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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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소중한 경험...

 

한국에서는 구하기 귀한 로이스 초콜릿을 선물받아 냉장고에 넣어 두고는,

괜스레 하루 한두 차례 냉장고 문을 열면서 스무 개의 직사각형 조각이 하나씩 스러짐을 아쉬워하듯...

야금야금 읽었거늘,

어쩌다 보니 2권을 전에 읽었고, 이제 1권을 다 읽었다.

 

소설도 아닌 이런 인터뷰집을 아쉬워하며 읽게 되기도 참 드문 경험이다.

책을 읽는 순간들마다 이런 책이 번역되어 나왔음을

그런 나라에 살고 있음을 가슴 벅차하는 경험을 한다.

비록 그 나라가 참 징그럽게 더러운 현실일지라도...

 

2권은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파묵,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매큐언, 필립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마르케스, 헤밍웨이, 포크너와 포스터가 실려있다.

내가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유명한 마르케스와 헤밍웨이, 쿤데라 순이었는데,

읽고 나서 인상적인 사람들은 달다.

필립 로스와 레이먼드 카버 같은 사람들의 인터뷰도 기억에 진하게 남는다.

 

2. 쓴다는 일

 

올해 우리반에 들어온 아이 중 한 명이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선발집단인데도 입학할 때 성적이 3등일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공부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방황하다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는데...

정작 그 아이의 글을 읽어볼 만큼, 아니 그 아이가 선뜻 내게 원고를 뵈줄 만큼 아직 래포 형성이 된 건 아니다.

갑갑한 어른의 시선으로는, 그 아이가 일단 공부에 매진하고, 나중에 글쓰기를 하면 어떠냐고 떠봤더니,

이제까지 어른들은 다들 먹고 사는 이야길 하면서 공부하라고 했단다.

쩝~ 나도 맨날 소설을 읽고 문학을 강의하는 주제에, 글쓰기를 택하겠다는 아이를 전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니...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 아이가 밥벌이가 가능한 곳에 가서 천천히 생각했으면... 하는 생각이 지울 수 없다.

공부를 힘들지 않게 해낼 수 있는 능력도 하나의 큰 능력 아닌가 말이다.

올해는 그 아이랑 재미있게 지내는 게 과제다.

그렇지만, 쓴다는 일에 대하여 읽으면서, 그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삶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이 삶이 아니던가.

 

3. 소설과 삶의 거리, 스토리와 도덕 사이...

 

흔히 소설의 스토리를 두고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둥, 청소년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둥 하는 소리를 한다.

참으로 허무맹랑하다. 삶이란 것이 도덕과 한치의 겹칩도 없이 부조리한 것이거늘, 소수의 권력자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윤리적이라는 둥 하는 소리를 소설에 갖다 대는 것은 가소롭다.

 

글쓰기는 정교한 가면을 씀으로써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 행위로 바꾸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당신의 도덕적인 성품에는 낯선 특질을,

당신이란 존재를 통해 빨아올리는 매우 고된 정신적인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작가는 사람들이 뭘 보여주길 원하고 뭘 숨기고 싶어하는지

방향을 정해주는 보통 인간의 본능을 따른 여유가 없답니다.(필립 로스, 249)

 

난 필립의 소설을 한 편도 읽은 것이 없지만, 그의 이야기엔 전적으로 공감했다.

나도 리뷰를 쓰면서 윤리적 측면이나 상식의 측면에서 비평을 가하기도 하지만,

사실 개인적인 삶의 부조리함을 생각해 본다면, 문학 작품에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 일 자체가 무용하다.

 

인류 전체의 선을 위해 사람들이 하는 척하는 일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오류라곤 없는 이론가들의 체계적인 효율성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은 사람들이 정말로 하는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로스, 259)

 

페미니즘 소설이라 욕하고 누구는 저급한 소설이라 욕하지만,

그런 욕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소설이란 현실의 개연성을 취하는 허구임을 잊은 꼰대에 불과할 따름이다.

