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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의 교육 이야기 -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개정판
도종환 지음 / 사계절 / 2011년 6월
평점 :
아이들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보려고 애를 써도,
교육의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그걸 도종환 선생은 시지프스가 바위를 밀어올리는 일을 하는 거나 같다고 말한다.
시지프스.
매일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밀어올림은 운명이다.
피할 수 없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예쁜 꽃이 피었어요.'하고 말을 걸면,
정작 어머니쪽은 '제게 무슨 꽃인지 아니? 00꽃이야. 잊어버리면 안돼.'하며
감동은 제쳐 놓고 우선 지식을 주입한다.
우리 아이에게 예쁜 꽃의 이름이 중요한지,
아니면 그 꽃을 통해 아름다운 세계관을 갖는 것이 중요한지 생각해볼 문제.(시나가와 다카노, 일본 아동심리학자)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어른들은 지식을 사랑한다. 자기 스스로는 무지하기 짝이 없으면서.
당신이 비를 내리는 일처럼
꽃밭에 물을 주는 마음을 일러 주시고
아이들의 이름을 꽃처럼 가꾸는 기쁨을
남몰래 키워 가는 비밀 하나를
끝내 지키도록 해 주소서(김시천, 시인)
아이를 바라볼 때,
꽃 한 송이를 가꾸는 심정으로,
그렇게 가르치면 아이들이 덜 엇나갈까?
철학자는 삼단 논법으로 말하고,
화가는 형상과 화폭으로 말하며,
정치경제학자는 통계 수치를 이용하여 독자의 이성에 다가가지만,
시인은 생생하고 선명한 현실 묘사를 이용하여 독자의 마음에 다가간다.(벨린스키, 러시아 문예비평가)
사람마다 성격과 방향성이 다르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어른들을 판단할 때,
자기 중심적으로 충고하고, 탐색하고, 해석하고, 판단하지 말 노릇이랬다.
단과 대학별로 학생들의 만족도를 조사하면,
신학대학, 음악대학, 교육대학 순이고,
법학대학, 사회대학, 이과대학, 상경대학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 하고 싶어하는 일과,
부모나 학교에서 강요하는 것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결과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서울대를 하나라도 더 가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식한 일인지, 이 결과는 보여준다.
하버드 대에 진학하려던 학생이 떨어졌다.
의대에 가겠다는 아이가 헌혈 한 번 하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다이애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전문
인간이 용서받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
무한한 가능성 자체인 아이들은 끊임없이 용서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순연한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아무 조건없이 용서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 위에 군림하거나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길로 홀로 갈 수 있을 때까지 안내하고 뒷바라지하러 와 있는 까닭이다. (203)
교사는 어차피 '거대한 절망' 앞에 선 시지프스와 같은 처지다.
그러나, 교사들이 불안해할 때 아이들은 더 두려움에 떨 것이다.
교사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한번이라도 더 웃고, 행복해할 수 있도록,
교사들은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웃어야 한다.
아기를 뱃속에 넣고 사는 임부의 처지와
매일 아이들과 만나며 사는 교사는 같은 처지임을
아이들의 찡그린 얼굴을 만들면서 나는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