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회학과 정체의 자연경제

사이보그는 유기체와 기계로 구성된 잡종이다. 하지만 사이보그를 이루는 기계와 유기체는 20세기 후반에 적합한 특수한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사이보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잡종체로서 정보 체계와 텍스트 그리고 인체공학적으로 통제되며 노동.욕망·재생산 체계로 위장한, 우리가 자발적으로 택한 적 없는 ‘하이테크‘ 내부에 있는 우리 자신과 다른 생명체들을 기본 성분으로삼아 만들어져 있다. 사이보그를 이루는 두 번째 필수 재료는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정보 체계, 텍스트 그리고 스스로 작동하며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장치로 위장한 기계들이다. - P10

우리는 우리에게 전통적으로 할당되어 온 자연적 대상의 위상에 반자연주의적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맞섬으로써, 페미니즘이 필요로 하는 생명과학의 모습이 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과학이 물신(fetish)의역할을 하도록 허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물신은, 만든 사람이 자 - P21

신이 그것의 창조자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뿐이다. 물신은 인간이사회적 · 유기체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변 세계와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한다. - P22

성을 위험하고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은 프로이트의 체계에서 핵심적이고, 정체를 생리학적 출발점으로 환원시키는 전통적인 과정을처음 시작한다기보다는 반복한다. 이러한 정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본능을 다스려야만 문화적 집단을 이룰 수 있는 자연적 개인을 토대로 삼는다. 최근의 신프로이트주의자 및 신마르크스주의자 두 사람이 내 논문에 주장된 내용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프로 - P22

트의 입장을 아이러니하게 재구성했다. 한 사람은 노먼 O. 브라운(Norman O. Brown) 이며 다른 한 사람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이다. 프로이트, 브라운, 파이어스톤의 이론은 정체의 정치적·생리학적 기관(organs)에 대한 이론을 해부하는데 유용한 도구다. 세 사람 모두 섹슈얼리티에 관한 설명에서 이론을 시작하여 거기에 문화적 억압의 역학을 첨가한 뒤, 개인적 신체와 집합적 신체를 다시 해방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 P23

생명행동과학 영역 중 하나가 억압적인 정체 이론을 구성하는 데 예사롭지 않은 역할을 했다. 바로 동물사회학 내지는 동물집단에 대한 과학이다. 이 생명사회과학을 새로운 실천과 이론을고안해 재전유하면서, 동물사회학의 중심을 차지한 지배 개념에기대 생리학적 정치에 맞서 비판적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 P25

지배구조는 여전히 관찰되고 연구되지만, 조직 기능을 설명하는 인과적 원인으로 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정주의자들은단기적이고 스펙터클한 공격성 대신 모계중심적 집단과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협동을, 강직된 구조보다는 유연한 과정을,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특징들을 강조해 왔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과학적 · 이데올로기적 사안이 결부되어 있다. 새로 출현하는 연구들 역시 논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적으로 정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창조적인 이론과 실천의 형식만큼이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두 학문 분야가 모두 필요하다. 이 과학 분야는 지배를토대로 삼지 않는 사회관계 위에 구축될 때 비로소 해방적 기능을수행할 것이다. 이와 같은 요청은 필연적으로 자연과 우리 자신에 대해 지배의 논리를 정당화해 온 것, 즉 주체-객체 분할에 뿌•리박힌 순수한 객관성을 옹호하는 각종 형태의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거부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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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령 내륙아시아의 이후의 역사는 한족의 정주, 한족화 그리고 - P610

전에 비중국적이었던 사회의 보다 큰 중국으로의 통합 등으로 특징지어졌다.
이런 손실을 입기는 했지만 청조가 이룩한 것도 부인해서는 안 될것이다. 내부 반란과 유럽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왕조는 살아남았고청의 질서는 최소한의 변화만을 허용한 채 계속 유지되었다. 청조가처해 있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청이 이보다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P611

몽골 지역에서 청조의 목적은 중국인들의 오랜 목표, 즉 유목민들을 변화시켜 중국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이 점에서 만주족은 성공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몽골인들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 만주 지역에서 준가르 지역에 이르기까지 인구가 감소했고 가축과 영토 또한 크게 감소했다.
신장에서 만주인들이 원한 것은 평화와 공식적으로 청조 황제에게 복종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동투르키스탄인들은 중국의 영향력이 전혀 미치지않는 지역까지 뻗어 있는 광대한 이슬람 문명의 성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관은 모든 권위의 정점에는 황제가 있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제국 질서의 초석에 도전적이었다. 황제는 라마교도가 되지 않고도 라마교의 합법적인 후견인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그는 무슬림이 되지 않고서는 무슬림 세계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P701

