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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그녀는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3
다구치 란디 지음, 김난주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의 당신과 5년 뒤의 당신의 차이는 그 기간 동안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과 당신이 읽는 책들에 달려있다’ -찰리 트리멘더스 존스-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문장을 봤다. 한숨이 나왔다. 내 주변의 인간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 하고 있는 것, 나의 조악한 품세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주변의 인간들은 왜 이따위들인가? 이 질문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이따위니 남 탓은 애초부터 할 수 없는 것이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노지 마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까마귀 떼 속에 들어앉아 아무리 흰털을 뽐낸 듯, 군계일학으로 봐주지 않는다. 그냥 까마귀 떼일 뿐이다. 깃털 뽑히지 않은 걸 다행삼아야 한다. 내가 백로라는 말은 아니다. 나도 까마귀다. 문제는 백로의 눈높이를 가진 까마귀라는 거다. 눈깔만 높아져 보는 눈은 쳐 올라가는데, 주변 사람들이 시꺼메서 맘에 안 든다. 내 눈깔을 있는 데로 올려준 것은 책. 이놈의 책이다. 그 덕에 난 좀 외롭다. 외로움을 즐긴다고 할까.
막상은 읽지도 않으면서 누가 책 읽을 여유시간을 빼앗으면 버럭 화를 낸다. 독서를 많이 하면 너그러워 질 줄 알았는데, 그 건 내 바람이었다. 책 덕에 소통한 사람도 있지만, 이해 못할 인간은 이해치 말자로 정리된 사람도 있다. 협소한 인간관계는 더더욱 좁아졌다.
의미없는 만남은 없겠지만, 책보다 재미없으면 안 만나는 쪽이다. 불편해도 피하는 편. 덕분에 책 볼 시간은 많아졌다. 3주에 한번 정도는 도서관을 어슬렁거리고,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고, 타인들의 리뷰에 감명한다. “오우, 나는 이렇게 못쓰는데...... 나도 잘 쓰고 싶다.”가 매일 반복된다.
3월 초입에 <4월이 되면 그녀는>을 읽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에 걸친 미스들의 연애삽질 단편집이다. 연둣빛 표지와는 달리 내용은 야하다. 거기다 웃기다. 격 없이 명랑 발랄하다가 좀 심각해지는 내용도 있다.
<아키시아비를 맞으며>는 술이 취해 옛 연인들에게 전화를 거는 설정이고, <신부의 남자친구>는 전 연인 때문에 마음이 삐뚤어져버린 신부의 이야기고, <4월이 되면 그녀는> 남자친구의 전화를 기다리는 토라진 여자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있다. <백만 년의 고독>은 질투하는 여자가 등장하는데 단편 중에 2번째로 재미있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해변의 피크닉>과 연결된<해변의 피크닉, 그 후>다. 바보 같은 남자지만, 바보니까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유부남의 답변에, 책 속 주인공과 똑같이 녹아버렸다. 두 연인은 불륜 관계였다.
<4월이 되면 그녀는>은 일본 여류작가가 쓰기도 했지만 일본소설다웠다. 에쿠니 가오리스러운 밍숭맹숭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추천이다. 유명세에 비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많이 읽어 보진 못해서 섣부른 비교일지도 모르지만, 에쿠니에 비해 솔직하다. 감정표현들이 다구치 란디의 실경험이라고 착각할 만큼.
ps. 5년 뒤를 결정한다니,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할지어다.