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것은 가짜다 -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
정민 지음 / 태학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이비란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다. 사이비 종교, 그건 사이비야 하고 많이 쓰지만, 그 뜻을 이 책처럼 통렬하게 그리는 책도 드물다.

어떤 분은 이 책의 저자가 한문을 번역한 것을 다시 곱씹고 있어서 아깝다는 분도 있었지만, 한문의 일차번역은 직역에 가까워서 주해가 필요한 것이다. 옛날 책들은 다분히 상징적으로 쓰여 있어서 원래의 고전보다 그것의 의미를 고증하는 훈고로서의 철학적 상상이 학문의 본류였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주해서들이 그 증좌다.

이 책은 아주 드문 박지원의 주해서이다. 연암 박지원이 가지는 비중에 비하여 원문을 직역한 책(특히 열하일기)이 워낙 널리 유포되어 있다보니, 박지원을 읽어보려 한 사람들이 모두 질려버리게 마련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박지원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허생전, 양반전, 호질 같은 유명한 풍자소설들 외에도, 일야구도하기(우리는 얼마나 외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가) 같은 글도 교과서에 실려 있고, 많은 학생들이 문제집에서 엄청나게 공부했을 '민족 문화의 전통과 계승'이란 글에서 극찬하는 연암 박지원을 알맹이로 읽어 본 이는 참 드물 것이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진실을 보기 두려워하여 눈감을 뿐이다.

까마귀의 빛이 검다고만 여겨서는 안된다는 걸 우린 안다. 내 자식이 공부를 잘 해서 돈 많이 벌게 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우린 알지 않는가. 왜 까마귀의 찬란한 초록빛, 자줏빛을 읽을 수는 없는 걸까. 그냥 검다고 생각하면 편하니까? 글 읽기 좋아하는 아이로 기를 수도 있고, 음악하기 좋아하는 아이로도 기쁘게 길러내야 하지 않을까. 내 자식의 빛을 남들이 검다고 하지만, 나는 오색찬란한 무지갯빛이라고 말할 용기를 갖기 위해 필요했던 책이다. 자식 기르기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 있을까.

정민 선생님이 박지원의 상징적인 이야기들을 현대적 안목으로 술술 풀어주셔서 정말 고마운 책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더 써 주시기 바란다.

성경에 나오는 대로, '내 비유로써 말할지니,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고 했듯이, 연암의 상징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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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3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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