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해콩 > 교육사령부를 해체하라 - 홍세화

'교육사령부'를 해체하라

[한겨레 2005.06.01 19:08:00]



[한겨레] “전시 좌경학생 지도 및 교원. 교직단체 대책 : 순화가 곤란한 학생은
관계기관과 협조하여 격리 조치한다. 배후 조종 교사는 격리 차원에서
교원징계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 학교장은 관련 교사를 ‘전시범죄 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의 ‘예비검속’을 돌아보게 하는 이 지침은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유물이 아니다. ‘민주화된 시대’ 노무현정부의 교육인적자원부의
작품이다. 그들은 최근에 “학생과 교사를 ‘좌경’과 ‘건전’으로 구분해
좌경학생을 격리조치하고 좌경교사를 감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16개
시도교육청에 내려 보냈다. 학생들을 전시대비 학도호국단 체제로 편제하여,
학교장을 대대장으로, 교련교사 군복무 경력 교직원을 중대장으로, ‘건전한’
학생을 소대장급으로 임명한다는 것이다. 시대는 바뀌었어도 그들의 발상은 식민지
때나 권위주의 독재 시기 그대로다. 이 참에 교육인적자원부를 그들의 정신과
구실에 맞게 교육사령부로, 교육부 장관과 관료를 사령관과 참모로 바꿔 부르기로
하자.

군국주의 일본이 이땅에 학교를 세운 일차적 목적은 황국신민화에 있었다. 조선
백성의 민족적 정체성을 스스로 배반하고 일왕한테 충성하는 의식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학교의 일차적 목적이었다. 둘째 목적은 전시동원 체제의 요구에 따른
총알받이가 되도록 미리 훈련시키는 교육장으로서의 학교였다. 셋째 목적은 식민지
중간관리자 양성, 곧 식민지 ‘마름’ 양성에 있었다. 지주가 마름을 통해
소작농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듯, 식민지 수탈과 관리는 식민지 출신 중간
관리자들을 통하여 지배할 때 더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군국주의 일본의 이러한 목적에 가장 적절한 학교는 그 구조부터 달랐다.

일반적인 학교가 아닌 군사학교를 본뜬 것이다. 우리네 초·중·고등학교가
‘수위실=위병소’, ‘운동장=연병장’, ‘조회대=사열대’의 병영구조를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은 “앞으로 나란히!”로 시작되는 학교생활을
통하여 권위주의적이며 관료주의적인 군사문화를 내면화하면서 기존 체제와 질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의식을 형성했다. 군국주의 일본이 사라졌고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물러났지만, 학교 구조는 예전 그대로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교육장이란 구실은 그대로 남은 것이다. 일왕에게 충성하던 의식을 길러내던
곳에서 안보와 반공의식 세뇌의 장으로, 다시 질서의식과 국가 경쟁력을 강조하는
곳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오늘날 이주 노동자들의 처지가 사장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듯이, 학교
분위기와 교사와 학생의 일상은 교장에 따라 달라진다. 걸핏하면
교사·학생·학부형이 ‘교육의 세 주체’라고 강조하지만, 교사회, 학생회는 아예
없거나 유명무실하고, 학교의 실제 주인은 ‘대대장’인 교장인 게 현실이다.

교육사령부에 충성해야 대대장이 될 수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마름은
단위학교에서 봉건영주처럼 군림하는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교육사령부-교육청-교장-교감-부장-교사-학생으로 일사불란하게 관철된다.

교육사령부 참모에게 일선교사는 말단 소총부대 소대장이다. 역대 정권의
충성스런 마름 노릇으로 닳고닳은 교육사령부는 노회하게도 학부모들을 앞장세워
소대장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민주화된 시대’에 맞게 학교를 민주화하는 일이다. 그것은 ‘대대장’
임용제도를 바꾸는 데서 시작되며, 구시대적 ‘마름정신’의 본산인 교육사령부를
해체해야 가능할 것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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