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새 책이 꽤 자주, 실하게 들어오는 편이다. 이용자들이 신청하는 책들도 잘 구매해주고,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들여오는 책들도 있고..
그래서 심심할 때마다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가 '새로 들어온 책'을 훑어보면서 빌려볼 책 리스트를 정리하는 게 내 취미 중 하나다. 현재 리스트에는 약 930권 정도가 올라 있는데 개중 실제 읽은 건 150권이나 될까. 읽는 속도가 새 책 들어오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리스트에 없는 책들을 많이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을 거의 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사실 이 마지막 이유가 제일 크다).
내 리스트에 올라가는 기준은 신간 안내를 보고 맘에 들었던 것들,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 제목이 왠지 맘에 들고 그럴 듯한 것(이런 경우에는 알라딘에서 책을 검색해서 내용과 서평을 확인한 후 리스트에 올릴지를 결정한다) 등이다.
오늘도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500여 권의 새 책이 들어왔고 그 중 한 30권을 리스트업했다. 그래놓고는 마치 다 읽은 것 마냥 뿌듯하다. 흐흐. 원형세포.
근데, 며칠 전에 도서관 운영방침에 대해 쓴소리를 좀 했더니 이번에는 내가 신청한 책이 하나도 안 들어왔다. 난 드디어 동네 도서관에서도 찍혔나 보다. ㅠㅠ

아래는 이번에 들어온 책들 중 내가 고른 몇 권.



마르셀 라이히 라니츠키의 <내가 읽은 책과 그림>
신문 서평을 읽고 꼬옥 봐야겠다고 맘 먹었던 책이다.
저자는 독일의 문학평론가로 내가 좋아하는  '독서에세이'에 분류되어 있다.

 

 




상뻬의 그림이 들어간 책을 오랜만에 본다.
한동안 열린책들에서 미친 듯이 상뻬의 책들을 쏟아냈었는데 이제 계약이 만료됐나? 이 책은 이레출판에서 나왔고, 저자는 배우이고 상뻬는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에이미 탄의 신작 <접골사의 딸>이다.
이제 에이미 탄도 인기나 지명도가 예전 같지 않은가 보다. 책이 나왔는지 어쨌는지 소리소문도 없었고 출판사도 로맨스소설 전문 출판사인 신영미디어다(물론 난 할리퀸 팬이었지만 에이미 탄과 신영미디어는 왠지 안 어울린다는 선입견이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 한번 읽어나 봐야지.

 





<뷰티플 라이프> 일본에서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드라마로 대히트를 친 내용이란다. 음, 이런 걸 읽어야 하나..싶긴 한데 서평들이 상당히 호의적이다. 기무라 타쿠야 팬들이신가?
어쨌든 호기심에 읽어보기로 했다. 번역이 김난주고 출판사가 해냄이고 표지디자인이 내 맘에 든 것도 한몫 했다.

 




세상에, <30분에 읽는 톨킨>이라니.. 아무리 요즘 세상이 '3분만에' 완성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30분에 읽는 사상가 시리즈까지 나오다니 멍~하다.
그래도 내 '무식 찰찰~'이 30분만에 '정도껏 아는 척' 수준으로까지 올라설 수 있다면 대단하지 않겠는가. 해서 얍삽한 나, 400페이지짜리 <톨킨>을 팽개치고 얼릉 이걸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와, 내가 좋아하는 역사책이다.
미시사는 아니고 인물사 쪽이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할 듯. 게다가 마냐님의 멋진 서평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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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04-05-27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와, 그 도서관 어디에욧!

starrysky 2004-05-27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대 근처 마포도서관이여요. 놀러오세요. ^^ 전 찍혀서 당분간 도서관에 변장하고 가야 하지만 오즈마님 사진을 익히 봤으니 오즈마님이 오신다면 몰래 숨어서 스토킹이라도.. 호호.

