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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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치맥이 땡기는 계절에 다이어트에 몰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운동을 하러 나가도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닭과 기름의 고소한 냄새는 심한 고문이다. 왜 맛있는 음식은 살이 찌는가! 왜 살이 안 찌는 음식은 맛이 없는가! 왜 나는 먹는 게 특기인가!

 

누구에게 항의를 해야할지 몰라서 속은 더 부글부글한다. 크렘린 궁(맞나?)을 닮은 보드카가 정면에 그려진 표지를 보니, 또 술이 조금 땡낀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살기 위해 먹는 것, 혹은 먹기 위해 사는 것. 나도 당연히 후자다. 그리고 보통 후자들이 그렇듯이 전자들과는 거의 상극처럼 지낸다. 밥상에서 미운 사람이 제일 미운 사람이다. 음식 가리는 애들(?)을 괜히 미워하는 특성도 있다. (근데 진짜로 음식 가리는 애들치고 성격 무던한 애는 못봤다.)

 

마리여사도 이 점을 집고 넘어간다. 역시 먹는 이야기는 만국 공통인 이야긴가 보다. 음식 성향과 성격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인가보다. 특히 러시아의 유명한 정치가들을 예로 든, 아주 근거 있는(?) 이야기라 나도 내 경험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음식 얘기가 너무 많다보니 침을 삼키느라 정신이 없고, 듣도 보도 못한 '듣보' 음식을 상상하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누가나 할바는 넘 먹어보고 싶었다.(역자 말로는 별 맛이 없다는데.. 그래도 혀끝으로 직접 경험하고 싶다.)

 

사과나 바나나 등의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에 얽힌 얘기도 재밌고,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식 서빙이 실은 러시아식 서빙법이라는 신기한 사실과 보드카에 얽힌 담화들, 동화와 결부된 음식 이야기. 역시 신뢰받는 작가의 글은 훌훌 넘어간다.

 

 

 

 

음식 얘기는 언제나 즐겁다. 역시 밥상만큼 좋은 상이 없다.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별 얘기가 다 오가고 추억이 되기도 하니까. 한 때, 일본에서 밥을 혼자 먹는 사람을 위해 '같이 밥을 먹어주는' 비디오도 나와서 웃었는데, 생각해보니 참 슬픈 일이다. 밥상은 역시 공동 수상이 더 영광스럽다. 그래서 헤어지고 상대방이 너무 멀쩡하게 '밥만 잘 먹더라'면 더 괘씸한 걸까.

 

 

 

 

 

 

 

요네하라 마리의 글은 경쾌하다.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게 아깝다. 재밌는 글을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유머러스한 글솜씨, 여유, 대단한 커리어 등등 그녀에게 부러운 점이 많지만 무엇보다 제일 부러운 점은 학창시절에 여러나라에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는 점. 그러니 이렇게 요리에 대한 다채로운 글도 쓸 수 있는 거겠지.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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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탄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음악의 탄생 - 왜 인간은 음악을 필요로 하게 되었나
크리스티안 레만 지음, 김희상 옮김 / 마고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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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왜 예술의 카테고리에 있는 거지? 읽고나니 사회 과학이나 자연, 진화 생물학에 있어도 될 듯 하다.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음악이란 장르를 다루다 보니 제목만 보고도 저자의 주체할 수 없는 감성 폭발로 인한 결과물일까봐 조마조마 하기까지 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학적이고도 논리적인 책이니 안심해도 좋다.

 

미술의 탄생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었지만, 주술적인 목적으로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고 있듯이... 음악도 양육과 생식의 일생의 어마 무지막지하게 중요한 상황에서 탄생했다고 저자는 책 한 권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별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을 뿐더러, 모차르트나 베토벤같은 천재들한테서 생겨났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나로서는 음악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광대하게 연구한 저자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인간이 느끼는 오감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촉감이라고 한다. 아기를 하루 종일 안고 있는 부족의 아기는 잘 울지 않는다. 안정이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내 여친이 전지현보다 좋은 이유는 만질 수 있어서다."라는 카피가 나왔을까?

 

순수하게 먹고 사는 것만으로 힘들었을 우리의 조상이 아기를 계속 안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고.. 그래서 생겨난 자장가는 몇 천년이 지나도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아 지속되고 있다. 또한 구애를 위해 자신이 더 강한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싸우는 노래대결, 상대 부족이 공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단결과 용기를 보여주는 노래... 등등 음악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던 것이다!

 

그룹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는 노래가 사람들에게 소름을 돋는 감동을 주는 것도 다른 사람과 협동해서 사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유익한 생존 전략이란 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하니.. 정말 유전자의 힘은 놀랍고도 무섭다.

 

그리하야..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프리허그를 해주면 기뻐하려나? 실은 포옹이 그리운 게 아니었어요? 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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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디자인 산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런던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2
김지원 지음 / 나무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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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은 디자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좋은 디자인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대단하고 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좋은 디자인은 대부분 매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가까운 것이다. 예를들면, 지하철 노선도, 빨간 우체통, 색감이 예쁜 철제 홍자통...

 

이렇게 좋은 디자인이 많은 런던은 축복받은 도시다. 디자인에 대한 전통도 깊고, 거기서 더 발전된 디자인을 선보이는 신진 디자이너들, 불편하고 꼭 예쁘지는 않아도 가치를 인정해주는 소비자가 있는 곳.

 

크게 디자인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예쁜 사진이 있어 기분이 좋긴 했지만, 저자가 미리 밝혔듯 감상적이고 주관적인 텍스트는 런던에 대한 지나친 편애에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디자인이 많기도 했고.

 

특정한 디자인 영역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라면 겉핥기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전반적인 디자인 이야기를 해서 전문가보다는 일반인이 읽으면 더 기쁠만 한 책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볼거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여행서보다 더 유익하게 여겨질 만하다.