몽골이나 신장과 달리 티베트는자기 고유의 토착적인 중앙 정부를 갖고 있었다. 티베트의 군사력은중국에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 결과 만주족은 이 종교 국가에 대한 달 - P702

라이 라마의 권위를 약화시키기 위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그의 권력을 강화시켜주었다. 19세기 내내 달라이 라마 정부의 권력은 증대되었고, 베이징은 외국의 영향력을 배척하고티베트의 고립을 유지하려는 라싸의 노력을 지지했다. - P703

메리 클래버 라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왕조뿐만 아니라 붕괴된 것처럼 보였던 문명 또한 1860년대 걸출한 인물들의 걸출한 노력으로 살아남아 이후 6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이 동치중흥이다.131) - P808

메리 라이트의 탁견은 앞으로도 이 시기의 역사를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청조의 중흥은 "중국의 전통적 제도의 타당성을 다시 한번 주장하기 위한 최후의 위대한 노력을대변하며 "당시의 위대한 사람들은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승리를 보았다" 는 것이 그녀의 최종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이미 1870년대 초 장쑤 성, 산둥성, 직예성 등에서는 구질서가 분명하게 회복되었다. 쑤-쑹-타이 지역의 ‘대호들‘은 탈세를 계속했다. 아역들은 다시 산둥 성에서 활동하기 시작해 세금 징수를 독점하거나 부가세를착복했다. 거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하층 신사들(심지어 예성의 하층 신사들조차)은 세금 징수인 혹은 말썽많은 ‘송‘ 혹은 송사가 되어 아역과 결탁하거나 경쟁했다. 대규모 반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은 것은 대부분 서양식 무기를 이용할 수있게 된 여러 성의 용영, 심지어 재훈련된 녹영군 때문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한편 청조가 관료 인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게 되면서, 총 - P824

독과 순무가 지방 관원 임명에 대한 역할을 확대시켜 행정적 개혁을모색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융통성이 점차 제한되었다. - P825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자강이라는 용어는 혁신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촉구하는 구호가 아니라 재정 지출과 관료층의 기득권을정당화하기 위한 상투어가 되어버렸다. 국내 질서는 대체로 유지되어지방에서 발생하는 많은 봉기는 쉽게 진압되었다. 그러나 1894~1895년의 청일전쟁에서의 패배로 외세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라고선언되었던 이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강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혁신들은 장기적으로 일정한 결실을 가져왔다. 이처럼 새로운 정책은 전통적인국책과의 단절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부국강병‘ 책이 점차유교식의 덕치주의를 압도했던 것이다. 실시된 정책들이 어중간해 그리 중요한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과 태도가 소개되었고, 교육·행정 제도상의 변화는결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과 기술 분야에서 등장한 새로운유형의 인물들이 물론 아직 무계획적이고 기회 또한 아주 적었지만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열리게 되었다. 중국을 ‘부강‘ 하게 만들려는 열망은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정치가들만이 아니라 점점 증가하고 있던 당시의 개명한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확산되었다. - P830

서양의 침입이라는 문제가 중국 지식인들의 정신 속에서 좀더 핵심적인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점점 더 증가하게 되었다. 구질서를 고수하려는 태도는 점점 더 약해지게 되었으며, 적어도 1890년대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중국의 출현을열망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여전히애쓰고 있던 ‘복음주의 선교사들‘에 대해 이들 신흥 개혁 지향의 중국인들은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한 세대 이전부터 중국 민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던 ‘현실 참여적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새로운 동지애를 표시했고, 심지어 잠시 동안이었지만 열성적으로 이들 선교사들의 제자 역을 자임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선교 사업이 미친 영향은 대단히 복잡했다. 너무 복잡했기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하다가는 그것의 참모습을 흐리고 말 뿐이다. 실제로 선교와 관련해서는 많은 상이한 충격이 있었으며, 각각의 충격들은 중국인들에게서 일련의 상이한 반응들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그러한 충격과 반응의 상호 관계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양했다. - P909