원래 윤리, 도덕을 외치는 자들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거기 편승해 개떼처럼 짖어대는 몰지각한 지성과 언론 등이 처참한 게 인간의 한계이고...

 

소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꿀 뿐입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깊고 독특한 기쁨이며,

성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는 신비로운 인간 활동입니다.(로스, 279)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도 너무 편향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신비로움을 굳이 외면하고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에 쏠려있었던 것을 보면...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걸 혐오하는 것이야말로

서정시적인 재능과 소설적 재능을 구별해주는 것이다.(쿤데라, 286)

 

그렇다. 서정시는 자신의 이야기를 감춰가면서 한다.

소설적 재능이란 자신의 이야기조차도 전혀 아닌 것처럼 꾸밀 수 있는 재능이다.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서술자를 내세우는 것이 소설가의 재능인 셈.

쿤데라의 소설이 온갖 이야기의 잡탕처럼 혼잡스러 보이는 것은, 실존이 그래서라고 한다.

인간의 삶은 온갖 상황이 번잡스러이 널부러진 혼잡 그 자체가 아닌가 말이다.

 

브로흐가 '소설적 지식'이라 부르는 그 특정 대상이란 바로 실존입니다.

그의 백과사전적이란 단어는,

실존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모든 장치와 모든 형태의 지식을 함께 모아 놓은 것입니다.(289)

 

소설은 결국 인간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형태의 지식을 혼잡스럽게 모을 수밖에 없다는 데서,

그의 소설의 난삽함이 설명된다.

이 책을 읽으면, 밀란 쿤데라의 그 혼잡성이 용서되면서, 그가 급 사랑스러지고, 읽고싶어진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들은 모든 책의 제목이 혼잡하다.

 

제 소설 중 어떤 것에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우스운 사랑들'로 이름 붙여도 무방합니다.

그제목들은 저를 사로잡고, 정읳고, 한편으로는 불행히도 저를 제한하는 몇 개의 주제들을 반영하거든요.

이 주제를 넘어서서는 다른 아무것도 말하거나 쓸 게 없습니다.(306)

 

그렇다.

현실도 그러하다.

4월 16일을 열흘 앞둔 오늘도,

한국 정부 앞에 국민이란 이름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고,

농담이자 헛소리를 언론이라 떠들고,

정말 우스운 사랑들로 세상은 혼잡하다.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는,

그의 960페이지짜리 평전을 훑어보고 싶게 만든다.

 

한 단편에 스무 가지나 서른 가지의 다른 수정본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332)

 

평범한 삶을 영위해온 작가들은 '명성'에 대하여 겸손하다. 그러나 그는 솔직하다.

 

명성은 - 아니면 새로 발견한 저에 대한 관심과 흥미라고 해야할지 -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신감이 필요할 때 자신감을 강화시켜 주었지요.(342)

 

그에게 소설의 가치란 이러하다.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지 지속적으로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은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348)

 

실패한 혁명의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은 굳이 부정해 왔으나,

소설의 힘은 역시 이야기의 강렬함이고 즐거움이지, 도덕이나 정의와는 차별되는 것이다.

 

문학과 목수 일은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은 반면,

일은 엄청나게 많이 고되게 해야 하지요.

10%의 영감과 90%의 노력을 필요로 한답니다.(369, 마르케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첫 단락입니다.

여기서 주제와 스타일, 어조가 정해집니다.

그래서 단편을 쓰는 것이 더욱 어렵지요.

단편을 쓸 때마다 작가는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마르케스, 377)

 

대부분의 작가들이 시작을 어렵다고 말한다.

글은 그냥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 시작을 실패해서, 개념이 잡히기 시작해야 써나가는 어떤 것이므로.

 

헤밍웨이의 문체가 건조하듯, 그의 인터뷰도 건조 그자체다.

