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삶의 교과서를 한글로 만나다' 『한글 논어』서평단 당첨자를 발표합니다.
한글 논어 - 시대를 초월한 삶의 교과서를 한글로 만나다 한글 사서 시리즈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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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벌써 시도를 요약한다.

'한글 논어'라...

 

보통 논어라고 하면,

공자님 말씀이고, 고리타분하고, 산만한 한문문장이 난해한 책으로 여기기 쉽다.

또 실제 그러하다.

맹자나 노자, 장자 들에 비하면, 논어는 특정한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기에는 너무도 잡다한 주제들이 등장하고,

그야말로 '논'한 것과 '어'- 말씀하신 것이 들쭉날쭉 등장한다.

 

그래서,

논어를 처음부터 펼치고 들면, 1편 학이를 다 읽기도 전에 졸기 쉽다.

 

그리하야, 계륵같은...

먹자니 성가시고, 먹을거리를 취하기 힘든데, 버리자니 이거 너무도 중요한 텍스트라 어쩔 줄 모르던 차에,

팟캐스트의 <ebs 고전읽기>에 2주를 할애하여 10시간이나 '논어'를 읽어주던 방송을 출퇴근길에 들었다.

명로진, 권진영이 진행하는 이 방송으로 고전을 접하는 것도 좋지만,

논어처럼 특정 주제를 뽑아가며 읽어야 하는 책은

이렇게 읽어주는 동기를 만나게 된 것이 참 행운같은 기회로 여겨진다.

 

나처럼, 논어 - 그녀에게 관심은 있으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존재로 여겨질 때,

두 눈 딱 감고, 팟캐스트를 활용해 본다면,

권진영 희극인이 말한 것처럼, <논어, 참 쉽죠잉~>, <친근하고 편안해져요~>

이런 느낌과 함께 논어를 접할 수 있을 듯 싶다.

 

논어는 그야말로 잡다하다.

한문 문장 역시 풀이하기 쉽지 않다.

유명한 구절들 몇 개를 안다고 논어를 읽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책의 장점은, 한문에 얽매이지 않고 논어를 읽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한문 구절 하나하나에 구속되지 않고 알아듣기 편한 말로 풀고 있다.

물론, 해석이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고, 오역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글 논어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한문 공부나 논어 강설로 얻는 것에 비해 적다고만 여길 수는 없을 게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이번에는 읽으면서, 정치인의 자세와 교육에 대하여 만난 구절들이 가슴에 쏙 파고 들었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부조리한 사람의 윗자리에 배치하면

국민이 따르게 됩니다.

반대로 부조리한 사람을 높은 자리에 등용하여 정직한 사람 위에 쓰면 국민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위정편, 19장, 105)

 

장관할 사람이 없어서 청문회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을 지껄이는 자들이야말로,

논어를 외우게 해야할 노릇아닌가 싶다.

 

활을 쏘는 목적은 과녁의 가죽을 뚫는 데 있지 않다.

왜냐하면 활쏘는 사람의 힘이 같지 않고 실력에 차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옛날부터 내려오던 활 쏘는 방법이다.(팔일, 16, 123)

 

교육을 부자에게 유리하게 하는 것은, 힘센 사람이 가죽을 뚫도록 가르치는 일이나 한가지다.

힘이 약해도 누구나 골든존에 맞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 교육이다.

굳이 과녁을 뚫도록 경쟁시키는 것에 핵심이 있지 않다.

 

아침에 세상 사물의 이치와 사람의 길이 무엇인지 듣고 깨닫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137)

 

조문도 석사가의... 유명한 말이다.

아침에 진리를 깨닫는다면, 진리를 낮동안 음미하고, 후배에게 전수하고, 실천한 뒤에,

저녁에 죽는대도 좋다고 했다.

 

그런 자세로, 죽음을 두려워 말라는 뜻이렷다.

 

이 책에서는 '군자'라는 말을 <참된 사람>, <정치지도자> 처럼 풀었다.

그렇다.

<군자>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어떻게 풀든 우리말로 옮겼어야 할 말이었다.

영어로 '뉴욕'을 굳이 옮길 이유는 없지만, '세렌디피티' 같은 것을 그대로 쓰면 번역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또하나의 돋보이는 단어는 '인'이다.

논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한자인 '어질 인 仁'

 

<포용력이 있다>거나 <도덕성이 높다>처럼 때에 맞게 옮기고 있다.

그것을 꼭 옳다, 그르다고 시비하기보다는,

어떤 것이 요즘 사람들이 쓰는 용어에 근접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번역자의 고충이자 존재 이유이리라.

 

공자 시대의 '인민'과 '선비 사'는 상당히 계급적 관점을 가진 어휘들이었을 게다.

사람 인, 은 다만 인간 존재가 아니라, 지배계층이기 쉽다.

백성 민, 은 피지배계층에 어울리는 사람들일 게다.

선비 사, 는 지배계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관료집단을 일컫는다. 사와 대부를 합쳐 사대부라 불렀다.(사에 비하면 대부가 관직에 진출한 경우를 말했다.)

 

학문으로 시작한 논어는 '학이시습지'로 출발한다.

마지막 장은 '요왈'편인데, 그 3장은

'부지명 무이위군자야

부지례 무이립야

부지언 무이지인야'...로 마친다.

 

이 부분은 해설이 조금 미흡해 보이기도 한다.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사회의 도덕을 알지 못하면 세상에서 떳떳하게 행세할 수 없다.

자연의 질서와 사회의 도덕을 체득하여 적용하지 못하면 인생을 경영할 수 없다.(467)

 

이렇게 해설했는데, 마지막 구절과 찰싹 들러붙은 해석이라 보기 힘들다.

 

참고로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책, <논어, 이산동양고전>에서는

 

천명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면 학문을 한 군자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배우지 않으면 독립할 수 없다.

말하는 법과 듣는 법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분별할 수 없다.(311)

 

김형찬의 책, <논어, 홍익출판사>에서는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당당히 나설 수 없으며,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다.(215)

고 되어 있다.

 

아무튼, 순리를 어겨 가며 쿠데타를 일으킨 자나, 부정선거로 권력을 거머쥔 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어기며 거짓 참배를 하거나, 거짓 눈물을 흘리면 똑바로 서기 힘들고,

제대로 말할 줄 모르는 지도자라면, 남(고위 관리)을 판단하는 능력이 없다는 뜻은 이러구러 통한다.

 

앞부분의 공자 전기가 단출하게 나와있다.

굳이 읽지 않아도 논어 즐기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통일할 곳,

17쪽과 18쪽의 공자 아버지 이름을 '숙량흘' 또는 '숙양흘'로 뒤섞어 쓰고 있다. 이는 이름일 따름이니 굳이 두음법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보면, 숙량흘로 통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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