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온다 리쿠는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뜻밖의 수확이다.

온다 리쿠의 야망이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다.

그 야망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하여

대작을 써서 널리 읽히고 싶은 작가의 야망이리라.

그 분야는 바로 '피아노'를 통한 '음악'과 '인생'의 버라이어티를 변주하는것.


제목도 멋지다. 

꿀벌과 원뢰...

'꿀벌'은 일상 옆에서 잉잉거리고 노래한다.

그리고 꿀벌 왕자는 천재로서 피아니스트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원뢰'는 그야말로 멀리서 울리는 천둥 소리로,

하늘까지 다다르고 싶은 음악의 세계를 대변하며,

[여리게]라는 뜻의 '피아노'가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악기로 승화되게 하는 단어다.

이 단어를 하늘을 꽈르릉거리며 진동하는 '천둥'으로 옮긴 것은 못내 아쉽다.


참 오랜만에 아껴아껴 읽게 되는 책이었다.

휴가갈 때 가져가서 읽으려 했지만, 결국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야금야금 읽다보니 이미 파이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네 사람의 피아니스트를 형상화하는 데 작가는 성공하고 있다.

각각 그 성향이 다른 네 사람을 통해

680페이지에 달하는 스토리가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그 사람들의 개성이 오롯이 도드라지고 있다.


벌꿀 왕자는 '먼지 진' 자를 이름으로 가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다.

아야는 이름처럼 여리기 그지없는 소녀로 그에게는 강한 원동력이 필요한 상태.

꿈을 접고 현실을 살아가는 아카시에게 콩쿠르는 언감생심, 그야말로 페이퍼 문(종이달, 그림의 떡)인 셈.

그리고 천재이기도 하고 외모도 출중한 마사루.


이 네 인물은 뛰어난 실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선가 결핍을 가득 안고 있어 소설의 긴박감을 더해준다.

피아노 소설이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것은 그들의 결핍에서 오는 트라우마가 주는 혼란일 것이다.

거기에 가자마 진이라는 에너지원을 넣어 이야기에 생동감을 넣어 준다.

마치 목포에서 노량진으로 가는 수조 트럭의 횟감 생선들 사이에 상어 한 마리를 넣어 주는 것처럼...


나도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1년 남짓 배운 적이 있다.

결코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닌 내가 꼬이는 손가락을 반복 반복을 통해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음악이 나오는 일은 창조같았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우연히 플루트를 접하고 소리를 내고 연주를 하게 된 것도 피아노를 배운 덕이리라.


천재들의 경지는 어떤 것일는지 몹시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뭔가를 깨우치는 순간은 계단식이다.

아무리 연습해도 제자리걸음,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여기가 한계인가 절망하는 시간이 끝없이 계속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은 표현할 길 없는 감격과 충격이다.

모두들 그런 지점들을 수없이 거쳐 지금 여기에서 무대에 서 있다.(455)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소설을,

지루하기는커녕 아쉬워하며 읽을 수 있도록 핍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연주를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점을 자연스럽게 레가토처럼 옮겨가는 기법을 쓴 공이 큰 듯 싶다.

심사위원의 시점에서, 아야의 시점으로,

그러다가 진의 돌발 행동과 색다른 연주 경험으로

제대로 보는 눈을 가진 아야의 친구의 시점과,

최고의 재능을 돋보이는 마사루나 끝없는 아마추어리즘의 아카시까지

곡의 전개에 따라 재봉선이 없는 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천의무봉의 시점 전환은 소설을 매끈하게 만든다.


참으로 음악이란 신비하다.

연주하는 것은 그곳에 있는 작은 개인이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것은 매 순간 사라지는 음표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는 영원과 거의 같은 의미의 존재가 있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동물이 영원을 자아내는 경이로움.

그 자리에만 국한된 덧없는 일과성의 존재,

음악을 통해 우리는 영원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571)


음악 철학이라 할까.

그런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 듣고 있자니 그것 또한 흥미롭다.


본디 인간은 자연의 소리 안에서 음악을 찾았다.

그렇게 들은 음악이 악보가 되고  곡이 된다.

하지만 가자마 진의 경우 곡을 자연으로 환원한다.

과거에 우리가 세상 속에서 들었던 음악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고 있다.(671)


작가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는 데 핵심이 되는 모티프는 '호프만' 선생님과

그의 폭탄인지 재앙인지 튀어대는 제자 '진'이 있다.


음악을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겠다는 약속.(673)


이런 생각을 통해, 자기 굴레에 갇혀 있던 아야까지도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다.

갇혀 있으면 세상으로 나올 수 없다.

음악은 소통이기도 하고

음악은 사랑이기도 하다.


소설을 통해 음악에 대한 재미와 

음악이 주는 유익함을 맘껏 펼친 대작이다.


좋은 소설이다.

일단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으니 성공한 소설이고,

부정적 인물이 등장해서 쓸데없이 갈등을 조장하고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하지 않고도

물이 흐르듯 쏜살처럼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주제 의식이 쏟아져 나오니 멋진 소설이다.


세부에 치중하면서 인물 설정에 어색함을 보인 듯 했던

온다 리쿠의 몇 소설을 읽고 그를 던져 두었지만, 이 책은 감사하면서 읽었다.


악기 연주를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게 하는 책...




어려운 낱말 공부...


647.  음악에는 역사와 굴레도 있지만 동시에 항상 갱신되는 신선함도 내포되어 있다.

같은 한자라도 '갱신'은 '면허증 갱신, 인증서 갱신', 그리고 이 경우처럼 '다시 새로워짐'의 뜻이 있고,

                '경신'은 '기록 경신, 제도 경신'으로 쓴다 한다. 참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