 

신문기사를 쓰는 것은 젊은 작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고,

적당한 때에 신문사를 벗어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406)

 

적당한... 이라니, ㅋ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눈으로 읽히길 바라는 것이지

어떤 설명이나 논문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414)

 

글쓰기 기법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바삭거리게 대답한다.

어떻게 글쓰는지 이야기하는 일은 부적당하다는 일갈이다.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왜 그런것으로 골머리를 앓나요.

일어난 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재현이 아니라 창작을 통해 살아있는 어떤 것보다 더 진실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요.(428)

 

살아가는 사회에 따라 모순을 느끼는 밀도는 다르다.

식민지 시대, 독재와 온갖 부조리를 겪은 사람들과

비교적 자유를 만끽한 국가의 사람들은 다른 질문과 대답을 한다.

배부른 소리면서도, 예술이란 그런 것에 더 가깝다. 자유에 더욱 가까운...

 

영화 대본이 글쓰기를 망칠 수 있나요.

일류 작가라면 어떤 무엇도 그의 글에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만일 일류 작가가 아니라면 그 어떤 것으로도 그가 좋은 글을 쓰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윌리엄 포크너, 441)

 

이것이 정답이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음악가가 되지 않았고,

의대를 나오지 않은 허준이 명의가 되었듯,

어떤 것도 훌륭한 작가를 망칠 수 없고, 무명의 얼뜨기를 작가로 만드는 왕도 역시 없는 법이다.

 

포크너는 돈 키호테를 워낙 많이 읽었단다.

 

그래서 저는 친구를 만나 잠깐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 장면이나 한 인물에 집중해서 읽습니다.(458)

 

고전은 그런 것이다.

마치 판소리가 스토리의 한 장면을 편집하여 '판'을 짜듯이,

고전은 완독보다는 부분부분 읽으면서도 정독을 통해 재미를 주는 책들이다.

 

세상의 고통은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의 사람들에 의해 야기됩니다.(464)

 

삶에 대한 포크너의 통찰이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불멸은 언제나 살아 움직여

불멸인 어떤 것을 남겨 놓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항상 움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466)

 

그의 '내가 누워 죽어갈 때'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쓰고 있다.

그가 죽어도 그 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시선은 죽지 않을 것이다.

 

야구 경기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158, 폴 오스터)

 

나 역시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 난감하게 자랐다.

오스터에게 야구 경기가 그런 것이듯,

나에게는 술자리가 그러했고, 책 이야기가 그러했다.

80년대의 세미나 문화와 뒤풀이 문화가 나를 가르친 것이 팔할이다.

그리하여 리뷰쓰는 일이 나의 소통의 힘이 된 원천이기도 한 것이다.

 

진리를 찾아 나설 때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비하라,

진리를 찾는 것은 어려우며, 그것을 찾았을 때 당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오스터, 163)

 

소설을 통해, 예술을 통해 당혹함을 느끼는 일은 진리에 가깝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일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덕에서 벼락에 맞아 죽은 바로 곁의 친구...

그에게 청취자들의 각기 다른 사연들은 힘을 주었다.

 

저 혼자 기이한 경험을 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뻤지요.

바깥 세상은 광란의 도가니였어요.(168)

 

모든 인간의 삶은 기이하다.

누군가는 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부모가 없이 자라나고,

누군가는 부모가 있어도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사랑하지 못해 고독한 인간도 있지만,

사랑함으로 인해 더욱 고독한 인간도 있다.

세상은 광란의 도가니임을 알면, 삶이 지옥만은 아니다.

삶이 그런 것임을 알면,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함께 걷게 된다.

 

청취자 사연 프로젝트는,

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우리 모두는 강렬한 내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격렬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고,

여러 가지로 기억할 만한 경험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170)

 

그의 빵굽는 타자기 아래서 모든 사람은 귀하다.

 

노동계급의 지적 수준을 얕보는 경향이 있는데,

제 경험에 기초해 보면 노동자 대부분은 지배하는 사람들만큼 똑똑합니다.

