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다섯 가지 편견
1. 사람은 누구나 ‘병들었다’
2. 오직 남성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3. ‘진정한’ 여성은 어머니, 그런데 잘못된 것은 모두 어머니의 탓
4. 레즈비어니즘과 동성애는 질병이다
5. 어떤 임신은 불법적이다, 어떤 여성은 난삽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비전문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무분별하게도 여성에게 일어난 일보다 남성에게 일어난 일을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남성의 정신적 질환이나 ‘장애’는 여성의 질환보다 좀 더 심각한 ‘불능 상태’로 여겨진다. 남성이 여성보다 정신장애로 진단받는 경우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성은 소모품이자 ‘아웃사이더’라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정신의학 및 심리학 관련 논문 구석구석에 흐르고 있다. 심지어 여성의 질환을 논문의 주제로 삼은 경우마저도 그렇다. (남성의) ‘덕목’은 여성에게 거의 기대조차 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그런 덕목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이런 덕목의 결여로 인해 여성이 사회적으로 평가절하되고 신경증이나 정신병으로 진단받게 되는데도 말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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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 비해 여성이 정신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에 반복적으로 드나들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끔찍하게도 여성들이 그곳을 ‘집처럼’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여성은 여자아이로서 제대로 양육받지 못했고, 성인 여성으로서 남성에게 ‘보살핌’ 받는 것을 갈망하거나, 적어도 주기적으로라도 한바탕씩 가짜 ‘보살핌’, 즉 환자로서 보살핌 받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여성의 역할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이를 아예 거부하는 여성들은 그것의 궁극적인 결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그처럼 위험천만하고 대담한 행동으로 처벌받기를 갈망한다. 많은 정신병원에서는 그런 여성들을 위협하고 처벌하거나 오도하여 진짜로 복종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약삭빠르게 복종하는 것처럼 만든다. - P155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여성은 우울증, 불감증, 피해망상, 자살 기도, 공황장애, 불안증, 식이장애 같은 ‘여성적’ 정신질환 증상을 드러내고, 남성들은 섹스중독,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성격장애, 반사회인격장애, 뇌질환과 같은 ‘남성적’ 질병을 드러낸다. ‘여성적’ 증상으로 인해 여성이 입원하는 것에 비해 ‘남성적’ 증상으로 남성이 입원하는 사례는 훨씬 적다. 전형적으로 여성적 증상은 한결같이 ‘행복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토머스 서즈가 만든 용어로서, ‘노예심리’를 특징 짓는 ‘간접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 P160

(일반 여성과 마찬가지로) ‘우울한’ 여성은 오로지 언어적으로만 적대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남성들과 달리 그들은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에게는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물리적으로 자신의 적대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여성 입장에서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보다 ‘우울한’ 것이 더 안전하다. - P164

남성들이 생산과 재생산의 수단을 통제하고 있는 한 여성들은 결코 성적으로 자신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성(또는 성적 쾌락을 위한 그들의 능력)을 경제적인 생존 및 모성과 맞바꾸어왔다. 익히 알다시피 여성의 불감증은 그와 같은 맞교환이 없어져야만 없어질 것이다. 매춘, 강간, 가부장적인 결혼이 혼외 임신, 강요된 모성, 비모성적인 부성, 나이 든 여성의 성적 박탈과 같은 개념(관행)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는 한, 여성들은 ‘성적’일 수가 없다.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의 불감증은, 여자아이들이 불감증을 겪지 않고 있는 여자 어른에게 돌봄을 받고,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랄 때 없어지게 될 것이다. - P168

여성의 자살 시도는 현실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적개심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보다는, 무력한 목을 드러내놓음으로써 자기희생을 위한 제례의식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여성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자살 시도는 체념과 무기력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행동이다. 이것만이 일시적인 구원 아니면 부수적인 보상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죽이려고 시도한 여성들이 반드시 친절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자살시도는 ‘여성성’의 숭엄한 제례의식이다. 이상적으로 말해 여성은 ‘이기기’ 위해 ‘지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살에 성공한 여성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여성적’ 역할을 넘어서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말이다. 심지어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 P172

