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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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그닥 관심이 없으면서도 과학자(자연과학대를 나온 사람을 과학자라 친다면...) 친구가 많은 나는 술자리에서도 과학 이야기를 심심찮게 주워듣곤 했다. 술자리에서 물리 선생이 학생의 질문에 대답 못한 이야기를 하면, 하숙집에 가서 과학도에게 문제를 내고 다음 날이면 이해가 잘 안 가는 나를 붙들고 이해시키려고 오히려 나보다 쩔쩔매는 과학자를 재미있게 바라보곤 했는데... 또 다음날, 그걸 물어온 선생에게 내가 더 쩔쩔매며 설명하는 재미도 있더랬다.

과학이란 건, 20세기 상당히 시건방진 넘이었다.
과학이 폭력이 되고 힘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강자가 되어 20세기를 과학의 세기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은 그만큼 지구한테 못할 짓을 많이 했던 거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21세기가 되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하여 비로소 관념적 수준을 넘어 '자연과학적 시선'으로 고찰하는 의견들이 많이 제시되었다.(아, 사실은 언제나 겸손한 과학도들의 시선이 있어왔는지도 모르지만, 큰 목소리를 갖게 된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나의 추측일 따름이다.)

이제, 과학이 '뇌'에 몰두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가 우주의 비밀을(사실은 인간의 무지일 뿐이지. 우주가 뭘 감추고 있겠나.) 하나 둘 환원주의 입장에서 캐다 보면, 결국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이 정말 유전자의 복제품일 뿐인가? 이런 허탈한 질문에 맞닥뜨리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대학 시절, 유물론을 신봉하는 학자(? 나는 아직도 그들을 학자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들이 과학을 원용해가면서 적었던 사회과학서적들을 읽으면서,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을 갖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과학의 원칙을 사회에 빗대는 것이 옳은 면도 있지만 어리석은 짓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저자를 대하면서...
일단 이 책의 신뢰도에 대하여 나는 궁금해졌다.(사실은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 것이다. 저자가 하다못해 시골의 의대라도 나왔다면 조금 덜 의아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전자공학 박사다. 물론 전공과 상관없이 훌륭한 작품을 낼 수도 있다. 다치바나의 책들은 그런 결과물들이다. 그렇지만, 뇌과학이란 분야가 인체에 대한 전문적 공부에 일생을 바친 사람 아닌 전자공학도에게서 밝혀지는 것이 사뭇 낯설다.) 그렇지만, 궁리에 궁리를 하는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도 통합적 의견을 제시할 줄 안다는 것이 독서의 힘임을 생각할 때, 그의 저작에 대하여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는 나야말로 편견에 휩싸인 인종임도 알고 있다.

저자가 강의한 것을 적은 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뇌 과학이 흘러가는 길을 술술 이야기 투로 설명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각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는 정리도 해 둔다. 강의를 요약한 것이라고 하겠다. 역시 강의답게 중요한 것은 여기 저기서 반복해서 설명한다.

일견 전문적인 책이지만, 강의 형식을 따라 읽다 보니, 너무 어렵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전문 용어가 수도없이 나오지만, 피질척수로를 상행이냐 하행이냐 따진다면, 대뇌 피질에서 척수로 가니깐, 당연히 하행이다... 이런 설명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에 충분하다.

그림을 적절하게 실어가면서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해부학에 너무도 공부가 부족한 나는 글자 읽기보다는 그림 보기에 더 몰두하곤 했다. 그런데... 또 과학책은 그림만 잘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결국 '뇌'란 무엇이냐. 인간의 '마음'이란 어떤 것이냐. 우리의 '정신'은 어디서 오느냐...는 고전적인 철학적 질문에, 그는 인간은 '뇌의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뇌의 운동은 결국 세포들이 신호를 처리하는 복잡다단한 시스템이므로, 인간의 사고과정은 그런 신호체계의 종합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 저작은 작가의 독서에 의한 결과물이다.
그의 독서는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생물체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동물은 구성 세포 모두가 함께죽는 메커니즘을 발명해낸 생물(58)이란 이나스의 이야기를 끌고 오면서, 좌우 대칭으로 진화한 생명 현상이 '방향성'을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로 전개한다.

다세포 생물로 가는 과정에서 진핵 세포의 유전정보 보호라는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신경 시스템>이 기여하게 되었고, 세포들의 운동성이 하모니를 이루는 성질은 미오신, 액틴 등의 단백질 분자 사슬을 통해 전기적 운동성을 갖게 되는 척수와 의식의 출현과 이어지는 뇌의 발생까지 이어진다.
이나스는 이어서 시상과 대뇌 피질 사이의 신경 세포들이 전기적 작용을 하는 것이 <의식>이라고 정리한다.

생각은 진화적으로 내면화된 움직임이다.
결국 신경과 뇌라는 시스템은 움직임을 만드는 기관이며, 생각의 흐름은 신경 세포간의 만남, 시냅스에서의 신경전달물질의 분출, 흡수과정이라는 것이다. 학습을 하면 연접부위가 많아진다는 것은 결국 생각이 신경전달물질의 분출, 흡수를 활성화한다는 의미도 되겠다.

생물체란 것은 세포들이 다양하게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며, 대뇌에서 나오는 의식의 출현도 세포의 적응 결과라는 것은 유물론적이면서도 이해가 가는 과학적 설명이다.

생명은 DNA 유전정보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진화과정을 설명을 설명하는 변주곡이라고 설명한 도킨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 존재도 유전정보의 지배를 받는 물질의 결과에 불과하지만... 그 존재의 시원을 생각하게 하는 리차드 파인만의 이야기(438)은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듯 싶다.

바닷가에서... 파다고 말려오고... 새로운 분자가 모습을... 복제하고, 새로운 춤을 추고... 원자, DNA,  단백질이 요람에서 벗어나 마른 땅에 올라선 의식을 지닌 원자들... 호기심으로 충만한 물결이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경이를 경이로워하며, 나는 그리고 원자들의 한 우주는, 그 우주 속의 한 원자는...

독서를 통하여 한 세계를 조망하는 일은 재미있다.
비록 나는 그런 작업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다른 이의 조망에 편승하여 세계를 굽어보는 일, 보이지 않는 우주 속의 한 원자인 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는 일을 즐기는 독서란 작업을 그만 둘 수 없는 것이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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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0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있다는 책이 이거였군요.
저는 책으로 못 보고 이렇게 친절한 글샘님의 리뷰로 맛보기합니다.^^
저어기 이웃동네에 출몰했다는 글 봤어요~ㅎㅎㅎ 가끔 안부 차원에서 출몰합니다.^^

순오기 2009-01-23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이거 리뷰대회 우수작이군요.^^
내기쁨에 취해 있다 정신나서 순례중이예요~~~ 진즉 댓글을 달았었네요.^^

글샘 2009-01-26 19:03   좋아요 0 | URL
아, 이 책은 서평단 책으로 읽고 쓴 리뷴데... 이런 걸로 또 수익을 올리는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