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 서른 살의 강을 현명하게 건너는 52가지 방법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걷는나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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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녀의 전작<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1년 전에 읽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을 서른 살로 보고, 서른은 어떤 과정을 겪는지, 앞으로의 뭘 준비는 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심리서였다. 정신과답게 날카로웠으며, 여의사답게 비유와 은유가 많아 부드러웠다. 곧 서른을 맞을, 20대 후반의 나로썬 언니의 고민을 미리 체험해보는 유익한 책이다.

후에 인터뷰에서 저자는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는 참 쓰기 쉬웠다고 했다. ‘서른 살’은 그동안 써왔던 전작들을 정리 했더니 완성되어 있더라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어려웠던 점이 있었는데, 미래가 투명했던 당신의 서른과 지금의 서른들은 많이 다르더라는 거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사회와 불투명한 서른 살을 맞는 내담자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어떻게 말해줄까 상상하면서 썼다고 한다. 덕분에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는 독자들을 다독이고 위로한 책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지만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 답변이 없어 답답하다는 비판도 있었단다.

원래 정신분석학은 직접 답을 일러주는 학문이 아니다. 답은 각자 안에 있고, 그 답은 개인마다 다르다고 보는 게 정신분석이다. 실질적인 행동지침을 찾는다면 자기계발서를 보지 왜 심리학책을 봤을 까. 빠르게 답만을 요구하는 모습이 지금 서른인가 싶어 씁쓸하다. 자기고민 없이 찾는 답은 억지뿐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만, 심리책으로 되돌아오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빨리 답을 찾았다고 해서 행동으로 옮기기는 또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구체적 답변이 될까 싶어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를 썼다고 했다. 그러나 이 책도 구체적 답변은 없다. 오히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보다 감흥이 덜하다. 이건 내가 대중 심리학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인지, 에세이 같은 김혜남씨의 글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김형경처럼 격하거나, 이철우처럼 담담한 게 내게 맞는 것 같다.

이번에도 같은 말이다. 못난 것도 나요, 잘난 것도 나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가 내가 얻은 교훈이다. 심리학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삶이 명쾌해질까. 아니다. 서른이든, 지천명이든 살아있다면 평생을 고민하고 좌절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더 깔끔하고 여유롭게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책을 읽고 있다.

몇 년 남지 않은 이십대를 위하여 파이팅.

만일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당신을 싫어한다면 그 이유를 찾아 관계를 개선하도록 노력하라. 그러나 당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또는 당신과 별 상관없는 사람이 당신을 싫어한다면 신경을 꺼도 된다. 그들이 당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그들의 마음일 뿐이다. 세상에는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법이다. (중략) 그들이 지금 당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당신을 똑같이 사랑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노력하지 않는 관계는 결국 깨어지게 되어 있다. 무심한 태도를 끝없이 이해해 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쓰고 있는 에너지를 거두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끼없이 써라. (p.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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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심리학 - 남자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41가지 심리코드
우종민 지음 / 리더스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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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직장생활의 고역을 이야기하던 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우린 나아. 우린 여차하면 때려 치고 집안에 눌러앉으면 되지만, 남자들은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평생 일 해야 하잖아. 그런 거 보면 남자들을 불쌍해.”

맞다. 남자들은 불쌍하다. 부모님 유산 덕에 놀고먹어도 되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셔터맨과  처자식 등쳐먹는 놈은 이미 상식에 없다. 놀고먹어도 잘나갈 억대 상속남도 사업을 벌이고, 가족들에게 모진 남자라도 일은 한다. 일이란 단순 식량구입비가 아니다. 남자에게 일이란 사회의 구성원임을 인정받는 일이자 정복욕과 채워주는 도구다. 더 상위단계로 넘어가면 자아발견까지 한다고 하지만, 그 단계는 제쳐두자. 일터로 향해야만 하는 이시대의 여자에게도 일의 의미는 남자의 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남자는 책임의 크기가 다르다.

   
  남자들이 ‘책임의 크기’에 눌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가족부양이라는 절실한 이유도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자신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크게 자리하기 때문이다.(중략) 남자에게 책임은 성공의 다른 이름이며, 책임의 크기가 클수록 자존감도 함께 높아진다. 때론 ‘책임’에 매몰되어 ‘자신’이 망가지는 한 이 있더라도 그것을 정복하고 싶은 마음을 지울 수 없는 동물, 그것이 바로 남자인 것이다. (p. 81)  
   

그래서 불쌍한 거다. 자신이 망가지라도, 몸이 부셔지더라도 남자는 일을 사수한다. 성공에 큰 야망이 없는 보통의 여자들은 자신을 더 소중히 한다. 외모 꾸밈을 통해 자기만족적인  행복을 찾고, 때론 어린아이 같은 자기중심주의를 편다. 그 덕분에 남자는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남자에게 그런 것은 무척 낯설기 때문이다. 자아사랑을 외치는 것 보다 성공, 충성을 외치는 게 더 남자답긴 하다.