남녀 모두에게 있어 정신분열증은 언제나 자신의 성별과 반대되는 행동까지도 보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여성 우울증 환자에 비해 적대적이거나 폭력적으인 행동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공공연하게 성적 쾌락(양성 쾌락)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지각을 불신하고,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의존적이라는 점에서는 두 집단 모두 ‘여성적’ 특성을 공유한다. 정신분열증이 여성을 위한 권력의 입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우울증, 편집증, 난혼, 불감증, 식이장애, 자해, 공황 발작, 자살 시도와 같은 ‘여성적’ 질병 역시 그렇지 않다. 이러한 ‘장애’는, 입원을 하든 하지 않든 여성의 역할 의식이 되고, 대다수 여성들이 그 의식을 수행한다. - P173

‘광기’라는 것은, 남자에게 나타나든 여자에게 나타나든 간에, 과소평가된 여성 역할을 수행하거나 혹은 개인에게 부과된 상투적인 성역할을 총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조건화된 여성의 역할을 완전히 수행하는 여성들은 임상적으로 ‘신경증적’이거나 ‘정신병적’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들이 입원당하는 것은 우울증, 자살 시도, 불안신경증, 편집증, 식이장애, 자해 또는 난잡한 성교등과 같은, 대체로 여성적인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중략)
여성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남성, 즉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며 성적 신체적으로 두려워하거나 혹은 무기력한 남성들, 혹은 여성처럼 남성을 성적 파트너로 선택하는 남성들은 ‘신경증적’이거나 ‘정신병적’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대체로 ‘정신분열자’나 ‘동성애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은 여성에 비해 스스로 ‘병든’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고서도 상투적인 성역할을 좀 더 오랫동안 거부할 수 있다. - P182

‘범죄’나 ‘정신질환’으로 간주되는 행동은 성별에 따라 유형화되어 있다. 물론 그런 행동들은 인종과 계급에 의해서도 유형화된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며 ‘정신질환자’로 분류되어 입원한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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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인 성역할로 구분된 사회에서는 어디든 예외 없이 같은 성별의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 기형적일 만큼 가혹함이 존재한다. - P131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본적인 근친상간(어머니와 아들 사이, 아버지와 딸 사이)의 금기를 ‘심리적으로’ 남성은 따르고 여성은 따르지 않는다. 우리 문화권에서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이르는 여자아이들이 아버지 혹은 남성 친척들에 의해 강간당하고 성적 괴롭힘을 당한다. 어머니에 의한 근친상간은 훨씬 드물다. 심리적으로 여성은 근친상간적인 유대관계를 끊어버리는 데 필요한 성년의식을 치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여성은 생물학적인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범하지는 않지만, 가부장적인 결혼, 매춘, 대중적인 ‘로맨틱한’ 사랑은 심리적으로 볼 때 딸과 아버지 같은 인물 사이의 성적인 결합에 기초를 두고 있다. - P132

우리 시대 여성들은 ‘자유로운’ 노예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굴종을 선택한다. 여성들은 정서적으로 너무나 쉽게 ‘홀딱 빠져들도록’ 배워왔기 때문에 생각을 한다손 치더라도 분명하게 생각할 수 없다. - P135

잔 다르크와 기독교의 성모마리아는 남성의 부활을 위한 처녀(페르세포네)의 희생과 연관된다. 마리아의 경우에 부활은 고전적인 가부장적 강간(근친상간)을 통해 이뤄진다. 잔 다르크의 경우에 부활은 처음에는 군사적인 승리를 통해, 이후에는 가부장적인 십자가형(patriarchal crucifixion)과 축성-속죄(sanctification-expiation)를 통해 이뤄진다. - P141

가부장제 신화에서 여성 전사는 필연적으로 생물학적인 모성을 포함한 성욕의 일부를 부정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비극이다. - P142

기독교신화는 마리아에게 딸도, 남성 및 남성 신과 교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데메테르의 권력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기에 빠져든 여성들은 세상(그리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탄생시키고자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잔 다르크의 십자가형은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동정녀 어머니가 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요구했던 그런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한다.
마리아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은 피했지만 무성의 삶과 찌르는 듯한 슬픔을 겪어야 했다. - P143

