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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시인, 그들은 누구인가?

똑같은 시대를 살아도, 한 발 더 사는 사람들. 가슴 아픈 것을 보면, 가슴 아파할 줄 알고, 고통스러운 것을 보면, 남들보다 몇 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자신의 아픔보다 시대의 아픔을 더 빠르게 느낄 줄 아는 사람들. 내가 아는 시인은 그렇다. 진짜 시인이라면 그렇다. 아름다운 말보다, 뼈 아픈 말을 꺼낼 줄 아는 이들이 시인 아니던가. 세상 사람들이 느끼고 있으나, 차마 말로 내뱉을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이들이 시인 아니던가. 그래서, 시인은 아름답고도 슬픈 존재 아니던가. 김수영, 그야말로 찬란하고도 슬픈 존재다. 시대를 꿰뚫어 보며 온몸으로 고통스러워 했고, 시와 자신을 일치시키면서 살았다.

 

 

강신주는 그 열정과 자유, 인문학적 정신을 이 책에 담았다. 『김수영을 위하여』는 한 개인이, 김수영에게 바치는 책이다. 김수영을 해석하고 해설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책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이야기 되어지는 것들은 우리 시대에 들어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김수영이 비판하고, 아파하고, 안타까워한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별반 다를 게 없다. 반복을 거듭한 시대는 진화하기는커녕 제자리를 걷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어쩌면 더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노해야하는 시대에서 시대에 분노했던 김수영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시원하고 즐거우면서도 반성해야하고 되돌아보아야 하는 일이었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가 이야기했던가? 인간의 자유는 '대상적 활동(objective activity)'에 있다고 말이다. 앞에(ob) 던져져(ject) 나의 활동을 방해하는 저항에 대해 능동적(active)으로 개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다. 급류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생각해 보라. 강풍에 몸을 맡기고 활공하는 까마귀를 생각해 보라. 급류를 따라 흘러가는 물고기는 오직 죽은 물고기뿐이고, 강풍에 날려 가는 새는 오직 죽은 새 뿐이다. - 본문 30쪽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자유를 놓아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리고,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 하나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이들,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 자유라는 것은 그냥 놓여진 것일 뿐 얻어내야 하는 것임을 망각한 이들. 누군가의 삶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이들. 자유 의지를 멀리 날려버린 이들. 생각하지 않고, 각성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 못한다면 결국, 저 위의 권력이 원하는대로 사는 것임을 부인해도 부인될 수 없는 시대.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려고 몸부림친 김수영의 시와 정신은 시대의 부끄러움을 또렷히 보여주는 글들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것을 다시 일깨웠고, 작가의 이야기에 덧붙여 그를 마음과 정신을 상상하게 되면서 그가 내게 다가오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는 분명 쓰고 싶은 것을 썼지만, 그것이 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삶의 즐거움이라던가 이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의 삶은 시대의 급류와 맞물리며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그는 누군가를 원망할 대상이 필요한 시절도 있었다. 그는 전쟁에 휩쓸려 거제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의 나락에 빠져 보았고, 죽을 힘을 다해 돌아왔지만 아내는 친구의 아내가 되어 집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를 찾으려 갔지만, 아내는 쉽게 따라나서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온 아내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는 고통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닌척해도 상처난 정신은 돌이킬 수 없는 일. 불행은 쉽게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설움은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온몸에 내재되어 있는 참혹한 상처와 설움, 분노의 씨앗들이 김수영을 김수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 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시여, 침을 뱉어라>(1968.4)

 

 

온몸으로 쓰는 시, 온몸이 살아서 나오는 시, 온몸이 밀어내어 나오는 시, 그것은 시의 진실, 그리고 시의 의미일 것이다. 또한, 그의 모든 시들은 온몸으로 썼다는, 온몸을 밀어내며 썼다는 말일 것이다.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시를 완성해내기 위해 그는 상처와 고통으로 온몸을 밀어내었고 그렇게 탄생된 시들은 읽는 이 마저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김수영의 이상은 분명하다. 모든 사물이나 사태처럼 각 개인은 단독적인 존재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가 단독적인 존재가 아닌데 단독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단독성을 되찾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은 교육과 관습, 권력이라는 외적 압력 때문에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외부가 강제하는 제스처로 살아가는 순간, 우리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것이 원하는 바대로 살아가는 것은 우울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면, 반대로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노예다. 그러나 그 누가 노예로 살고 싶겠는가? 이것은 교복을 입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 특히 여고생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보면 분명해진다. 획일화를 강요하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자신이 입는 교복에 깨알 같은 변형을 주면서 자신의 단독성을 표출한다.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교복 양식이 계속 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것이 시의 원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본문 152쪽

 

 

개인은 시대에 잡아 먹힌지 오래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비슷한 방향으로 비슷하게 수긍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잡음 없고, 피곤하지 않게 사는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한 '개인'을 '모두'에 집어 넣는다. 개인은 '우리'가 되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한다. '우리' 속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나혼자 튀는 것, 그것은 언제나 미움을 받아왔다. 튀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하지만, 생각해보면 튀는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몸부림 치는 이들이었다. 튀고 싶어서가 아니라, 똑같은 것이 싫어서, 비슷한 삶을 거부하기 위한 반항이었다. 그것은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행위였다. 이제야 안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가 '단독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지지만, '단독적인 존재'를 향한 야유는 생각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남 생각이 내 생각인 것처럼 덧칠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남의 생각대로 살면서도 내 생각대로 산다는 착각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다. 생각해보면, '단독적인 존재'를 유지하고 산다는 것은 조금 더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깨어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신의 단독성을 표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그 몸부림 속에서 나오는 것들은 김수영의 '시'였고, 김수영의 '글'이었다.