남자들은 평생 3겹의 감옥에서 산다. 치열한 경쟁, 감정표현의 억눌림, 자기 집중시간의 부재가 그 것 이다. 책은 이 감옥에서 즐겁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1,2장에서는 강요된 남성성을 벗고 한 템포 쉬라고 한다. 체계화된 남자보다는 공감형으로 변하라고 주문하고, 남자에게 퇴직이 주는 충격을 예고해 준다. 3장은 남자의 인정욕구가 어떠하며 성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안전주의자에겐 발전된 미래가 없다고 질타하고, 지각하지 말기를 권한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따위는 원래부터 없는 것이므로 괘념치 말라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절대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공자 왈도 끌어온다. 4장은 상사병과 상사와의 관계조율에 대해 말한다. 5장은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의 열린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6장은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취미를 가지라고 하고, 7장은 인생 뭐있냐며 마음 편히 먹고 살라고 한다.

남자 심리학이라고 하지만, 여자들이 읽어도 좋다. 특히 남자를 강하게 만들려면.

   
  남자들의 이러한 정복욕, 서열상의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는 욕구의 기저에는 ‘자신의 소중한 가족, 조직, 국민’을 지켜줄 수 있는 우산으로 권력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을’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남자들은 가장 먼저, 자신의 남성성을 외부로부터 확인 받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무조건 “내가 지켜 줘야지”, “내가 아니면 할 수 없어”라며 스스로를 치켜세워가며 남성성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너라면 할 수 있어”, “넌 참 남자다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구나”라고 스스로를 인정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p.38)  
   

ps. <남자심리학>을 다 읽었다면, 다음으로 김병후의 <아버지를 위한 변명>을 추천한다. <남자심리학>은 젊은 남성과 직장인이 타깃인데 반해 <아버지를 위한 변명>은 중년남성, 퇴직이후의 아버지의 심리에 대해 잘 써놓았다. 두 권 다 남자들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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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 - 세상의 모든 패배자에게 보내는 재기 멘토링
박성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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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부터 직장에서 독서통신 교육을 받고 있다. 한 달동안 1권의 책을 읽고 인터넷으로 레포트를 제출하는 시스템인데, 그 덕에 오바마 책을 2권 째 읽고 있다. 첫 번째 책은 <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오바마 이야기>였는데, 지나친 영웅예찬에 겉핥기식 일대기였다. 덕분에 레포트 쓰긴 쉬웠지만, 욕하기 편했다. 선택할 수 있는 책이라곤 자기 계발, 경영서뿐인 독서통신 프로그램이었다. 책이라는 좋은 매체를 이렇게 밖에 활용 못하나 싶어 안타깝다. 고용보험에서 나가는건지, 직장에서 부담하는지 모르겠다만 교육비가 105000원~108000원이다. 낭비다. 차라리 원하는 책을 사도록 문화상품권을 주거나 연봉동결이나 풀어다오!

그나마 이번 책 <역전의 리더 오바마>은 만족이다.

백인 어머니와 케냐 출신의 흑인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오바마는 어릴 때부터 미운오리새끼였다. 오바마는 백인인 외조부의 보살핌 속에서 백인 어머니의 기대를 받고 자랐지만 집밖을 나서는 순간 ‘깜둥이 녀석’이 되어버렸다. 오바마는 이 혼란스런 현실 속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남다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한 경험은 그의 세계관을 넓게 해주었다.

“나는 흑과 백의 두 세상 사이에서 줄을 타는 법을 익혔다. 각각의 세상은 각각의 언어와 관습과 의미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리고 나로서는 두 세상 사이의 언어를 번역하는 데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얼마든지 두 세상에 동시에 속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방황하던 오바마는 흑과 백의 두 세상이 모두 자신의 일부이며 반드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갈등 구도인 흑백 갈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갈등 구조에서라도 거뜬히 줄타기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능력은 정치력 혹은 정치적 수완으로 변할 수 있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 구도 속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미국을 통합하는 리더라는 이미지에도 적합했다.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이 사람들에게 오늘밤 이렇게 말해둡니다. 진보적인 미국이 따로 있고 보수적인 미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된 주들인 미국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 있을 뿐입니다. 검은 미국이 따로 있고 하얀 미국이 따로 있고 라틴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된 주들인 미국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 있을 뿐입니다." (p. 180)

오바마를 강점 중 하나가 공감과 경청인데, 책속에서 여기저기 나온다. 흑인이라고 놀림받는 상황에서도 혹시 상대가 상처받지 않았을지 살피는데 그 공감 능력은 어머니 앤에서 배었다고 한다. 처자식을 버릴 정도로 야심가였으나 융통성이 없어 말년을 폐인으로 보낸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아버지의 이미지는 단 하나였다. 가끔씩 반항을 하긴 했지만 결코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는 이미지, 반드시 본받고 따라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미지였다. 명석한 학자, 관대한 남자, 탁월한 지도자....” (p. 122)

이 부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놀랐다. 오디푸스 콤플렉스를 봤고, 전 남편들을 원망하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삶에 충실한 어머니를 봤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는다면 나는 어떤 어머니가 되고, 인생의 중재자가 될 것인가. 가슴이 뜨끈해졌다. 내 인생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 구나,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싶다.