Laika 2004-05-2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포도서관...거기 시설 좋던데...예전에 그동네 살았었답니다. ^^

starrysky 2004-05-2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라이카님도 이 동네 주민이셨군요. 너무 반갑네요. ^^ 저도 근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데 너무 번화하지도 않고 너무 한적하지도 않고 적당적당해서 좋아요. 도서관도 물론 좋지요~
 

나는 시력이 안 좋다. 어느 정도로 안 좋은가 하면 요즘 사람들이 많이 하는 시력교정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쁘다. 아니, 수술 자체야 받을 수 있겠지만 해봤자 전혀 시력 개선이 안 되는 지경인지라 안과의사들이 권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눈이 나빴다. 그래서 유치원 다닐 때부터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내 인생 최초의 암울했던 기억은 처음 안경을 맞춰 끼고 유치원에 가던 날이다. 절대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버티다가 출근하는 엄마아빠한테 잔뜩 혼나고 결국 일하는 언니 손에 질질 끌려가다시피 유치원 문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서도 한참을 실갱이하다가 결국 선생님 손에 이끌려 교실로 들어갔는데, 그때 온몸으로 느껴지던 아이들의 시선이라니.. 정말 어린 맘에도 죽고 싶었다. -_-

중학생 때부터는 렌즈, 그것도 난시 교정이 되는 하드렌즈를 꼈고 지금도 여전히 끼고 있다. 요새는 옛날보다 렌즈 기술이 좋아졌네 어쩌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똑같다. 가격이야 물론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올랐지만 그렇다고 월등히 잘 보이는 것도, 엄청시리 눈이 편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적응하며 살 뿐이다.

그렇다면 난 왜 이렇게 눈이 나빠졌을까? 울 엄마 주장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TV를 코앞에서 봤기 때문이란다. 그럴지도.. 하지만 그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기 자식들을 겁주기 위해 하는 말 아니던가. 그리고 TV시청과 시력은 무관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도 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책을 많이 봐서 그렇다고도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나보다 몇 갑절 더 많은 책을 읽은 친구는 여전히 1.5의 시력을 자랑하고, 또 유치원 시절까지 내가 책을 읽어봤자 얼마나 읽었겠는가 말이다. -_- 그렇다면 단 하나 남은 유력한 설은 유전. 그렇다. 나는 아빠 땜에 눈이 나쁜 거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타고난 대로 살 수밖에.

그런데 워낙에 눈이 나쁘다 보니, 오래 전부터 가슴속 깊이 싹터온 불안이 하나 있다. 이러다가 혹시 영영 앞을 못 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끔찍한 생각이긴 하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요새도 실명을 유발하는 병들은 꽤 있고, 의학적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시력 퇴화 현상도 있는 거니까. 시력을 잃게 되면 책도 못 읽고, TV도 못 보고, 인터넷도 맘대로 못하고, 물론 바깥 외출도 불편하고..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시각장애자들이 있고 그들은 나름의 삶을 알차게 꾸려나가고 있지 않은가. 단지 사는 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도 혹시 닥쳐올지 모르는 내 미래를 위해 저금하는 심정으로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에서의 봉사활동이 그것이다. 원래는 녹음봉사를 하고 싶었는데 담당자가 내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몰라주고;; 입력봉사를 맡겼다. 하긴 내가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그랬겠지만(이렇게라도 스스로 위안해야 한다).

입력봉사는 스캔한 책을 받아다가 적절한 편집을 해서 점자도서나 디스켓도서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때로는 책 한 권을 통째로 입력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책도 읽고 봉사도 하니 와 좋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면 암 생각 없이 기계처럼 입력만 하게 된다. 가끔은 출판사에서 책을 낼 때마다 그 파일을 시각장애인 도서관에 기증해주면 안 되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 이런 2중 작업을 거치지 않고 시각장애인들도 일반인들처럼 바로바로 신간을 접할 수 있을 텐데.. 뭐 물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니까 못하는 거겠지만.

