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주문해 월요일 도착한 책들
그러나 오늘 또 주문해서 이번주 중 추가로 온다ㅠㅜ



주문한 책들이 모두 한 번씩 더 고민하고 주문한 것인데 잘 고른 것 같다.
물론 읽어봐야 더 판단할 수 있겠지만.

오른쪽은 굿즈로 노트광인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보다 이뻐서 더 만족!
그리고 사진엔 없지만 알라딘 이달의 커피까지.



빅터 프랭클은 몇몇 페이퍼에서 보고

그의 삶이 궁금해져서였다.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그가 과연 어떤 생각을 희망을 갖고 또 절망을 딛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가 보내는 메시지가 어떨지.
















숭배 애도 적대.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한 키워드를 갖고 있다.

유독 자살이 많은 한국.죽어 있는 한국 정치. 

죽음으로 내몰린 영령들.

분명 읽고 씁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읽어야만 할 책이라 생각했다.




해외에 나갈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종종 보러 가는 경우가 생긴다.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미술을 너무 몰라 답답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하나 둘씩 이런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모르고 어렵지만 이런 친절한 안내서가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대한계년사를 읽고 있는 중이라 고종이 많이 등장한다.

고종에 대한 평가는 국내에선 여전히 극과 극을 달린다.

한쪽에서는 망국의 왕,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이뤄냈다는 것.

대한제국을 바라본 저자의 시선이 궁금해진다.




거시사보다는 미시사를 좋아한다.

나는 숲보다는 나무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역사의 큰 흐름에서 놓치기 쉬운, 그리고 역사의 뒤안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찾는 것이 좋다.

미국의 역사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이름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이 책을 통해서 그 빈틈을 채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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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 일본이 감추고 싶은 비밀들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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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은 일본이 근대 국가로 나아가게 만든 계기가 된 사건이다.

하지만 한국과 결코 뗄 수 없는 사건임에도 우리는 잊고 살거나 또는 잊고 싶거나 눈을 질끈 만들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 책은 메이지 유신 150주년이 되던 2018년 출간된 것으로

메이지 유신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된 시각에서 바라보는 독자들을 위해 쓰여졌다.

작가는 기존의 메이지 유신 관련 서적들을 읽었지만 스스로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더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나도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고 식민지 전쟁에 뛰어든 후 군국주의로 흘러간 이후의 역사는 오히려 익숙했지만

메이지 유신의 배경과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뒤로 미뤄져서 어느덧 이렇게 되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메이지 유신 사건 딱 그것만 설명하지 않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바쿠후(막부)와 번의 변화에 대해 긴 호흡으로 독자들을 이끌며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가톨릭을 조선보다 훨씬 일찍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본도 가톨릭에 대한 극심한 탄압의 과정이 이어진다.


일본에 가톨릭을 전한 사람은 스페인 나바라 왕국, 지금의 바스크 지방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다. 

하비에르는 포교를 위해 인도 고아에 도착했고 말라카에서 일본인 안지로를 만나 일본땅으로 함께 가게 된다. 

이로써 일본의 가톨릭 신자 기리시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작년 말 크리스마스 때 TV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 조선의 천주교 신자 정약종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그 때 기리시탄이라는 용어도 들었고 조선의 천주교의 유래와 가톨릭 특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이 부분을 읽을 때 더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바테렌 추방령(덴쇼 15년 6월 19일)으로 예수회와 기리시탄 다이묘(영주)들은 조선 침략 선봉에 서게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인도 고아의 알레산드로 발리냐노(예수회 동인도 선교 총책임자)는 히데요시를 달래기 위해 다이묘들에게 협력을 부탁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 출병한 일본 병사 중 기리시탄들이 이 때문에 많았다고 한다.

그럼 이후 일본에서 가톨릭은 순항을 했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포르투갈의 예수회로 가톨릭을 받아들인 것을 시기한 스페인의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비교적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도자기와 도기공에 대한 이야기다.

임진왜란 이후 도기공들이 많이 끌려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

그 이후 그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정착했는지 그 끝은 어떠했는지 다루고 있다.

그들의 노고로 일본 도자기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도자기를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제 정세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누르하치가 명을 무너뜨리고 청을 세우는 동안 이어진 혼란으로 청나라는 1656년과 1661년 사이 해외 무역을 금지시킴으로써 자국의 도자기 수출이 중단되었다.

이 때 네덜란드는 중국 도자기로 이득을 보고 있었는데 그 대안으로 일본의 아리타에 주문을 하게 된 것이다.