하와이의 마리화나 청년에서 하버드 법대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에 오른다. 하버드 졸업후 오바마는 보장된 안락을 버리고 인권변호사로 일한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욕심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996년에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민주, 시카고 남부 제13지역구 대표)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그러나 2000년에는 연방 하원의원 예비 선거에서 낙선의 위기를 겪는다. 2004년 연방 상원 의원 선거에 출마,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2004년 전당 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며 유명인사가 된다. 그리고 2008년 메케인과 대통령자리를 두고 겨룬다. 저자 박성래는 여기서 꼴통 메케인과의 설전을 써놓았는데 이게 이 책의 숨은 재미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역대 대통령들을 열거하며 영웅서사를 끌어오는데 이게 꽤 재미있다. 밑바닥에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지어다.

저자는 기자출신답게 오바마를 다각적으로 분석해놓았다. 오바마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그리지는 않았다. 오바마의 한계, 엘리트주의, 정치적 굴욕까지 책에 담았다. 그럼에도 대체적인 분위기는 오바마를 긍정하는 쪽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우리 이명박 정부에 부정적일지 긍정적일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바마가 내게 긍정적으로 인식된 것만은 확실하다. 검은 오바마, 그의 달콤한 미소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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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8-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은근히 볼 만하죠.. 신간이 나왔던데 그 책은 한국의 대통령 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기대가 되네요 ^^

모과양 2009-08-29 21:08   좋아요 0 | URL
오호 기대되는데요^^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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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독서가의 인터뷰 글을 보게 됐다. “책은 절대 취미가 아닙니다. ‘인생의 과정’으로, 죽을 때까지 인간의 피와 살을 만드는 양식과 같은 ‘삶의 영양소’입니다.”라고 했다. 이 문장을 읽으니 주변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니,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그래, 취미의 범주에 넣긴 너무 좁다. 내게 독서란, 일상이자 일생의 과제가 된지 오래다. 책은 자존감을 한껏 고양시켜주기도 했지만 오만할 땐 준엄히 꾸짖었다. 모두가 날 힐난할 때도 내말을 들어주는 건 책 뿐이었다. 책 앞에선 내 재능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콧물 흘리며 울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세상 빛을 보게 해준 건 부모님이었지만, 세상의 빛깔을 구별하게 해준 건 책이었다. 늦게나마 책을 즐겨 읽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책이 없었으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이래서 책 관련된 제목을 단 책이 나오면 기어이 사보고 마는 것이다. 이번에는 기괴스런 표지에 책을 처방한다는 제목에 끌려 구매하고 말았다.

전문털이범 루크레시오가 어느 외딴 저택에 잠입한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왠 대머리 아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칼비노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이는 대뜸 자신의 아버지가 되어달라고 협박한다. 어쩔 수 없이 민머리 칼비노를 따라 머리까지 밀게 된 루크레시오, 그 괴상한 집에서 동거를 하게 된다.

가택 침입한 도둑놈을 아빠가 되게 하는 설정, 예전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스텝 파더 스텝>(이하:스텝) 이 생각났다. <스텝>의 주인공 도둑도 어수룩했고, 상대 아이들은 영악했는데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이하:책을)도 비슷하다. 도둑이면 좀 악랄해야겠지만, 둘 다 아이를 불쌍히 여겨 집안 대소사에 얽여 버리는 점까지 닮았다. 차이 점이라고 하면 <스텝>은 현실적이고, <책을>은 몽환적이다.