대부분의 개혁가는 1900년경이 되면 진보의 논리와 함께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이익에 대한 무비판적신뢰를 새로운 세계관에 융합시키려 들게 되는데, 이 두 가지 개념은당시 선교사들의 저작에서 지겹도록 되풀이되던 주제였다.
하지만 19세기 말 선교사들은 서양의 학문과 제도 그리고 그에따른 부와 권력은 어쨌든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중국인들에게 알리는 데서는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캉유웨이 같은일부 사람들은 종교가 중국을, 나아가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캉유웨이도 막상 본인의 종교를 선택해야 하게 되었을 때는 선교사 스승들에게 최대한 양보한다는 것이 결국 기독교화된 유교였다. 중국인의 관점에서는 상당한 양보였지만 선교사들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 P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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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援이 처음 이르렀을 때에 황제가 宣德殿 남쪽 행랑 아래에서 두건만 쓰고 앉아서 맞이하였다. 황제가 웃으며 馬援에게 이르기를 "卿이 두 황제(公孫述과 자신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니, 지금 卿을 만남에 사람으로 하여금 크게 부끄럽게 한다." 하였다. 馬援이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상엔 단지 군주가 신하를 가려서 쓸 뿐만 아니라, 신하 또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합니다. 신은 公孫述과 한 고을 사람이라서 어려서부터 서로 친합니다. 신이 지난번 蜀에 이르렀을 때에 公孫述은 창을 잡은 호위병을 뜰에 세운 뒤에야 신을 나오게 하였습니다. 신이 지금 먼 곳에서 왔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刺客과 간사한 사람이 아닌 줄을 아시고, 소탈하고 쉽게 대하기를 이와 같이 하십니까?" 하니, 황제가 다시 웃으며 말하기를 "경은 刺客이 아니라 다만 客일 뿐이다." 하였다. 馬援이 말하기를 "천하에 반복하여 帝王의 名字를 도둑질한 자를 이루 셀 수가 없었는데, 이제 폐하를 뵈니 넓고큰 도량이 고조와 똑같습니다. 이제야 帝王이 본래 진짜가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하였다. - ≪後漢書馬援傳≫에 나옴-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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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철학들의 기본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세계를 이루고 있는 실재는 영원하고 자기동일적이고 순수한 존재‘들‘이다.
2. 이 존재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관계 맺음‘으로써 무/부정 및 타자성을 매개해 운동함으로써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현상세계가 성립한다. - P148

엠페도클레스는 다원론을 시도한다. 영원한 것이 단지 하나(일자)가 아니라 넷이 된다. 다른 모든 것들은 이 넷으로부터 나오고 넷으로 돌아가지만, 이 넷은 영원한 동일성이다.

네뿌리들은 결국 물, 불, 공기, 흙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다. 바로 이 네뿌리가 태어나지 않는 것들‘(영원한 것들)로서의 4원소(stoicheia)-라틴어로 ‘elementa‘가 된다. 일반적인 맥락에서는 ‘요소들‘로, 화학적 맥락에서는 ‘원소들‘로 번역된다. ‘stoicheion‘이라는 희랍어는 오늘날까지 화학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네 원소 각각은 영원한 동일성들이고 만물은 이 네 원소들의 조합으로 생겨나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가 질적으로 서로 환원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이 네 가지로 환원되지만 이 네 가지는 서로 환원되지않는다. - P150

사랑은 네 원소들을 결합하고, 미움은 이것들을 분리한다. 공기, 불,
물, 흙의 순서로 분리된다고 한다. 현대 화학에서도 원소들끼리의 결합•분리는 중요한 문제이거니와, 지금 엠페도클레스의 사유는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 한다. 원소들 자체가 사랑/미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이들을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하는 근본적인 두 힘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 P156

엠페도클레스의 인식론을 지배하고 있는 핵심 원리는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알아본다(hé de gnösis tou homoiou to homoio)"는 것이다. 사물들은그 표면에서 여러 가지 방출물(aporrhoē)을 내고 그것들이 인식 주체의표면으로 이전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 그런데 시각적 방출물들, 청각적 방출물들 등의 크기가 다 다르고 시각, 청각 등의 미세한 구멍 크기들이 또 다 달라서 결국 시각적 방출물들(예컨대 색)은 눈에만 들어간다고 한다. 물론 다른 감각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P161

아낙사고라스에게서 아페이론은 아무런 규정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차라리 무한한 규정성들이 얽혀 있는 상태이다. 아페이론은 모든 종자들이 함께 존 - P168

재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함께 있었고, 수적으로도또 작음에서도 무한했다." 여기에서 ‘모든 사물들‘은 모든 종자들을 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무한히 작은 무한한 종자들이 공존하는 상태, 그것이 아페이론 상태인 것이다. 무질서의 상태가 아니라 무한한 질서의 상태이다. - P169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은 정신이라는 것이 따로 설정되고 그것이 이 우주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정신을 신으로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기 십상이고, 실제 후대에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을그런 식으로 이어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가 ‘누스‘라는말로 신을 가리켰다고 보기는 힘들다. 훗날 헤겔의 ‘정신(Geist)‘ 개념에서 아낙사고라스의 영향을 보게 된다.
아낙사고라스가 말한 ‘누스‘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이렇게 분명하지가않지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이 생각을 반겼다.
이들은 누스를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원리로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 P173

데모크리토스는 아르케로서 원자들(atomata)을 제시한다. 각각의 원자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와 같지만, 원자들‘은 다자를 형성하며 또 운동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사유 또한 포스트-파르메니데스적 사유라는 점 - P176

