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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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오래 읽었다.

괴로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일이 괴롭고,

시를 읽는 일도 괴롭다.

 

특히 철학적 담론을 읽는 일은 더 힘들었다.

강신주의 철학적 담론 서술이 늘 쉬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시를 꼭지로 달았다 뿐이지, 이 책은 읽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시를 꼭지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음으로 해서,

독자를 철학적 세계의 바닷속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들이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일 수 있겠다.

 

이성복 시를 통해 라캉의 욕망을 보여주기도 하고,

문정희 시를 통해 이리가레이의 여성적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채호기를 말하면서 맥루한의 미디어론에 대하여 늘어놓기도 하는데,

한용운과 바르트의 사랑의 담론은 무척이나 실감나게 적어 두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두 번이나 읽은 부분이 한용운과 바르트 이야기다.

 

백석의 시와 나카무라 유지로의 촉각 또는 체감의 심상은 짜릿하며,

황병승과 보드리야르의 해체, 배척 이야기는 머리를 싸쥐게 만든다.

 

허연의 시를 읽으면서 카뮈의 반항, 저항을 나란히 놓는 것도 멋진데,

허연의 시를 그저 읽었더라면, 푸른 유리 조각의 의미가 좀 멀리서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직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저항하지 않는 '착한 아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강신주는 에필로그에서

<시는 항상 너무 빨리 찾아들고,

항상 너무 늦게 읽히는 법>이라고 한다.

<시는 항상 미래에 읽힐 운명을 타고난 글>이라고 말이다.

<다른 글들이 지금 읽고 이해되는 경향이 강하다면,

시는 우리 내면을 엄습하여 그 이미지를 각인시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처처럼 남은 시는 아주 끈덕지게 기다립니다.

우리가 그 이미지를 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삶을 살아내기를 말입니다.
그래서 시를 빈 그릇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채워야만 하는 빈 그릇 말입니다.>

 

시는 읽는 즉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시는 읽히는 사이사이 pause를 누르게 하고,

행을 거칠게 바꾸어 주면서 독자의 이해를 방해한다.

낯선 사물을 낯선 환경에서 들이밂으로써 시는 독자에게 각인된다.

그것도 이미지로 말이다.

독자가 그 이미지로 남은 상처를 감싸안고서 나름의 체액으로 진주를 만들어갈 때,

시는 비로소 읽혀지게 되는 화학적 변화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 편의 책과 연관지어 '~ 즐거움'을 '~괴로움'으로 바꿨을 뿐이어서 제목이 맘에 들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시에 대한 담론은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82. 이리가레이가... 이리가라이로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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