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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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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쯤 이었던 것 같다. 벌써, 13년 전, '동물농장'과 '1984'를 읽고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전해인가, 그 해, <동물농장>이 논술시험에 등장해 이슈가 되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읽어볼 수 있었다. 꽤 지났지만, 그의 상상력과 시대를 바라보는 날카로움, 세밀함에 감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왜 쓰는가>를 만나게 되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개인적인 생각과 주관, 통찰력을 잘 알 수 있다. 작가의 취향까지도 말이다. 조지오웰의 몇 편의 소설에서 느꼈던 날카로움은 에세이에서도 잘 나타나 있었다. 그는 세인트 시프리언즈 예비학교시절 공부는 잘했지만, 억압적인 학교 생활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버마에 인도 제국경찰로 근무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도 보여지듯, 그는 그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경찰을 그만 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코끼리를 쏘다>라는 에세이를 보면, 버마 경찰로 부임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훔쳐볼 수 있다. 코끼리를 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는데도,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중의 심리에 밀려 코끼리를 사살하게 된 조지 오웰.  

나는 내가 코끼리를 쏜 게 순전히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한 짓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 42p 

인간의 모순과 한계, 그것은 곧 제국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보여주는 작지만 큰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경찰을 그만 둔 후, 노숙자, 접시닦이 등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고 방송국 직원, 중등학교 교사, 헌책방 직원 등을 전전한다. 그 직업들 속에서 그가 써온 에세이들은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그러한 에세이들 중에서 29편을 묶은 것이 바로 이 책.  

그는 파시즘에 맞서 의용군이 되어 싸웠고, 영국의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의용군으로 스페인전에 참전했지만, 부상을 입고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영국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것은 <영국, 당신의 영국>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집안에는 비굴하게 아첨을 떨어야 하는 부자 친척도, 끔찍이 들러붙는 가난뱅이 친척도 있으며, 집안의 수입원에 대해 함구한다는 단단한 공모가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좌절을 겪고, 실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삼촌들이나 몸져누운 숙모들  손에 있다. 그래도, 집안은 집안이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공통의 기억이 있으며, 적이 다가오면 단결한다.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 - 영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107p 

공공연하게 부패와 타락이 계속되고 있으며, 허상과 가면을 쓰고 우아하게 구는 자신의 나라를 날카롭고 실랄하게 비판한다. 비유와 상징 속에서 풍자와 해학을 일삼으며, 좌로 우로 넘나드는 그의 비판은 무섭기까지 하다. 과연, 이시대를 살고 있는 지식인들은 이렇게 쓴소리를 하고 있는지, 문필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는지 반성까지 해보게 한다. 

전쟁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에서 그가 말하는 전쟁의 진실과 거짓. 결국, 거짓이 진실처럼 역사적 사실로 남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은, 스페인에만 적용되는 말같지는 않다. 이미, 전쟁 속에서 많은 왜곡과 거짓, 그것들이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미 기록된 진실된 역사마저 사실이 아닌 것처럼 바뀌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런 것들이 나로서는 대단히 두렵다. 이 세상에서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간다는 들곤 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그런 거짓들이, 아니면 그 비슷한 거짓들이 역사가 되어버릴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스페인내전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기록될까? 프랑코가 권좌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가 지목한 이들이 역사책을 쓸 것이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있지도 않았던 러시아 군대가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며, 학생들은 앞으로 그렇게 배울 것이다. 반대로 파시즘이 결국 패배하여 꽤 가까운 미래에 스페인에서 모종의 민주 정부가 회복된다면, 그때는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까?....(중략).... 아무튼 결국엔 '모종'의 역사가 기록될 터인데, 전쟁을 실제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그 역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온갖 실리적 목적을 위해 거짓은 사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 - 148p 

진실을 말하는 힘, 세상을 보는 통찰, 그리고 그 안에서 상황을 고찰하는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글을 쓰는 이가 어떤 자세를 갖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글로써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경험했던 모든 역사 속에서 나온 진실이리라. 부패와 타락, 부조리를 보아왔으나 수긍할 수 없었고, 힘있는 권력으로 자신을 감싸운 조국에 굴복할 수 없었고, 자신의 신념인 사회주의도 비판적인 자세로 보아왔던 조지 오웰.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거의 다 조립식 장난감 세트의 부속처럼 맞추어진 구절들로만 이루어진다. 그것은 자기 검열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솔직하고 힘 있는 글을 쓰려면 두려움 없이 생각해야 하며, 두려움 없이 생각하게 되면 정치적인 통념을 따를 수가 없다. 통념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는 동시에 너무 심각히 받아들여지지 않던 '신앙의 시대'에는 달랐을 것이다. 그런 시절에는 개인의 사고 영역 중 많은 부분이 그가 공식적으로 믿는 바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 있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 223p 

글쓰기에 대한 그의 신념이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풍자와 위트까지 갖춘 그의 글. 역사의 중심에 서서, 역사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다른 역사를 만든 것은 글의 힘이었다. 조지 오웰의 글의 힘은 대단했으며, 많은 반성을 하게 했다.  

그가 묻는다.  "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글쓰는 모든 이들에게 그 물음은 돌아간다. "당신은 왜 쓰는가?" 
글 속에 행동을 담지 못하면, 그 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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