내가 입력한 책들이 리스트로 만들어져 필요한 사람들에게 서비스되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내가 저 책들을 직접 이용할 날은 가급적 오지 말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내 바람.
지금도 눈이 아파서 쪼끔 걱정이다. 컴터 끄고 책도 읽지 말고 자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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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5-26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하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님..좋은 일 하십니다그려..여기 도서관에는 점자책이 하나도 없어서 이번주에 (내게는 소리를~~~)점자책을 한권 넣자고 했습니다.. 장애인을 위해서 공사를 돈 들여 대대적으로 했는데 장애인이 한명도 안온다고 하면서 꺼려하더군요. 특히 시각장애인을 더 하지요... 스타리님이 입력한책은 개인적으로 제가 구입하고 싶습니다.

밀키웨이 2004-05-26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러고보니 전 글을 아주 대충 읽었네요.
울타리님 글을 읽고 다시 올라가 꼼꼼히 읽었더니 말이죠...
왠지 무지하게 부끄러워집니다.
그래서 걍...삭제해버렸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가볍다는 것이 참...오늘따라 무지무지 부끄럽습니다.

마태우스 2004-05-2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걱정 마십시오. 시력이 나쁘다고 나중에 안보이는 날은 없을 겁니다.
-돌팔이의 호언장담-

starrysky 2004-05-26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리님. 사시는 동네가 어디세요? 왜 시설을 해놨는데 장애인분들이 이용을 안 하실까요? 혹시 너무 홍보가 안 되어 있는 건..? 타리님께서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타리님네 가게에 드나드시는 분들도 많으시니까 널리 홍보해 주세요. 이왕 만들어놓은 시설 마니마니 이용해야지요. ^^
밀키님. 부끄럽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아. 전 밀키님 이쁜 눈이 꼬옥 보고 싶어요. 저같이 작고 못생긴 눈을 가진 사람은 안경 뒤에 숨은 신비고 뭐고 없답니다. ㅠㅠ 안경알이 원체 두꺼워서 눈이 뱅뱅 @_@ 밀키님 이쁜 눈을 사진으로 공개하라, 공개하라!!! ^^
마태우스님. 전 마태우스님을 전적으로 믿거든요. (이럴 때만;;) 위에 하신 말씀 꼬옥 책임지셔야 해요~ ^^ 안 그럼 제가 단대병원을 잘 알기 때문에 기생충교실 앞에 가서 드러누울지도 몰라요. ^^

panda78 2004-05-2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4살때부터 안경을 껴왔고 안경 새로하면 알값만 15-6만원 드는 사람이라... 정말 절절한 글이었습니다. T^T 마태님,, 저도 같이 드러누울지도 몰라요... ㅡ.ㅜ
 

책정리..를 하려다 실패했다. ㅠㅠ
저녁에 친구 만나러 나갔다가 술 한잔 하고 약간 알딸딸한 정신에 집에 들어오니, 지난주에 산 책이 책꽂이에 자리를 못 찾아 그냥 대충 쌓여 있는 모습이 영 눈에 걸렸다. 그래서 술김에 책장을 함 뒤엎어봐~ 하고 일을 벌였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는 만화책들은 가급적 뒷쪽으로 쑤셔넣고, 작가별로 대충 정리를 해놓는 바람에 판형이 뒤죽박죽이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애들은 웬만하면 시리즈별로 다시 정리해 판형을 맞춰 꽂아서 자리를 확보하고, 좋아하는 책인데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어 손이 잘 안 닿는 애들은 앞으로 좀 빼놓고, 안 보는 잡지들은 이 기회에 처분하기 위해 책장에서 빼서 구석에 쌓아놓고..