을 확인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을 "어떤 것(to den)", "꽉 찬것(to naston)", "있는 것(toon)" 등으로 부른다. 그리고 일자와 마찬가지로 이 원자들도 우리의 감각을 벗어나는 존재들이다. - P177

플리키우스는 이런 말을 전해준다. "데모크리토스가 온갖 형태의 원자들)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왔다고 말할 때(그러나어떻게, 그리고 어떤 까닭으로 그러한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발생(t‘automation)과 우연(tyché)으로부터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 - P179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전해준 다음 구절이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하다. "앎의 능력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적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출(庶)적인 것이다. 서출적인 것에는 다음의 모든 것들,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속한다. 반면에 적법한것은 이것(서출적인 것)과는 구별된다. (...) 서출적인 것은 더 작은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접촉에의해 감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미세한 것에 대해서 <탐구해야 할 때는, <적법한 것에 따라야 한다. 적법한 것은 더욱 미세한것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론에서의 이런구분은 특히 근대 초(고전 시대)의 철학자들에게서 다시 분명하게 나타난다. - P186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는 삶의 목적을euthymia‘로 보았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autarkeia‘, ‘psychagogia‘, ‘a kataplexia‘ 등을 들고 있다. ‘euthymia‘는 ‘thymos‘를 잘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thymos‘는 맥락에 따라서 기개, 의지, 격정 등을 뜻한다. - P187

"thymos와 맞서 싸우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는 것은 사려 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구절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데모크리토스에게 ‘thymos‘는 훗날의 ‘passion‘ 즉 ‘정념(情念)‘과 같은 것을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념을 극복하는 것이 그에게 중요했던 것이고 이 점에서 그가 고중세의 철학자들 대부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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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이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발랑탱 경찰청장과 다양한 얼굴을 하고 나오는 플랑보, 극을 이끌어 가는 브라운 신부가 흥미로웠다. 셜록 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흥미로운 추리 단편이었다.


<푸른 십자가>는 추리 과정이 재밌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쯤 될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막판으로 갈수록 소름이. 119페이지 인용구는 정말이지 무릎을 쳤다. 사람이 현실을 보는 것에 심리가 크게 작용한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장 멀고 외로운 별이라 해도, 이성과 정의를 피해 갈수는 없습니다. 저 별을 보십시오. 하나하나가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같지 않은가요? 식물학이나 지질학으로 비유해 볼까요. 이파리가 모두 보석인 숲을 생각해 보십시오.
달은 코끼리만큼 큰 사파이어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광기의 천문학이라고 해도, 이성과 정의에는 털끝만 한차이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진주로 만든 절벽 아래 오팔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해도, <도둑질하지 말지어다>라는 표지판은 똑같이 서 있을겁니다.」 - P31

브라운 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졌다. 「참으로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부유하고 안락하면서도 신이나 인간을 위해 아무런 결실도 내지 않고 하찮게 사는사람이 이토록 많은데, 도둑놈과 부랑자는 회개를 해야 한다니 말입니다. 감히 부탁드리건대, 제 영역을 침범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실제로 회개했는지 의심스럽다면 여기 있는 나이프와 포크를 보십시오. <참된 어부 열두 명> 클럽의 은제물고기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를 사람 낚는어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 P62

모리스 블룸은 빈민들의아버지가 되겠다는 원칙을 지닌 무정부주의자로 출발했지만, 양측 모두에게 이용당하고 경멸받는 스파이로 끝났네. 해리 버크는 돈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겠다는 신념을지녔지만, 지금은 굶어 죽을 판인 여동생한테 술값이나 뜯어내는 신세가 되었지. 앰버 경은 기사도 정신으로 범죄의세계에 뛰어들었지만, 런던에서 제일 저급한 무뢰한들에게 협박이나 당하고 돈을 뺏기고 있지 않나. 또 자네 앞선세대의 위대한 신사 강도였던 바리용 대위는 배신당하고버려진 끝에 정신병원에서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생을 마감했어. - P93

사람들은 상대의 말이 의미하는 것, 혹은자신이 보기에 상대의 말이 의미하는 것에 대답하는 법이지요. 시골집에 사는 부인에게 <같이 사는 분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네, 집사랑 마부 세명, 하녀 한 명이 같이 삽니다>라고는 절대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하녀가 같은 방에 있거나 집사가 의자 뒤에 서 있다 해도 <같이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죠. 여기서 사람이 없다는것은 묻는 사람이 의미한 바로 그런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전염병 조사를 나온 의사가 <같이 사는 분이있나요?>라고 묻는다면, 그 부인은 곧바로 집사랑 마부 하녀들을 떠올릴 겁니다. 언어는 늘 그렇게 사용됩니다. 문자 그대로의 질문에 답이 나오는 일은 없다는 거죠.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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