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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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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평단 도서였는데,

제목이 뭔가 매력적으로 사람을 끌고,

표지도 상당히 이뻐서 관심을 갖게 한다.

 

근데... --;

읽으면서는 뭔가 열심히 먹고 있는데도 배고픈 듯한 느낌이랄까?

조밀하게 꽉찬 느낌이 아니라, 헤설피 얼버무려서 흘러나가버리는 듯한 허전함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음을 감출 수 없다.

 

바람에 비해선, 허전하다.

책읽는 이들의 이야기에 대한 책은 많다.

그런데, 이왕이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덜 허전했을 거란 느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끌린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부분)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은 두 배로 환한데,

그 까닭은 책 속에 들어있는 꿈, 곧 바깥에서 오는 에너지와 독자가 읽으면서 꾸는 꿈,

곧 안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이다.(291)

 

혹자는 독서인의 모습이 아름답다고도 하고, 섹시하다고도 하는데,

안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책의 아우라가 어우러져 독특한 파동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무덤이 되느냐 보물이 되느냐

내가 말을 하느냐 침묵을 지키느냐는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있다.

친구여, 욕구 없이는 부디 들어오지 마라.(폴 발레리, 책의 입장에서, 236)

 

책은 읽는 자에게 자신의 몸을 내준다.

마음도 내준다.

그러나, 그 몸과 마음을 취하는 독자의 욕구에 따라,

결핍과 강렬한 요구에 따라 책은 보물이 되기도 하고 무덤이 되기도 하며,

빛을 내는 황금의 웅변이 되기도 하고, 잿빛 침묵이 되기도 한다.

 

책 속의 문장에 눈길이 닿으면 냉동되어 있던 생각의 얼음들이 녹아 따뜻해지면서

 생각의 아지랑이를 무럭무럭 피어나게 한다.(233)

 

이렇게 생각의 아지랑이를 모락모락 피어올리는 사람의 주변에선

모름지기 따뜻한 황금빛 아우라가 돋아오를 것이다.

얼음같은 생각들은 해동되고 승화되어 주변을 덥히게 마련이다.

그 마법의 열쇠는,

책에서 발생한 입자가 눈의 시세포에 와 닿으면서 일으키는 진동에서 시작된다.

 

책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다.

 

프로방스의 작가 피에르 마냥은 지니고 살던 수많은 책을 다 기증하고 오로지 25권의 책만 집에 남겨 두었다.

시인이자 사드 백작 연구 전문가인 질베르 레리는 집에 오로지 1백권의 책만 가지고 산다.

새로 한 권의 책을 더하면 이미 있던 것 중 한 권의 책을 덜어낸다.

'사물들'의 작가 조르주 페렉은 361이 가장 이상적인 숫자라며 그 숫자만큼의 책만 소장하는 친구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흩어지고 사라진다.

죽기 전에 서재를 없앨 것이냐, 죽고 나서 서재가 흩어지게 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139)

 

책을 읽는 것이 의미가 있지만,

또 특별한 책들은 쓰다듬어 보고 어루만져 보는 것으로도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책들은 향긋하고 다사롭고 보드레한 감각으로 충만하다.

 

어차피 내 서재의 책들도 다 사라지고 흩어질 것이다.

이왕이면 생전에 그것들을 기증하고 나누는 것이 더 의미있지 싶다.

 

박이문은 '둥지의 철학'에서

철학하기란 자신의 영혼이 편안하게 거처할 개념적 둥지를 짓고

계속 리모델링하는 작업이라고 보고 있는데,

장년의 독서야말로

자기 자신의 정신적 안정과 휴식을 위한 '둥지 짓기'로서의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에서 얻은 것들을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부서지지 않게 배치하고

쌓아올리고 빈 구멍을 메워가는 독서야말로 자기 자신만의 정신적 삶을 사는 길이다.(83)

 

젊어서도 책을 좋아했지만,

나이들어 읽는 책은 남다르다.

정신적 둥지를 짓기 위해 곁가지 하나도 의지가 된다.

더군다나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나는 인터넷 공간도 큰 도움이 된다.

 

두뇌가 갈수록 퇴화하는 나이일수록,

잔가지는 잊어버리게 되겠지만,

큰 우듬지는 아우를 줄 아는 지혜를 책을 통해 얻기를 바라며,

잔가지도 놓치기 싫은 것은 기록을 하고,

때때로 얻어지는 그루터기같은 정신적 지혜들을 적어 놓으려

나는 오늘도 이 전자의 허공에 또 기록하고 적어 두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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