한참을 땀 흘리며 일하다가 책장을 다시 쳐다보니...
뜨아.. 이렇게 힘들여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새로 생긴 공간이 별로 없다. ㅠㅠ 겨우 지난주에 산 책 10여 권을 꽂을 자리 정도만 확보됐을 뿐.
뒤쪽에 있던 애들은 그냥 원래 자리에 둘 걸 좋아하는 책이라고 너무 앞으로 뺐나? 아니 그럼 뒤쪽에라도 공간이 있어야 되는데 그 자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으아악, 동화책 칸에 자리가 부족해서 동화책들이 SF 칸으로 밀렸자나. 이럼 안 되는데에에에에... 보기가 싫잖아. ㅠ_ㅜ

요새 K문고에서 세일을 하길래 담주에 왕창 주문할라 그랬는데 그럼 걔네들은 어디다 꽂지? 오자마자 또 상자 속에 그대로 잠든 신세가 되어야 하나? 그 짓도 한두 번이지 지난번에 배달된 상자 5개 쌓아뒀다가 무너져서 책 찢어졌자나. ㅠㅠ
이사오면서 책을 엄청 버렸고 책장은 새로 짰는데도 불구하고 그새 또 다 차버렸다. 책장 더 들일 공간도 없는데 이 사태를 어쩌면 좋을까나. 고민 고민.. 술 마셔서 머리 아픈데 이젠 머리가 아주 깨질 것 같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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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5-2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쉽지 않죠? 저는 원룸이고, 책장도 작아서 대부분은 탑쌓기 놀이를 하고 있답니다.

물만두 2004-05-2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대 공간 빼면 바닥이 없다는... 동생들 방도 점령해서 원성이 자자하고요...

starrysky 2004-05-2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저도 탑쌓기 놀이 잘해요. ^^ 크고 무거운 책을 사면 탑을 허물어 아랫단부터 다시 차곡차곡 쌓아줘야 하죠. 에고, 힘들어라~
물만두님. 안녕하세요. 이 먼 곳까지 납셔주셔서 감사해요. ^^ 저도 사실 동생방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인데 영 틈을 안 주네요 얘가.. -_- 컴터 책상 아래에 만화책들은 좀 쑤셔넣어 놨는데, 그냥 책들은 몇 권 슬쩍 갖다 꽂아놔도 어느 틈엔가 다 제 방에 돌아와 있드라구요. 아, 어려서부터 동생 길을 잘 들여놨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요.. ㅠㅠ

panda78 2004-05-2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방출... 이란 최후의 방법도... ^^;;;

물만두 2004-05-2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아니라 동생도 저만큼 게을러서 안 치운다는 야그지요. 귀찮아서 원상복구가 안되는 겁니다. 욕은 엄청 먹지만 대신 제 방 옷장에는 동생 옷이 점령을 했으니 셈셈이지요. 님도 이런 상부상조를 하시길...

치유 2004-05-2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말입니다..책장에 꽃아두었다가 새책 들어오면 자리 확보차 박스에 보관하기도 하지요..그런데 저는 그게 문제더라구요..왜 박스에 보관만 하려고 딱 집어 넣고 며칠 후면 그곳에 넣어 둔 책이 다시 보고 싶어지냐구요....
그래서 아예....나란히 줄서기 시켜 두고 있답니다..이곳 저곳에..
스타리님..배꽃 서제에 들러서 코멘트 남기셨더라구요,,감사해요..배꽃 서재 볼품이 없어서 아직 찾는이가 별루 없는데 찾아주심에 백배 감사...

starrysky 2004-05-2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nda78님. 저도 그 방법을 떠올려보긴 했으나, 1년 반 전에 대대적인 출혈 방출이 있었던 관계로 선뜻 다시 하게 되지 않더군요. 저도 판다님처럼 돌려보기를 하는 건 어떨까..도 생각했는데 그건 새 책은 볼 수 있겠지만 보관하는 책 권수에는 영향을 못 미칠 것 같드라구요. ^^
물만두님. 아하, 그런 식의 상부상조를 하시는군요. 근데 저는 제 방엔 동생 꺼 하나도 못 받아주면서 늘 갖다 쟁여놓으려고만 하니.. 한마디로 온집안의 구박덩어리랍니다. ㅠㅠ
배꽃님. 저는요 박스에 넣어둔 책이 보고 싶어지면 꺼내기 귀찮아서 도서관 가서 빌려봐요. 캬캬. ㅠㅠ 그리고 님의 서재가 볼품이 없다니요. 너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던 걸요. 자주 걸음할 테니 반겨주셔요. ^^
 