루크레시오는 여자애인지, 남자애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칼비노를 따라 정신병원인지 도서관인지 헷갈리는 곳을 따라가게 되고, 냉동된 시체를 발견하고, 거인 행세하는 난쟁이를 만나기도 하는 등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더 황당한 건 이 뒤죽박죽한 이야기 조각을 맞춰 보려고 내가 짱구를 굴린다는 거다. 에필로그인지, 프롤로그인지 헷갈리는 마지막 장에서 허탈하게 웃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보고 마음 정리했다. 딱딱하게 굳은 편견에 물음표를 달고 상상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게 이 책의 특징이란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곳 환자들과 똑같이 행동해요. 특정 등장인물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의 모험을 재현하지요. 이게 당신이 말한 대로 잠시나마 우리의 일상에서 스스로를 멀어지게 하는 거죠.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좋은 책이라면, 그러니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든다면, 나중에 우리가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좀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줄 거예요.”
p. 56

“이야기책은 사건을 간단하고 정리된 형태로 들려주죠.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고 배우고, 또 우리 머릿속에 정리하는 걸 도와줘요. 어린애들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싶어하는 건 자기가 그 정보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고, 또 머릿속에 잘 정리해놓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야기 자체를 즐기기도 하지만, 자신이 그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아이들을 안심시키기도 하고요....”p. 57
 
   

스토리를 따라 가다가 독서의 치유력에 대해 써 놓은 것은 너무 좋았다. 그러나 책 두께에 비해 정가 9000원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로테스크한 일러스트 값인가? 스페인 문학상 엘 바르코 데 바포르 값인가? 책을 덮으니, 팀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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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IC 2009-04-22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목만 보고 딴지 걸려고 했는데... 오해를 했습니다. 그렇죠. 책은 밥입니다. 그리고 (저에겐) 취미이기도 합니다. 밥이기도 하고, 취미이기도 하고, 놀잇거리이기도 하고, 보물이기도 하고... 그래서 책이 좋죠.

모과양 2009-05-04 01:22   좋아요 0 | URL
헌책방IC님. 찌찌뽕~
 
4월이 되면 그녀는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3
다구치 란디 지음, 김난주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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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당신과 5년 뒤의 당신의 차이는 그 기간 동안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과 당신이 읽는 책들에 달려있다’ -찰리 트리멘더스 존스-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문장을 봤다. 한숨이 나왔다. 내 주변의 인간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 하고 있는 것, 나의 조악한 품세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주변의 인간들은 왜 이따위들인가? 이 질문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이따위니 남 탓은 애초부터 할 수  없는 것이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노지 마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까마귀 떼 속에 들어앉아 아무리 흰털을 뽐낸 듯, 군계일학으로 봐주지 않는다. 그냥 까마귀 떼일 뿐이다. 깃털 뽑히지 않은 걸 다행삼아야 한다. 내가 백로라는 말은 아니다. 나도 까마귀다. 문제는 백로의 눈높이를 가진 까마귀라는 거다. 눈깔만 높아져 보는 눈은 쳐 올라가는데, 주변 사람들이 시꺼메서 맘에 안 든다. 내 눈깔을 있는 데로 올려준 것은 책. 이놈의 책이다. 그 덕에 난 좀 외롭다. 외로움을 즐긴다고 할까.

막상은 읽지도 않으면서 누가 책 읽을 여유시간을 빼앗으면 버럭 화를 낸다. 독서를 많이 하면 너그러워 질 줄 알았는데, 그 건 내 바람이었다. 책 덕에 소통한 사람도 있지만, 이해 못할 인간은 이해치 말자로 정리된 사람도 있다. 협소한 인간관계는 더더욱 좁아졌다.

의미없는 만남은 없겠지만, 책보다 재미없으면 안 만나는 쪽이다. 불편해도 피하는 편. 덕분에 책 볼 시간은 많아졌다. 3주에 한번 정도는 도서관을 어슬렁거리고,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고, 타인들의 리뷰에 감명한다. “오우, 나는 이렇게 못쓰는데...... 나도 잘 쓰고 싶다.”가 매일 반복된다.

3월 초입에 <4월이 되면 그녀는>을 읽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에 걸친 미스들의 연애삽질 단편집이다. 연둣빛 표지와는 달리 내용은 야하다. 거기다 웃기다. 격 없이 명랑 발랄하다가 좀 심각해지는 내용도 있다.

<아키시아비를 맞으며>는 술이 취해 옛 연인들에게 전화를 거는 설정이고, <신부의 남자친구>는 전 연인 때문에 마음이 삐뚤어져버린 신부의 이야기고, <4월이 되면 그녀는> 남자친구의 전화를 기다리는 토라진 여자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있다. <백만 년의 고독>은 질투하는 여자가 등장하는데 단편 중에 2번째로 재미있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해변의 피크닉>과 연결된<해변의 피크닉, 그 후>다. 바보 같은 남자지만, 바보니까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유부남의 답변에, 책 속 주인공과 똑같이 녹아버렸다. 두 연인은 불륜 관계였다.

<4월이 되면 그녀는>은 일본 여류작가가 쓰기도 했지만 일본소설다웠다. 에쿠니 가오리스러운 밍숭맹숭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추천이다. 유명세에 비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많이 읽어 보진 못해서 섣부른 비교일지도 모르지만, 에쿠니에 비해 솔직하다. 감정표현들이 다구치 란디의 실경험이라고 착각할 만큼.

ps. 5년 뒤를 결정한다니,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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