 

텍스트보다는 사진.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저자가 얼마나 런던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예쁜 사진을 찍는 사람이 그곳을 안 사랑할 리가 없지! 저자는 분명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였던 것 같다. 사진만 둘러봐도 활홍경에 빠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러고 보면 런던은 안 사랑할 수 없는 알록달록한 도시인 듯. 무지 떠나고 싶어진다는 부작용이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좋은 디자인이 좋은 삶을 만드는 걸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저자는 전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런 디자인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서울도 (인위적이게 말고) 좋은 디자인으로 산책하고 싶은 도시가 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책의 미덕> 1. 인증의 시대. 사진이 무진장 많다. 게다가 색감도 엄청 예쁘다!

 

                2. 디자인에 대한 책 답게 책 디자인도 독자친화적이다.

 

 

책의 부작용> 1. 무지 떠나고 싶다.

 

 

 

 

                   2. 지름신이 내릴 수 있다. (나는 홍차를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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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세기말의보헤미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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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구나 보는 그의 그림. 나도 그 누구나 중의 하나였다.
애니메이션에도 비슷한 그림이 많아서 그런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런 그림풍의 애니메이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지, 실은 그의 그림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생생한 몸(것두 엄청 풍만!)과 대비되는 영혼없이 멍한 표정. 왠지 섬뜩한 생각이든다.
이국적이고 (이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야들야들한 여자들은 그 당시에는 무척 생경하고 매력적인 여성상이었다. 멍청한 표정에 성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들이 요즘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 지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왠지 타로카드에서 보면 신비하고 매력적인 것 같은 그림을 그린 이는, 체코 화가 알퐁스 무하다.

 

식물의 선같이 쭉쭉 늘어지는 아르누보 양식은 세기말의 퇴폐주의가 잠깐 유행한 것처럼 금방 지나갔지만 아직도 어딘가에서는 살아남아 있는 매력적인 화풍이다. 매력적인 그림만큼이나 그는 특별한 삶을 살았고 당시 전 유럽이 온갖 사건으로 몸살을 앓았듯,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이다.

 

무엇보다 다양하고 화질 좋은 도판이 가득 실려있어 보는 재미가 충분하다. 시대배경이나 사건에 대한 설명도 충실하다. 세기 말의 분위기, 당시 파리의 환경, 당대를 주름잡았던 예술 사조... 아무리 천재라도 아무것도 없이 팡 터져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누구나가 보는 작품이 아닌 그의 의식을 담은 진지한 그림을 보면 그가 아름다운 여성만을 그린 화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위기에 처한 조국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그린 숭고한 그림들도 매우 강렬하고 멋있다. 보헤미안은 용기없이는 될 수 없는 위대한 이름이다!

 

 

전기를 보면서 매번 느끼는 것지만.. 매력적인 삶을 구성하는 요소는 뜨거운 가슴, 특별한 인연, 줏대, 꾸준함이라는 것을 또 느낀다.

 

결국.. 쿨하고 멋져보이는 보헤미안이라도 노력과 깡없이 폼 잡기도 힘들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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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상처를 말하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예술, 상처를 말하다 -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뒷모습
심상용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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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는 거잖아요!" 라는 유행어가 그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몇 개월을 풍미했다. 배우의 발음 문제로 회자되었지만 실은 괜찮은 대사다.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있는 거니까.

 

반 고흐, 프리다 칼로, 까미유 클로델... 생각하면 그렇게 유쾌한 작가들은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불구가 되고, 감금 당하고. 이들 때문인지 예술가의 이미지가 가난하고 불행하다는 인식도 굳혀진 것 같다.

 

이들이 예술가라서 불행했던 건 (당연히) 아니었고, 이들의 불행이 작품에 미친 영향이 대단하기 때문에 삶도 조명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과정에서 단순히 미쳤거나, 고통을 당당히 이겨낸 여신처럼 그려진다는 것에 시동을 걸고 싶은 마음에서 책은 탄생한다.


백남준, 앤디워홀, 로스코처럼 작가로서 성공한 이들의 고통, 소외, 콜플렉스는 너무 생소한 것이어서 갑자기 작품들도 심각해보이기 시작했다. 평생 유목민처럼 떠돌며 냉소적이 되었던 백남준, 자존감이 낮았던 로스코와 앤디워홀... 특히 로스코의 명상적인 그림과 남의 시선에 편집적으로 집착했던 그의 모습은 정말 상상이 되질 않는다.

 

 

누구나 살면서 불행한 일은 겪는다. 그건 '필연적'이다. 이들 작가들은 필연적인 불행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조형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작품은 슬픔을 비워내고 대면하게하였고 삶의 원동력이었으며 소통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확실히 그들의 작품은 진실해 보인다.

 

 

현대 미술은 작품 자체의 의미나 아름다움보다는 브랜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의 작품처럼 의미도 온기도 없다. 그래서 진실성이 느껴지는, 아픔이 느껴지는 작품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삶의 실패가 성공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작품에 작가의 생애로 의미를 유추해보는 것을 반대하는 편이다.(특히 소설은 더더욱!) 그림보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데 몇몇 특이한 사람 말고는 그들의 인생에 특별난 관심도 없었다. 고흐와 프리다 칼로의 다사다난했던 삶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카미유 끌로델은 어째 작품보다 그녀의 인생사가 더 알려진 것 같다.) 몇몇 생소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읽고 있자니 어쩐지 우울해졌다. 아마 나도 이제 타인의 슬픔까지 돌볼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단지 폐해라면 이제 그들의 작품이 순수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좀 아파보인다는 것.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작품이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 듯, 그들의 삶에 얘기만으로도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아픔을 대면하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지만 타인의 고통을 보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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