난 눈물이 많다. 심하게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잘 운다. 열라 창피할 정도로.
드라마나 영화, 책(만화책)을 보면서 우는 건 아주 기본이고 신문 보면서도 울고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도 울고 일하다가도 울고.. 이렇게 써놓으니 인생이 아주 우울처참해서 울 일이 너무너무 많은 사람 같아 보이겠지만 사실 그런 것도 아닌데..

내 눈물의 20%는 슬퍼서, 10%는 화나거나 분해서, 그리고 70%는 감동받아서 흘러나오는 눈물이다. 한마디로 감정이 흘러 넘친다. 사무실에서 인터넷 검색하다가 모니터에 얼굴 박고 우는 게 한두 번이 아니기에 처음에는 다들 놀래서 내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던 사람들도 얼마 지나면 그러려니 하고 신경도 안 쓴다. 남들은 사람 많은 데서는 자존심 때문에 절대 안 운다 그러던데 내 눈물은 자존심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숱하게 울면서 딱 한번 정말정말 쪽팔렸던 적이 있다. 이건 화나고 분해서 흘린 눈물이었는데 어떤 XX 같은 클라이언트 때문이었다.
몇 년 전 모 종합병원 관련 프로젝트 PM을 한 적이 있다. 전혀 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쪽 원장이랑 우리 회사 경영진과의 모종의 관계 때문에 억지춘향 격으로 맡게 됐다. 돈 안 되는 일이라 회사 지원은 미미한 반면 대상이 종합병원이다 보니 일의 양은 엄청났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그래도 어차피 맡은 일, 제대로 잘 해내리라 다짐하고 진행하고 있었는데, 병원이란 데가 워낙 관련된 과도 많고 이해관계도 얼기설기 얽혀 있고 잘난 척하는 분들도 많아 진행이 무지 더뎠다. 빨리 해치우고 끝내야 그나마 회사 손해가 덜할 텐데..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원장 힘을 빌려 전체 관련자들을 다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모든 과의 담당 선생들과 그에 줄줄이 딸린 레지던트, 인턴들까지 몇 십명이 커다란 회의실에 모여 웅성웅성. 그런데, 이 인간들이 의견 조율하라고 모아놨더니만 조율은 커녕, 한쪽에서 뭔가를 요구하면 다른 쪽에서는 그보다 더 큰 걸 요구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아예 새로운 걸 요구하고 하는 식으로 서로 경쟁심에 불이 붙어 계속 무리한 요구를 줄줄이 뱉어내는 거다. 해달라는 거 다 해주면 우리가 받는 쥐꼬리만한 돈의 30배를 더 받아도 모자랄 정도로..

게다가 우리 회사와 그 병원 사이에 중간 매개자가 하나 있었는데, 이 인간은 그 프로젝트를 빌미로 자기가 그 병원에서 크게 한 자리 해보려는 속셈을 가진 작자였다. 한마디로 우리 회사를 지 출세의 제물로 삼으려는 야욕을 품은 인간. 그런 인간이니 의사들이 온갖 말도 안 되는 요구들을 해대는데도 말릴 생각은 커녕 '네네' 하면서 무조건 다 해주겠다, 그보다 더한 것도 해주겠다는 식으로 나간다.