중국으로 갈 수 없는 정성공도 나가사키로 가 도자기를 사들였다.


정성공은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해상무역을 하던 정지룡의 아들로 타이완에서는 영웅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이 때의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역사는 이전에 읽었던 '도해 타이완사'를 통해서 읽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메이지 유신이 발생하는 1800년대 이후의 역사다.

메이지 유신은 조슈, 사쓰마, 사가 이 세 개의 번에 의해 달성되었다.

바쿠후(막부) 말기 번이 270여 개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 중 세 개의 번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었나?

세 개의 번은 임진왜란 때 조선 출병에 가장 앞섰고 도쿠가와 바쿠후(막부)와 맞섰던 세력이며 영국 무기상과 밀착 관계를 가지며 무기를 사들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군대가 있었고 막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군대를 움직일 무기가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책에서는 세 번에 대해서 챕터를 따로 두어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각 번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단점도 눈에 들어왔다.


물론 역사에서 빈 부분은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추측이 많다보니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곳이 있었다.


남은 기록이 숨겨졌거나 지워졌을 뿐이지 

작가가 말한 추측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고 그대로 신뢰하기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독자에게 머릿 속으로 상상해보는 묘미는 줄 수 있겠지만

역사는 팩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별 세 개를 준 이유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장점이 더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니 직접 읽고 판단하기 바란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든 읽기 전이든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 연구해오신 이 분의 책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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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7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구 남성에게 정신은 자연, 외적 요소, 선택된 적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된 무기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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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17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정리 좋아요. 옛날에는 많이 했는데 지금의 저는 도통 안하네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1-17 07:29   좋아요 0 | URL
읽다 보니 정리가 안 되어서 이렇게 쓰면서 하니 역시 더 낫더라구요^^
 

조선의 존재를 처음으로 안 유럽인은 포르투갈인이었다. 1543년 이래, 그들은 히라도에 무역항을 두고 있었고, 대마도 쓰시마를 가로지른 북서쪽에 그들이 ‘코라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선에 표착했을 당시 박연은 조선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거의 없었다. 박연이 일본, 류큐, 베트남 등지를 여러 차례 다니면서 얻은 견식이 상당하였던 점에 비추어 볼 때, 17세기 이전까지 조선의 존재는 서양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듯하다. 조선 역시 서양에 대한 이해 정도가 매우 낮았으며, 박연을 통해 비로소 서양 세계에 대해 진전된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박연은 조선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조선을 서양 세계에 알리지는 못했다.

네덜란드인은 기독교 선교 활동을 부여받지 못해서 데지마에는 교회나 신부가 없었다. 그들은 죽은 자를 매장할 수도 없었고 그만한 공간도 없어서 사자는 해안에서 5마일 떨어진 바다에 버려져야 했다. 정박지에는 정박한 배에서 돛과 키를 일본인에게 넘겨줘야 했는데, 이것은 그들의 허가 없이 떠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ㄷ. 식량 일부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제공하고 일부는 일본에서 가지고 왔는데 대부분이 닭고기, 생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었다.

왜 하멜과 그 일행이 나가사키를 떠나기 위한 허가를 얻는 데 오래 걸렸을까? 하멜 일행에 대한 심문 보고서는 필요한 허가를 위해 나가사키 지방관에 의해 바쿠후에 전해졌다. 단지 이 보고서가 전달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다. 지방 영주는 즉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멜과 그 일행의 답변을 직접 확인하길 원했다. 그 결과 그들은 조선 조정과 서신 왕래를 했다. 이것이 시간을 허비했던 절차였다.

사가 번은 왜 다른 번에 앞서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역시 10대 번주 나베시마 나오마사, 1815~1871의 진취적인 기질, 관리 능력, 리더십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일찍부터 난학을 받아들인 것은 나가사키가 가까운 지정학적 영향으로 네덜란드 상인과 접촉한 영향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나가사키와 인접한 지역이 사가 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직접적인 영향은 사가 번이 바쿠후의 지시로 에도시대 초기부터 나가사키 경호를 맡은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나가사키는 중국과 네덜란드, 대마도는 조선, 사쓰마는 류큐, 오키나와와 동남아 일부, 마쓰마에는 북해도 아이누 민족과의 교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페리에 의한 개항 이전까지는 나가사키가 서양을 엿볼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1850년 사가 번이 일본 최초로 철제 대포 주조에 성공한 사실에 자극을 받은 시마즈 번주는 "우리 사쓰마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며 사쓰마 번의 대포 주조를 번사들에게 호소했다. 에도 바쿠후 말기 근대화를 추진한 번이라고 하면, 사쓰마와 조슈 번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은 시마즈 번주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사가 번이야 말로 ‘근대화의 선두주자’였다. 사가 시내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철제 대포 주조에 성공한 ‘쓰키지 반사로’와 바쿠후의 주문 대포를 주조한 ‘다후세 반사로’, 증기기관, 사진, 유리 등을 연구한 이화학연구소인 ‘정련방’ 등 에도 바쿠후 말기 ‘사가 번 산업혁명’ 거점이 된 곳들이 있다.

