 한다는 데에 빡쳤다가, 반대로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과학책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반증인가 싶어서 목이 멘다.

- 읽어보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과학에 있어서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훨씬 못하다(실제로 어른들은 돈 버는 일과 무관한 대부분의 지식에서는 아이들보다 약하다. 18세는 대체로 미분을 할 줄 알지만, 38세의 팔 할은 미적분을 인간의 무식함을 질타하기 위해 지옥에서 만들어 낸 단어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들에게도 꽤 괜찮은 책이다! 간결하고 친절하다. 앉은 자리에서 빠바박 읽고 휘리릭 던질 수 있는 책이다. 최소한 쉽다는 부분에서만큼은 제 이름에 스스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 책 같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두껍고 어려운 양자역학 수업이라는 책을 읽어도 양자역학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란 어려운 마당에, 큰 기대는 가지지 마시길. 실제로 양자역학 자체보다, 양자역학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자잘한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로 보는 책이다.

- 그러니까, 1. 기대하지 마시고, 2. 웬만하면 빌려 보시라는 말씀.

 

10. 아무튼, 쇼핑

- 다양한 주제, 그리고 그 주제에 맞춤하여 더욱 빛나는 문체, 그리고 그 문체의 주인들. 정말 이 시리즈가 품고 있는 다양성의 미덕이란 잠깐 칭찬하고 말 수가 없다그러다보니 정말 취향과 어긋나는 경우 공감이 1도 안 되는 책마저 나온다. 요게 그랬다. 대단하지만, 관심 없달까.

- 아무튼 시리즈를 읽고 있으면 syo는 아무튼 무엇을 쓸 수 있으려나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튼, 빨갱이? 아무튼, 입문서? 아니면, 아무튼, 알라딘?

 

11.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

- 편지를 쓰는 일이 힘들다. 편지지를 앞에 놓고 앉으면 공황장애에 가까운 증상이 일어나는 때도 있었다. 두 줄을 쓰고 나면 비어있는 다음 줄이 엄습하여 마음이 다쳤다. 그러면 하루를 묵히고 돌아와 다음 두 줄을 만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걸려 한 장의 편지를 쓰면, 그 글은 참 보기 싫은 꼴일 때가 많았다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여과 없이 꺼내는 일이 발가벗는 일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퇴고의 과정 없이 한달음에 써내려간 글이 나의 바닥을 드러내 보일까 두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 없이 편지는 편지가 되지 않았다.

- 그 형식 때문인지, 다른 어떤 글보다도 편지야말로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한 글이라 우리는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편지를 쓰고, 또 읽다보면 금세 느낀다. 편지는 누구보다 나를 위한 글이고, 내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글이고, 필연적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의 안부를 묻는 글이다. 곧 나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의 안부를 묻는 답장과 마주하면,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묻는 한 쌍의 닮은꼴이 된다. 겹친 그림자처럼 나를 교환하여 우리를 만든다.

 

12. 아무튼, 스웨터

- 스웨터라는 제목만 받아들었을 때, 이 책이 내가 찾던 그 책임을 바로 직감할 수는 없었다.

- 3부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긴 시가{시라고 부르기엔 긴 그 글을 나로서는 시라고 할 수 밖에 없는데, 나로 하여금 평생 마음 한 곳에 김현이라는 이름을 책갈피처럼 끼워 놓은 채 살도록 만든 그의 첫 시집 글로리홀에서 내게 발견된 아름답고 알 수 없는 글들[, 얼마나 그 시들을 사랑(알 수 없는 것들 중에는 알 수 없으므로 사랑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으므로)했었는지]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좋았다.



13.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 이 책은 어둠에 대한 우리의 낡은 생각을 걷어갈 것이다.