젤다 피츠제럴드, 실비아 플라스, 엘렌 웨스트 등은 어머니의 사랑을 원하고 필요로 했다. ‘고유성’이나 영예를 잃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 그 사랑을 갖고 싶어 했다. 그들은 아마도 궁극적으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성의 요구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 모성의 부재로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양육 박탈과 함께 그들의 고유성이나 영웅주의에 가해지는 제약이 그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그냥 ‘여자’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창조적인 인간으로, 혹은 그냥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남성의 창조성은 대체로 너무 고귀하여 그들이 보여준 기행과 잔인함과 정서적인 유치함은 간과되거나 용서되었으며, 심지어 ‘기대되기’까지 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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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미국 여성들은 어떻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까? 답은 이렇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사전 예고 없이. 이런 식이다. 갑자기, 예기치 않게, 완전히 미친 여성은 보안관에게 체포된 자신을 발견한다. 새벽녘에 침대에서 끌려 나오거나, 대낮에 길거리에서 "합법적으로 납치된다." 또는 아버지나 남편이 법적인 문제로 자신을 도와줄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말한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 여성은 남편의 말만 듣고 따라나섰다가 자신을 "미쳤다"고 공증하는 판사나 의사 앞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P102

술에 취해 구타를 하는 남편들은 지속적으로 구타를 하는 방식으로 아내를 정신적으로 감금한다. 또한 다른 여성과 살거나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감금한다. - P103

19세기에서 20세기를 살았던 네 명의 여성—엘리자베스 패커드, 엘렌 웨스트, 젤다 피츠제럴드, 실비아 플라스 휴스—은 다양한 정신병 ‘증상’으로 입원한 병력이 있다. - P104

이 네 여성은 자신의 고유한 개성에 치명적일 정도로 충실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수년 동안 그들은 자신을 부정하거나 혹은 부정당했다. (중략) 그들은 자유를 향해 투쟁했지만, 그것을 너무 뒤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불성실, 사회적인 배척, 감금, 광기 그리고 죽음이란 대가 말이다. - P105

정신질환 보호시설로 보내진 일부 여성들은 스스로 뭔가 정말 잘못되었다고 믿었다. 좋은 집안 출신에 재능 있었던 캐서린 비처(Catharine Beecher, 1855)와 페미니스트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1886)은 엄청난 피로감과 우울증 때문에 도움받기를 원했다. 비처는 수년간의 고된 집안일로, 길먼은 출산으로 인해 스스로 가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처는 이렇게 썼다. "(나의 성별은) 지상에서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행복(집안 살림)을 상상하라고 교육받았는데 그것은 근심과 실망, 그리고 슬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극단으로 이끌었다. 나라 전체에서 여성들의 건강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성은 스스로를 비난했다. 자신의 증상을, 관습적으로 ‘여자의 일(혹사)’이라고 여기는 일을 거부하거나 그것에 항의할 수 있는 방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비처와 길먼은 자신들이 얼마나 도움을 받지 못했는지, 자신들이 받은 다양한 정신과 치료가 얼마나 더 큰 악영향을 미쳤는지 묘사했다. - P113

대다수 정신과의사들은 남편의 ‘의지’를 대리 실행한 대리인이었다. 엘리자베스 패커드의 간수 겸 정신과의사는 그녀의 남편을 위해 정신질환 판정을 위한 증언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맥팔랜드 막사는 패커드가 ‘정신적으로 앓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가 거절당한 뒤 ‘후미진 병동’에 그녀를 방치했다. 패커드는 맥팔랜드의 ‘치료’가 남편의 의지에 아내를 복종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간파했다. 그녀에 대한 ‘치료법’은 감금과 다른 여성들을 위한 가사노동에 강제로 동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씻겨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그들을 위로했고 그들을 구타로부터 막아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강제 노역에 참여하기로 ‘선택했다’. - P118

이들 네 명의 여성은 ‘벨 자’ 안에 존재한다. 정신병원 안이건 밖이건 어디에서나, 그들에게 광기와 감금은 여성으로서의 무기력함과 동시에 이런 상태를 극복하고 거부하려다 결국 성공하지 못한 시도의 표현이었다. 광기와 정신병원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경험을 비추는 거울 상으로 기능하며, 감히 여성이 되지 않으려고 시도하거나 그것을 욕망하는 것뿐 아니라, 여성이 된다는 것에 대한 벌칙으로 기능한다. 그와 같은 도전이 심각하고도 극적일 만큼 진행되면 (늦거나 이른 자살을 통한) 죽음이 뒤따르게 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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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공중위생 사업의 학문적 기반은 루이 파스퇴르의 미생물 이론이었다. 19세기 80년대 그의 이론은 유럽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파스퇴르의 이론은 존 스노 등 실천가들의 관찰 작업에 과학적 기초를 제공해주었고 또한 위생 정책의 수립이 정당정치의 정략에 이용되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초기의 공중위생 사업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학문적 기초 때문에 보편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생물 이론이 등장하면서 청결이 최고의 준칙으로 공인되었다. 세균학의 산물인 ‘건강인’이란 개념은 이렇게 탄생했고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의 지위는 과학자를 뛰어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이론가로 상승했다. 질병은 이때부터 이전의 생태, 사회, 정치, 종교적 맥락과 결별했고 건강이 최고의 가치로 숭상되었다. - P551