듣고 있던 나는 속에서 열불이 나다 못해 얼굴까지 울그락푸르락해지고 있는데, 아예 기름을 붓는 누군가의 한마디. "병원이란 데는 결국 공익기관인데, 이런 프로젝트는 사회에 봉사한다 생각하고 무료로 해줘야 되는 거 아냐?" "맞아맞아(모인 의사 일동)."-_-+++
"아니, 그러는 너네는 공익기관이라서 아픈 환자들을 그토록 푸대접하면서 그렇게 터무니없는 입원비에 특진비까지 받아처먹냐??!!!"라는 말이 목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소심한 나, 말 대신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_- 회의하다 말고 담당 PM이라는 애가 얼굴 뻘개져서 꺼이꺼이 울고 있으니 모인 사람들 죄다 벙쪘고, 나는 나대로 쪽팔려 죽겠는데 눈물은 안 멈추고, 같이 있던 울 회사 사람은 나 땜에 죽을라 그러고, 나보다 어린 레지며 인턴들은 대따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할튼 내 인생에 지워지지 않을 쪽팔림이있다.

그리고 그 후에 결국 그 프로젝트는 파토났다...
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은 그넘의 모종의 관계와 써글넘의 중간책 땜에 결국 끝까지 밀고 나가야만 했다. 난 그 죽을 듯한 쪽팔림을 무릅쓰고 1주일에도 몇 번씩 그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고.
몇 달 후 마침내 그 끔찍한 일이 끝났을 때, 병원측은 돈 거의 안 들이고 프로젝트를 해낸 자신들이 자랑스러웠는지 무슨무슨 기념행사까지 열었다.. 그리고 나한테 감사패인지 공로패인지까지 주고.. -_- 그 패는 받자마자 버렸기 땜에 뭐라고 써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받으면서도 치가 떨렸다.

그 이후 그 병원 쪽으로는 얼굴도 안 돌리려 노력한다. 근처를 지나갈 때도 절대 안 쳐다보고.
근데 작년에 울 아빠랑 동생이 줄줄이 그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었다. 덴당!!! 매일 병문안 가면서 혹시 아는 의사들 마주칠까봐 007을 찍으며 숨어다닌 거 생각하면... -_-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잘 운다. 앞으로 또 어떤 인생의 쪽이 나를 기다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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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4-05-24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기분 나도 아는데....
왜 눈물 꼭지는 한번 터지면 잘 멈추지도 않는지..적당한 때에 멈추기도 하면 좀 덜 속상할텐데..

starrysky 2004-05-2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꼭 눈물이 안 나와줬으면.. 할 때 흘러나오고, 좀 멈춰줬으면.. 할 때 절대 안 멈추고..
컨트롤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예요. 사람들 앞에서 우는 걸 창피해하거나 그러지는 않지만(감정에 솔직한 건 좋은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있답니다 ^^) 정말 꼭 피해야 할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너무 대책이 없드라구요. -_-;;;
 

이건 내가 걸린 병이 아니라 우리 엄마님에게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나야말로 1년 365일 다이어트가 필요한 몸매이지만 타고난 의지박약과 나태함으로 꿈도 못 꾸고 1년 365일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발병 주기 : 1~2달에 1번꼴