- 뭐 팔을 벌려 크게 원을 그리고 거기서 뭘 빼라는 둥, 모든 순간이 다 누구누구였다는 둥의 글귀들이 모여 있는 책을 오랫동안 혐오해왔다. 그런 아름다워 보이는 글 몇 조각을 지어내는 것은 너무도 쉽기 때문이다. 몇 개의 패턴, 몇 개의 리듬, 남들이 잘 쓰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몇 개의 단어만 손에 움켜쥐면 무한히 증식시킬 수 있는 그런 글귀는 syo도 하루에 수십 개는 만든다. 그리고 그 중에 덜 못난 놈 한두 개 골라 일기장에 띡 박아놓는 것이다. 걔들은 거기가 딱 어울린다

- 겉멋 든 문장 한두 개를 중심으로 몇 줄의 글을 앞뒤에 붙여 놓고는, 독자들로 하여금 처한 현실이건 가진 추억이건 각자 뒤적거린 다음 알아서 공감하라고, 마치 토막 낸 갈치 던지듯 글을 툭 던지는 그런 글들을 돈 받고 파는 건 감정/시간/종이낭비방조죄는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그러나 그렇게 싫어하는 유형의 책처럼 보임에도, 글의 경지가 여기까지 이르면 그냥 눈 멀뚱히 뜨고도 양 싸대기 다 내주는 수밖에 달리 도리 없는 듯. 이 듬성듬성한 책, 띄엄띄엄한 문장들에 왜 이렇게 자꾸 걸려 넘어지는지. , 인정. , 아름답고 처연하다. , 시인, 진짜 내가 숭배하는 인간들.

- 그리고 이제 알았다. 누군가에겐 더없이 유치해 보이는 글에 다른 누군가는 소스라쳐 감동하는 이유가, 글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읽는 이의 눈높이에 있다는 사실을. 모든 독자에게 세상 하나뿐인 우주는 바로 자신이다. 하여, 나보다 너무 높아 보이지도 않는 글은 지나친 글이 되고, 내가 해도 하겠다 싶을 만큼 손쉬운 글은 모자란 글이 된다. 내가 고개를 들면 볼 수는 있지만, 손을 뻗어도 닿을 것 같지는 않은 높이에 있는 글, 우리는 그런 글을 숭배한다.

- 우리가 신용목을 모르는가. 그는 황현산 선생님이 말씀하신, 4대 메이저 시집 출판사에 시 한 무더기 들고 찾아가면 군소리 없이 시집 내줄 300명 안짝의 시인 중 한 명임이 자명하다. 그런 그에게, 물 많이 넣고 끓여 묽힌 시 같은 이 글들은, 모아서 책으로 만들기 쉬웠을까, 오히려 어려웠을까.

 

14. 처음 시작하는 미학 공부

- 정말, 입문서를 많이 읽다보면 저자들의 노력에 목이 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중요한 놈들은 어떻게든 집어넣고 싶은데 대체로 중요한 놈들이 또 어렵거든.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쓰고 싶은데 대체로 쉽고 재미있는 놈들이 또 유치하거든. 그 기묘한 외줄타기의 재능은 정말 드물다. 입문서는 정말, 학문의 깊이가 깊다고 팍팍 쓸 수 있는 그런 만만한 책이 아니라구요.

- 애썼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함량이야 syo가 평할 부분은 아니지만, 사조영웅전이나 소오강호부터 시작해서, 도라에몽에, 미스터 초밥왕에, 요리왕 비룡까지 들먹였으면 정말 당신은 하는 데까지 한 것이다.

- 그래서 괜찮은 책이냐고요? 그건 독자들이 지니고 있는 저마다의 미학에 달려 있습지요....

 

15. 열다섯 번의 낮

- 일찍 눕고 싶은 기분에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가 누웠다. 책이 추락의 방향으로 끈덕지게 마음을 잡아끌어 결국 누울 수밖에 없었다고 적으면 겉멋일까. 희망찬 말을 건네도 어쩐지 내가 자꾸 무거워지는 이 은은하게 눅눅한 책은 어떤 날에 읽으면 좋을까. 웃음이 너무 많았으니 이제 마음을 좀 가지런히 빗겨야 되겠다 싶은 날? 아니면, 제발 누구라도 와서 딱 한 대만 더 때려주면 좋겠다, 그럼 그냥 죽은 척 오늘은 그걸로 다 끝낼 텐데, 싶은 날?