세계사적 시각에서 볼 때 19세기에는 질병의 보다 용이한 전파와 질병에 대한 보다 성공적인 대응이라는 긴장관계가 발전했다. 한편으로는 교류와 이주의 증가가 전염병의 전 지구적 전파의 편리한 통로가 되었다. - P558

19세기에는 의학적 구시대의 종말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좌절과 난관이 있어도 진보란 이름은 부정될 수 없다. 이 과도기는 세 방면, 혹은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하자면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 제너가 발명한 백신 접종술이 지구상에서 천연두 발병률을 대폭 낮추어 놓았고, 신코나 나무껍질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가 말라리아 예방과 치료효과를 극적으로 높여놓았다. 두 번째 단계. 파스퇴르와 코흐로 대표되는 실험의학의 탄생. 실험 의학은 이 시대의 중요한 발명이었으며, 19세기 70년대에 처음 위력을 드러냈고 10년 이내에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했다. - P589

세 번째 단계. 제너와 파스퇴르가 세운 의학사의 두 가지 새로운 이정표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기가 세 번째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승리자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실천이란 19세기 중엽에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시작했고 얼마 후 세계 기타 지역에서 최소한 국부적으로라도 영향을 미친 위생운동을 가리킨다. - P590

한편으로 많은 중요한 의학적 발견이 식민지에서 탄생했고, 다른 한편으로 유럽에서는 배척당하던 의료와 약물 시험이 식민지에서 완성되었다. 식민지에서 의료와 위생 관련 직업의 첫 번째 목표는 식민자의 생존조건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많은 식민지에서 사람들은 의학적 수단의 도움을 받아 피식민자의 노동 능력을 높임으로써 식민통치의 합법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유럽이 발원지가 아니지만 지구 전체를 감염시킬 수 있는 질병에 맞섰다는 것은 전통적인 봉쇄와 격리 전략의 한계를 보완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이었다. 19세기에 질병에 맞서는 싸움은 국제적인 임무로 인식되었다. - P592

발달된 공업사회와 비교할 때 현대 이전 사회는 문명의 정도에 관계없이 모두가 빈궁한 사회였다. 그러나 경제의 현대화가 빈곤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이것이 인류가 ‘현대성’의 성취를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심지어 21세기에 진입한 뒤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여전히 기근이 존재하고 기근 때문에 수시로 폭동이 발생한다. 현재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인류 가운데서 여섯에 하나는 상시적인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19세기의 생산력 증가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물질적 생존기회를 보다 평등하게 바꾸어 놓지 못했다. - P632

근대 초기의 전 지구적 식물 이동현상의 대상은 소수의 희귀 사치식물에 한정되지 않았으며, 농업경제와 조경업 경제를 바꾸어놓았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생산성과 소비행태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 P649

전 지구적 시각에서 19세기를 살펴보면 인류 대부분의 삶의 물질적 조건이 의심의 여지 없이 개선된 시대였다. 계몽시대 이후 대서양 양안 세계의 문화의 기본 이념인 진보에 대해 의문을 품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념 자체가 부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 말하자면, 이런 막연한 판단은 깊이가 없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좀더 깊이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모든 변화의 추세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변화의 추세가 상호 모순적인 경우가 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8세기를 1840년대까지 이어지는 ‘긴’ 18세기로 본다면 유럽의 18세기는 여전히 기아의 세기였다. 그런데 19세기 중엽부터 유럽에서는 분명한 기아의 ‘탈지역화’ 현상이 나타났다. - P674

그러나 경제발전 수준이 낮은 식량생산 지역의 입장에서는 식량 유통범위의 확대는 오히려 재난의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발전의 피해자는 혁신에서 ‘뒤쳐진’ 나라나 혁신이 비켜간 나라만이 아니었다. 쉼없는 ‘현대화’의 침입도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 P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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