증상 :
아침 운동을 다녀온 엄마,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걱정스러운 딸들 무슨 일이냐고 여쭙는다. 한숨을 푹 내쉬며 하는 말씀, "글쎄 수영장에서 체중을 재봤더니 자그마치 2킬로그램이나 는 거 있지. 요새 내가 좀 잘 먹고 다녔더니만.. 휘유우.." 엄마 얼굴을 살펴보니 평소보다 턱이 약간 더 겹쳐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했다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터이니 암말 안 하고 가만있는다.
그리고 잠시 후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엄마,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는 "오늘부터 우리 식구 다 다이어트야!! 니들 각오해!! 이 기회에 다들 10킬로그램씩 빼는 거야!!! 우리 집에 이런 음식이 가당키나 해!!!"라며 아까운 고기반찬, 치즈, 조각케이크, 아이스크림들을 냉장고에서 쓸어내 아낌없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다.
식구들 모두 입 헤~ 벌리고 쳐다만보고 있을 뿐, 찍소리도 못한다. 옛날에 한번 "다이어트 할 거면 엄마만 하지 왜 우리까지 괴롭히느냐"고 용감하게 대들던 내 동생, 엄마한테 찍혀 상당기간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었다. 알아서 기어야 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식탁은 푸르디 푸른 초원이 되어 쌈채소와 샐러드와 나물이 즐비하고 조리법도 기름이라곤 한 방울도 안 들어간 죄 찌고 삶고 데친 것들 뿐. -_- 그나마 나물을 좋아하는 동생은 잘 먹지만 나물도 쌈도 질색인 나는 밥과 김만 먹고 있다. 반찬이 너무 심하지 않냐며 달걀이라고 하나 구워달라는 아빠에게 엄마 왈, "아니, 그 기름 좔좔 두른 프라이를 먹겠다고요? 게다가 달걀 노른자는 콜레스테롤 덩어리잖아욧!" 에고, 말 꺼냈다 본전도 못 찾은 불쌍한 우리 아빠. ㅠㅠ 그냥 가만히 계시지..

치료법 :
이 상태로 2~3일이 지나면 누군가가 말하기 시작한다. "아, 고기를 못 먹었더니 막 어지러울라 그래. 고기 먹고 싶어" "나 너무 피곤해. 초콜릿 좀 먹으면 이 피로가 싸악~ 가시련만.. 어디 숨겨놓은 초콜릿이라도 없냐?"
이런 말 하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 그래, 바로 우리 엄마다. 며칠 전의 그 처절했던 맹세와 호기로움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 다시 냉장고 문을 열어서는 텅텅 빈 윗칸과 꽉 찬 채소칸을 들여다보며 몸서리를 치고 있는 엄마. 우리가 다들 기막혀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면, "뭘 그렇게 보고만 있는 거야? 엄마가 먹고 싶다는데 당장 나가서 사오지는 못할 망정!!!"
...............
"네, 마마.. -___-"



내가 이렇게 집안망신 시켜가면서 몰래 엄마 흉을 보고 있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우리 엄마의 다이어트 발작이 또 시작됐다. 괴롭다. ㅠㅠ 주말에 아빠가 맛잇는 거 사준다 그랬는데 엄마의 증세가 오늘 막 시작됐으니 이번 주말은 텄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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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5-2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종일 회사에서 다이어트 하겠다고 떠들고 왔더니 배가 고프네요...이러니 님의 어머니 맘을 쬐금 이해를 할듯싶어요...ㅎㅎ

starrysky 2004-05-2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머, 라이카님이 빼실 살이 어딨다고 다이어트를.. ^^ (직접 뵌 적도 없지만 분명, 1그램도 군살이 없으실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저는 매일 밤마다 라이카님 부엌(Laika's Kitchen)에 몰래 숨어 들어가 군침 잔뜩 흘리다 오는 거 아시죠? 우리 다이어트 같은 거 하지 말고 맛난 거 마니마니 먹으면서 살아요~ 네? ^^

Laika 2004-05-22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starry 님께는 절대 제 모습을 드러내면 안되겠군요...저 살이 너무 쪄서 이제 "곡기"를 끊을까도 생각하는데, 아시다시피 제가 먹는걸 워낙 좋아하는지라....고민되네요..^^

starrysky 2004-05-23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걱, "곡기"를 끊으시다니요. 절대로 아니되어요오오~!!! 혹시라도 그런 일 하신다면 제가 라이카님 집과 직장까지 쫓아가서 밥숟가락을 입에 물려드릴 겁니다. 스토커 한 마리 키우기 싫으시면 절대 그런 독한 맘 먹으심 아니됩니다. 아셨죠? ^^

치유 2004-05-2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꼭 누굴 보는듯 해요....
꼭 제얘기 같아서..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