- 글이 글 쓰는 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이 세 가지 질문을 오래 궁굴린다. 하나라도 명확히 답할 수 있어야 글이 겨우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잘 알지 못하면서 기어이 쓰는 일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그 답 역시 쓰는 중에 찾아낼 밖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지금껏 몇 개의 답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침내 모든 답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 그의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16.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 잘 쓰는 글을 만나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이 졸렬한 마음이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고 허니, 언젠가는 syo도 책 한 권 만들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과분한 욕심(욕심을 넘어 욕망이나 탐욕, 그리고 때로는 정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한 욕심)을 아직 다 버리지 못해서인 것 같다. 하여, 누가 봐도 나보다 잘 쓴 글을 내가 보면 자꾸 작아지는 것이다. , 난 역시 안 되겠는걸. 안 되겠는걸. 안 되겠는걸. 자꾸자꾸 작아져도 작아지기만 하지 사라지진 않는 욕심. 남산 위의 바윗돌보다 우리 동네 초미세먼지가 더 유독하듯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자꾸만 나를 더 괴롭히는 그 욕심. 이 책이 또 내 욕심을 잘고 곱게 갈아주었다. 이 지역 미세욕심 농도 현재 매우 나쁨입니다. 질투를 삼가세요. 실내에 처박혀 혼자 잉잉 우세요.



17.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 나는 백년 동안의 고독이 정말 그런 책인 줄 몰랐다. 그건 정말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는 환상적이고 멋진 책이었다. 이 책도 정말 이런 책인 줄 몰랐다. 말랑말랑 달콤달콤 베이스에 씁쓰름이 조금 추가된 소녀풍 연애소설을 상상했는데, 세상에, 읽다 보면 오빠가 의자가 된다! 의자왕이 아니라, 진짜 의자가...... 뭐야, 이거, 무서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생각이 나기도 했는데, 희미한 기억속의 걔는 그래도 끝내는 뭔가 해피했던 것 같은데, 얘는 다르다. 행복이라고 할 수도 없고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저 특별한 슬픔 같은 것이라고 밖에는.

 

18. 곰탕 1

19. 곰탕 2

- 영화의 시놉 같았다가, 대본 같았다가, 갑자기 소설 같았다가, 아니 이게 대체 뭐야 하는 사이에 1권 뚝딱, , 재미진데, 했더니 2권도 뚝딱.

- 목숨을 걸고(말 그대로 목숨을 건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감행하는 이유가 한낱 곰탕 레시피여서 좋았다. 그리고 그 한낱곰탕 레시피가 알고 보니 한낱이 아니어서 좋았다. ’한낱이어도 좋았을 것이었지만, ’한낱이 아니어도 좋았다.

- 세상 누군가에게 가족이란 한낱가족일 뿐이다. 그렇지만 실은 누구에게나 가족은, 그 존재를 통해서건 부재를 통해서건, 끝내 어떤 식으로든 가족이다. 내 역사에 난 흉터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쨌든 그 한낱은 한낱 한낱이 아닌 것이다.

 

20. 추적자

- 1권을 읽었는데, 이거 어떡한다...... 분량(투여시간) 대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 소문을 통해 접하기로, syo는 잭 리처가 무슨 무신(武神)이라도 되는 줄 알고 있었으나 막상 그는 이 책에서 실컷 얻어터지고 많이도 쫄았다. 또한 역시 소문에 힘입어 어마어마한 섹스의 화신으로 정해져 있었던 그는, 막상 이 책에서 딱 한 명하고만 서너 번쯤 잤다. 그리고 그 부분의 표현이 너무도, 정말 무책임할 정도로 빈약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550페이지를 읽었는데, 고작 이런 푸대접이라니..... 이런 식이면 아무래도 다음 거래는 좀 곤란하겠다. 저자(혹은 역자?)의 분발을 원한다. 원해봤자 이미 다음 편에, 다다음 편에,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음 편조차 출간이 되어 있는 상태긴 하지만.

 

  

여름에 날씨 덥다는 이야기 말고 다른 말을 할 줄 아는 재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참 좋았겠으나, 그러지 못하여 이것 참 송구합니다. 별일 없이 무탈무난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네요.

