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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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키 쓰쿠루... 多崎 作

 

이 소설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다.

 

쓰쿠루는 '만들다'는 뜻의 일본어 동사인데,

그는 '역'을 만드는 엔지니어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역'은 어느 도시와 도시를 잇는 철도의 연결지점이란 면에서, 이 소설의 주제를 잘 반영하는 직업이다.

 

궁금증 유발?

살인 사건?

여행...

 

이런 소설로서의 재미를 다 가지고 있는 소설인데,

하루키가 쓰쿠루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 놓인 '관계'는

케미스트리(화학, 궁합, 공감대)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속담처럼,

그 케미스트리가 '화학적 결합'에 의한 것이라면,

사람의 기본 속성 자체를 변화시키게 된다.

그런 사이는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일본과 핀란드라는 어떤 머나먼 거리라도 한 순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케미스트리가 단순한 '물리적 결합'에 의한 것이라면

뒤섞여있는 '혼합물'과도 같이,

근본 성격은 변함없는 것이 되어,

따로 놀게 되는 것이리라.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는 하나의 공유 결합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쓰쿠루의 이름처럼, 다자키(많을 다, 곶 기)... 울퉁불퉁 튀어나온 곶이 상징하듯,

삶의 여정은 평탄하게 닦인 길이 아닐 때가 많다.

그 평탄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또 쉽게 잊히게 된다.

 

고등학교때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끈끈하게 엮였던 결합이라 해도,

결국 남는 사람은 남고 스러지는 사람은 스러진다.

세월이 증명한다.

그 결합이 두 사람을 변화시킨 화학적 결합이었는지, 단순한 물리적 결합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아오나 아카처럼 16년만에 다시 만났어도,

멀뚱멀뚱 각자 살아가는 길을 제각기 살아가는 결합이라면,

인생에 대한 깊은 고뇌 따윈 나눌 틈이 없을 것이지만,

지구를 반바퀴 돌아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 가서 만난 구로처럼,

여전히 꼬옥~ 껴안고 다독거릴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한 명인 친구라 해도,

그런 친구를 만드는(쓰쿠루) 일은 행복하다.

 

쓰쿠루 :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는데...(52)

사라 : 누구에겐가 이야기해 버릴 필요가 있었던 거 아닐까. 스스로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자기 안에 침잠하여 사는 스타일의 삶에겐, 이런 열린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들은 모두 제각기의 색채를 가지고 있다.

빨강, 파랑의 남자친구와 하양, 까망의 여자친구.

이야기 속의 미도리(초록)도 모두 색채다. 후배 하이(회색) 역시 그렇다.

 

색상은 제자리에서 머문다.

그러나 쓰쿠루는 그 색상과 색상, 채도와 채도 사이를 '순례'하면서,

인간이 아닌 '인간 관계'를 탐색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자기 색채에 함몰되지 않은 상태로....

 

나는 결국 혼자 남겨질 운명인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 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다가왔다가는 이윽고 사라진다.

그들은 쓰쿠루 속에 무엇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을 찾지 못해,

또는 찾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체념하고 떠나버리는 것 같다.(150)

 

쓰쿠루의 가치는 그렇게 제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지구 반 바퀴도 마다하지 않고, 순례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깨달은 쓰쿠루에게 '색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돼.

그리고 발견할수록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는 거야.(244)

 

아카의 입을 빌려 이런 말을 한다.

하루키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의 대표 작가다.

툭 튀어나온 덩어리란 뜻으로, X- 세대나 마찬가지 표현이다.

이전까지의 공동체 사회를 버리게 되는, 상실의 세대인 셈이다.

 

현대인의 상실감에 집착하는 하루키는,

이전 세대라면 삶의 공간에서 당연히 획득하게 되는 '케미스트리'에 천착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364)

 

지구 반바퀴를 돌아 만난 친구 에리에게서 쓰쿠루는 진정한 케미스트리의 의미를

상처로 연결된 마음으로 배운다.

마음과 마음이 상처로 깊이 연결된 '사이'에서는 용서할 것도, 수용할 것도, 더이상의 언어도 불필요한 것.

 

혹시 네가 텅 빈 그릇이라 해도 그거면 충분하잖아.

만약에 그렇다 해도 넌 정말 멋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릇이야.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그런 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정말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되잖아.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그 안에 뭔가를 넣고 싶어지는, 확실히 호감이 가는 그릇으로.(381)

 

친구 에리가 그릇만드는 사람이어서 발견하게 되는 이런 이야기는,

상실의 '실존'들 '사이'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릇은 그릇이다.

그릇에 꼭 무엇이 담겨 있어야만 그릇이 아니다.

텅 비어 있음으로 오히려 그릇은 쓰임이 있다.

아름다운 그릇이라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 그릇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할 것이니 말이다.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 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388)

 

사람의 변화는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고독한 실존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면,

이 가을,

하루키를 만나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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