 

 

김수영은 시인만큼은 모든 사람이 시인일 수 있는 사회를 꿈꾸어 왔다. 그래서, 동시대의 시인들이 현실의 낡음은 자각하지 않고 남의 제스처를 흉내내 시만 새롭게 쓰려는 모습을 보며 절망했다. 억압된 시대에 자신만의 제스처로 단독적인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시를 써내려고만 했으니, 그의 고민은 컸을 것이다. 설움도 없고, 자신만의 제스처도 없는 시인들에게 "뒤떨어진 현실에서 뒤떨어지지 않은 것 같은 시를 위조해 내놓"고 있다고 일갈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인들의 태도에 대한 강한 분노였다. 온몸을 밀어내며, 온몸으로 살아내며 쓰는 그에게는, 시대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시인들의 태도가 얼마나 슬펐을지.

시대는 흐르고 있었다. 혁명인 듯 보였지만, 혁명이 아니었고, 권력을 깨부순 듯 보였지만 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믿고 있는 대중을 속이고, 결국 다른 권력이 모습만 바꾼 채 지배한다. 4.19혁명을 온몸으로 경험한 그는 실패를 인정했지만, 또 다른 혁명을 꿈꿨다. 완전한 혁명은 모든 사람이 혁명가가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것. 그는 혁명의 좌절을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자유를 꿈꿨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재와 억압에 대한 분노로 민주주의를 외친다고 할지라도, 그들 내면은 이미 권위주의로 훈육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면 가난한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하고, 권력이 없던 사람이 소망하던 권력을 얻으면 권력이 없는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바로 이 점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선(善)과 정의(正義)의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일종의 피해의식 탓에 그들은 언제든지 억압받는 자로 변신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예는 주인이 되기를 소망할 뿐, '주인과 노예'라는 억압 체제 자체를 붕괴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의 왕조를 붕괴시킨 혁명이 항상 화장을 새롭게 고친 또 다른 왕조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억압으로부터 인간, 혹은 자유를 회복하고자 한 혁명의 결말치고는 아이러니하다. - 본문 346쪽

 

 

온몸이 더러워지는 진창에 빠져, 나를 알아볼 수 없는 순간이 온다고 하여도, 끝까지 나아가겠다는 시인의 신념과 의지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유 의지와 살아있음을 이야기 했고, 그 어떤 것도 그를 막아설 수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억압과 독재 위에 살고 있다. 아무리 자유로워졌다고 하여도, 정신은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어딘가를 서성이며 헤매이고 있다. 권력에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시간들은 자유의지를 희미하게 했고, 오로지 힘이 나의 존재를 구원해줄 것이라 믿고 살아 왔다. 그것은 '나 자신', '나의 온몸'으로 살아가는 시간이던가? 그 삶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김수영은 현재의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아직도 그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우리가 혁명을 이루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쳇바퀴 돌 듯 계속 회전만 하기 때문이리라.

 

 

그의 시는 정신이다. 이루어내야할 정신이다. 삶이다.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혁명가가 되는 세상을 바라는 꿈이다. 모두가 시인이 되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희망이다. 자각이다. 일깨움이다. 서러움이자, 고통이다. 뼈아픈 일침이다. 진실이다.

외면하고 싶은 것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 그것이 시작일 것이다. 그래서 김수영의 시가 더욱 소중하다. 모두가 외면했던 진실들과 당당히 마주하며, 거대한 시대와 맞선 그. 그리고 그를 다시 한번 읽게 해준 강신주.

거대한 도끼가 되어 시대를 내리찍은 그의 시. 그의 시와 그의 마음, 그의 모든 것이 이 시대를 나아가는 열쇠가 되길 바란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푸른 하늘을>(1960. 6. 15)

 

 

 

 

시인을 생각하다

이 세상의 시인들은, 온몸을 밀어내 시를 쓰는 시인들은, 시인이었고, 시인인, 시인일 것인 시인들은 이 세상을 참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속적이나 벗어날 수 없는 자신들의 공간에 갇혀, 그 순수한 마음을 감추어 보려고 술을 마시고, 어둠을 벗삼고 세상과 단절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눈을 뜨기만 해도 괴로운 세상 속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는 걸 알기에, 온 몸을 밀어내 혼자 시를 쓰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시를 쓰지 않는 시인도 시를 쓰는 시인도 어딘가에서 고통에 몸부림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다. 시인의 시는, 시 속의 시인은, 시 밖의 시인은 항상 진실과 마주하며 고통을 걷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을 아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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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3 17: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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