 

아, 복숭아가 맛있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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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덕에 도서관에서 곰탕1,2빌렸더랬어요 잘 읽을께요 잼나면 리뷰 올릴수도~

syo 2018-08-12 19:2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카알님의 리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단발머리 2018-08-1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오래 건강하게 오래오래 씩씩하게 오래오래 명랑하게 알라딘에 살아 주어요.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사지 말아야할 책을 골라주고 (저자들이 싫어하겠다요. 메롱!)
신용목 같은 사람을 발견해주고,
잭 리처를 사랑해줘요.

아, 복숭아도 권해주고요. 계속~~~

syo 2018-08-12 19:31   좋아요 0 | URL
신용목 선생님을 제가 발견이라니요 ㅎㅎㅎ
복숭아는 지금부터 미친 듯이 먹어야합니다. 조만간 빠이빠이에요...

수이 2018-08-1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외국어_ 읽으면서 이야~ 여기 나 같은 인간이 또 있네 하면서 즐겁게 읽었어요, 물론 에세이는 그리 쓸 수 없지만 읽으면서 여기 나와 동류의 인간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고~ 복숭아 냠냠 먹으면서 댓글 써요 :)

syo 2018-08-12 19:33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책 읽으면서 수연님 생각이 났었드랬습니다.
에세이도 조지영 작가한테 꿀리지 않게 쓰시는데요. 왜 이러세요 ㅎㅎ

다락방 2018-08-1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복숭아가 먹고싶네? 어쩐담? 🤔

syo 2018-08-12 19:35   좋아요 0 | URL
🍑🍑🍑🍑🍑🍑🍑🍑🍑🍑🍑🍑

다락방 2018-08-12 19:36   좋아요 0 | URL
나왔다
내가
사러
복숭아를..

syo 2018-08-12 19:36   좋아요 1 | URL
영업 성공!

단발머리 2018-08-12 19:47   좋아요 0 | URL
말랑이예요? 딱딱이예요?

다락방 2018-08-12 20:14   좋아요 0 | URL
저는 말랑이 사와서 사오자마자 세 개를 추르릅 흡입했다고 합니다. 아, 살 것 같아요. 하하하하

단발머리 2018-08-12 20:15   좋아요 0 | URL
털썩!!
우리집엔 딱딱이밖에 없는데...
나도 나가야하나...

syo 2018-08-12 20:40   좋아요 0 | URL
털썩이라니요. 딱딱이는 지지 않습니다!! 한입 베어물었을 때 알알이 박혀 있는 그 빨강 과육의 아름다움이란....

단발머리 2018-08-12 20: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못 이겨요.
말랑이 3개 흡입이래요~~
말랑이 - 3개 - 흡입

syo 2018-08-12 20:43   좋아요 0 | URL
눈감고 - 앉은 자리 - 다섯 개
후후후.

stella.K 2018-08-12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더위는 어떨까요?ㅋㅋ
대구가 예로부터 더위의 성지라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대프리카라고...
성지를 수호한다 생각하시면....ㅋㅋㅋㅋ
뭐라는 건지 원.ㅠ

책에 대한 묘사를 참 잘하시는데 그래서 읽어보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위험하죠.
막상 읽어보면 스요님만큼 디테일하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스요님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푸하하하하~!

카알벨루치 2018-08-12 20:2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Syo님은 그래요~대프리카 좋네요 맘에 듭니다!ㅎㅎㅎ

syo 2018-08-12 20:35   좋아요 1 | URL
저도 그게 고민입니다. 의외로 제 뽐뿌에 읽기를 도전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으신데, 늘상 별로 타율이 좋지가 않았어요..... 사람이 살며 읽을 수 있는 책의 총 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제가 또 시간 낭비를 거드는 것이 아닌가 하여.....

카알벨루치 2018-08-12 21:15   좋아요 2 | URL
축적된 내공은 어디가지 않습니다 syo님의 내공에서 뿜어져나오는 포스는 무시할 수 없는것이고 독서는 다 자기나름대로의 스탈이 있으니 읽고 또 읽은것이지요^^

이명은 2018-08-18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syo 2018-08-18 19:37   좋아요 0 | URL
갑자기요?? ㅎㅎ 저도 고맙습니다^-^

독서괭 2018-08-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빨갱이 / 아무튼, 입문서 / 아무튼, 알라딘 - 세권다 읽고 싶어요!!

syo 2018-08-22 09:52   좋아요 0 | URL
오백만년만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