일본에서 반사로를 도입한 것은 에도시대 후기 일본 근해에 외국 선박의 출몰이 늘어나면서 해안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외국 선박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정밀도가 높고 비거리가 긴 서양식 대포가 필요했지만 전통적인 일본의 주조 기술로는 대형 서양 대포를 제작하기에 어림없었다.

나오마사의 개혁은 기본적으로 학자이자 신하인 고가 고쿠도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번정 개혁의 기본을 인재 등용, 근검 장려, 한시, 번에 속한 사무라이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세 가지 병의 제거에서 찾았다. 세 가지 병이란 시기질투, 우유부단, 억지를 지칭한다. 나오마사는 이처럼 번의 폐습을 없애는 동시에 번의 특산품인 쌀과 도자기로 적극적인 산업 장려 정책을 실시했다.

반사로에서 철제 대포를 제조하는 한편, 나오마사는 이화학연구소를 사가 성 밑에 출범시켰다. 정련방은 화학제품 연구와 카메라, 통신 기계, 유리 등의 제작도 진행했지만 가장 큰 과제는 증기기관 제조였다.
당시 미에쓰는 사가 번이 구입한 함선이 속속 집결해 근대 일본 해군 발상지가 되었다.
바쿠후는 해군 교습을 진행하면서 1857년 네덜란드에서 기술자를 초청해 공작 기계도 수입하고 나가사키에 본격적인 조선소를 건설했다. 이것은 후에 이와사키 미타로에게 팔려 지금도 미쓰비시중공업의 조선소로 가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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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대선이 코앞이지만 정치는 더욱 후퇴하는 느낌이라 투표할 마음이 사라졌다는 마음 많이들 갖고 있을 것이다.

정책과 공약은 안 보이고 포퓰리즘만 난무한다.

찍고 싶은 공약을 가진 자가 없으니 누구를 투표할지 망설여진다.

최고가 아닌 차선을 선택하자는 말도 나돈다.

근데 그게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까?

이쪽은 죽어도 싫으니 저쪽을 차라리 뽑겠다는 심산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유권자들을 정치자들은 환호할지도 모른다.


2. 미백

얼마 전 어느 북플 친구분에게서 보고 담아놓은 책이다.

어렸을 적 나는 무척 까무잡잡했는데 왠지 모르게 그게 너무 싫어서 화장품을 사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온갖 미백 제품을 다 사용했다. 

미백이 대체 뭐길래~ 화장품을 사용하면 하얘진다니까 그 까무잡잡함이 싫어서 하얗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미백 제품을 사용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피부색 자체가 변화되진 않는다. 욕망일 뿐.

저자는 미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흑백의 경계와 인종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담론을 제시한다.


3. 만들어진 유대인

한국은 현대 이후에도 민족이란 개념이 뚜렷한 사회이다.

역사학계에서도 과도한 민족성은 경계 및 지양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민족적 혈통을 강조하며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경우는 그동안 너무 많았으니.

유대인이자 이스라엘인이기도 한 저자는 단일 종족으로서 ‘유대인’이라는 신화, 단일 민족국가로서 ‘이스라엘’이라는 신화를 해체하고자 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폭력적 패권주의를 정당화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민족이라는 동질성 이름 아래 불평등과 배제의 정치를 강화하는 기능에 대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4. 반란의 매춘부

공교롭게도 지난주에 이어 오월의 봄에서 나온 책이다.

성노동자이자 성노동자 권리 운동 활동가인 저자들이 쓴 책으로 이들은 매춘을 둘러싼 이분법에 반대하고 있다. 

매춘이 폭력인지 노동인지, 그것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따지는 추상적 논의 속에서 성노동의 현장, 구체적이고 다양한 성노동자의 삶과 목소리는 지워지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매춘을 해야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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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4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4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