단지 그들만큼 야심차지 않을 뿐이에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너무나 재미있어요.(175)

 

그의 이야기는 이론은 아니지만 강하다.

 

인생은 너무도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지요.

결국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할까요.

어린아이가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178)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명쾌하다.

왜 쓰는지 핑계대지 않고, 지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므로... 쓰게 된다는 것이다.

 

빨간 책방... 에서 인상적이었던 이언 매큐언 역시 소설의 힘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이야기가 우아하거나 조밀한 것을 찬탄하지 않아요.

말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길 바라며,

곧바로 사건 그 자체로 이끌어 가주길 바라지요.

그리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합니다.(227)

 

이야기를 지루하게 이끄는 작자들이 읽어볼 글이다.

 

에코는 중세에 끌린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왜 사랑하게 되는거죠?

제가 보기에 중세는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시대였고

그 시대의 비옥한 토양에서 르네상스가 출현했죠.

혼란스럽고 활기찬 변화의 시대였죠.(29)

 

남들과 같이 보면, 활기를 읽기는 힘들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 시대와의 유사성을 깊이 있게 찾아내는 것.(30)

 

스스로를 구식이라고 일컫는 움베르토 에코의 저력이 느껴진다.

번역에 대하여도 에코는 관심 많다.

 

번역을 위해서는

그의 세계가 갖는 혼, 그것의 호흡, 정확한 속도를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48)

 

아마 고전을 읽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고전의 시대가 갖는 혼과 호흡, 작품의 의의를...

 

텍스트가 작가보다 더 똑똑해요.

텍스트는 작가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생각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번역가는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옮기면서 새로운 생각들을 발견해서 알려줄 수 있지요.(49)

 

이쯤되면 번역은 새로운 창작을 넘어 새로운 작품이 되는 셈인가.

 

세밀화가를 그린 오르한 파묵은 역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작법을 이야기한다.

 

소설가는 본질적으로 개미처럼 끈기있고 천천히 장거리를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소설가는 악마적이고 낭만적인 비전때문이 아니라, 끈기때문에 인상적이지요.(74)

 

터키는 내가 몰랐던 악마적 민족주의에 휩싸여 있기도 한 모양이다.

 

우리는 그렇게도 국제적이지 못한 민족주의를 최고로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95)

 

하루키에 대해서는 별로 감명깊지 못했으나,

인터뷰어의 이 말은 매력적이다.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인 재즈와 마라톤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스무 살은 젊어보였다.

아니면 마치 마흔 일곱 먹은 소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110)

 

어쩌면 ㅋ 그에 대한 디스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마니아인 사람은 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잃어버리고 찾아다니고 발견하기,

그러고 나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인 실망이 기다리고 있지요.(129)

 

부지런히 쓰는 작가인 하루키의 소설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나는 저 '실망'에 실망했던 모양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모색과 발견에 대하여 열광하기는 쉽지만, 그 실망에 애착을 주기엔 내 삶이 너무 뜨거웠나보다.

돌출된 덩어리, 단카이 시대의 하루키는 그렇게 나와 비슷하여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불길이 잦아든 지점에서,

첫 작품은 작가에게 검은색이다.

불이 타오르고 남은 그을림의 흔적이니까.

그러나 시인은 계속 불을 찾아 나설 것이지만,

소설가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체력이나 건강과 같은...(김연수, 머리말에서)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을 읽고 실소를 머금었다.

그 책은 이 책에 의한, 이 책에 대한 오마주이자,

이 책의 나란히 쓰기에 불과하였음을 느끼게 되어서다.

 

이 책은 여느 리뷰집보다도 더 독서의 열망을 부추긴다.

그리고 여느 작가의 평전보다도 더 작가에 대하여 궁금하게 여기도록 한다.

파리 리뷰... 그들의 지난했던 작업의 결과,

나는 이렇게 행복한 독서에 푹 빠질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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