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겨울나무 - 도종환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실패했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

우리 카페의 어떤 분이 이 시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고 하던데 이 시를 읽는 순간 나도 위로를 받는다. 힘들때 위로가 되는 시.

도종환님의 시를 읽고 있으면 '괜찮다. 괜찮아. 힘들고 지칠 땐 잠시 멈추어 쉬어가는거야. 그런 시기가 있기에 삶은 더 아름다운 거란다. 울고 싶으면 울어보렴. 그게 사람이야......'이렇게 시가 나를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미ㅏ;ㅣㅏㅇ 2012-12-09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종환의 시는 너무 교훈적이다. 가르치려 들어서 싫다
시가 왜 꼭 교훈적이어야 한는가. 80년대 이후 이땅의 시는
공자말씀, 부처정신으로 치장하고 있다. 위선이다.
 

<그리운 부석사>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旨(마지)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물 위에 쓴 시>

내 천 개의 손 중 단 하나의 손만이 그대의 눈물을 닦아 주다가


내 천 개의 눈 중 단 하나의 눈만이 그대를 위해 눈물을 흘리다가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하여 길이 없는 밤은 너무 깊어


달빛이 시퍼렇게 칼을 갈아 가지고 달려와 날카롭게 내 심장을 찔러


이제는 내 천 개의 손이 그대의 눈물을 닦아 줍니다.


내 천 개의 눈이 그대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

명작에게 길을 묻는다1 을 읽고 있습니다. 작가가 쓴 리뷰가 어찌나 절절한지 빨려들어가듯 읽고 있어요. 내가 읽은 책들을 작가는 이런 느낌으로 읽고 있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아직 읽지 않은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에 대해 저자가 붙인 소제는 죽음을 넘어서는 치명적인 사랑입니다. 이 글에 대한 리뷰에 정호승 시인의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와 함께 물 위 에 쓴 시가 인용되었는데,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이 구절이 며칠째 머리 속을 맴돕니다.

시는 정호승 시인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홈피에서 가져왔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강 철교를 건너는 동안

잔물결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얼마 안 되는 보증금을 빼서 서울을 떠난 후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한강,

어제의 내가 그 강물에 뒤척이고 있었다.

한 뼘쯤 솟았다 내려앉은 물결들,

서울에 사는 동안 내게 지분이 있었다면

저 물결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결, 일으켜

열 번이 넘게 이삿짐을 쌌고

물결, 일으켜

물새 같은 아이 둘을 업어 길렀다

사랑도 물결, 처럼

사소하게 일었다 스러지곤 했다

더는 걸을 수 없는 무릎을 일으켜 세운 것도

저 낮은 물결, 위에서였다

숱한 목숨들이 일렁이며 흘러가는 이 도시에서

뒤척이며, 뒤척이며, 그러나

같은 자리로 내려앉는 법이 없는

저 물결, 위에 쌓았다 허문 날들이 있었다

거대한 점묘화 같은 서울,

물결, 하나가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건넨다

저 물결을 일으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

 

 거대한 점묘화 같은 서울도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보따리 인생같은 내 삶은 또 어디로 갈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올 때가 있네

도꼬마리의 까실까실한 씨앗이라든가
내 겨드랑이에 슬쩍 닿는 민석이의 손가락이라든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찾아와서 나를 갈아엎는
치통이라든가
귀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라든가
수업 끝난 오후의 자장면 냄새 같은 거

내 몸에 들어와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마구 양푼 같은 내 가슴을 긁어댈 때가 있네

사내도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네
고대광실 구름 같은 집이 아니라
구름 위에 실컷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오면 천하를 때릴 천둥 번개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오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서러워져
소주 한잔 마시러 가네

소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이 저의 감옥인 줄도 모르고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뜨겁게 껴안을 때가 있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2
피었다 몰래 지는
고운 마음은

흰 무리 쓴 촛불이
홀로 아노니

꽃 지는 소리
하도 하늘어

귀 기울여 듣기에도
조심스러라.

두견이도 한 목청
울고 지친 밤

나 혼자만 잠들기
못내 설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